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48)
14장. 파티 결성
“이 무슨 괴물 같은 원소 저항력이란 말인가?”
게스터는 경악했고.
―원소 불가침의 서약 효과 떴다!!!!!!!
―화염 마법? 하하, 어림도 없지.
―무다!!!!!!!!!!!!!
―방장님 빅픽쳐 무엇? ㅋㅋㅋㅋ.
―성능 확실하구먼!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신성 기도문으로 엄호하겠다. 내 남은 신성력을 모두 짜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뒤에서 드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드레인은 신성력을 사용하여 기도문을 외웠다. 신체를 강화하고 반사 신경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 주는 기도문이었다.
게스터가 당황하는 사이에 드레인은 강화 기도문을 끝까지 외웠고 유진은 자신의 육신에 그 효과가 깃들이는 것을 느꼈다.
“자네는 강해졌다! 돌격해!”
“내가 엄호할게!”
드레인과 바이올라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파이어 스피어!”
길쭉한 화염의 창이 높은 곳에서 게스터를 노렸고, 정면에서는 유진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드레인의 강화 기도문의 효과를 받고 있어서 그런지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 졌다.
“화염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창으로 찌를 수밖에!”
게스터가 자세를 가다듬었다. 거리를 좁혀 오는 유진을 노려보며 창의 끝을 겨눴다. 그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발한 순간, 창의 끝이 유진의 목을 노렸다.
“단숨에 꿰뚫어 주마!”
목을 꿰뚫을 기세로 쇄도해 오는 창. 평소의 유진이었다면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고속이었지만 드레인의 기도문으로 강화된 지금은 달랐다. 날카로워진 반사 신경이 창의 접근을 사전에 감지했고, 기민해진 육신이 신속하게 옆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게스터의 찌르기를 회피했다.
게스터는 서둘러 창을 회수하여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지만 유진이 조금 더 빨랐다. 그가 휘두른 검이 게스터의 왼팔을 잘라 냈다.
“크아아악!”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게스터는 창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2차 공격의 기회를 차단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전투 공백이 발생했지만 유진은 유감스럽게도 추격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게스터를 노려보며 땅을 박찼다.
둘 사이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진다. 게스터는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악하듯 마법의 화염을 일으켰다.
뜨거운 화염이 일어나 위협적인 불꽃을 토해 냈지만 ‘원소 불가침의 서약’을 착용한 유진에게 닿기 전에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화염 마법? 어림도 없지!
―효과 확실하구먼.
―게스터 이제 죽을 듯 ㅋㅋㅋ.
―네임드 캐릭터가 이렇게 빨리 죽는 건 또 처음 보네요.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고.
“하, 하하.”
게스터는 코앞까지 다가온 유진을 보며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너희, 이 상단의 뒤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 알고 있느냐?”
“팔라스 자작을 말하는 건가?”
“그, 그걸 어떻게.”
놀란 얼굴의 게스터를 보며 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작도 아니고 자작급 귀족의 이름이 너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나는 지금 팔라스 자작과 대적할 각오로 이 일을 벌인 것이니까.”
팔라스 자작은 지벨 백작령과 루메이 후작령의 서쪽에 위치한 영지를 다스리는 안드로 후작가의 가신이자 팔라스 도시의 영주로 레카 암시장의 배후이며, 노예 상단까지 운영하는 전형적인 악역 캐릭터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악역이 아닌 만큼 공략 난이도도 낮지 않지만 유진은 팔라스 자작이 두렵지 않았다.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공략법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팔라스 자작은 높은 난이도의 악역 캐릭터가 분명했지만 공략법을 알고 있으면 손쉽게 처단할 수 있는 적이기도 했다.
“하, 하하.”
배후의 존재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유진의 반응에 게스터는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려야만 했다.
유진은 허탈하게 웃는 게스터의 목을 베었다. 목이 깊게 베인 게스터는 비틀거리다가 힘 없이 쓰러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드레인, 게스터 말고 다른 금패 용병도 있었나?”
유진이 질문했다. 이 시기에 팔라스 자작의 노예 상단은 금패 용병 하나 정도만 운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확인 차 물어본 것이었다.
“게스터가 유일한 금패 용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슬슬 날뛰어도 되겠어.”
“무엇을?”
“너희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나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너희 손으로 직접 집행하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한다.”
노예 상단에 고용된 용병들 중 가장 위험한 적인 게스터를 처치했으니 이제 이 암시장 안에서 드레인과 뱀파이어 일족들에게 크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없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드레인이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씨익 웃었다. 그는 쇠사슬에서 풀려난 일족들을 앞에 집결시켰다.
“일족을 농락한 이들을 모두 죽여라.”
증오로 얼룩진 음성이 울려 퍼지자 뱀파이어들은 저마다 어디선가 구해 온 무기를 들고서 흩어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족쇄를 벗고 자유를 얻은 뱀파이어들은 드레인의 지휘 하에 암시장의 노예 상인들과 용병들을 상대로 냉정한 복수를 집행했다.
“노예 놈들이 풀려났다!”
“진압해!”
노예 상인들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끼리 집결하여 용병들을 중심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게스터라는 중심 전력을 잃은 상황에서 뱀파이어 성기사단이라는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집단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커헉!”
최후까지 저항하던 용병의 목에 뱀파이어가 내찌른 검이 꽂혔다. 짧은 비명과 함께 용병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용병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을 방패로 내세우고 도주를 시도한 노예 상인들도 암시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뱀파이어 성기사들은 결코 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전투력은 우수했고 수도 많았다. 마나 족쇄와 특수한 철창의 방해가 사라진 그들을 평범한 용병들로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레카 암시장도 이걸로 끝이네요.
―역시 드레인이야, 성능 확실하구먼!
―사요나라.
이것으로 레카 암시장은 전멸했다.
[업적, ‘어둠을 뚫는 정의의 칼날’을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업적을 달성했다. ‘어둠을 뚫는 정의의 칼날’은 암시장 같은 암흑가의 세력을 공격하여 처음으로 소탕에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업적이었다.
[서브 이벤트, ‘팔라스 자작의 야망’의 시작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서브 이벤트 중에서도 여러 메인 이벤트와 관련이 깊은 ‘팔라스 자작의 야망’의 시작 조건을 달성했다는 시스템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진의 뒤로 드레인이 다가왔다.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주군.”
“호칭이 바뀌었네.”
“주군은 약속을 지키셨고, 맹약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전과 달리 드레인의 목소리에서 충성심이 묻어 나왔다. 자연스러운 충성심은 아니었고, 맹약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계관에서는 그 어떤 수단보다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
“우선, 팔라스 자작의 하수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어.”
레카 암시장에는 팔라스 자작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마법 통신 장치가 있다. 뱀파이어 성기사들이 분전했다고는 하지만 분명 노예 상인들 중 누군가가 마법 통신 장치를 사용하여 팔라스 자작에게 연락했을 가능성이 컸다.
팔라스 자작의 영지는 여기서 꽤 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노예 상단을 운영하는 그의 하수인들은 루벤 왕국 전역에 퍼져 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레카 암시장의 변고를 전달 받고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현장을 이탈하는 게 좋다.
“나도 동감이야, 괜히 쫓기고 싶지는 않다고.”
옆에서 바이올라도 긍정했다.
“주군, 괜찮다면 제 부하들과 잠시 작별을 고해도 되겠습니까?”
어려운 요청은 아니다.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드레인은 충심이 묻어 나오는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일족들에게로 향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짧게 이별을 고한 드레인이 유진의 곁으로 돌아왔다. 여러 질문을 할 수도 있었지만 유진은 그러지 않았다.
대부분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이 아는 사실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레인의 일족들은 아마도 북쪽의 루메이 후작령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은 팔라스 자작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작별 인사는 끝났나?”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그럼 서둘러 이곳을 이탈하도록 하지.”
유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레인과 바이올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했고, 그들은 레카 암시장을 벗어나 곧바로 지벨 도시로 향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자.”
드레인을 구출하고 지벨 도시를 향해 움직인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레카 암시장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유진이 야영을 해도 괜찮겠다고 말한 순간, 바이올라는 수상한 기척을 감지했다.
“유진, 추격이 따라붙은 것 같아.”
“숫자는?”
“22명, 전부 말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접근하는 속도가 빨라.”
22명의 기병은 곧 언덕을 넘어 유진의 시야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깃발은 없었고, 통일되지 않은 복식이었지만 유진은 그들이 팔라스 자작의 휘하 기사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보이는 캐릭터 이름 덕분이었다. 모두 이전 회차에서 팔라스 자작의 영지를 방문했을 때 본 적 있었던 이름들이었다.
“추격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드레인이 증오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집에서 백야검을 빼 들었다.
“주군, 제게 기회를 주시면 저들을 모두 처단하겠습니다.”
“혼자서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바이올라 경.”
오랜 노예 생활로 인해 약화되었던 육신이 많이 회복된 것인지 드레인의 언행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바이올라는 이제 막 동료가 된 드레인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우려를 표했다.
“기회를 원하나?”
“그렇습니다, 주군. 허락해 주신다면 저들을 모두 도륙하겠습니다.”
깊은 증오다. 드레인의 붉은 눈동자는 분노의 감정에 젖어 있었다.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유진의 허락에 드레인은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징벌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은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서 드레인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칼날이 드레인에게 닿는 것보다 징벌 기도문이 완성되는 게 훨씬 빨랐다.
“기도문이다!”
“피, 피해!”
하늘에서 붉은 피로 만든 화살 비가 쏟아졌다. 말을 탄 기사들이 징벌 기도문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드레인이 노리는 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