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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32화 (32/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32)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자 출입문 바로 옆에 서 있던 젊은 수습 기사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유진이 인사를 건네자 젊은 수습 기사도 이내 차분해진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에 답했다.

“벨폰 자작가의 수습 기사, 포드릭이라고 합니다. 성벽에서 유진 경의 활약을 봤습니다. 그 용맹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나저나 ‘경’이라는 호칭은 저한테 어울리지 않는 옷인 것 같네요.”

‘경’은 기사의 자격을 갖춰야만 불릴 수 있는 호칭이었다. 수습 기사도 ‘경’이라고 불릴 수 있긴 하지만 지금 유진은 기사는 물론 수습 기사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이라고 불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진 경, 아직 모르셨군요. 하긴 쓰러져 계셨으니 이해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지금 이곳에 지벨 백작님이 와 계십니다.”

“설마 저를 기사로 임명하기라도 하셨나요?”

지벨 백작에게는 기사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기사가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종자부터 시작하여 수습 기사를 지나, 기사의 칭호를 허락받는 정규 루트를 거치지 않고서 기사가 된다는 것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기사를 플레이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은 처음부터 명셩에 따라 기사단에 종자나 수습 기사로 들어가서 정규 루트를 밟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합니다, 지벨 백작님께서 유진 경을 기사로 임명하셨습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이셔서 우선 약식 임명이긴 했지만 이후에 정식으로 임명식을 거칠 것이라 하셨습니다.

농담 삼아서 던져 본 말이었는데, 설마 적중할 줄은 몰랐다. 아마 영지에 소속된 기사가 아닌, 자유 기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벨 백작과 벨폰 자작의 성품과 우호도를 생각해 보면 보상은 기사 임명만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기사 임명과 관련된 업적도 있다. 많이 놀랐고,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유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지벨 백작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깨어나시면 기별을 해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충분히 휴식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몸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포드릭의 물음에 유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 특전이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불과 얼마 전에 오크 전쟁 군주와 목숨을 걸고 격렬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리고 오겠습니다. 부디, 그동안 편히 계시지요.”

“알겠습니다.”

유진의 대답을 들은 포드릭은 호의 가득한 눈인사를 보내고는 멀어져 갔다. 복도에 홀로 남은 유진은 방으로 다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에는 그의 장비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지벨 백작이 오고 있는 마당에, 그대로 누워서 잠을 청할 수는 없는 일이라 유진은 일어나서 침대 끝쪽으로 걸터앉아 가볍게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인기척들이 느껴지더니,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오 지벨 백작이다, 들어가겠네.”

벌컥 하고 문이 열리더니 경갑 차림의 지벨 백작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뒤따라 들어온 수행원들은 모두 벽 쪽에 섰다.

“유진 경이 홀로 전쟁 군주를 격퇴했다고 들었네, 몸은 좀 괜찮은가?”

오크 전쟁 군주를 물리쳤다는 소식과 상세한 정황은 이미 지벨 백작에게 전달되었다. 전쟁 군주를 상대하는 자리에 금패 용병인 솔론과 은패 용병인 델바인 등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당시의 상황을 전달받은 것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전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몸 상태보다 전황을 더 생각하는 유진의 모습에 지벨 백작은 물론이고 그의 옆에 시립한 벨폰 자작도 크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오크 전쟁 군주가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지벨 백작님과 왕국 중앙군이 도착했지요.”

크게 감동을 하여 할 말조차 잃어버린 지벨 백작을 대신하여 벨폰 자작이 설명했다. 유진은 벨폰 자작의 상황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벨 영지군의 지원은 당연했지만 설마 왕국 중앙군까지 움직일 줄은 몰랐다.

‘북쪽 숲을 완전히 쓸어버릴 생각이군.’

유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북쪽 숲은 넓고 오크들도 매우 많다. 루베니아 연대기 플레이 경험이 많은 유진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귀족들은 북쪽 숲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거 생각보다 난이도가 더 올라갈 수도 있겠어.’

유진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오크 전쟁 군주는 물러났다네. 그러니, 경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게나. 왕국 중앙군까지 지원 온 상황이니, 당분간은 큰 걱정이 없을 것이야.”

북쪽 숲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다 쓸어버리겠다는 지벨 백작 생각과는 다르게 걱정스러운 유진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유진 경이 깨어났으니 기사 서임식은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벨 백작님.”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군. 좋아! 서임식은 이틀 뒤로 잡도록 하게.”

벨폰 자작과 지벨 백작은 유진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서 기사 서임식 일정을 잡아 버리고는 푹 쉬라는 말을 남긴 채 침실을 떠나갔다.

“이틀 뒤라.”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 몸이 정상인 것 같다고는 하지만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으니 이틀 동안은 잡생각 하지 않고 푹 쉴 생각으로 유진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기사 서임식 당일이 되었다. 유진은 ‘영주의 홀’에 들어서면서 혼잣말로 ‘로그인’이라고 중얼거렸다.

―유진 하이.

―방장님 하이요!

―기사 서임식인가 보네. ㄷㄷㄷㄷ.

―ㄹㅇㅋㅋ.

―흐름을 보니까, 기사 작위 받고 자유 기사하려는 듯?

방송을 활성화하기 무섭게 시청자들이 접속하면서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보통 기사 서임식이 지루하다고는 말하지만 유진은 채팅 창에 난무하는 각종 드립들을 감상하면서 작위 수여를 끝냈다.

“이제 경은 루벤 왕국에서 인정하는 정식 기사가 되었다네.”

마지막으로 지벨 백작이 근엄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과 동시에 격려하듯 유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업적, ‘왕국의 정식 기사’를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자유 기사’의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업적 달성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기사 서임식에는 지벨 백작가와 벨폰 자작가의 사람들 외에 마침 지원을 나온 왕국 중앙군과 왕립 마탑의 마도사 몇 명도 참관하게 되었는데, 그들 모두 유진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왕립 마탑을 상징하는 청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유난히도 두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유진은 그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바이올라 루메이인 것 같은데?’

거리도 가깝지 않고 군중들에 섞여 있어서 그녀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옆을 지키고 있는 남자 얼굴만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는데 청색 로브를 입은청색 로브 차림인 노인은 유진이 알던 얼굴이었다.

‘유스타인 실버군. 그렇다면 옆에 있는 여성 마법사는 바이올라 루메이가 확실해.’

추측이 확정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쟤 바이올라네?

―ㄹㅇ 확실함.

―그 마법 천재 바이올라 루메이?

―아직 나올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벌써 등장하네 ㅋㅋㅋ.

시청자들 중에서도 바이올라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이올라가 이곳에 온 이유는 뭘까?’

루베니아 연대기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스토리가 많이 바뀐다는 걸 감안해도 지금 바이올라의 등장은 빠른 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유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벨 백작의 영지군과 왕국 중앙군 병력을 수용하면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벨폰 자작이 그에게 영주성 내에 임시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숙소를 향해 걷고 있던 유진은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용무가 있다면 앞으로 나와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 기척을 알아챈 거야? 생각보다 제법이네.”

길게 이어진 복도의 어둠 속에서 긴 보라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닌 바이올라였다.

“안녕?”

그녀는 유진을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유 기사라고는 하지만 왕국의 정식 기사한테 예법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루메이 후작가의 막내딸이라는 설정을 떠올려 보면 행동 패턴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바이올라 경.”

“어라? 내 이름 알고 있었어?”

“왕립 마탑에 마법 천재가 있다는 소문은 이곳 벨폰 도시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죠.”

“흠, 나쁘지 않네.”

마법 천재라는 호칭을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꽤 좋아진 모양이었다. 바이올라는 팔짱을 낀 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바이올라가 용건을 잊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유진은 서둘러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절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이올라 경.”

바이올라는 왕립 마탑에 소속된 중급 마도사였다. 그녀를 부를 때는 ‘경’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야만 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통성명이나 할까 싶어서 찾아왔지.”

“흥미?”

“소년병 출신의 청년이 용병 등록하고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쟁 군주를 격퇴하고 자유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 거, 꽤 괜찮은 무용담이잖아.”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는 겁니까?”

“솔직히 조금 흥미가 생겼거든. 그래서 한 번 얼굴이나 볼까 싶어서 왔지.”

바이올라의 말에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 많은 그녀의 성격상 충분히 가능성 있는 행보였다.

“이제 용건은 달성했으니,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많이 피곤해서 말입니다.”

“내가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네, 이 부분은 미안해. 대신 나중에 원하는 거 말하면 한 번쯤은 편의를 봐줄게.”

왕립 마탑의 중급 마도사 자격으로는 봐줄 수 있는 편의가 한정되어 있지만 루메이 후작가의 막내딸의 영향력이라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네요.”

“나는 내가 한 말은 지키니까, 걱정하지 마. 나중에 편의 좀 봐줄게. 원한다면 전선에서 빼 줄 수도 있어.”

“저는 끝까지 전선에서 싸울 생각입니다.”

“훌륭한 기사네. 지벨 백작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고, 유진은 숙소로 돌아갔다. 피곤했던 터라, 그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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