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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78화 (78/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78)

철커덕, 철커덕.

철갑의 마찰 소리와 함께 전투 장비를 갖춘 이들이 용병 길드의 지벨 지부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지벨 백작가의 승전 소식을 전해 듣고서 토벌대에 합류하기 위해 도시로 흘러 들어온 용병들이었다.

처음 란빌 마을에서 오염된 정령들의 군세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도시에 전해졌을 때만 해도 쉽게 볼 수 없고 상대하기도 까다로운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도시를 이탈하는 용병들이 많았지만 유진의 활약으로 승전보가 울리자 용병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토벌대에 참가하고자 용병 길드 지벨 지부를 찾았다.

“토벌대에 참가하고 싶네.”

철제 갑주로 무장한 자유 기사가 접수대로 다가와 말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체격을 보아 남자가 분명했고 중후한 목소리와 분위기를 읽어 보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흉갑에 붙어 있는 루벤 왕국 북부의 문장은 그가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 자유 기사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토, 토벌대에 참가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지요?”

은연중에 흐르는 묵직한 기세에 접수 및 안내를 맡은 여성 직원은 긴장한 얼굴로 말을 살짝 더듬었다.

“그렇네.”

“용병패를 보여 주시겠어요? 투구도 벗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철 투구를 벗고서 혁대에 걸려 있는 주머니에서 금색의 용병패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걸 확인한 여성 직원은 바로 앞의 자유 기사를 향해 업무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이크 경이셨군요. 금패의 용병패를 확인했습니다. 바로 신청 넣어 드릴게요.”

놀랍게도 그의 정체는 자유 기사 다이크였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B랭크 정도의 실력자로 은패의 용병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련을 거듭했을 뿐만 아니라 기연을 얻어 강해져 금패의 자격을 취득한 것이었다.

“고맙네.”

신청을 끝내고 용병 길드 지부를 나오는 길이었다. 다이크는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는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유진 경!”

자신을 반갑게 부르는 소리에 유진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이올라와 함께 수성전에 필요한 몇몇 장비들을 구입하기 위해 상업 지구에 들른 것이었다.

이윽고 유진은 다이크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바이올라와 함께 다이크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본 다이크는 그동안 많은 일을 겪은 것인지 얼굴에는 풍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철제 갑주도 손질은 잘되어 있었지만 손상되어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의 기세가 변했다는 걸 직감한 유진은 ‘주시자의 눈’을 사용한 채 다이크를 응시했다.

[자유 기사 다이크(A) 이명: 없음.]

―북부의 루메이 후작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은 자유 기사입니다. 어느 용병단에도 속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의뢰를 수행하며 북부를 방랑하는 것을 즐기는 자유로운 인물입니다.

선하고 정의로운 성격인 데다가 북부를 떠돌아다닌 지 10년이 넘어서 그런지 그의 인맥은 제법 넓고 화려한 편입니다. 검술 수련에 있어서 게으르지는 않지만 진취적인 성격도 아니라서 성취는 더뎠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오크 전쟁 군주와의 전투에서 깨달음을 얻고 수련에 매진하여 A랭크의 경지에 올라 금패 용병의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금패 용병이 되었군.’

정보 창을 바라보는 유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시청자들 또한 정보 창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금패 용병이 되었다는 정보 창의 설명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이크가 A랭크? 금패 용병이 되었다고?

―다이크 생존이 포함된 히든 루트는 처음 보네요.

―A랭크가 된 다이크라니 참 진귀하군요.

―엄청 신기함.

―ㄹㅇㄹㅇ 다이크는 늘 초반에 죽는 캐릭터라서 이렇게 성장한 건 거의 처음 보는 듯?

―앞으로의 행보가 몹시 기대됩니다.

다이크는 튜토리얼 대부분의 루트에서 목숨을 잃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나 플레이어는 거의 없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다이크가 A랭크를 찍은 모습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빠르게 채팅을 입력하고 있었다.

“다이크 경, 오랜만이군요.”

“정말 오랜만이네! 최근 오염된 정령들과의 전투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벌써 소문이 퍼진 겁니까?”

“물론일세! 지벨 백작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영지들에는 모두 자네의 승전보가 닿았을 것이야!”

벌써 소문이 퍼졌냐는 유진의 말에 다이크가 격하게 반응했다. 승전 소식을 퍼뜨려 달라고 암약회 길드의 지부장, 벤자민에게도 비용을 지불하고 의뢰를 부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신속히 지역 곳곳으로 소문이 닿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용병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더라니.’

부정적인 측면은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흐름이었다. 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방장님, 유명해지셨군요.

―북부의 아이돌이 되신 겁니까?

―유진 더 북부의 아이돌 ㄷㄷㄷㄷㄷ.

―ㄹㅇㅋㅋ.

시청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지벨 도시로 용병들이 모여들고 있네. 이대로라면 천 명이 모이는 것도 금방일 걸세.”

다이크가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로 토벌대 참여율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동안 오염된 정령 군대 또한 가만히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오염된 마나에 중독된 군세는 이미 소다크 요새를 점령하였고 이어서 그들은 지벨 백작가의 깃발을 꺾기 위해 도시를 향해 증오의 진군을 해 오는 실정이었다.

군대 단위의 집단 이동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소다크 요새가 공격당하고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며칠에 불과하다. 그 시간 동안 용병들이 몇 명이나 토벌대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게 관건이었다.

“천 명이라, 지금 용병들이 모이는 속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높다는 건 분명했다.

“숙소는 잡았습니까?”

“물론이네. 초록 소나기 여관에 방을 잡아 두었지. 시간이 나면 놀러 오게나. 유진 경, 자네와 동료들에게 술 한잔 정도 대접할 여유는 있다네.”

“승전 연회에서 뵙죠.”

유진이 말했다. 별생각 없이 승전 연회에서 보자고 한 것이었지만, 채팅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승전 연회에서 뵙죠, 이거 완전 사망 플래그인데.

―다이크와 방장님, 둘 중에 한 명은 죽을 듯.

―ㄹㅇㅋㅋ.

―방장님! 사망 플래그 꽂지 마세요! 이 방송 너무 재밌단 말이에요!

―켠 김에 클리어까지 쭉 갑시다!

사망 플래그를 꽂자 시청자들이 걱정스러운 채팅을 마구 입력했다.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어.’

유진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게임을 클리어 해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전에 죽을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거야.’

유진은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다. 갑자기 결의를 다지는 유진을 보며 다이크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알겠네. 그럼 나중에 또 보지.”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먼저 여관을 향해 걸어가는 다이크. 유진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었다.

“영주성으로 바로 돌아갈 거야?”

옆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점검하고 있던 바이올라가 말을 걸어왔다. 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용병 길드에 가서 토벌대 모집 현황을 확인하고 가자.”

“좋아.”

바이올라는 대답과 함께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그녀와 함께 용병 길드 지벨 지부로 향했다.

“어서 와, 유진 경.”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용병 길드의 지벨 지부장을 맡고 있는 제시카가 앞에 나타났다.

“바이올라 경도 안녕?”

제시카는 바이올라를 향해서도 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얼마 전에 제시카가 유진에 대해 안 좋게 말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앙금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냈지만 제시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유진과 바이올라를 향해 위층으로 올라가자고 수신호를 보냈다.

“올라가자.”

“마음에 안 들어.”

바이올라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꽤 강경한 태도였기에 유진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바이올라는 유진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해. 올라가자.”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소심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당장은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지부장 집무실에 들어섰다. 제시카는 이미 자리를 잡고서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들어와.”

제시카는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고는 따뜻한 홍차가 담긴 찻잔을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놓았다.

“토벌대 가입 현황을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지?”

“그렇습니다. 제시카 지부장님.”

“오늘 저녁이 되기 전에 전령을 보낼 텐데, 여전히 성격은 급하네.”

옆에서 바이올라가 제시카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강렬한 시선의 흐름이 느껴졌다.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요.”

“지금 집계 중이긴 한데, 대략 1000여 명 참가했어. 이 중에서 은패 이상은 100여 명 정도야.”

예상했던 것보다 토벌대에 참여를 신청한 용병들의 숫자가 많았다. 솔직히 말해서 절반인 500여 명의 참여를 예상했었다. 정찰대를 꺾고 승전보를 울리지 못했다면 삼 백도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용병들의 호응이 좋아. 물론 대부분 한 탕 하려고 모이는 거겠지만 그래도 이건 긍정적인 징조야.”

제시카가 말했다.

“영지군도 있고 기사단도 함께 싸울 거니까, 승산이 있어.”

그녀의 눈동자에 활기가 감돌았다. 이길 수 있다, 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 * *

디엘론의 부관, 리미터는 자신이 모시는 상관을 만나기 위해 짙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는 달조차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주위는 빛 한 점 없이 지극히 어두웠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그가 멈춰 선 곳에는 낡은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그가 오두막 방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자 스르륵, 검은 연기가 모여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은색의 가면을 쓰고 강철 스태프를 든 남자는 바로 리미터의 직속 상관인 맹약 기사단의 디엘론이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디엘론 경.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철저하게 진행해야 할 겁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저는 간부 진급이 무산되는 거로 끝나지 않을 테니…… 물론 그건 리미터,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엘론의 말에 리미터는 마른침을 삼켰다.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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