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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72화 (72/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72)

21장. 음모와 행진

“제가 아는 전문가한테 그동안 알아낸 정보를 일부 넘기고 추적 의뢰를 넣어 두었습니다. 성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으나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아는 전문가라는 사람은 당연히 암약회 지벨 지부의 벤자민이다.

“전문가? 혹시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있겠나?”

숨겨야 할까?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암약회’라는 이름 자체는 접선 방식과는 다르게 귀족들 정도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약회 길드 소속입니다.”

“암약회라고? 그들과의 접선 방식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대단하군, 그들의 접선 방식은 나도 모르는데 말이지.”

지벨 백작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일순간 그는 접선 방식을 알려 달라고 말할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 냈다.

암약회의 접선 방식은 아무한테나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정보 길드들의 뒷세계에 대해 알기 때문에 지벨 백작은 유진에게 암약회에 대해서 더는 묻지 않았다.

“암약회의 전문가라면 곧 배후에 대한 추가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군.”

암약회의 정보력은 대륙의 정보 길드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유명하다.

“그렇습니다.”

“부디 결과가 나오면 내게도 전달해 주기를 바라네. 대신 의뢰 비용은 내가 부담하도록 하지.”

“의뢰 비용은 괜찮습니다. 제가 그 전문가한테 도움을 준 적이 있어서 이번 의뢰는 무상으로 진행해 주기로 했거든요.”

“원래 중간 연결책도 보수를 받는 법이네. 사양하지 말게나.”더 이상의 거절은 실례다. 지벨 백작의 말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중간 연결책 역할로 의뢰 비용을 얼마나 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유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 * *

여관으로 돌아온 바이올라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스태프가 지금 그녀의 암울한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피곤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바이올라는 침대 위에 스태프를 툭 던지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 여정에서도 유진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기분이 편치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거지?”

눈동자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강해져야 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거부했었던 수련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나 홀에 과부하가 올 때까지 마법 수련을 하고 엘릭서를 희석시킨 액체를 섭취하여 손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무식하고 금전적으로도 재화를 많이 소모하는 수련 방식이다. 엘릭서는 단 한 방울이라고 해도 비싼 값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루메이 후작가정도 되는 귀족 가문의 자녀가 아니라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다.

바이올라는 가방 안에서 희석된 엘릭서를 꺼냈다. 한 병 분량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바이올라의 시선에서 굳은 결의가 묻어 나왔다.

이 정도 분량이면 A랭크라고 불리는 상급 마도사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두렵지 않았다.

* * *

디엘론이 소속되어 있는 맹약 기사단. 그중에서도 하수인 계급에 있는 장신의 남성이 은신처 중 한 곳으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은신처를 지키고 있던 하수인 계급의 암살자 셋이 장신의 남성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냐? 너는 지금 란빌 마을에 있어야 할 텐데?”

앞을 막아선 하수인 중 가장 선임되는 위치에 있는 노인이 거칠게 꾸짖었다. 그러자 장신의 남성은 후드를 벗고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란빌 마을이 공격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란빌 마을이 공격당했다고?”

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앞의 하수인이 농담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란빌 마을의 위장은 완벽했을 텐데.”

노인이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란빌 마을의 위장은 완벽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마을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발각되었다는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키메라들은?”

란빌 마을의 지하에서는 지벨 도시를 공격하기 위한 키메라 부대를 양성 중이었다. 그들은 결코 만만한 전력이 아니다.

완성된 키메라의 숫자만 해도 100여 마리였고 불완전한 이들까지 더하면 무려 300마리가 넘는다.

키메라가 개체마다 전투력의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300여 마리라면 수백의 군세를 단숨에 밀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다. 쉽게 당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저도 중간에 빠져나와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전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간에 빠져나왔다고? 그렇다면 도망쳤다는 말인가?”

노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사단 내에서 전투 중 도주는 큰 죄악으로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 소식을 기사님들께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건 기사님들이 판단할 문제다.”

노인이 옆으로 비켜섰고 장신의 남자는 서둘러 은신처로 들어섰다.

“디엘론 경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은신처 가장 깊숙한 곳에 계시네.”

“감사합니다.”

“충고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충고라는 단어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 장신의 사내를 멈춰 세웠다. 발걸음을 멈춘 그는 노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말씀하시지요.”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말하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쯧,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그렇다면 굳이 더 설명하지 않겠네.”

노인은 혀를 찼다. 그는 맹약 기사단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고 눈앞의 청년과 같은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의 결과는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장신의 청년은 노인을 이상한 사람 보듯 힐끔거리고는 디엘론이 있는 은신처 깊숙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은신처는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그 끝에 디엘론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

디엘론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창백한 얼굴의 남성이 나타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디엘론의 새로운 부관인 리미터였다.

“저, 저는 란빌 마을에 배치되었던 제란이라고 합니다.”

“제란이라, 하수인 계급의 단원이군. 란빌 마을에 있어야 할 네가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란빌 마을이 공격당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훈련 받은 대로 제 1은신처인 이곳으로 상황 보고를 위해 물러난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설명했지만 리미터의 태도는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디엘론은 등을 지고 있어서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눈치 없는 제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제란, 상황 보고의 임무를 부여받은 단원은 따로 있을 텐데 왜 네가 왔지?”

“그, 그는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여기로 온 겁니다.”

리미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 제란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전사라, 일단은 알겠다. 사정은 대충 알겠으니 디엘론 경께 란빌 마을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압박 조사는 끝난 모양이다. 리미터는 옆으로 비켜섰고 제란은 떨리는 시선을 정리하며 디엘론을 향해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까지, 더는 다가오지 마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더러운 겁쟁이의 냄새가 나는군요.”

디엘론이 제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은색의 가면에 뚫린 시야 구멍으로 보이는 눈동자는 섬뜩한 살의를 발산하고 있었다.

“큭.”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제란은 낮은 신음을 삼켰다.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두 다리는 쇠사슬에 속박된 것처럼 무겁다. 시야조차 점차 검게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디, 디엘론 경. 사, 살려 주십시오.”

본능적으로 죽음을 보았다. 제란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 디엘론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하, 재밌군요. 죽음을 직감한 겁니까?”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란빌 마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보, 보고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겁쟁이의 입에서 진실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거든요.”

디엘론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옆에 시립해 있던 리미터가 허리춤에서 장검을 빼 들었다. 오러는 깃들이지 않았지만 위협적인 예기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제, 제발! 크학!”

처절하게 애원했지만 리미터는 무자비했다. 그의 검이 목을 베었다. 붉은 피가 튀고 머리를 잃은 제란이 비틀거리다 힘 없이 쓰러졌다.

제란을 처형한 리미터는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 내고는 묵묵히 서 있는 디엘론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시체 치우세요.”

디엘론이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동굴의 깊은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셋이 스르르 걸어와 제란의 시신을 수습했다.

신속하게 시신이 정리되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은 제란의 시신과 함께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란빌 마을은 어떻게 할까요?”

리미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디엘론은 고개를 돌려 리미터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시선이 닿는 게 느껴지자 리미터는 몸을 흠칫 떨었다.

“조, 조사대를 보낼까요?”

란빌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 받기 전에 생존자인 제란을 죽였다. 후환이 두려워서 디엘론의 명령에 따르기는 했지만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장 조사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디엘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디엘론 경, 란빌 마을은 저희 관할입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네?”

무엇이 1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일까?

“곧 전령이 당도할 겁니다.”

디엘론이 씨익 웃어 보였다.

* * *

“파이어 스피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시동어를 말하는 것으로 마법이 완성되자 바이올라의 스태프에서 마나가 흘러나와 길쭉한 화염의 창이 되었다.

정면의 허수아비를 노려보는 바이올라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고 이어서 파이어 스피어가 허수아비에 격중했다.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상체가 꿰뚫린 허수아비의 몸이 불타올랐다.

“부족해.”

이걸로는 부족하다. 더 강한 화력이 필요하다. 바이올라는 온 힘을 다해 마나를 쥐어짰다. 마나 홀은 바닥이 드러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마나 홀이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바이올라는 멈추지 않았다. 쥐어짜 내듯 마나를 끌어모았다.

조금만 마나를 더 모으면 강력한 A랭크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화염이 연무장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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