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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63화 (63/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63)

맹약 기사단의 기사, 디엘론과 그의 하수인들에게 공격당한 로투스 마을은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로투스 마을을 공격할 때 디엘론은 조사 자료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했지만 보복의 의미로 살아 움직이는 모두를 처참하게 죽이라는 명령도 내렸었다.

맹약 기사단의 하수인들은 디엘론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고, 로투스 마을을 공격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찢어 죽였다. 그 결과 로투스 마을의 주민들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는 고작해야 1할에 불과했다.

마을에 배치되었던 영지군 병사들 또한 루모니악의 직속을 제외하면 모두 목숨을 잃었고, 자경단 또한 데이윈을 포함한 소수를 제외하면 다들 시체가 되었다.

마을이 대부분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주민들이 당장 지낼 공간조차 없었다.

유진은 루모니악과 함께 목책을 무너진 목책을 따라 걸었다.

“목책도 완전히 무너졌군요.”

“그렇습니다, 유진 경.”

루모니악이 대답했다. 유진은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폈다. 죽은 이들을 묻을 무덤을 파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절규하고 슬퍼하는 이들의 행렬이 보였다.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광인처럼 웃고 있는 주민도 있었다. 유진과 그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행을 바로 앞에서 목도하다 보니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유진이 물었다. 루모니악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고는 새벽의 빛이 찾아들고 있는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우선 영주님께 보고드려야겠지요. 이곳에 주둔했던 연락 마도사가 죽었으니, 전령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바이올라가 있으니까요.”

“바이올라 경과 페이든 경이 있다는 걸 제가 잠시 잊고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혼란스러워서 경황이 없습니다.”

루모니악이 대답했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편이었지만 이런 참극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우선 백작가에 마법 통신을 보내고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여기에 있는다고? 루모니악의 말에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명하지 못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2차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도시를 향해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다행히 루모니악은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무너진 목책을 둘러보는 것을 끝낸 유진은 바이올라를 불렀다.

“지벨 백작가에 연결해 줄 수 있어?”

마법 통신의 연결을 말하는 것이었다. 바이올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야.”

“연결 부탁할게.”

“지금?”

“응, 지금 당장.”

“바로 연결할게.”

바이올라가 스태프를 들고서 통신 마법진을 그렸다. 그려진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마법진 위에 마나가 모여 들더니,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지벨 백작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벨 백작가의 연락 마도사였다.

“자유 기사 유진입니다. 지벨 백작님께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유진 경. 영주님께 신속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연락 마도사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법진 위에 지벨 백작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는 갑주 차림이었다.

“전투가 있었습니까?”

지벨 도시 인근은 아닐 것이다, 도시 근방은 치안이 잘 잡혀 있으니까.

―최근 변경의 숲에서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더군. 단순히 소수의 영지군을 파병해서는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토벌을 다녀왔다네.

지벨 백작이 설명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그의 얼굴 형체에서 짙은 피로가 묻어 나왔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지벨 백작령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변경에서부터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벨 백작은 몬스터들이 포악해진 이유를 북쪽에서의 마나 오염으로 인한 현상의 여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유진 경, 내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벼운 재촉에 유진은 로투스 마을의 상황을 지벨 백작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지벨 백작의 표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 냉정하게 말하자면 영지군은 지금 당장 지원군을 보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유진 경,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말씀하시지요.”

어떤 부탁일지는 예상이 된다.

―부디 로투스 마을의 생존자들을 도시까지 안전하게 데려와 줄 수 있겠나? 힘든 일인 걸 잘 알지만 마땅히 부탁할 사람이 없군. 정식 의뢰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그들을 무사히 데려와 준다면 충분히 사례하겠네.

예상대로 로투스 마을의 생존자들을 도시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의뢰였다.

―띠링! 돌발 이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돌발 퀘스트: 지벨 백작의 부탁.

정체불명의 공격으로 로투스 마을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몰살당한 것은 아닙니다. 지벨 백작은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도시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야 보호도 가능한 일입니다. 지벨 백작은 당장 영지군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하였고, 당신에게 마을 주민들의 호위를 부탁하였습니다. 지벨 백작의 부탁에 응한다면 소정의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자원봉사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정도로 보상은 적을 것입니다. 이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보상: 스킬 포인트 1,000, 500골드, ???.]

‘돌발 이벤트’가 아니라 ‘돌발 퀘스트’였다. 수락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진행되지 않겠지만 어차피 도시로 가는 길에 마을 주민들을 지켜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스킬 포인트와 골드의 보상도 있으니 나름 괜찮은 퀘스트였다.

“알겠습니다, 백작님. 의뢰를 받아들이도록 하죠.”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띠링! 돌발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지벨 백작의 표정 또한 밝아졌다.

―유진 경, 정말 고맙네. 잊지 않겠네.

마법 통신이 끝났다. 그려진 마법진이 서서히 빛을 잃어 가면서 마나로 이루어진 지벨 백작의 실루엣도 사라졌다.

* * *

유진은 루모니악을 찾아갔다. 살아남은 영지군 병사들의 인원을 점검하고 있던 그는 유진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유진 경, 오셨군요.”

“지벨 백작님께는 보고드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으세요. 우리는 도시로 갑니다.”

“도시라, 나쁘지 않은 선택지죠. 알겠습니다.”

루모니악은 유진의 말에 따랐다. 그는 잿더미가 된 광장으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살아남은 이들의 숫자는 20여 명이었다. 자경단원들과 영지군 병사들까지 더하면 30여 명이었다.

“잔해를 뒤져서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세요. 무기와 식량을 우선적으로 챙기셔야 합니다. 시간은 1시간 드리죠. 1시간 후에 다시 여기에 집합하는 겁니다.”

유진의 말에 사람들은 폐허가 된 마을 잔해를 뒤져서 불에 타지 않은 무기와 식량 등을 찾아냈다.

잔해를 들추어 찾아낸 무기는 충분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식량이 적었다. 유진이 아공간 주머니 속에 육포나 건조 과일 같은 비상식량을 넉넉히 보관하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30여 명의 인원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식량이 부족해.”

“며칠은 굶어도 안 죽습니다.”

드레인의 말에 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전부 굶을 정도로 부족하지는 않아.”

아공간 주머니에 저장된 건조식품을 전부 소모한다면 지벨 도시로 이동하는 기간 내내 모두가 굶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두 끼에서 세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된 일이군요. 굳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가?”

“어차피 그들은 타인입니다, 주군.”

일리 있는 말이다.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드레인의 의견에 동조했다. 생명의 은인이면 충분하다. 굳이 그 이상으로 케어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드레인 어서 오고.

―역시 드레인이야.

―오래 살아서 세계의 진리를 깨우친 모습이다.

―ㄹㅇㅋㅋ.

―드레인 같은 성격이 최고임.

시청자들도 드레인의 말에 동조했다.

[‘옳은 사람’ 님께서 3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드레인이 옳다.

[‘극한의 사이다패스’ 님께서 3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방장님은 무빙은 좋은데, 플레이 방식이 조금 답답함. 빡세게 갑시다.

[‘사이다 중독자’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걸리적거림. 걍 버리면 안 됨?

일반 채팅으로는 전달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일부 시청자들은 후원 메시지로 의견을 말했다.

‘스타일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유진은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을 고친 것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냉정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유진 경,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영지군 병사들의 틈에 섞여 있던 루모니악과 데이윈이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많이 지쳐 보였다. 특히 자경단의 대부분을 잃은 데이윈은 핼쑥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퀭했다.

“출발하죠.”

유진이 말했다. 도합 30여 명의 인원이 폐허가 된 로투스 마을에서 지벨 도시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잿더미가 된 보금자리에 작별을 고했다.

“우리가 선두에 서자.”

선두를 자처한 것은 유진이었다. 그는 바이올라와 드레인 그리고 페이든과 함께 선두에 섰고 루모니악과 영지군 병사들이 측면을 지켰으며 데이윈이 가장 후방에 섰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

“저도 동의합니다, 주군.”

도시까지는 말을 타고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 이틀이 걸리는 거리다. 걸어서 이동하면 사흘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중간중간 주민들을 배려하여 휴식해 줘야 하는 시간도 감안한다면 훨씬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

로투스 마을에서 출발하여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식량은 빠른 속도로 바닥 나고 있었다. 유진이 가지고 있는 식량의 일부를 주민들에게 나눠 줬지만 부족했다. 하지만 드레인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모든 식량을 그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다.

“사냥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주민들을 데리고 밤새 걸을 수는 없으니 야영을 위해 숲속에 자리를 잡았다. 루모니악은 식량 부족을 이유로 사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쁘지 않군요. 사냥은 제가 맡겠습니다.”

드레인이 나섰다. 그날 밤 그는 늑대 두 마리를 잡아 왔고 사람들은 주린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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