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54)
페이든이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 유진의 예리한 감각에 살의를 품은 무리가 접근해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페이든 역시도 경계 마법이 발동된 것인지 차갑게 식은 시선을 흩뿌리며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유진 경.”
“알고 있습니다. 불청객인 것 같군요.”
유진이 검을 빼 들고서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이올라와 드레인도 불청객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각자 스태프와 검을 들어 올렸다.
“페이든 경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
상급 마도사라고는 하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전투 능력이 부족하다. 유진은 바이올라와 드레인에게 페이든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바이올라와 드레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유진은 검을 쥔 채 모닥불 옆에서 주위를 경계했다.
차가운 밤바람이 뺨에 닿는다. 불청객들이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달조차 구름에 가리워진 탓에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숲속을 지배하고 있다.
유진은 왼손에 마나를 모았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백색의 마나가 투창의 형상이 되었다. 유진은 기척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빛의 투창을 던졌다.
“커헉!”
어두운 숲속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디를 맞췄는지 모르겠지만 명중이다.
“대장님, 2조장이 일격에 당했습니다.”
“신참이라고 해도 금패 용병이라는 건가? 제법이군.”
암살대의 대장은 작게 감탄했다. 밤의 어둠 속에 숨어서 야영지를 노려다 보던 대장은 이어서 왼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수신호를 확인한 암살자들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섰다. 그 수는 수십 명이었다. 유진도 암살자들의 숫자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시야에 희미하게 보이는 암살자 중에서 A랭크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으나, 대부분 B랭크나 C랭크로 이루어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생각보다 수가 많아.’
최소 50명 이상 70명 이하다. 암살자들을 노려보는 유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암살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힘차게 외쳤다.
“바이올라! 선공이다!”
“오케이! 맡겨 줘!”
뒤에서 바이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더니 바이올라의 머리 위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가서 쓸어버려!”
마법진에서 4마리의 화염 독수리가 튀어나오더니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뜨거운 불꽃을 흩뿌렸다.
“A랭크 마법이라고?”
“끄아아악!”
“중급 마도사라고 들었는데! A랭크 마법을?”
암살자들은 당황했다. 전달받은 정보와는 현장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바이올라는 중급 마도사 중에서도 화염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화염 마법에 한정해서는 한 단계 위인 A랭크 마법의 사용이 가능했다.
화염 독수리들이 칠흑의 밤을 밝혔다.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자 유진은 땅을 박차고 암살자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옵니다!”
“막아!”
수십 개의 단검이 유진의 급소를 노렸다. 오러가 깃들인 단검은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대신 마나를 운용하여 전신에 둘렀다. ‘강철이 깃들인 육신(A)’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단검들은 강철처럼 단단해진 유진의 육신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암살자들은 당황했다.
“통하지 않습니다!”
“이게 금패 용병인가?”
“오러를 사용해!”
3조장이 단검을 집어 넣고 소검을 빼 들었다. 푸른 오러가 칼날에 깃들여 일렁거렸다. 다른 암살자들도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검을 빼 들었다. 그들이 뽑아 든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금패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다. 협공하면 발을 묶어 두는 것 정도는 가능해.”
유진의 발을 묶어 두는 동안에 페이든을 죽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예상치 못한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진의 무력이었다.
“커, 커헉!”
“이럴 수가!”
“으아아악!”
유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암살자들이 피를 쏟아 내며 쓰러졌다.
‘발을 묶어 두는 것조차 불가능한 건가? 이게 금패 용병의 무력이라고?’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가는 부하들을 보는 3조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금패 용병들의 위명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봤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B랭크와 C랭크의 실력자들을 이렇게 도륙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암살자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이거 새로운 스토리인가?
―얼마 전에 패치가 있었다고는 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방장님 고인물 무빙 개쩐다!
―ㄹㅇㅋㅋ.
[‘지나가던 암살자’ 님께서 3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암살자 전원 처치다!
[‘초코맛 사과’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암살자들 별거 아니네. 포인트나 받으세요.
암살자들을 상대로 활약하는 유진의 모습에 채팅이 빠르게 올라갈 뿐만 아니라, 후원도 몇 차례 이어졌다. 유진은 더욱 힘차게 검을 휘두르며 암살자들을 도륙했다.
“제기랄! 대장님! 여기는 더 못 버팁니다! 어서 상급 마도사 놈의 목을 쳐야 해요!”
3조장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2조와 3조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암살대의 지휘를 맡은 대장의 1조가 페이든의 목숨을 취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바이올라와 드레인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중급 마도사 중에서는 상위에 속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는 바이올라와 임시로 은패 용병 신분에 있지만 실은 A랭크의 실력자인 드레인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제기랄! 정보와는 다르잖아!”
금패 용병은 하나 그것도 신출내기라서 기껏해야 은패 최상위 수준일 것이다, 이게 암살대의 대장, 조나단이 전달받은 정보였다.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의뢰를 승낙했다.
암살대 부하들의 희생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걸 감수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골드가 약속되어 있었다. 의뢰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었고 망설임 없이 암살대 전체를 동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2조와 3조, 도합 40명의 암살자들이 금패 용병 하나한테 학살당하고 있었고, 1조의 암살자들 역시도 아직까지 페이든의 목을 치지 못했다.
“대장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3조장이 다시 소리쳤다. 이에 암살대장은 이를 악물고서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암살자들까지 전원 페이든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파이어 스피어!”
더블 캐스팅의 마나다. 바이올라가 암살자 요격에 나선 것이다. 수십 개의 화염 창이 어둠을 꿰뚫었다. 암살자 여럿이 힘없이 쓰러졌다.
“드레인! 3명 놓쳤어!”
바이올라의 방위망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3명을 놓쳤고, 이는 드레인의 몫이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이올라 경. 저들은 제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붉은색의 오러를 머금은 검격이 가장 가까운 암살자의 몸을 반으로 쪼갰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암살자 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 무슨!”
“괴물인가!”
다음 차례는 네놈들이다, 라고 드레인이 중얼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검이 암살자 둘의 목을 베었다.
“페이든 경!”
“네? 넵! 유진 경!”
“결계 마법 가능하겠습니까?”
“결계는 어렵지 않습니다.”
페이든, 그는 전투 능력은 부족하지만 결계 등의 보조 마법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계로 놈들의 퇴로를 차단해 주세요!”
유진이 외쳤다. 후환을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저들은 모두 오늘, 여기서 죽는다.
―나가는 건 자유가 아니란다, Boy!
―ㅋㅋㅋㅋ 바로 이거지!
―고구마 없는 사이다 너무 좋고요!
시청자들도 환호했다. 페이든은 대답 대신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마나가 빠져나갈 때마다 힘겨워하는 표정이 선명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법진을 완성했다.
완성된 결계 마법. 푸른 장막이 넓은 지역을 봉쇄했다. 장막을 돌파하기 위해 시도하자 청색의 빛무리가 모여 만든 날카로운 창이 탈출을 시도하는 자의 목을 겨눴다.
“A, A랭크 결계야.”
“기술자를 죽여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돌파가 불가능합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조나단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이제 남은 부하들의 숫자는 10여 명. 금패 용병인 유진을 치거나 바이올라와 드레인을 뚫고서 페이든의 목에 단검을 쑤셔 넣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전력이었다.
“도망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목숨을 버릴 각오로 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
조나단의 시선이 페이든에게 닿았다.
“시간을 벌어라, 내가 페이든을 치겠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대장!”
부하들은 충직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단검을 빼 들고서 시간을 벌기 위해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유진이 휘두른 검에 붉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미안하다! 모두!’
조나단은 피눈물을 머금고서 페이든을 향해 땅을 박찼다. 그를 향해 바이올라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머리 위에서 화염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쉽게 당할 것 같으냐!”
조나단은 A랭크에 근접한 B랭크 실력자였다. 그는 왼손에 낀 반지에 마나를 주입하여 원거리 공격을 막아내는 보호막을 생성했다. 꽤 비싼 마도구였기 때문에 바이올라가 급하게 완성한 C랭크 공격 마법 정도는 능히 튕겨 냈다.
“빈틈이다!”
“아앗!”
바이올라가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었고, 드레인이 황급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찰나의 순간이지만 페이든이 노출되었다. 암살대의 대장, 조나단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소검이 닿기에는 조금 멀다. 그는 품 안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페이든을 향해 투척했다.
당황한 바이올라가 실드를 캐스팅했지만 한발 늦었다. 드레인이 몸을 던지려 했지만 마찬가지로 늦었다. 조나단이 던진 단검 두 자루 중 하나에 신속의 마법 주문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헉!”
페이든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반사 신경으로는 실드를 펼치는 것조차 힘들었다. 단순한 단검 투척이었기 때문에 C랭크 실드만 전개해도 방어가 가능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백색의 마나로 만든 길쭉한 창이 조나단이 던진 단검을 요격했다.
“제기랄!”
힘을 잃은 단검이 땅에 꽂혔다. 다른 한 자루는 바이올라의 실드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절규하는 조나단의 앞에 드레인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날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붉은 기운이 깃들인 검이 조나단의 목을 베었다.
“끄르르륵!”
괴이한 고통의 소리와 함께 조나단이 힘 없이 쓰러졌다.
“어디서 온 놈들일까요?”
드레인의 말에 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릴 노린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표적은 페이든 경이겠지.”
유진이 말했다. 드레인의 시선이 페이든에게 닿았다.
“오늘 야영하는 건 글렀네?”
“시체들이 가득한 곳에서 자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천막이나 철수할게.”
바이올라가 툴툴거리며 천막을 거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