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51)
지벨 백작은 로웨스와 소수의 기사를 이끌고 로투스 마을로 향했다. 로투스 마을은 지벨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기껏해야 말을 타고 이틀간 소요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이동하는 내내 지벨 백작의 표정은 어두웠다.
“곧 로투스 마을에 도착합니다.”
로웨스가 말했다. 쉬지 않고 말을 달린 덕분에 하루하고도 반나절 만에 로투스 마을의 인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30분 정도만 더 달리면 마을이다.
지근거리까지 왔지만 왠지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야 한다며 지벨 백작은 휘하 기사들에게 더욱 속도를 올릴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기사단은 로투스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투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수습 기사를 파견하여 자경단장에 임명하고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나 오염 현상을 발견한 이도 자경단장이었다. 며칠간 몬스터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읽은 자경단장이 직접 수하들을 이끌고 정찰에 나섰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지벨 백작이 마을에 도착하자 자경단장이자 영지의 수습 기사인 데이윈이 숲까지의 안내를 맡았다.
“이 근처입니다, 영주님.”
선두에서 안내를 맡은 데이윈이 숲속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근처라는 말에 지벨 백작은 동행한 영지의 중급 마도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처에서 마나의 움직임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중급 마도사가 주문을 외우더니 광역 탐색 마법을 전개했다. 푸른 마나가 일렁이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전방에 뭔가 있습니다.”
“대형을 갖춰라, 확인하러 간다.”
“기사단은 대열을 갖춰라!”
전방을 확인하러 가겠다는 지벨 백작의 말에 영지 기사단장, 로웨스는 휘하의 기사들에게 대열을 갖출 것을 지시했다.
기사들이 대열을 갖춘 것을 확인한 지벨 백작은 선두에서 말을 달렸다. 전방을 향해 30분 정도 달렸을까? 그들의 앞에 불안한 기운을 내뿜는 공간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바로 마나 오염 현상이군요.”
생전 처음 보는 불길한 광경에 로웨스가 얼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재앙의 시대를 경험해 본 적 없었기 때문에 마나 오염 현상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알론스 경, 진압할 수 있겠나?”
지벨 백작이 딱딱한 음성으로 동행한 중급 마도사, 알론스에게 질문했다. 질문을 받은 알론스는 눈살을 찌푸린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나 오염 현상을 살폈다.
“제 역량으로는 당장 진압하는 게 힘들 것 같습니다. 최소한 상급 마도사의 힘이 필요합니다.”
“좋지 않군, 테이나 경은 지금 사정이 있어서 호출할 수 없으니…….”
“영주님, 중앙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나 오염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재앙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경의 의견도 옳다. 아무래도 영지 회의를 소집해야겠군.”
심각한 주제의 대화가 오고 갔다. 마나 오염 현상을 확인했고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걸 판단했으니,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뭔가 있습니다.”
로웨스가 긴장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동시에 그는 날 선 검을 빼 들고서 주변을 경계했다. 지벨 백작 역시도 허리 혁대에 걸려 있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지벨 백작령의 영주이면서 기사단장 급이라고 불리는 A랭크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기사단은 영주님을 호위하라!”
동행한 10여 명의 기사가 방어 진형을 갖췄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앞에 불길한 칠흑의 불꽃을 머금은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염된 불의 정령들입니다.”
알론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정령 외에도 여섯이 더 기척을 죽인 채 숨어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이를 영주와 기사단장에게 알렸다.
“도합 일곱인가.”
오염된 정령이 일곱. 지벨 백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록에 따르면 오염된 정령의 전투력은 대략 B랭크 정도다.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지벨 백작 측에는 A랭크의 실력자가 2명이나 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벨 백작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저들의 정체가 일반 정령이 아니라 오염된 정령이었기 때문이었다.
“재앙의 시대가 결국 찾아오고 말았는가.”
지벨 백작은 쓰디쓴 얼굴로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 * *
“후우.”
유진이 호흡을 정돈했다. 그는 지벨 도시 인근에 위치한 작은 숲에서 마나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서는 바이올라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뱀파이어 성기사 드레인은 마나 수련 중인 유진을 배려하여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송은 켜지 않았다. 마나 수련은 지극히 지루한 과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나 상태 창.”
마나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명령어를 중얼거리자 눈앞에 상태 창이 나타났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2210/2210.
오늘도 성과가 제법 괜찮았다. 마나 홀이 만들어졌을 때 영약을 많이 섭취한 덕분에 체질이 바뀌어서 마나를 쌓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었다.
“나쁘지 않아.”
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나 수련을 끝낸 그가 짝, 하고서 손뼉을 치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바이올라가 화들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야!”
“돌아가자.”
“끝났어?”
“응.”
마나 수련이 끝났냐는 바이올라의 질문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어서 드레인이 다가와 물었다.
“주군, 수련의 성과는 어떠하십니까?”
드레인은 유진을 부를 때 주군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오글거리긴 하지만 노예 시장에서 그를 구출하는 이벤트를 달성하여 동료로 영입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특징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나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 이제 돌아가자.”
유진의 말에 드레인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에게도 아공간 주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다소 부피가 큰 짐들을 넣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하늘 소리 여관 앞에 도착한 유진은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출입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벨 백작가의 수습 기사인 안티즈였다.
“유진 경!”
안티즈는 여관으로 다가오는 유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안티즈 경 아닙니까? 무슨 일이시죠?”
“영주님께서 유진 경을 찾으십니다. 급한 일이니, 부디 영주성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귀족이, 그것도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영주가 ‘부탁’을 해 올 정도면 상당히 급한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유진은 지벨 백작이 무슨 용건으로 자신을 찾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지벨 백작이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이유는 몇 가지 없다. 그중에서도 유진,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루트를 분석해 보면 마나 오염 현상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진, 어떻게 할 거야?”
바이올라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인 그녀는 다급해하는 안티즈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험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지금 가겠습니다.”
유진은 바이올라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다시 안티즈를 향해 시선을 옮기고는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안내하겠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안티즈가 앞장섰다. 그는 곧장 영주성 안의 ‘홀’까지 유진 일행을 안내했다.
‘홀’ 안에는 가장 상석인 자리에 지벨 백작이 앉아 있었고, 그의 옆에는 제법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머리 위로 이름이 떠올랐다.
[용병 길드 지벨 지부장 제시카(A)]
제시카였다. 지벨 백작이 부르고 용병 길드의 지벨 지부장이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면 예상대로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일 확률이 높았다.
“로그인.”
유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진 하이.
―방장님 안녕하세요.
―어이, 어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방송 좀 자주 켜 주세요.
로그인을 하기 무섭게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시청자 수도 덩달아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유진은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바이올라의 시선이 닿는 것을 느끼고는 서둘러 눈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유진의 눈동자가 지벨 백작에게 향했다. 지벨 백작은 유진을 향해 호의와 신뢰가 가득 묻어 나오는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유진 경, 가까이 오라.”
“예, 지벨 백작님.”
조용한 부름에 유진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지벨 백작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영주나 귀족에 대한 기본적인 예법이다. 그 모습을 본 지벨 백작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가 지웠다. 미소를 금세 지우는 것을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재앙의 시대에 대해 알고 있나?”
재앙의 시대. 루베니아 연대기의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몬스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재앙의 시대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걸 모두 다 말할 수는 없다. 유진은 자신의 신분에 알맞은 정도의 정보만 풀었고, 지벨 백작은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전, 재앙의 시대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네.”
흥미로운 옛날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먼 옛날, 재앙의 시대가 찾아왔고 고대의 마왕이 부활하여 거대한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옛날이야기가 끝나자 유진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이벤트, ‘오염된 정령들의 행진’의 시작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얼마 전에 로투스 마을에서 마나 오염 현상을 발견했다네.”
마나 오염, 그것은 재앙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현상이었다.
“나름대로 조사를 해 봤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복귀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나는 가문의 이름으로 유진 경, 자네에게 의뢰를 하고 싶다네. 그래서 여기 제시카 지부장도 부른 것이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용병 길드의 지벨 지부장, 제시카가 싱긋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의뢰를 하신다는 상황은 이해가 갑니다만, 지부장님까지 부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설명이 너무 짧았군. 마나 오염 현상에 대한 의뢰는 무조건 금패 용병이 포함되어야 수행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그 규정 때문에 제시카 지부장을 부른 것이네.”
“제시카 지부장님이 동행하는 겁니까?”
유진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시카는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고서 가볍게 웃었다.
“아쉽게도 그건 아니야.”
“그렇다면?”
“모르는 척하는 거니? 생각보다 능구렁이네.”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모르는 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