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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68화 (68/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68)

“도망치게 놔둘 것 같니?”

2호라고 불린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에게서 마나의 잔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채찍을 들고 있어서 착각했지만 마나의 향과 짙은 농도를 볼 때 마도사일 가능성이 컸다.

―저런 캐릭터가 있었던가?

―루베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캐릭터가 한둘이 아닌데, 님이 전부 알고 있음?

―ㄹㅇㅋㅋ.

―추가된 캐릭터일 수도 있죠.

시청자들의 채팅이었다.

‘이길 수 있으려나.’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적들은 A랭크로 추정된다. A랭크 둘을 상대하는 건 솔직히 조금은 버겁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마왕을 죽여서 루베니아 연대기를 클리어 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게 목표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지금입니다.”

신호하자 벤자민이 시에라와 함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고, 유진은 2호를 향해 ‘빛의 투창’을 던졌다.

“잔재주를!”

2호가 채찍을 휘두르자 그녀의 앞에 실드가 생성되어 빛의 투창을 막아 냈다.

“준비됐어? 1호?”

“물론이지! 2호!”

1호라고 불린 남자가 땅을 박찼다. 그가 유진을 향해 창을 내찔렀다. 한 번의 찌르기였지만 수십의 잔상이 함께했다.

“엄호할게!”

뒤에서는 2호가 마법진을 그렸다. 유진의 눈동자가 잔상을 쫓았다. 그리고 번쩍이는 번개와 같이 순식간에 휘둘러진 검격이 수십의 잔상을 모두 베었다.

―빠르다!

―역시 방장님이야.

―성능 확실하구먼!

1호의 화려한 기술을 현란한 검술로 막아 내는 유진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오호! 제법이군!”

예상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는 유진. 그를 보며 1호는 감탄했다. 이어서 그는 유진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대신 신속하게 뒤로 물러났다.

공격을 이어 가는 대신 뒤로 물러난다? 1호의 행동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상급 마도사인 2호의 마법에 휘말리는 걸 피하기 위함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유진의 머리 위로 전격이 꽂혔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구쳤다.

“해치웠나?”

1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창을 고쳐 쥐었다.

―마법의 주문 나왔다.

―해치웠나? ㅋㅋㅋㅋㅋ.

―클리셰적인 대사네요.

―부활 주문 작렬하죠? 아 ㅋㅋㅋ.

시청자들이 채팅을 입력하는 동안 1호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흙먼지 너머를 살폈다. 조금 전에 2호가 사용한 마법은 ‘전격의 심판’이라는 이름의 A랭크 마법이었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살상 마법이었다. A랭크의 실력자에게도 치명적인 마법으로 1호는 당연히 유진이 당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흙먼지 너머에서 유진의 마나가 감지되었다.

흙먼지가 가라앉고 유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몸을 둘러싼 백색의 기운이 허공에 흩어졌다.

‘보호의 약속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죽을 뻔했다.’

지벨 백작에게서 받은 마도구, 보호의 약속. 회피와 방어가 불가능한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발동했다.

“내 ‘전격의 심판’을 막다니, 제법 신기한 마도구잖아?”

2호가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허공에 검은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검은색의 마법진에서 발생하는 마나의 유동이 심상치 않다. 충전된 실드를 소모했기 때문에 ‘보호의 약속’도 사용할 수 없다.

“1호! 시간을 벌어 줘! 큰 거 한 방 간다!”

“오케이! 2호! 걱정 마!”

누군가 말했다. 악당은 쓸데없는 설명을 많이 하는 친절한 족속들이라고. 그 속설에 걸맞게 2호는 1호에게 시간을 벌어 달라고 자신의 마법 정보를 노출했고 덕분에 유진은 저 검은 마법진이 가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거 온다!

―1호부터 빨리 죽여야 할 듯?

―ㄹㅇㅋㅋ.

―방장님 파이팅!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유진은 1호와 2호의 동태를 번갈아 살피며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 되면 그걸 쓸 수밖에 없잖아?”

유진의 말에 시청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거라면?

―그걸 말하는 건가?

―그거 있잖아요, 그거.

―ㄹㅇ 그거 ㅋㅋㅋ.

시청자들이 요란스럽게 채팅을 쳤다. 그동안 유진은 가까이 있는 1호를 경계하며 마나를 모았다.

“호오? 꽤 강력한 마나로군! 스킬이 완성되기 전에 죽여주마!”

“늦었어.”

1호가 개입하려 했지만 유진이 조금 더 빨랐다. 검에 모여 들어 응축된 마나가 폭발할 듯 강렬한 기세를 내뿜었다.

[액티브 스킬, ‘일검필살’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숙련도가 높습니다. 출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출력 조절 완료. 최대 전력의 50%입니다.]

섬광과도 같은 일격이 공간을 갈랐다.

“어?”

1호의 당혹스러운 목소리. 그의 몸이 기울어졌다. 유진의 검격에 방어가 취약했던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었다.

“1호!”

2호가 외쳤다. 그녀가 1호를 엄호하기 위해 서둘러 마법을 완성하려 했지만 유진이 그동안 얌전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검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쓰러져 있는 1호의 목을 베었다.

“커헉!”

뺨에 붉은 피가 튀었다. 1호는 쓰러진 직후였기 때문에 방어 자세를 취하지 못했고, 유진의 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네 차례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순백의 마나가 유진의 왼손에 모여 들었다. 유진은 2호를 노리고서 망설임 없이 ‘빛의 투창’을 던졌다.

“꺄악!”

2호가 비명을 내질렀다. 빛의 투창이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 것이었다. 공격 마법진에 신경 쓰느라, 타이밍을 맞춰서 실드를 전개하지 못한 게 실책이었다.

어깨에 바람구멍이 생긴 2호가 비틀거렸다. 칠흑의 공격 마법진이 허무하게 허공에 흩어졌고, 2호는 절망했다.

“아, 안 돼……!”

야심 차게 준비한 마법진은 사라졌다. 2호의 탄식이 허공에 흩어졌다. 어느새 유진은 그녀와의 거리를 좁힌 뒤였다. 1호도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와줄 이는 없었다.

“사, 살려…….”

“줄 것 같냐?”

망설임은 없었다. 선명한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2호의 목을 베었고, 적들을 모두 처치한 유진은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맹약 기사단의 하수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그는 이미 목책을 넘은 후였다.

* * *

마을의 목책을 넘어온 유진은 곧장 합류 지점으로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기를 30분. 유진은 익숙한 기척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드레인과 바이올라 그리고 벤자민과 시에라였다.

“유진! 괜찮아?”

바이올라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나를 활용한 탐색 마법의 사용이 가능한 그녀는 마을에서 격렬한 마나의 유동을 감지했고, 본능적으로 둘 이상의 A랭크 실력자들이 격돌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유진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마을로 뛰어가려 했다.

드레인이 유진이 대기하라고 지시했다는 걸 이유로 말리지 않았다면 바이올라도 개입했을 것이다.

“난 괜찮아.”

A랭크 둘과 싸웠지만 부상은 없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호와 2호는 실전 경험도 부족하고 A랭크의 경지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노련한 중견의 A랭크였다면 유진도 중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유진 씨, 시에라한테서 전해 들었는데 저 마을 심상치 않은 곳입니다. 우선은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있는 모양이군요.”

“네, 하지만 당장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일단 자리를 피하시지요.”

벤자민이 말했다. 유진과 다른 일행들도 동의했고, 그들은 곧 말을 타고 지벨 도시를 향해 한 번도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추격은 없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지벨 도시 인근에 도착한 후에서야 유진과 일행들은 마음을 놓고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군요.”

지벨 도시의 형체가 보이는 거리였다. 벤자민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서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도시 안보다 여기서 란빌 마을의 비밀에 대해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비밀도 들을 겸, 잠시 쉬어 가도록 하죠.”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라의 마법이 주위를 경계했고 드레인이 보초를 섰다.

“그럼 이제 들어 볼까요?”

유진의 말에 초췌한 얼굴의 시에라가 앞으로 나섰다.

“란빌 마을은 평범한 중규모 마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지하에는 인간을 키메라로 만드는 생체 실험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마도학적 실험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의 자료를 읽었는데 몬스터들을 통제하여 전술 무기화한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습니다.”

시에라의 설명에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을 키메라로 만든다는 게 거부감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할 시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생체 실험? 저런 에피소드가 있었나?

―미치광이 과학자의 야망이나 진리 탐구자의 위험한 실험 같은 게 있긴 해요.

―그것들은 지금 등장할 타이밍이 아닐 텐데요.

―이번에 대규모 업데이트로 수정했을지도 모르죠.

시청자들도 의문을 표했다.

‘대규모 업데이트 때문인가? 아니면 빙의로 인한 변수일까?’

고민해 봤지만 당장 해답을 알 수는 없었다.

“지벨 백작님께 보고해야 할 것 같군요.”

유진의 말에 벤자민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시에라가 말했다. 유진의 시선이 다시 시에라에게 향했다.

“말해 보세요.”

“유진 씨를 공격했던 유렌이라는 남자, 란빌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조만간에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서 넘겨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란빌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과 관련이 있다라, 아무래도 당분간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대화는 끝났고, 일행들은 지벨 도시를 향해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유진의 얼굴을 알아본 수습 기사가 성문을 열어 주었다. 덕분에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유진 씨. 덕분에 시에라를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상업 지구에 들어서자 벤자민이 감사를 표했다.

“저는 이만 시에라와 함께 지부로 복귀하겠습니다.”

벤자민의 말에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벤자민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작별 인사를 하고는 시에라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유진은 일행들과 함께 영주성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란빌 마을에 대해 보고하는 게 시급했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었다.

“유진 경! 기다리고 있었다네!”

영주성의 저택에 들어서자 지벨 백작이 반가운 얼굴로 유진과 바이올라 그리고 드레인을 맞이했다. 그는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

“공격의 배후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저, 정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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