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84화 (84/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84)

“나쁘지 않네.”

상태 창 확인을 끝낸 유진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전직 특전으로 3개의 스킬을 습득했다. 그중 A랭크에 해당하는 ‘정령검(A)’은 정령의 힘을 오러 블레이드에 부여하는 스킬이다.

간단한 구조여도 강력하고 범용성이 높은 스킬이다. 화염 속성의 정령기사인 레이아드의 정령 핵을 섭취하는 것으로 정령기사로 전직한 것이니 당장은 화염 속성의 정령만 다룰 수 있을 테지만 친화력을 높인다면 다른 정령들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령기사인데 왜 정령 소환은 없음?

―그건 정령사 직업 스킬이에요. 정령기사가 정령 소환하려면 따로 스킬 익혀야 함.

―불편하네요.

―그래도 정령기사 되면서 정령 친화력 보정 붙으니까, 다른 직업보다는 정령 소환하는 게 편할 겁니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정령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르는 뉴비의 질문에 고인물 시청자들이 친절하게 채팅으로 설명해 주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원소 참격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전투 관련 스킬이었던 것 같은데…….’

유진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루베니아 연대기 플레이 경험이 많아서 기억의 바다가 꽤 방대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과거의 흔적을 더듬은 끝에 유진은 ‘원소 참격(B)’ 스킬에 대한 정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원소 참격’은 정령의 힘이 부여된 오러 블레이드를 참격과 함께 적에게 날려 보내는 공격 스킬이다.

‘공격 스킬이 부족했는데 잘 됐어.’

마나 소모가 다소 심한 수준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유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새로운 스킬을 살 때가 됐군.”

유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메인 이벤트 클리어와 업적 달성 그리고 시청자들의 후원 등으로 꽤 많은 포인트가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점 창을 열고 즐거운 쇼핑을 할 차례였다.

“상점 창.”

나지막이 속삭이듯 명령어를 말하자 눈앞에 상점 창이 생성되었다.

[보유 포인트: 42,100.]

―정령 군주의 호흡(A): 정령기사 전용.

―성좌의 눈(A)

―격전지의 절대 행운(A)

무려 4만 2천 포인트를 모아 둔 상태였다. 보유 포인트 밑으로는 추천 스킬 3개가 눈에 보였다.

‘검색 기능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군.’

원하는 스킬이 추천란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진이 구입하려고 한 것은 바로 직업 전용 스킬인 ‘정령 군주의 호흡’이었다.

A랭크 스킬인 ‘정령 군주의 호흡’을 사용하여 수련하면 마나 수치뿐만 아니라 정령 친화력과 특정 속성의 저항력 또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나 수련 관련 스킬들보다 상위 호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정령과 관련된 직업으로 전직하지 않으면 상점 창에서 구입할 수 없는 스킬이라서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구입해야겠군.’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빠른 성장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공격 스킬보다는 수련과 관련되어 있는 스킬을 구매하는 게 좋다.

다른 고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진은 초반에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수련 관련 스킬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초반에 강력한 공격 수단이 없어서 늘 고생하는 편이었지만 이번에 정령기사로 전직하면서 강력하고 범용성 좋은 ‘정령검’과 ‘원소 참격’을 습득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방장님이 무슨 스킬을 구입할지 궁금하네요.

―직업 스킬 먼저 구입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

―ㄹㅇㅋㅋ.

―정령 군주의 호흡을 구매할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의 채팅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유진은 4만 포인트라는 거금을 지불하고서 ‘정령 군주의 호흡’을 구입했다.

[마나 수련법(C)이 정령 군주의 호흡(A)으로 격상됩니다.]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마나 수련법 삭제된 건가요?

―왜 없어짐?

―정령 군주의 호흡이 상위 호환 스킬이라서 시스템이 격상 처리한 거에요.

―상태 창이 너무 복잡하면 안 되니까, 시스템이 가호를 내려 준 겁니다.

―ㄹㅇㅋㅋ.

―편하게 생각합시다.

채팅 창은 신규 시청자의 질문을 받아 주기도 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장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염된 정령들의 행진’ 이벤트를 클리어 했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까? 유진은 고민했지만 다음으로 공략할 메인 스토리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지벨 도시에서 지내면서 벤자민을 통해 맹약 기사단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었다.“일단은 치료를 받아야겠군.”

유진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핀 끝에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전투가 끝난 직후, 파견 나온 신전의 사제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도시로 돌아오기 무섭게 지벨 백작으로부터 호출을 받아서 영주성으로 달려왔으니 부상을 완전히 치료할 여유가 없던 것이다.

남아 있는 부상은 가벼운 수준이었지만 방치하기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고 유진은 곧바로 도시의 내성에 위치한 자비의 여신, 에일린의 신전으로 향했다.

자비를 상징하는 여신 에일린을 섬기는 사제들은 신성력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대륙 전역에서 인기가 많은 교단이었다.

신전에 도착하자 순백의 망토를 두르고 은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갖춰 입은 성기사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들은 에일린 여신을 숭배하는 백색 교단의 성기사들이었다.

오염된 정령들의 군세가 도시로 진군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면 신전의 사제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무장을 갖춘 채 대기 중인 것으로 보였다.

방금 전에 서쪽 평원에서 전투가 있었던 탓에 신전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색 교단은 무상으로 신성력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금전적 보수를 요구하는 편이기 때문에 근방에서 전투가 있는 날이면 해당 지역의 백색 교단 신전은 언제나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볐다.

“유진!”

발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바이올라가 있었다.

왕립 마탑을 상징하는 푸른색 로브를 입은 그녀가 유진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레인은 보이지 않았다.

“드레인은?”

“저기 있어! 신전 옆에 있으면 기분이 안 좋대.”

“흐음, 그럴 수도 있겠네.”

바이올라의 설명에 유진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옆으로 살짝 옮기자 멀지 않은 위치의 뒷골목 입구에 서 있는 드레인이 보였다.

백색 교단이 마녀사냥과 이단 심문을 하지 않는 종교라고는 하지만 어두운 기운을 가진 뱀파이어 종족의 드레인을 반길 리 없었다.

‘내가 괜한 부탁을 했나?’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드레인에게 제시카를 신전에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던 게 미안해졌다. 기회가 되면 가볍게라도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정작 충성심이 깊은 드레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유진은 동료들 간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배려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치료 받으러 온 거야?”

바이올라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서 확실하게 치료 받으려고.”

유진이 말했다. 맹약 기사단의 눈과 귀가 얼마나 퍼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계획을 여러 번 방해했으니 필시 거슬리는 존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맹약 기사단이라는 집단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그들의 세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알 수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 견제가 들어오거나 암살 시도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 두는 게 좋다.

“제시카 지부장은?”

“치료 중이야. 부상이 꽤 심각해서 신성력을 퍼부어도 며칠은 쉬면서 회복기를 가져야 한다더라.”

정령기사 레이아드의 방패 강타에 당해 멀리 날아갔던 제시카를 수습했을 당시, 유진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엉망으로 망가진 그녀의 몰골이 선명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관절도 엉망으로 뒤틀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그녀가 강타당하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실드를 펼치는 게 늦어졌더라면 아마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복 중이라는 거지?”

“응,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래. 그건 확답 받았어.”

“그럼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유진이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에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 했던 건 처음 발견했을 때 몰골이 너무 엉망이라 목숨에 지장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신전 측에서 제시카의 부상이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했으니 당장 병문안을 갈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며칠간 방문자 없이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바이올라, 너도 지쳤을 텐데 드레인이랑 같이 먼저 영주성에 가서 쉬고 있어.”

“피곤하긴 하네. 혼자서 치료 잘 받고 올 수 있지?”

바이올라의 농담에 유진은 한숨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린애 아니거든.”

“하지만 어머니가 남자들은 영원히 어린애라고 하셨는걸?”

순진무구한 눈동자였다. 바이올라는 화염계 마법에 한정해서는 대마법사의 자질이 보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였지만 가끔 순수하고 맹한 구석이 있을 때가 있다.

―바이올라!!! 귀여워!!!

―역시 정실은 바이올라다!

―최고다! 바이올라!

바이올라의 맹한 구석도 시청자들은 색다른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치료 받으러 간다. 영주성에서 쉬고 있어.”

“응! 오는 길에 메론 아이스크림도 부탁해!”

“하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사 갈게.”

“오케이!”

메론 아이스크림을 외치며 달라붙는 바이올라를 떼어 내고서 유진은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전 안은 넓었지만 부상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백색 교단은 환자에게 과한 치료비를 청구하지 않는 거로 유명한 덕분에 이번 사태로 부상을 입은 이들이 죄다 찾아오는 바람에 신전은 거의 포화 상태였다.

“형제님, 신전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선한 인상의 남자 사제가 다가왔다.

“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유진은 말을 마치며 사제에게 신분패를 보여 주었다. 백색 교단은 신원이 확실한 이들에게만 신성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한 절차였다.

“아! 유진 경이셨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침 치료실이 하나 비어 있습니다.”

사제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유진을 치료실로 안내했다.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을 활용한 간이 치료실이었다. 유진이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부상이 심해 보이지 않아서 간이 치료실로 안내한 것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성녀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잠깐만, 성녀라고? 유진이 깜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섰으나 이미 사제는 간이 치료실을 빠져나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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