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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40화 (40/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40)

벨폰 도시에서의 재정비는 끝났다. 유진은 바이올라와 함께 도시의 북문으로 향했다. 북문으로 향하는 길에 마지막으로 용병 길드에 들러서 델바인과 다이크 그리고 솔론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말을 빌리는 게 좋을까?”

바이올라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녀는 스승이자 왕립 마탑의 최상급 마도사 유스타인 실버에게 통보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허락을 받고서 마도사의 견문행을 막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많이 들뜬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 그녀는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만 봐도 즐거울 것이다.

“굳이 말을 빌릴 필요는 없어. 곧 지벨 도시행 마차 행렬이 있으니까 그걸 이용하면 돼.”

루베니아 연대기 세계관은 치안이 좋지 않다. 강력한 영지군을 보유한 몇몇 영지를 제외하면 몬스터와 도적이 활개 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타 도시로 갈 때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숫자가 모이면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마차 행렬이라고 부른다. 보통 마차 행렬은 일반인들이 모여서 갈 때도 있지만 상단이 이동할 때 일반인들이 꼽사리 끼는 경우도 많았다.

유진은 지벨 도시로 이동하는 마차 행렬이 곧 출발한다는 정보를 조금 전 용병 길드에서 전해 들은 상태였다.

“하긴, 말보다는 마차를 타는 게 편하긴 하지.”

“그런 셈이지.”

짧은 대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마차 행렬을 찾기 위해 도시에서 벗어났다. 북문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어느 정도 걷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야영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은 저 장소가 마차 행렬의 출발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이올라를 이끌고 이동했다.

야영지로 들어서자 창을 든 용병이 다가왔다.

“유진 경, 행렬에 합류할 생각이십니까?”

그는 유진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쉽게도 유진은 눈앞에 남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시스템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용병을 보며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이름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이 능력의 사용법을 정확히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은패 용병 베이트.]

다가온 용병의 이름은 베이트였다. 이름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마주친 적도 없었을 가능성이 컸다. 유진은 지금 벨폰 도시에서 워낙 유명 인사였기 때문에 베이트가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네, 행렬에 합류하려고요. 행단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차 행렬에는 총 관리, 이른바 총대를 잡은 행단장이 존재했다. 주로 하는 일은 행단을 대표하여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면 간단한 면접을 보고 명단을 확보하는 것 정도다. 행단의 규모가 커지면 행단장이 여럿인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러면 그들 한 명의 업무는 더욱 줄어든다.

하는 일이 적은 만큼 그에게 부여된 권한도 많지 않다. 오히려 행단에 합류한 규모가 큰 상단의 입김이 더욱 크게 작용할 때가 많았다.

“행단장은 저기 2구역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유진 경에게 감사하죠. 전쟁 군주가 도시를 공격한 날, 저도 수비군으로 싸웠습니다. 그날 유진 경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도시는 전멸했을 겁니다.”

베이트가 말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바이올라와 함께 행단주를 찾아갔다. 이번 행렬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라 행단주는 한 명이었다.

“행단주 계십니까?”

“아! 제가 행단주입니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임시 사무실로 보이는 천막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유진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반갑습니다, 유진 경. 저는 행단주 라그나스라고 합니다.”

라그나스는 유진을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유진은 오크 전쟁 군주를 격퇴한 영웅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행렬에 참여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자격으로 참여하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상인으로 참여할지 아니면 용병이나 이용객으로 참가할 것인지 그것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었다. 유진은 당연히 이용객으로 참가할 생각이었다. 용병으로 참가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소량의 급여를 받을 수 있겠지만 불침번을 서는 등의 경비 의무가 부여된다. 그에 비해 손님, 즉 이용객은 돈을 지불하는 대신에 마차에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손님으로 이용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적고 비용을 지불해 주시면 마차를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유진은 라그나스가 건넨 서류에 서명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비용이 제대로 지불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라그나스는 선명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두 사람에게 마차를 배정해 주었다.

“행단주님, 이거 제가 지불한 비용에 비해 등급이 높은 마차인 것 같은데요?”

일반 등급 마차에 탈 수 있는 요금을 지불했는데, 배정받은 건 고급 마차였다. 유진이 이 점을 말하자 라그나스는 씨익 웃었다.

“벨폰 도시에는 제 가족들이 살고 있죠. 이건 영웅께 보내는 제 작은 호의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시길.”

라그나스는 선한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하고는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바이올라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문을 열자 고급 마차의 넓은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바이올라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유진이 일반 등급 마차를 예약하려고 했을 때만 해도 표정이 조금은 어두웠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합격이야! 그럭저럭 탈 만할 것 같아!”

먼저 마차에 탑승한 바이올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유진은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저으며 뒤이어 마차에 탑승했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버리고 갈 거야.”

“아앗! 방해하지 않을게! 미안해!”

“귀족 영애처럼 대우해 줄 생각은 없어.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이지!”

다행히 바이올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부류의 귀족은 아니었다. 유진은 마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렬은 지벨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우와아! 출발한다!”

들뜬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바이올라. 마차 행렬의 출발은 견문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좋아 보였다.

“즐거워?”

바이올라의 표정에서 순수한 즐거움이 느껴졌기에 유진은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응, 수행원 한 명 없이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거든!”

바이올라의 대답에 유진은 차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설정상 바이올라의 스승인 유스타인 실버 역시도 루메이 후작가의 가신 중 한 명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수행원 역할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이올라는 늘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수도 있다.

대화가 끝나고 유진은 등받이에 기댄 채 두 눈을 감았다. 지벨 도시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방송은 로그아웃해 둔 상태였다. 채팅 창도 꺼져 있고 바깥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바이올라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질릴 때 즈음이었다.

어느새 밖은 많이 어두워졌고 늦은 밤 특유의 차갑고 싸늘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야영합니다! 안내원들은 이쪽으로 보여 주세요!”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차 문을 열기 위해 유진이 움직이자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지쳐서 졸고 있던 바이올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우웅, 도착했어?”

“그럴 리가.”

“그럼 왜 멈춘 거야?”

“야영지니까.”

유진은 차갑게 대답하고는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용병들과 잡부들이 돌아다니며 야영 준비를 서둘렀다. 남은 상인들과 손님들은 장시간 마차 운행으로 지친 몸의 근육을 풀어 주고 있었다.

“평화롭구먼.”

구석진 곳에서 검술 수련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의 숙련도를 높여서 나쁠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유진은 다수의 인원이 야영지로 다가오고 있는 듯한 기척을 감지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것 같은데?’

수십 명 규모가 아니었다. 최소 1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 산적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크고 정예 병력인 것 같군.’

유진은 서둘러 바이올라가 있는 마차로 향했다. 마침 바이올라는 잠에서 완전히 깨서는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바이올라.”

“무슨 일이야? 유진.”

“광역 탐색 마법 전개해 봐.”

“갑자기?”

“뭔가 좀 이상해서 그래.”

확실히 하기 위하여 바이올라에게 광역 탐색 마법의 전개를 요청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바이올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윽고 광역 탐색 마법이 완성되었고 다수의 인원이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이올라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떨렸다.

“최소 100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이쪽으로 은밀하게 접근 중이야, 유진. 도적이라고 하기에는 다들 기본적으로 기척을 죽이는 마도구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아.”

한마디로 말하자면 평범한 도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바이올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직 거리가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행단의 다른 용병들이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적들은 일반 도적들과는 다르게 기본적인 훈련은 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단은 행단주한테 알리는 게 좋을 것 같군.”

유진은 곧바로 바이올라와 함께 행단주 라그나스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라그나스의 옆을 지키고 있던 행단의 간부급 용병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감시 체계가 뚫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자 라그나스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경비대장, 이분은 유진 경입니다. 이 정도면 신뢰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라그나스의 말에 용병 경비대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진 경? 오크 전쟁 군주를 격퇴한 그 영웅이시군요. 제가 몰라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용병 경비대장은 곧바로 사과했다.

“부하들에게는 공격에 대비하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협조에 감사합니다.”

용병들이 공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기습조 복면인들의 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놈들이 눈치챈 것 같습니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놈들이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저들의 전력은 약하다. 하룻밤 사이에 네임드가 합류했을 리는 없을 테니, 작전은 중단하지 않는다.”

“넵, 알겠습니다. 대장님.”

그들이 명단을 조사한 하루 사이에 벨폰 도시의 영웅이자 전쟁 군주를 격퇴한 유진이 행렬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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