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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95화 (95/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95)

“유진 경, 이번 사건은 제가 직접 국왕 폐하께 보고를 드릴 겁니다. 왕실과 중앙에서도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 이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창백한 얼굴의 란테르고 백작이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맹약 기사단이라는 집단의 공격으로 적지 않은 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왕실과 중앙에서도 매우 중대하게 여길 만한 사안으로 더 큰 참사가 되지 않게 막아 준 유진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논의될 것이다.

맹약 기사단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보가 부족하여 쉽게 추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의 연회장 공격에서는 지벨 백작과 란테르고 백작을 노린 게 분명했다.

지벨 백작은 북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주였고, 란테르고 백작은 오염된 정령 기사와 관련된 현상들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국왕이 직접 파견한 조사관이었으니, 그들의 목숨이 가지는 무게는 평범한 귀족들과는 다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유진은 겸허하게 말했다. 무슨 보상을 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왕실과 중앙이 언급될 정도로 활약했으니, 섭섭하게 챙겨 주지는 않을 것이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국왕이 직접 하사하는 보상은 대체적으로 후한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증과 함께 미약한 기대 심리가 생겼다.

―왕실이랑 중앙이 언급되는 걸 보면 국왕이 보상을 줄 수도 있겠네요.

―오! 최고다!

―ㄹㅇㅋㅋ.

―국왕의 보상이면 좀 다른가요?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

―뉴비다! 뉴비!

―국왕이 직접 주는 거라면 보상의 퀄리티가 올라갑니다.

―왕의 체면이 있으니까, 보상을 줄 때 좀 많이 뿌리는 편임.

신규 시청자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유진의 방송을 시청하는 이들 중 고인물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신을 과하게 낮출 필요 없습니다. 유진 경이 없었다면 어제 연회장에 있던 귀족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란테르고 백작이 말했다. 유진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란테르고 백작도 그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유진을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 폐하께서 유진 경에게 어떤 보상을 하사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만, 기존에 정령 기사 토벌에 대한 보상으로 약속하셨던 왕실 3등 비고의 마도구가 한 단계 격상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입니다.”

왕실 2등 비고에 보관되어 있는 마도구는 대부분 A랭크 이상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 지벨 백작과 높은 우호도를 쌓고서 선물로 받은 ‘보호의 약속’이 B+랭크라는 걸 감안한다면 A랭크 마도구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기존에 약속하셨던 보상을 격상하신다는 말씀은 왕실 2등 비고의 마도구를 보상으로 준다는 뜻인가요?”

란테르고 백작의 추측에 유진은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대놓고 보상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면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은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합니다. 확실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왕실 2등 비고에 보관 중인 마도구가 하사될 겁니다.”

왕실 2등 비고의 마도구가 보상이라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려 했기에 유진은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어제 연회장에서 큰 참사를 당했는데 너무 기쁜 기색을 드러내는 것도 곤란하다.

“오늘 오후 5시에 마법 통신으로 국왕 폐하께 현 상황에 대해 직통으로 보고를 올릴 겁니다. 그때 유진 경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할 예정이고요. 보상이 확정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왕실 정보대의 수장인 필린 란테르고 백작, 그는 루벤 왕국의 국왕과 직통으로 연결된 마법 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당장 결정이 되지는 않겠지만 늦어도 내일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는 답신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란테르고 백작이 말한 대로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루벤 왕국의 국왕은 유진에게 보상으로 하사할 마도구를 결정했고, 이를 마법 통신으로 란테르고 백작에게 전했다.

그날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은 지벨 백작으로부터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 식당에는 지벨 백작과 그의 딸인 안나, 유진 일행과 란테르고 백작이 자리했다.

식사가 끝나고 하인들이 후식을 꺼내 왔다. 따뜻한 홍차와 작은 쿠키 몇 개였다. 찻잔을 채운 차를 절반 정도 비웠을 때 식사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란테르고 백작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진 경, 보상이 정해졌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란테르고 백작의 말에 유진은 조용히 두 눈을 반짝였다. 국왕이 하사하는 마도구, 과연 어떤 것일까? 몹시 궁금했다.

고인물이라고 불릴 정도의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루베니아 연대기에서도 주 무대가 되는 루벤 왕국의 국왕으로부터 하사품을 받았던 경험이 많았다. 그가 하사를 받았던 마도구만 해도 10종류가 넘을 정도였다. 물론 한 번의 회차가 아니라 모든 회차를 포함했을 경우였다.

―어떤 마도구를 받게 될지 궁금하네요.

―두근두근!

―뽑기 하는 기분이네요.

―ㄹㅇㅋㅋ.

―궁금한 게 있는데 국왕한테서 보상받을 때 꽝이 걸릴 수도 있나요?

―웬만해서는 꽝 없는데, 운이 없으면 랭크만 높고 진짜 쓸모없는 마도구를 받게 될 수도 있음.

―이상한 거 받으면 답 없음. 국왕이 하사한 거라서 다른 사람한테 파는 것도 안 됨 ㅋㅋㅋㅋ.

채팅 창이 소란스러웠다. 시청자들도 유진이 어떤 보상을 받을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유진은 들뜬 기분을 정돈하고는 란테르고 백작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결정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유진의 물음에 란테르고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궁금한 모양이군요.”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이건 군사 기밀도 아니고,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라서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질을 부탁합니다.”

보상을 알게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궁금증이 강해서 먼저 듣고 싶었다. 유진의 가벼운 재촉에 란테르고 백작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국왕 폐하께서 경에게 하사하고자 결정하신 것은 왕실 2등 비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불굴의 심장’이라는 이름의 A랭크 마도구입니다.”

A랭크 마도구, 불굴의 심장.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방대한 세계관과 세밀한 설정을 보유한 루베니아 연대기는 게임 속에 구현된 마도구의 숫자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중에서도 공포와 관련된 상태 이상에 아주 높은 저항력을 제공하는 ‘불굴의 심장’은 커뮤니티와 공략 사이트 등에서도 유저들 사이에서 꽤 자주 언급될 정도로 유명한 마도구였다.

―불굴의 심장! 방장님의 뽑기 운은 세계 제일!

―ㄹㅇ 뽑기 운 좋았다.

―방장님. 이번 기회에 복권 한 번 구입해 보시죠! 이 정도로 운수 좋은 날이면 당첨되실 듯?

―보상 뽑기에 모든 운을 다 쓰셔서 복권 당첨은 불가능 ㅋㅋㅋㅋ.

―ㄹㅇㅋㅋ.

―부럽다!

A랭크 마도구 중에서도 우수한 성능으로 유명한 ‘불굴의 심장’이 보상으로 제공될 예정이라는 란테르고 백작의 설명에 채팅 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불굴의 심장이 뭐예요? 엄청 좋은 마도구인가요?

―도와줘요! 설명 요정!

―불굴의 심장은 루베니아 연대기 게임 안에서 몇 없는 공포 분류 상태 이상에 완전 저항할 수 있는 마도구임. 물론 랭크의 한계라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S랭크 이상의 공포 상태에는 제한적인 저항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은 마도구에 속함!

―고마워요! 설명 요정!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신규 시청자에게 기존의 고인물 시청자들이 친절하게 ‘불굴의 심장’이라는 A랭크 마도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정상적인 게임 방송이었다면 스트리머가 설명해 줘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게임 속 세상에 빙의한 유진은 ‘일시 정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들한테 친절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 방송에도 설명 요정님 계셨네요!

―루베니아 연대기는 설정이 너무 많고 세계관도 엄청 넓어서 설명 요정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더라고요.

―오늘도 설명 요정이 활약!

―설명 요정님 대승리!

―ㄹㅇㅋㅋ.

채팅 창에는 설명 요정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유진은 훈훈한 분위기의 채팅 창을 힐끔 확인하고는 다시 란테르고 백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사용하겠습니다.”

담백한 반응에 란테르고 백작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구의 전달은 왕립 기사단이 맡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왕도에서 출발했으니, 일주일에서 이주 사이에 지벨 도시에 도착할 겁니다.”

지벨 백작령은 북부의 영지 중에서는 그나마 왕도가 위치한 왕국 중앙과 가깝기 때문에 전달을 맡은 왕립 기사단이 서두른다면 늦어도 이주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늦어도 이주라, 당장 급하게 진행해야 할 퀘스트는 없으니 그동안 영주성에서 지내며 수련과 재정비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시청자들은 지루해하겠지만 중간에 몬스터 토벌 같은 의뢰를 수행하며 그들의 무료함을 적당히 달래 준다면 시청자 이탈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란테르고 백작은 늦으면 이주 정도 걸릴 것이라 말했지만 마도구 전달을 맡은 기사들은 일주일 만에 지벨 도시에 도착하였다.

영주성의 연무장에서 마나 수련에 집중하고 있던 유진은 지벨 백작가의 수습 기사로부터 국왕이 보낸 기사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서 란테르고 백작을 찾아갔다. 마침 그는 응접실에 있었다. 왕실의 기사들로부터 A랭크 마도구, ‘불굴의 심장’을 전달받은 직후였다.

전달을 끝낸 왕실 기사들은 여정의 피로를 풀기 위해 일찍 숙소로 돌아간 후였고, 응접실에는 란테르고 백작이 홀로 남아서 다 식은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란테르고 백작님.”

문을 열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란테르고 백작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어느새 찻잔을 비운 란테르고 백작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유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진 경,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알겠습니다.”

란테르고 백작의 권유에 유진은 그를 마주 볼 수 있는 정면의 소파에 앉았다.

“방금 전에 국왕 폐하께서 보내신 왕실의 기사들로부터 불굴의 심장을 전해 받았습니다.”

란테르고 백작은 말을 마치며 옆에 놓인 보관함을 집어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보관함이었는데, 갈색의 덮개에는 루벤 왕국을 상징하는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불굴의 심장입니다.”

란테르고 백작의 설명에 보관함을 내려다보는 유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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