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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73화 (73/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73)

란빌 마을에서 사건이 있고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지벨 백작은 가문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정보 길드를 동원하여 란빌 마을을 점거했던 세력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았고 그것은 유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란빌 마을에서 키메라 실험을 자행하던 이들은 과거 두 개의 검을 쓰며 유진을 공격했던 유렌과 접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론적으로 루베니아 연대기를 플레이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조우하지 못했던 세력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유진은 이들이 대규모 업데이트로 추가된 세력이 아니라 ‘빙의’로 인해 루베니아 연대기에 변수가 작용했고 그로 인해 등장한 어떤 수수께끼의 집단일 것이라 여겼다.

암약회의 벤자민이 정보를 모으는 동안 유진과 파티원들은 지벨 백작의 배려로 영주성의 저택에서 귀빈 대접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이올라는 매일 같이 수련에 나섰으며 드레인은 영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다 읽고는 했고, 유진도 검술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연무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상태 창.”

수련이 끝나고 유진은 스킬 상태 창을 확인하기 위해 명령어를 내뱉었다.

〈보유 스킬〉

―만독불침(A)

―강철이 깃들인 육신(A)

―투신의 각오(B)

―빛의 투창(B)

―선천적 마나 친화(B)

―오러(B)

―일검필살(B)

―루벤 왕립 기사 검술(C+)

―불굴의 전사(C)

―마나 수련법(C)

―날렵한 반응(D)

―중급 궁술(D)

―상급 추적(C)

―상급 기척 죽이기(C)

―상급 화염 저항(C)

―중급 방패술(D)

―백병전 전문가(D+)

―최상급 기척 감지(B)

―황금 눈동자(C)

이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중급 추적(D)’ 스킬이 ‘상급 추적(C)’으로 격상되었다는 것이었다. 추적 스킬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모은 포인트 일부를 투자했다.

“당장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연무장을 빠져나와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으로 가는 길. 그의 앞에 가죽 갑옷 차림의 남성이 다가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유진 경 되십니까?”

“네, 제가 유진입니다.”

“찾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기분 탓일까? 지벨 백작가의 수습 기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왜 이곳 영주성에 있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경계심 가득한 눈동자를 한 채 칼자루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이었다. 의문의 수습 기사가 두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유진 경,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겁니까?”

싸울 의사가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유진은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유진 경의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요? 누가 보낸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까마귀라고 하면 알 거라고 하더군요.”

까마귀는 암약회를 지칭하는 은어 중 하나였다. 남자의 말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암약회’의 지벨 지부장 벤자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군요. 주시죠.”

“여기 있습니다.”

유진은 남자로부터 편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중세의 고전적인 방식의 밀랍 봉인 외에도 지정한 대상이 아니면 열 수 없는 상당히 수준 높은, 봉인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전달을 끝냈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어두운 그늘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보를 얻은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밀랍 봉인을 깨고서 편지 봉투를 열었다. 지정 대상인 유진이 직접 밀랍 봉인을 깬 것이었기 때문에 봉인 마법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란빌 마을을 점거했던 정체불명의 세력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입수했으니 전달받기를 원한다면 암약회 지부로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유진은 근처에 있는 횃불로 편지를 태웠다. 그리고는 영주성을 빠져나와 암약회의 지벨 지부인 ‘지하 곰팡이’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지하 곰팡이로 들어서자 바에서 잔을 닦고 있던 아슈르가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정보 길드의 거점답게 보이지 않는 기척들도 함께 감지되었다.

“암호를 말해야 하나요?”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지부장님을 뵈러 온 겁니까?”

아슈르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부장님은 지하에 있습니까?”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슈르는 잔을 내려놓고 지하 2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여러 개의 밀실로 이루어진 길쭉한 복도가 나타났다. 아슈르는 복도의 끝에 위치한 방문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저 안에 계십니다.”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의 가장 끝에 위치한 밀실의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아슈르는 멀어지는 유진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들어오시지요.”

방문 너머에서 벤자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말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밀실의 중앙에 벤자민이 딱딱해 보이는 철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문턱을 넘는 유진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앉으시지요.”

“정보를 입수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입니다. 제법 괜찮은 정보를 얻어 냈지요.”

유진은 낡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벤자민의 맞은편에 앉았다.

“맹약 기사단, 란빌 마을 배후에 있는 세력의 이름입니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조차 처음 듣는 세력이었다.

‘맹약 기사단? 대규모 업데이트로 추가된 세력인가?’

게임 속에 빙의했다.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건 채팅뿐이라 공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답답했다.

“생소한 이름이군요.”

“저도 정보 길드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정보를 더 알아내려고 했지만 당장은 이게 고작입니다.”

“이름은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꼬치꼬치 캐묻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보의 신빙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단계였다.

“란빌 마을에서 문서들을 확보했던 걸 기억하십니까?”

지하에서 확보한 문서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유진과 벤자민 등 란빌 마을의 지하에 진입했을 때 이미 자료 폐기가 진행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아서 그런지 몇몇 자료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전부 수준 높은 암호로 기록되어 있어서 해독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자료를 손에 얻기는 했지만 암호 해독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었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모든 내용을 해독한 게 아닙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몇 개의 문장 정도를 해독한 것에 불과하죠.”

“괜찮다면 해독한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침 사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진의 요청에 벤자민은 흔쾌히 허락했다. 품속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해독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겁니다. 읽어 보시죠.”

“감사합니다.”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종이에는 2줄의 문장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암약회의 능력으로도 고작 이 정도인가?’

실망한 기색이 티가 난 것일까? 벤자민이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아주 수준 높은 암호가 이중으로 사용되어 있었습니다. 이만큼 해독하는 데만 해도 꽤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요컨대,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유진은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란빌 마을에 배치된 맹약 기사단의 하수인 전력의 이동과 보급에 대한 보고서.]

라고 적혀 있었다. 많은 내용을 해독한 것은 아니었지만, 란빌 마을을 장악했던 의문의 집단이 ‘맹약 기사단’이라는 이름 혹은 암호를 사용한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나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당장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조사를 계속할까요? 이 이상은 추가 금액이 필요합니다. 제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암호 해독에 생각보다 많은 금화가 소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의 가치가 높게 반영되는 바람에 더는 제 독단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벤자민이 의자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 유진은 부하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속해 있는 정보 길드, 암약회는 철저하게 금화를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맹약 기사단에 대한 정보의 가치가 예상보다 높게 책정된 탓에 더 이상 벤자민이 독단으로 유진에게 보수를 받지 않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건 힘들게 되었다. 벤자민은 이러한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고 유진은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루베니아 연대기의 어두운 세계에서 암약하는 정보 길드들의 운영 방식과 행동 패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추가 금액을 지불하도록 하죠.”

암약회는 상위권의 정보 길드다.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은 믿을 수 있고, 의뢰 비용도 다른 상위권 정보 길드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대금은 한 번에 지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은 일부만 지불하시고 나중에 금액이 더 필요하면 추가로 요청하겠습니다.”

분납은 일종의 배려였다. 유진은 현재 많은 골드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훗날 있을 기연 상인과 관련된 이벤트를 생각하면 금화는 최대한 아끼는 게 좋았다.

“그럼 우선 1,000골드를 지불하겠습니다.”

유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100골드의 가치를 지닌 금괴 10개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렸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걱정 없을 것 같습니다.”

해독할 자료가 많아서 전체 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다. 벤자민은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유진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바로 지불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벤자민이 씨익 웃었다. ‘지하 곰팡이’, 정확하게 말하면 암약회 지벨 지부에서의 용건이 끝난 유진은 뒷골목으로 빠져나왔다. 상업 지구에서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바이올라와 마주쳤다.

“바이올라? 상업 지구에는 무슨 일이야?”

자유 시간 사용에 관해서는 개인의 영역이었지만 궁금한 마음에 무심하게 질문을 던졌다.

영주성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바이올라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유진!”

바이올라의 목소리에서 반가움이 묻어 나왔다. 뭔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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