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46)
13장. 정보원 확보
“그게 중요합니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 다만 궁금해서 그래, 우리 고객님들은 모두 입이 무겁거든.”
“암약회 길드가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조심스럽군요?”
명백히 비꼬는 말투다. 날카로운 언사가 아슈르를 자극한 것인지 그는 날카로운 단검으로 유진을 겨눴다.
미약한 살의가 느껴졌지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당장이라도 찌를 것처럼 다가왔지만 유진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암약회는 이전 회차에서 몇 번이나 이용했다. 덕분에 아슈르의 공격 패턴은 훤히 알고 있어서 그를 앞에 두고도 긴장되지 않았다.
“고객을 위협할 생각입니까?”
유진도 백야검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것을 본 아슈르가 히죽 웃었다.
“꽤 비싸 보이는 검이군. 보니까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험한 꼴 볼 생각이 아니라면 조용히 꺼지는 게 좋을 거다.”
위협과 협박은 계속되었다. 슬슬 짜증이 날 정도였다.
“곤란하네요.”
“뭐?”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요.”
“뭐라고?”
아슈르가 단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단순한 위협에서 끝낼 생각은 없는 것인지칼끝이 유진의 손등을 노렸다.
챙!
칼날이 유진의 손등을 꿰뚫기 직전에 검집에서 뽑혀 나온 백야검이 아슈르의 단검을 쳐 냈다.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간 단검이 벽에 꽂혔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암약회의 길드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전투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하자 개입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만.”
암약회의 길드원들이 무기를 뽑아 들려는 순간, 근엄한 목소리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유진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객 앞에서 무슨 소란이냐, 아슈르.”
안쪽의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금발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이 술집 안을 빠르게 훑었다. 상황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 그것이.”
아슈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고, 중년인의 시선은 유진에게 향했다.
“암호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질문에는 답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보 거래를 하러 온 것입니까?”
중년인의 물음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중년인은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에게는 익숙한 캐릭터였다. 유진의 시선이 중년인 머리 위로 슬쩍 향했다.
[암약회 지벨 지부장 벤자민.]
그가 나타난 이상 더 이상 암약회를 자극해서는 도움이 될 게 없었기 때문에 검을 거두었다.
“정보 거래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다만, 저희는 비용이 꽤 비싼 편입니다. 괜찮겠습니까?”
“비용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금화는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유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골드가 가득 담긴 가죽 주머니를 꺼내서 속을 보여 주었다.
“음,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이제 고객 대우를 해 주는 겁니까?”
고객한테 단검을 겨눈 아슈르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제가 따로 주의를 주도록 하죠. 우선은 절 따라오시죠. 정보 거래 장소는 지하로 한층 더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유진은 벤자민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벤자민은 실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고객 상대로 함정을 팔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진은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그의 뒤를 의심 없이 따라갔다. 어두운 지하는 술집 내부보다 훨씬 넓었다. 몇 개의 방이 있었는데 벤자민은 그중 하나의 문을 열고 유진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필요한 예의는 갖추되 비굴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진은 벤자민이 열어 준 문을 통해 밀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밀실 안도 어두웠다. 희미한 등불이 홀로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앉으시죠.”
유진은 대답 대신 의자를 끌어다 앉자 벤자민도 탁자를 중앙에 두고 앉았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의 흔적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흔적이라, 누구의 흔적을 조사하고 싶은 겁니까?”
“확실한 정보는 없습니다. 두 개의 검과 S랭크 이상의 극독을 구하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는 것과 유렌이라는 이름밖에 모릅니다. 유렌이라는 이름도 가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는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륙의 정보 길드들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암약회’라면 무엇인가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벤자민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노련한 정보원인 그가 판단하기에도 사전 정보가 너무 적었다.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암약회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다만, 사전 정보가 부족할수록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입니다.”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유진은 여유가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용은 상관없습니다.”
얼마 전에 비싼 마도구 2개를 구입했지만 금화는 여전히 넘칠 정도로 많았다. 유진은 비용면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호탕하신 분이군요.”
“착수금이 있겠죠?”
“물론입니다. 우선은 광범위한 정보 수집이 필요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좀 높은 편입니다. 착수금으로 500골드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 보고를 받으실 때마다 정보 수집 난이도에 비례하여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전 회차들과 같은 형태다. 초행이라고 해서 일부러 가격을 높게 잡는 행동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500골드면 현재 유진에게 있어서는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착수금, 여기 있습니다.”
유진은 품속에서 100골드짜리 금괴 5개를 꺼내서 올려놓았다. 벤자민은 돋보기 모양의 마도구로 잠시 금괴를 살폈다.
“확실하군요. 가품은 아니네요.”
“저는 그런 장난질을 치지 않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유진 경.”
“제 이름을 알고 있었군요.”
“옷차림을 보고 대강 짐작했을 뿐입니다.”
이게 암약회의 정보력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든든하다.
“역시 암약회의 정보력은 무섭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유진의 말에 벤자민은 씨익 웃었다.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착수금을 받은 이상,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벤자민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은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암약회의 실력은 믿을 수 있다.
[업적, ‘정보 길드의 고객’을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5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의뢰 절차가 끝나자 업적도 달성되었다.
‘지하 곰팡이’ 술집을 나온 유진은 뒷골목을 벗어나 ‘하늘 소리’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유진은 마나 수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바이올라는 마법서를 읽거나 지벨 도시를 구경하며 심심함을 달랬다.
“바이올라, 이제 때가 되었다.”
유진의 말에 식사를 하고 있던 바이올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게는 일전에 지벨 도시의 북쪽에 용무가 있다고 말했었다.
지벨 도시의 북쪽에는 암시장이 있다. 그곳에는 유진이 지벨 도시에 일찍 방문한 이유 중 하나가 있었다.
‘복수를 갈망하는 뱀파이어 성기사가 있지.’
뱀파이어 성기사 드레인 경.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플레이어의 동료가 되는 캐릭터인 그는 지금 즈음에 지벨 도시 북쪽의 레카 암시장에서 노예로 판매될 운명에 처해 있을 것이다.
우선 유진은 그동안 모은 포인트 중 일부를 소모하여 ‘중급 기척 죽이기’ 스킬과 ‘상급 기척 감지’ 스킬을 각각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한 상태였다.
“벌써?”
바이올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유진은 그녀에게도 레카 암시장의 존재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해 둔 상태였다.
“그래,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늦을 거야.”
목적지가 암시장이다 보니 이번에는 행단을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일찍 출발해야 한다. 유진의 말에 바이올라는 식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준비하고 올게.”
바이올라는 출발 준비를 위해 자신의 객실로 올라갔다. 30분 후, 그녀가 돌아왔다. 달라진 점은 없어 보였지만 아마도 객실에 널브러져 있던 자신의 짐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왔을 것이다.
“가자!”
언제나 모험은 신나는 법이다. 적어도 바이올라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캐릭터였다. 두 사람은 북쪽 성문을 통해 지벨 도시를 빠져나와 레카 암시장으로 향했다.
4일 정도를 걸어서 이동한 끝에 암시장 인근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은 선량해 보였지만 유진은 그들이 노예 상단의 협력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뱀파이어 성기사 드레인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저들과 전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진은 철저히 그들을 경계했다.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유진과 바이올라를 경계하지 않았다. 암시장을 찾아온 많고 많은 고객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로그인.”
유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채팅 창이 활성화되었다.
―유진 하이!
―여기는 또 어딜까요?
―여기 레카 마을 같은데? 드레인 구출해서 동료로 영입할 생각이신 듯?
―그거 난이도 엄청 높은데 ㄷㄷㄷㄷ.
―ㄹㅇㅋㅋ.
시청자들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었다. 현재 시청자 수가 1,500명을 찍는 것을 확인한 유진은 채팅 창에서 눈을 떼고 바이올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암시장은 내일 열릴 거야.”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네.”
바이올라의 말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휴식하고 오늘 암시장이 있는 인근의 숲으로 먼저 잠입할 예정이었다.
이동하기 전에 유진은 마나 홀을 확인했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2020/2020.
마나 수치가 많이 올랐다. 대략 2,000의 수치라면 전투 상황에서 4시간 정도는 통상 출력의 오러 블레이드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드레인 구출 이벤트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전쟁 군주 이벤트 때는 금패 용병 솔론을 포함하여 동료들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옆을 지켜 줄 인물은 바이올라가 유일하다. 그에 비해 적들은 최소 수십 명에서 최대 100명이 넘는 인원이다. 고인물인 유진이라고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전력 차이다.
이윽고 유진은 바이올라와 함께 북쪽의 숲으로 향했다. 암시장이 있는 숲은 마을에서 멀지 않았다. 숲속 깊숙이 진입한 유진은 전방에서 다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했다.
암시장 인근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들키지 않으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유진은 바이올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이올라, 은신 마법 가능해?”
“B랭크 은신 마법까지는 사용할 수 있어.”
“부탁할게.”
B랭크 은신 마법이라면 웬만해서는 들키지 않을 것이다. 유진의 요청에 바이올라는 은신 마법의 주문을 외웠고 두 사람의 몸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