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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36화 (36/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36)

“말들이 전부 죽어 있군.”

다이크가 방패와 검을 들어 올린 채 전투를 준비했다. 유진은 고개를 돌려 바이올라를 바라보았다.

“탐색 마법은?”

“교란당하고 있어. 수준 높은 주술사가 주변에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되면 탐색 마법은 무용지물이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탐색 마법이 무용지물이라면 접근 중인 적들의 위치와 전력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델바인, 전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다이크 경과 함께 전위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유진이 말했다. 델바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감각의 범위에 다가오는 오크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숫자는 대략 20여 마리 정도다.

적은 숫자였지만 추격해 오는 오크들도 50마리가 넘는 상황이라, 전투 자체는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바이올라, 마법 통신 가능하겠어?”

바이올라를 보며 차분한 음성으로 질문했다. 지원 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호탄을 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리되면 오크들의 과한 관심이 모인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마법 통신? 수정구가 없어도 지휘부가 있는 본대까지는 가능할 것 같아. 그런데 교란 때문에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어.”

“교란만 없으면 가능하다는 거지?”

“물론!”

“그럼 교란은 내가 제거한다.”

유진이 검을 빼 들었다.

“유진! 미쳤어? 그러다가 죽어!”

“내가 먼저 죽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크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전투가 길어지고 그로 인해 오크들의 증원이 도착하기 전에 교란의 원인을 제거하고 지원 요청을 해야 한다.

―주인공 특, 죽지 않음.

―ㄹㅇㅋㅋ.

―주인공 죽는 소설은 하나밖에 못 본 듯? ㅋㅋㅋ.

채팅 창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것을 읽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바이올라, 교란의 위치는 알 것 같아?”

“이 근처야, 반경 300m 안에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해.”

난처한 표정의 바이올라를 뒤로한 채 유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조잡한 무기를 든 오크들이 달려와 앞을 막아섰지만 그들은 유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아아아!”

“크워어어!”

유진의 검격에 오크들 몸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앞을 가로막았던 오크들이 힘 없이 무너지듯 쓰러졌고, 그들의 뒤로 작은 나무 토템 하나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오크 주술사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원인이었군.’

루베니아 연대기를 여러 번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 유진은 시야에 보이는 별거 아닌 듯한 작은 토템이 마나 교란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키에에엑!”

오크 주술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유진을 향해 주술 공격을 쏟아 냈다. 유진은 고인물 무빙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정교한 움직임으로 연쇄적인 주술 공격을 모두 회피했다.

―고인물 무빙 떴다!!!!!

―ㄹㅇㅋㅋ.

―고인물 그 자체임 ㅋㅋㅋㅋ.

―ㄹㅇ 저거 다 피하는 거 보셈.

채팅 창이 소란스러워졌다. 포인트 후원도 몇 차례 이어졌다. 순식간에 오크 주술사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유진. 그는 오크 주술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아!”

오크 주술사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고, 유진은 오러 블레이드로 교란 토템을 파괴하고 바이올라에게 돌아갔다.

일행들은 한창 오크들과 전투 중이었다.

“유진!”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바이올라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전황은 급박해 보이지 않았다. 조우한 20여 마리의 오크들은 이제 10마리도 남지 않은 상태였고, 적들의 지원군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진은 전장의 한가운데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검격을 펼쳤다. 오크들의 몸에서 붉은 피 분수가 솟구쳤다.

“다들 무사합니까?”

전투가 종료되고, 유진은 다른 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부상 없이 무사했다.

“바이올라, 지원 요청은?”

“본대에서 연락을 받았어. 곧 기사단이 지원 올 거야.”

기사단의 지원이라면 든든하다. 하지만 여기는 본대의 야영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말들까지 모두 잃은 상황에서 뒤에서는 오크들이 바짝 추격해 오고 있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대한 남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남쪽은 본대의 야영지가 있는 방향이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남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따라붙었다! 늑대 기수들이야!”

델바인이 외쳤다. 빠른 기동력을 보유한 오크 늑대 기수들에게 따라잡힌 모양이다.

“유진 경, 싸우는 게 좋을 것 같네. 추살이 전문인 늑대 기수들한테서 등을 보인 채 도망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저도 동의합니다, 다이크 경. 여기서 놈들을 상대하도록 하죠.”

바로 뒤에 넓은 강이 있는 지형에서 유진과 일행들은 멈춰 섰다. 탁 트인 평원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전후좌우에 장애물이 없는 광활한 지형에서는 늑대 기수들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마치 배수진을 치는 것처럼 강을 등지고 선 채, 다가오는 오크 늑대 기수들을 맞이했다.

“온다!”

바이올라가 마법 주문을 캐스팅했다. 더블 캐스팅이 아닌 평범한 캐스팅이었지만 그녀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조금 전의 전투에서 마나를 소모하고 쉴 틈도 없이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맺힌 땀방울인 것 같았다.

“파이어 애로우!”

청아한 외침이 불화살의 비를 불러왔다. 하늘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지고 수십 발의 불화살이 오크 늑대 기수들을 향해 쏟아졌다.

“크아아아!”

“크어어어!”

불화살에 맞은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늑대 위에서 추락했다. 40마리의 오크 늑대 기수들 중 절반이 일격에 당했다.

―나이스!

―역시 바이올라!

―바이올라 펀치! 바이올라 펀치! 바이올라 펀치!

―그녀는 신이야!

바이올라의 활약에 그녀의 팬을 자처한 시청자들로 인해 채팅 창이 난리였다. 유진은 슬쩍 채팅 창을 확인하고는 오크 늑대 기수들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고인물 무빙!

―빨라! 보이지 않았어!

―통상 3배의 스피드!

휘둘러진 검에 오크 늑대 기수들의 몸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검격에 당한 늑대 기수들이 힘 없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이들은 10마리 정도,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 델바인이 소형 석궁을 장전하려는 찰나였다.

“오크들이야! 이번에는 최소 100마리 이상이야!”

바이올라가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그녀의 탐색 마법은 전투 중에도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런 레이더에 오크들의 증원이 포착된 것이었다.

―웨이브가 계속 오네.

―완전 디펜스 게임임.

―ㄹㅇㅋㅋ.

속이 타들어 가는 유진과 다르게 시청자들은 평화로웠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겠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 벌써 코앞까지 접근했어!”

“이런 제기랄! 다들 방어 진형 갖추세요!”

욕설과 함께 방어 진형을 갖추라고 외쳤다. 강을 뒤로한, 배수진을 다시 한 번 구성했고 바이올라가 가장 뒤로 이동했다. 1.5열은 유진이었고 1열은 다이크와 델바인이 방패를 든 채 정면을 주시했다.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100여 마리의 오크 늑대 기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조잡하지만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있었고, 흉흉한 기세와 함께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바이올라, 탐색 마법 끄고 모든 마나를 전투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유진은 그 부분을 강조했고, 바이올라도 장난기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태프에 마나를 모으며 각오를 다졌다.

“온다!”

델바인이 고함을 내지르며 소형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피슝, 하고 날아간 화살이 오크 늑대 기수의 미간에 꽂혔다.

“캬르르륵!”

동료의 죽음에 반격이 시작되었다. 오크 늑대 기수들이 투창을 시작한 것이었다. 수십 개의 투창이 날아들었지만 바이올라의 실드에 가로막혔다.

서로 한 차례씩 원거리 공격을 주고받은 두 진영은 곧 충돌하여 교전을 시작했다. 전투는 순식간에 난전의 양상을 가지게 되었고, 유진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크들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나마 뒤에 넓은 강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강이 없었다면 4방향에서 거센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위치 선정을 잘한 덕분에 적 병력의 규모에 비해 공격의 강도가 비교적 약해졌다.

“크아아악!”

오크들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냈을까? 델바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델바인!”

마침 근처에 있던 다이크가 델바인을 부르며 그에게 합류했다.

“다이크 경! 델바인 씨의 상태는요?”

“걱정하지 말게! 무사하다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닌 모양이다. 유진은 다가오는 오크 늑대 기수들을 도륙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자 노력했다.

배수진을 친 것은 현명한 판단이면서 동시에 실수이기도 했다. 강을 뒤로하고 배수진을 친 덕분에 후방에서의 공격을 차단했지만 퇴로 또한 차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 진영을 돌파하여 아군 진지를 향해 달릴 수밖에 없는데, 눈앞의 적들이 기동력이 우수한 오크 늑대 기수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따라잡히고 말 거야.’

유진은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서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입술에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고민을 이어 갔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고인물 무빙도 한두 번이지 전투 씬 계속 우려먹는 거 노잼.

―빨리 뭔가를 보여 주세요! 방장님!

―ㄹㅇㅋㅋ.

―슬슬 뭔가 보여 줄 때가 됐다!

시청자들은 유진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반전의 조짐은 없었다. 전투는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고 있는 탓에 유진의 마나도 슬금슬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제기랄!’

혼자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추악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거칠게 젓는 것으로 온갖 이기적인 생각을 떨쳐 내고는 검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뿌우우우우우!

모든 것이 절망으로 물드는 순간,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익숙한 뿔 나팔 소리는 오크들의 것이 아니었다.

“지벨 영지 기사단의 나팔 소리다!”

델바인이 지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뿔 나팔 소리는 지벨 영지 기사단의 것이었다.

가까운 언덕 위에서 길쭉한 기병 창과 두꺼운 갑주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유진 일행을 공격하는 오크 늑대 기수들을 향해 돌진 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기사단장 로웨스가 있었다.

“오크들을 섬멸하라!”

“모두 죽여라!”

“절대로 살려 두지 마라!”

우렁찬 함성과 함께 돌격하는 기사단. 그 장대한 위용에 절반 이상의 전력을 상실한 오크 늑대 기수들은 황급히 도망치기에 바빴다.―역시 지벨 기사단이야,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지.

―성능 확실하구먼.

―ㄹㅇ 좀 쩌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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