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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47화 (47/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47)

―‘날 따라와.’

유진은 메시지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도구를 사용하여 바이올라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진, 앞에 결계 마법이 있어. 정신 집중해. 내가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혼란 마법에 걸릴 수도 있어.’

바이올라가 말했다. 중급 마도사인 그녀는 암시장 주위를 빙 둘러서 설치된 강력한 결계의 존재를 감지했다.

결계를 해제하면 암시장의 마도사가 눈치챌 테니, 이대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바이올라는 혼란 마법에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암시장의 결계를 넘는 유진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암시장의 경계를 넘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유진은 짧은 순간, 마나를 운용하여 혼란 마법을 일으키는 기운의 침투를 방어해 냈다.

―ㄷㄷㄷㄷ 혼란 결계를 그냥 통과한 거임?

―모야모야, 방장 뭐임?

―대박이네요. 저거 그냥 상태 이상 안 걸리고 통과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ㄷㄷㄷㄷ.

―ㄹㅇㅋㅋ.

―저기 설치되어 있는 거 최소 C랭크 혼란 결계일 텐데? 저걸 그냥 통과했다고?

―방장 완전 고인물이네. 해제 술식 외우고 있었나 봄.

시청자들이 채팅 창에서 감탄을 연발했다. 유진은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하고는 암시장의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평범한 상단의 야영지처럼 보였지만 깊숙이 들어갈수록 추악한 세계가 펼쳐졌다. 철창에 갇혀 있는 노예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공허한 눈동자로 멍하니 땅을 바라보고 있었고, 몇몇은 학대를 당한 것인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너무 끔찍해.’

바이올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후작가의 영애로 귀하게 자라온 그녀는 이런 험한 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 그녀의 눈에 담긴 모든 광경은 낯설고 이질적이며, 잔혹했다.

그 모든 것을 소화하기 힘든 것인지 바이올라는 토악질이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야만 했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유진의 말에 바이올라는 돌처럼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없이 많은 동물 우리 같은 감옥을 지나치자 마침내 뱀파이어 성기사 드레인이 갇힌 ‘우리’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누구냐.”

쇠창살에 기댄 채 차가운 바닥을 응시하고 있던 드레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흔히 A랭크로 분류되는 금패 용병과 동급이라고 평가받는 실력자답게 그는 B랭크 은신 마법을 단숨에 간파했다.

―‘적혈교의 성기사단장 드레인,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몇 가지만 묻겠다.’

“누구냐.”

고문을 당한 듯 전신이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지만 드레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네 복수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피의 맹세로 내게 충성을 약속한다면 여기에 갇힌 네 일족을 모두 풀어주고 복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너는 악마인가?”

―‘악마라, 그렇게 불릴 수도 있겠지. 나도 내 목적을 위해 널 이용하려는 거니까.’

유진은 솔직하게 말하자 쇠창살에 힘없이 기대어 있던 드레인이 씨익 웃었다.

“나쁘지 않군.”

그는 송곳니로 손가락을 깨물고는 바닥에 뭔가를 그렸다.

“네 이름이 무엇이지?”

―‘바로 피의 맹세를 할 생각인가?’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지.”

―‘내 이름은 유진이다.’

유진의 대답에 드레인은 피의 맹세를 시작했다.

“나, 드레인은 유진에게 피로서 충성을 맹세한다. 이 맹세는 나와 내 일족이 자유를 얻은 순간부터 효과를 얻는다.”

붉은 피의 기운이 유진에게 스며들었다.

“계획을 실행하려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피의 맹세를 한 순간, 사냥꾼들이 눈치챈 것 같거든,”

지금부터는 은신 마법은 의미 없다. 유진과 바이올라는 은신 마법을 해제했다. 유진은 백야검을 뽑아 들었다.

섬뜩한 예기를 머금은 칼날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쳐 나왔다. 이윽고, 유진은 백야검을 휘둘러 철창을 베었다. 특수 제작된 쇠창살이었지만 강화 보정까지 받은 오러 블레이드를 버텨 낼 수는 없었다.

쇠창살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고 드레인의 손발을 묶고 있는 족쇄도 잘라 냈다.

“생각보다 어리군.”

드레인이 피로 얼룩진 팔의 근육을 가볍게 풀며 말했다.

“그게 중요해?”

“중요한 것은 아니지. 단지 놀랐을 뿐이야.”

유진의 질문에 드레인이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드레인에게 유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서 드레인에게 건네주었다.

“좋은 검이군. 칼날이 살아 있어.”

“네가 사용했던 용혈검 만큼은 아니지만 당장은 사용할 만할 거다.”

“나쁘지 않군.”

예리한 칼날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드레인. 그가 사용했던 A랭크의 용혈검과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복수하기 위해 날카로운 검을 손에 쥐었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유진, 놈들이 눈치챈 것 같아.”

기척 감지 마법으로 암시장 안의 적들을 감시하고 있던 바이올라가 다가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 또한 암시장 안의 기척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상황이었다.“바이올라, 이거 착용해. 드레인, 너도.”

유진은 바이올라와 드레인에게 검은색 가면을 주고 자신도 착용했다. 맨 얼굴을 드러내면 곤란한 일에 엮일 수도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였다.

“가면이라, 철저하게 준비했군.”

드레인은 차분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검은 가면으로 쓰는 것으로 얼굴을 가렸고, 바이올라도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검은 가면을 착용했다.

“따라와, 네 일족들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고 있다.”

오는 길에 일부러 이전 회차들에서 드레인의 일족이 갇혀 있는 장소를 경유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단장님!”

철창에 갇혀 있는 이들 중 그나마 멀쩡한 이가 드레인의 얼굴을 알아보고서 목소리를 높였다. 드레인은 당장에라도 그들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노예 상단과 함께 일하는 용병들이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그 유치한 검은 가면은 뭐냐?”

용병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들의 숫자는 8명이었다. 수적 우세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곧 죽을 캐릭터들입니다.

―주인공 지금 A랭크 금패 수준이고, 드레인도 부상을 입은 상태긴 해도 A랭크에 바이올라는 B랭크인데 용병 8명한테 질 리가 없지.

―지옥행 급행열차 ㅊㅋㅊㅋ.

시청자들은 유진의 앞을 가로막은 용병들을 조롱했다.

“드레인, 시끄럽게 날뛰어도 좋다.”

“바라던 바다.”

드레인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난 순간 한 줄기의 빛처럼 휘둘러진 칼날이 용병 둘의 목을 베었다.

“커헉!”

“지, 지원 요청해!”

용병들은 당황하면서 신호탄을 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유진이 아니었다. 그는 마나를 운용하여 단숨에 스킬을 완성했다.

[액티브 스킬, ‘빛의 투창’을 사용합니다.]

백색의 마나가 모여 창의 형상이 되었다. 유진은 용병들 중 신호탄을 쏘려는 이를 노리고서 망설임 없이 빛의 창을 투창했다.

“끄르르르륵!”

빛의 창이 용병 조장의 목을 꿰뚫었다.

“조장!”

“이렇게 되면 지원군이!”

“제기랄!”

순식간에 3명이 당하자 용병들이 당황했다.

“체인 라이트닝!”

“끄아아아아악!”

이어서 바이올라의 강력한 마법이 남은 용병들을 덮쳤다. 연쇄 전격에 당한 용병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역시 마법 천재 바이올라야.

―성능 확실하구먼.

―상급 마도사에 근접한 중급 마도사 다운 화력! ㅋㅋㅋㅋ.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바이올라.”

“알겠어. 매직 미사일!”

마나를 이룬 구체들이 생성되어 철창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들을 파괴했다. 철창에서 풀려난 뱀파이어들은 쓰러진 용병들에게서 무기를 주웠다. 그들은 부상을 입거나, 지쳐 있었지만 자신들을 노예로 팔려고 한 상단에 대한 복수 의지를 불태웠다.

그들은 칼날이 노예 상인들에게 향했다. 그들을 지키는 용병들이 있었지만 분노한 뱀파이어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노예 상인들 절반을 죽인 시점에서 유진은 심상치 않은 기척의 접근을 감지했다. 드레인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오고 있다.”

드레인이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A랭크로 분류되는 금패 용병 수준의 실력자였지만 철창에 오래 갇혀 있으면서 고문까지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많이 약해져 있었다.

“네임드일 수도 있겠네.”

유진도 동조했다. 옆에서 스태프를 꽉 쥐고 있는 바이올라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바이올라 또한 심상치 않은 기척을 감지한 것이었다.

―네임드라고?

―지금 레카 암시장에 네임드가 있어요?

―낮은 확률로 게스터가 출현할 때가 있음.

―홍염 마창사가 있었구나!

―ㄹㅇㅋㅋ.

시청자들의 추측대로였다. 유진의 파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홍염 마창사라고 불리는 네임드, 게스터였다.

“유진, 쟤 금패 용병이야. 괜찮겠어?”

바이올라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유진은 여유가 넘쳤다.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게스터는 동료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3명이서 집중 공격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면 승산이 있다.”

“오케이, 셋이 하나를 상대하자.”

드레인이 검을 들어 올렸고, 바이올라도 마법을 캐스팅하기 위해 마나를 운용했다.

“어리석은 짓이다.”

신속하게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게스터. 그는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고는 창끝에 뜨거운 화염을 일으켰다.

홍염을 머금은 창이 진형의 선두에 있는 드레인을 노렸다. 드레인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약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게스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유진이 바이올라의 엄호를 받아서 재빠르게 둘의 틈으로 끼어들었다.

“제기랄! 마도사 X이!”

머리 위로 빗발치는 화염 화살들을 피해 게스터가 뒤로 물러났다. 그는 홍염을 다루는 마창사였지만 화염 저항력은 높지 않았다.

―나이스 어시스트!

―바이올라 최고다!

―타이밍 좋았고요!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드레인이 게스터의 창에 꿰뚫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바이올라의 적절한 엄호에 감탄하고 안도했다.

“드레인, 뒤로 물러나서 회복하고 있어. 여긴 내가 맡는다.”

“혼자서 괜찮겠나?”

“문제없어.”

유진은 드레인의 우려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엄밀히 따지면 혼자는 아니었다. 바이올라가 뒤에서 마법으로 엄호해 줄 테고 드레인도 구경만 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성기사다. 지금은 신성력을 많이 쓸 수 없겠지만 간단한 회복 주문 정도는 사용 가능할 것이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내 상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게스터의 홍염이 유진을 덮쳤다. 바이올라가 실드 마법을 사용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진!”

바이올라의 외침에 게스터는 히죽 웃었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그가 창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유진이 화염을 뚫고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게스터는 경악했다.

“어, 어떻게.”

“내가 원소 저항력이 좀 높거든.”

그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원소 불가침의 서약’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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