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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71화 (71/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71)

―언데드 마도사 1분 컷 ㄷㄷㄷㄷ.

―빠르다, 빨라.

―방장님 쩐다.

―보이지 않았어.

―그건 내 잔상이었다.

언데드 마도사를 처치하자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A랭크인 하급 리치의 경지에 진입하지 못한 B+랭크라고는 하지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인 언데드를 쉽게 처치하는 유진의 모습에 감탄한 것이었다.

“바이올라! 저거 태워 버려!”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유진이 소리치자 바이올라는 언데드 마도사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전에 화염 마법을 사용하여 조각난 망자의 몸을 불태웠다.

언데드 마도사가 한 줌의 잿더미가 되자 이제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바이올라의 화염 마법은 키메라를 노렸다. 하늘에 그려진 마법진이 지상으로 성난 불꽃의 소나기를 뿌렸다.

“크아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불꽃의 소나기에 당한 수십의 키메라들이 화염에 휩싸인 채 발버둥질 쳤다. 바이올라는 멈추지 않고 다음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화염을 머금은 불기둥이 생성되어 키메라를 휩쓸었다. A랭크의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한 화력 앞에서 무력했다.

키메라는 각 개체마다 특징이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재생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혈액을 트롤의 것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키메라들을 상대할 때는 화염 마법이 효과적이다.

“유진 씨! 이대로는 끝이 없습니다!”

벤자민이 다가왔다. 그의 의복은 검은색이라 티는 많이 나지 않았는데 핏물로 젖어 있었다. 부상이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묘책이라도 있습니까?”

“묘책이라, 여기에서 쓰기에는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있기는 하죠.”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그는 품속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갈색의 가죽 주머니에는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었다.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가죽 주머니에 새겨진 마법진이 꽤 고등 술식이 첨가되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떤 용도의 마법진인지는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마도사로 플레이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아쉽게도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는 수학적인 계산식이 필요한데 유진은 그 부분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진은 비슷한 횟수를 플레이한 고인물 유저 중에서는 가장 마법적 지식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유진의 질문에 벤자민은 씨익 웃었다.

“‘신의 분노’라는 이름을 가진 화약입니다.”

신의 분노라면 중앙에서 신경 써 불법적인 유통을 통제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화약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일 텐데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유진의 시선이 벤자민에게 닿았다.

“적법한 경로를 통해 구했습니다.”

벤자민이 설명했다. 그는 암약회의 지부장이다. 인맥을 동원하면 굳이 불법적인 경로가 아니라도 ‘신의 분노’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귀한 걸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신의 분노’는 값비싼 화약이다. 의뢰를 받은 건 벤자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까지 사용하여 이번 일을 마무리할 의무는 없을 터 이건 순전히 벤자민의 호의에서 발생한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부하를 아끼는 그의 성격상 시에라를 구해 준 유진에게 여러 이점을 제공하고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바이올라 씨의 화염 마법이 더해진다면 소량만 사용해도 지하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길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신의 분노’까지 사용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사양할 생각은 없었다. 기사들은 지쳤고, 피로도 누적된 상태였다.

“바이올라! 마법 준비해 줘!”

“오케이!”

유진은 바이올라에게 언질을 한 후 검을 고쳐 잡고서 벤자민의 옆으로 복귀했다.

“길을 열겠습니다.”

유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붉은 피가 솟구치고 키메라들은 힘 없이 쓰러졌다. 벤자민은 앞장서서 길을 여는 유진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어느새 그들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지하와 연결된 계단 바로 앞에 도달했다. 벤자민은 꾸역꾸역 올라오는 키메라들을 향해 ‘신의 분노’가 극소량 담긴 가죽 주머니를 집어 던졌고 유진이 신호를 보내자 바이올라가 마법을 완성했다.

화살의 형상을 한 불꽃이 가죽 주머니에 닿은 순간 굉음과 함께 격렬한 폭발의 여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유진과 벤자민이 뒤로 튕겨 나갈 정도였다.

“크으으윽.”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유진과 예상치 못한 위력에 얼떨떨해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 벤자민.

정보 길드의 지부장답게 ‘신의 분노’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강렬한 위력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효과는 확실하군요.”

견고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면서 지하와 지상을 잇는 계단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소량의 ‘신의 분노’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키메라들을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후속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이제 지상에 남은 키메라들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기사들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해 볼 만한 싸움이다. 남아 있는 키메라들 역시도 30여 마리가 전부였으니,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유진은 검을 고쳐 잡았고 벤자민 또한 오러를 머금은 단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기사들의 전장에 다시 진입하여 키메라들을 베었다.

키메라들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마침내 유진 일행과 기사들이 승리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살아남은 기사들은 로웨스를 포함하여 9명뿐이었지만 승리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전부 죽었습니다.”

생명체 탐지 능력이 뛰어난 드레인이 적들의 전멸을 알렸다.

“주민들도 모두 도망친 것 같습니다. 마을이 텅 비었습니다.”

키메라들과 싸우는 동안 마을 주민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살아남은 기사들의 숫자가 적어서 추격할 수도 없는 상황, 전투 중에 지하에서 소량의 자료를 확보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 로웨스는 전사자들의 시신과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한편 인근에 소다크 요새로 전령을 보내서 지원군을 요청했다. 이틀 후 젊은 기사와 50여 명의 병사가 텅 비어 버린 란빌 마을에 도착했다.

지원군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란빌 마을을 철저하게 수색하여 혹여 남아 있을지 모르는 단서들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로웨스가 란빌 마을을 조사하는 동안 유진은 벤자민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지벨 도시로 돌아갔다. 당장 필요한 자료는 충분히 모았고 벤자민 또한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벤자민 씨.”

“아닙니다, 유진 씨. 저는 그저 은혜를 갚았을 뿐입니다. ‘신의 분노’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마는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벨 도시에 도착했고 유진은 상업 지구의 초입에서 벤자민과 작별을 고했다.

“나도 먼저 가 볼게.”

“같이 안 가고?”

언제나 유진의 뒤를 졸졸 따르던 바이올라였는데 먼저 여관에 가서 쉬겠다는 말을 꺼냈다. 오늘따라 침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에 유진은 같이 안 갈 것이냐며 은근히 걱정스럽다는 분위기를 흘렸고 바이올라는 괜찮다고 말하고는 먼저 여관으로 향했다.

“드레인, 바이올라를 부탁해.”

“알겠습니다, 주군.”

유진의 지시에 검은 의복을 갖춰 입은 드레인이 앞서가는 바이올라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들의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딱딱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유진은 이내 영주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영주성은 어느 때보다 경계가 삼엄했지만 유진의 얼굴을 알아본 안티즈가 성문을 열어 준 덕분에 귀찮은 절차를 생략하고서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지벨 백작님은?”

영주성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지나가는 기사를 붙잡고 질문했다.

“영주님께서는 저택에 계십니다.”

영주의 위치에 관하여 아무한테나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상대가 지벨 백작가의 ‘은인’으로 불리는 유진이기 때문에 기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유진은 곧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 대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가 조심스럽게 앞을 막아섰다.

“지벨 백작님께 기별을 넣어 주게.”

“알겠습니다.”

기사가 수신호를 보내자 뒤에 서 있던 수습 기사가 대문을 열고 저택으로 들어섰다. 저택 안으로 들어갔던 수습 기사는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왔다.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벨 백작은 유진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수습 기사의 안내에 따라 저택에 들어선 유진은 오랜만에 꽤 반가운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유진이 목숨을 구해 줬던 안나 지벨이었다.

“유진 경! 어쩐 일이세요? 호, 혹시 절 보러 오신 건가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얼굴을 살짝 붉히는 안나.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길게 대화를 주고받고 싶었지만 아쉽지만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었다. 유진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지벨 백작의 집무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깔끔한 제복을 갖춰 입은 기사 한 명이 길게 뻗은 복도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융단 위에 서 있던 그는 다가오는 유진을 발견하고 말없이 목례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유진 역시 목례를 하자 그는 집무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유진 경이 찾아왔습니다.”

잠시 침묵. 1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문 너머에서 지벨 백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라 하게.”

“알겠습니다.”

기사는 대답과 함께 힘차게 문을 열었다. 집무실 내부가 드러났다. 유진은 기사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턱을 넘어 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진 경,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유진은 지벨 백작에게 란빌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지벨 백작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내 영지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군.”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지벨 백작은 슬픈 얼굴로 커다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마을 하나가 통째로 적들의 근거지로 활용되고 있을 줄이야.”

“여기 증거 자료들이 있습니다.”

유진은 란빌 마을의 지하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지벨 백작에게 건넸다. 차마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읽어야만 한다. 다른 이에게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지벨 백작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자료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읽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벨 백작의 표정은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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