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39)
11장. 지벨 도시로
“따라와도 돼.”
거절할 이유는 없다. 유진은 바이올라의 합류를 흔쾌히 허락했다. 솔로 플레이는 편하긴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루베니아 연대기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들은 파티를 조직해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허락해 줘서 고마워. 솔직히 말해서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약간 너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바이올라가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고독한 늑대 떴다!
―방장님, 이대로 고독한 늑대 엔딩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ㄹㅇㅋㅋ.
슬쩍 옆을 보니까,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고독한 늑대 엔딩은 솔로 플레잉으로 루베니아 연대기를 클리어 하면 볼 수 있는 엔딩이었다.
다회차 플레이어인 유진 또한 고독한 늑대 엔딩을 본 적 있지만 난이도도 높고 귀찮은 게 많기 때문에 추천하는 루트는 아니었다.
“딱히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
유진은 간단하게 대답했고, 바이올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스승님께 허락받고 올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허락이라는 이름의 통보일 것이다. 스승이라고 해도 제자의 견문행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없었고, 바이올라의 가문 배경을 생각하면 유스타인이 다른 방법으로 설득을 시도하는 것도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이올라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스승이 있는 곳으로 간 사이, 유진은 벨폰 자작이 영주성 안에 마련해 준 임시 숙소로 향했다.
논공행상은 이틀 뒤에 시작될 예정이고, 바이올라도 스승한테 견문행 시작의 통보를 하러 갔으니, 숙소에서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유진 경, 어서 오세요.”
영주성을 지키고 있는 수습 기사들은 물론이고, 고용된 하인들도 모두 유진에게 호의적인 시선과 함께 인사를 건네 왔다.
유진은 그들의 인사에 답하고는 자신의 방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꽤 넓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은 입고 있는 갑옷만 대충 벗어 던지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상점 창.”
그는 로그인을 유지한 상태로 상점 창을 열었다.
[보유 포인트: 19,500.]
―투신의 각오(B)
―대상인의 계산법(B)
―루벤 왕립 기사 검술(C+)
상점 창을 열기 무섭게 추천 스킬란에 사고자 했던 스킬 2개가 나타났다. 상점에서 뭔가를 구입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인의 계산법’도 유용한 스킬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백병전 전문가’와 ‘불굴의 전사’의 상위 호환 느낌의 ‘투신의 각오’와 검술에 보정이 들어가 있는 ‘루벤 왕립 기사 검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망설임은 없었다. 유진은 곧바로 필요한 스킬들을 구매하였다. ‘투신의 각오’를 구입하고 ‘제식 검술’을 ‘루벤 왕립 기사 검술’로 업그레이드했다.
“상태 창.”
유진은 상태 창의 스킬 부분을 확인했다.
[유진.]
〈보유 스킬〉
―강철 같은 육체(B)
―투신의 각오(B)
―빛의 투창(B)
―선천적 마나 친화(B)
―오러(B)
―일검필살(B)
―루벤 왕립 기사 검술(C+)
―불굴의 전사(C)
―마나 수련법(C)
―날렵한 반응(D)
―중급 궁술(D)
―중급 추적(D)
―중급 기척 죽이기(D)
―중급 화염 저항(D)
―중급 방패술(D)
―백병전 전문가(D+)
―상급 기척 감지(C)
처음 빙의했을 때에 비해 스킬 창이 많이 풍족해졌다. 이제는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로그아웃.”
명령어를 말하자 방송이 로그아웃되면서 채팅창이 비활성화되었다. 휴식하기 위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진 순간이었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성이라고 하기에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여성이 분명했다. 바이올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유진은 겉옷을 대충 챙겨 입고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똑똑.
“나 바이올라야! 들어가도 돼?”
밖에서 바이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고마워!”
해맑은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바이올라는 웨이브가 들어간 보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안으로 뛰다시피 한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견문행에 대해서 말하고 왔나 보네.”
유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허락이 아니라 통보였을 것이다. 바이올라는 유진의 묘한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폴짝폴짝 들어와 유진의 1m 정도의 간격을 둔 앞에 섰다.
“앉아도 돼?”
“그래, 앉아.”
“고마워.”
앉아도 된다고 허락하자 바이올라는 주변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녀는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곧 견문행이 시작될 예정이라 들뜬 것 같았다.
“바이올라, 나랑 합류하기 전에 확실히 해 둘 게 있어.”
“응, 듣고 있어.”
“행선지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건 나야. 그건 확실하게 알아뒀으면 해.”
“응, 알겠어. 나는 유진을 따라가는 거니까 파티의 리더는 유진이지.”
이건 예상외였다. 바이올라는 톡톡 튀는 성격의 소유자라서 파티장 자리에 대해 주장을 할 것이라 예상했었고, 실제로 유진이 경험한 플레이 중에서는 그런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유를 추측하자면 거의 단독으로 전쟁 군주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인 덕분에 감히 맞먹을 생각 자체를 버렸을 수도 있고, 유진의 변칙적인 플레이의 연쇄가 가져온 여러 작용들이 바이올라의 성격을 미세하게 변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강한 사람이 파티 리더를 맡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바이올라의 대답을 들은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유진이 전쟁 군주를 단독으로 격퇴할 정도로 강하니까, 그의 강함에 감탄하여 순순히 파티 리더를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네.”
“당연한 거야.”
바이올라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맑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유진.”
“말해, 듣고 있어.”
방송도 로그아웃한 상황이라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이올라가 다소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답은 꼬박꼬박 성실하게 했다. 그래서 바이올라도 맑은 눈동자를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이 늦은 시간에 겁도 없이 유진의 방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우리 파티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그게 궁금했어?”
“응,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바이올라가 헤헤, 하고 웃었다.
“일단 여기서 재정비를 하고 지벨 도시로 갈 예정이야.”
북쪽으로 가는 셈이다. 지벨 도시에서 북쪽으로 가면 루벤 왕국에서 가장 험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많다는 강철 산맥이 있다. 유진이 찾는 마도구, ‘원소 불가침의 서약’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소 불가침의 서약’은 앞으로 벌어질 메인 이벤트 중 하나의 보스인 오염된 정령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마도구이기도 했다.
“다음 일정은?”
“지벨 도시로 가서 말해 줄게.”
“으응, 알겠어.”
유진의 대답에 바이올라는 아쉬운 표정이 되었지만 순순히 물러났다. 그녀는 폴짝 뛰어서 단숨에 출입문까지 이동했다.
“잘 자, 유진.”
그렇게 말하면서 출입문을 열었다. 오늘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인 모양이다. 바이올라의 인사에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고는 침대로 향했다.
바이올라가 떠나고 유진은 곧바로 침대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른 아침이다. 유진은 벨폰 자작의 영주성에 마련된 연무장으로 향했다. 영주성 안에는 연무장이 꽤 많았는데, 벨폰 자작은 그중에서도 자신의 개인 연무장을 사용하는 것을 유진에게 허락했다.
지금은 오크 전쟁 군주에 의해 입은 피해를 산정하는 기간이라, 포상에 대해서는 내일 정도에 정해질 예정이다. 그래서 유진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벨폰 자작의 개인 연무장에서 하루 종일 마나 수련을 하고 있을 예정이었다.
“후우우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나 수련법에 따라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마나를 운용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마나 상태 창.”
유진은 마나 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명령어를 내뱉었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1520/1520.
예전과 비교하면 마나 홀이 많이 확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는 아무래도 영약을 아낌없이 섭취하면서 틈틈이 마나 수련을 해 온 덕분이었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 볼까.”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마나 수련을 해서 그런지 슬슬 허기가 졌다.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유진은 망설임 없이 영주성 내에 위치한 기사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기사 식당에는 많은 정식 기사들과 수습 기사들이 줄 서서 식판에 음식을 골라 담고 있었다.
유진 또한 줄을 서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는데, 왠지 시선이 집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 탓인가 생각했는데, 실제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러다 익숙한 얼굴의 기사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벨폰 자작가의 정식 기사 안스빌이라고 합니다. 이번 토벌 전투에서 유진 경께서 보여 준 모든 용맹한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부디 맛있는 점심 식사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군요.”
안스빌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사들은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떠나기 전에 하나둘씩 무리 지어 유진의 앞으로 다가와 경의를 표했다.
그 때문에 식사 시간은 늦춰졌지만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식사를 끝내고 유진은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은 하루 종일 마나 수련에 집중했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 유진은 자신에게 배정된 포상금이 무려 20,000골드가량이라는 사실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포상금 전달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유진은 아공간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관 및 운반은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유진 경 덕분에 토벌전에서 아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은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포상금 전달이 끝나고 벨폰 자작은 유진을 향해 호의가 묻어 나오는 시선을 보내며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전달식이 끝나고 평판 상태 창을 확인해 봤는데, ‘신뢰’ 단계였던 벨폰 자작가와의 관계도가 ‘우호’ 단계로 격상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은인’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굉장한 성과였다.
이번 오크 전쟁 군주 이벤트로 골드와 포인트, 칭호뿐만 아니라 관계도까지 챙겼다. 첫 메인 이벤트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바로 떠날 계획입니까?”
벨폰 자작이 질문해 왔다.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재정비를 위해서 며칠 정도는 머무를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영주성에서 기거하시지요.”
“감사합니다, 벨폰 자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