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30)
“궁병대! 계속 쏴!”
궁병대 지휘관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궁병들은 손가락이 터져라 활을 쏘아 댔다. 마법사들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영지군에서 복무하는 마법사들과 용병 마법사들이 쉬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벨폰 영지군에서 복무하는 마법사들과 용병 마법사들의 수준은 대체로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들이 쉬지 않고 캐스팅을 하며 마법을 쏟아부은 덕분에 오크 군세의 진격을 조금이나마 늦춘 기분이었다.
“투석 날아온다! 피해!”
오크들도 투석을 발사하고 화살을 쏘며 반격했다. 성벽로가 붉게 물들었고 화살을 맞은 이들이 힘 없이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유진은 보급된 방패로 화살들을 막아냈다. 방패를 사용하는 게 화살을 피하거나 검으로 쳐 내는 것보다 체력 소모가 덜하기 때문에 이날을 위해 방패술 스킬을 충분히 업그레이드해 두었다. 덕분에 유진의 방패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착실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오크들이 꽤 많이 몰려오는구먼!”
델바인도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소형 석궁을 꺼내 지상을 향해 발사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볼트가 오크의 미간에 꽂혔다. 작은 석궁이었지만 오크 한 마리의 숨통을 끊어 놓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정말 많군! 유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군! 내가 살아남게 되면 우리 십인장에게 술 한잔 사겠어!”
“반드시 살아남으세요!”
“하하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어느새 접근한 오크들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쳤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다리를 걷어 내!”
유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성벽에 걸린 사다리를 걷어 냈다.
“쉽지 않아! 오크 놈들이 우리가 사다리를 걷어 내지 못하게 화살 세례를 날리고 있어!”
전쟁 군주의 통솔을 받는 오크들이 지능적으로 행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유진은 델바인의 말에 입술을 꽉 악물고서 성벽에 바짝 붙었다. 교차 사격이라도 하는 것인지 화살 세례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응사하라! 사격을 멈추지 마!”
기사들이 성벽을 돌아다니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궁병들과 마법사들은 오크들의 공격에 쉬지 않고 대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벽을 지키는 이들의 숫자가 부족했다.
벨폰 도시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지만 오랜 평화가 최소한의 군대만 유지시켰고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기사들이 외쳤다. 모두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크들의 공성추가 성문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조잡한 기술로 만든 공성추였지만 성능은 확실했다.
공성추에 타격될 때마다 성문이 크게 요동쳤다. 궁병들이 공성추를 향해 불화살을 쐈지만 오크 주술사들의 실드를 뚫지 못했다.
“전쟁 군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누군가 옆에서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유진은 성벽 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누군가의 혼잣말대로 북쪽 숲에서 진군해 오는 오크들의 군세에서는 전쟁 군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선에서 오크들을 지휘해야 할 전쟁 군주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불안한 느낌이 차올랐다. 그사이 유진의 시선이 동문 쪽으로 향한 순간이었다.
“동문이 공격받고 있다!”
“전쟁 군주가 동문에 나타났다!”
“지원이 필요해!”
전령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전쟁 군주의 출현을 알리며 지원을 요청했지만 섣불리 움직이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발이 성벽에 붙은 듯 자리를 지키고서 전령의 지원 요청을 외면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갑니다!”
“유진! 못 들었어? 동문에는 전쟁 군주가 있다고! 가면 다 죽을 거야!”
“동문이 뚫려도 다 죽는 건 마찬가지에요.”
“이런 제기랄! 그건 또 맞는 말이지!”
델바인은 반대를 하다가 이내 태세를 전환하고는 유진을 따라 동문으로 향했다. 다른 용병들 또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뒤로 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역시 내키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적은 병력이 배치된 동문이 무너지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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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장은 벨폰 영지군에게 실망했다.
―ㄹㅇㅋㅋ.
―용병들이 도시를 지키고 있어요!
―다 뭐 함? ㅋㅋㅋ 이러다 동문 날아가게 생겼는데?
채팅 창이 소란스럽다. 시청자들의 말대로였다. 동문이 날아가게 생겼다. 동쪽 성벽에는 북쪽 성벽에 비해 적은 수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상황에서 전쟁 군주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큰일이다.
“다들 살고 싶으면 동문을 지원해야 합니다! 동문이 무너지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유진은 동문으로 향하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의 간절한 외침을 들은 것일까? 용병들 중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론이 그들의 중심에서 동문으로 가자고 독려하고 있었다.
“다들 유진 씨 말 들었을 거다! 동문이 무너지면 도시가 박살 난다! 오크 밥이 되고 싶지 않으면 날 따라와!”
“우오오!”
솔론이 거대한 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앞장 섰고, 수십 명의 용병들이 뒤따랐다. 높은 통솔력을 가진 솔론이 직접 나섰지만 수십 명이 움직이는 게 고작일 정도로 전쟁 군주에 대한 공포는 극심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동문에 도착하자 피투성이의 기사가 달려 나와 감사를 표했다. 벨폰 자작가의 영주성을 왕래하면서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상황은?”
솔론이 용병들을 대표하여 질문했다. 피투성이의 기사는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하고는 절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지 않습니다. 전쟁 군주가 직접 나서서 성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유진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어이! 유진! 위험해!”
“전 괜찮습니다!”
뒤에서 델바인이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유진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고는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곧 그에게 화살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래를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인 할버드로 성문을 난타하고 있는 전쟁 군주의 모습은 분명하게 목도했다.
성벽에서 내려온 유진은 솔론을 찾아갔다.
“전쟁 군주가 성문을 파괴하기 전에 처치해야 합니다.”
전쟁 군주가 성문을 파괴하면 동문은 끝이다. 수많은 오크들이 도시 안으로 몰려들어 올 게 분명했다.
“지부장님, 성문이 파괴되면 도시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전쟁 군주를 처치해야 합니다.”
유진이 거듭 진언하자 마침내 솔론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앞장 서겠네. 한 번 전쟁 군주를 막아 보도록 하지.”
“하지만 저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오크들을 막아 줄 병력이 필요해요.”
“지원자들을 받도록 하지.”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나 데려갈 수는 없었다. 솔론은 수십 명의 용병들 앞에서 전쟁 군주를 저지할 공격 대원을 모집하고자 연설했다. 처음 용병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타난 벨폰 자작이 추가 보상을 내걸자 용병들의 참여도가 올라갔다.
―역시 용병들이야, 돈이 최고지.
―입금 완료.
―ㄹㅇㅋㅋ.
채팅 창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유진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전장에 있었기 때문에 채팅 창을 일일이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후원도 몇 개 들어온 것 같았지만 마찬가지로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전쟁 군주를 토벌한 이들에게 1만 골드를 포상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벨폰 자작의 포상 선언은 전쟁 군주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냈다. 전쟁 군주를 토벌하기 위한 공격대에 지원하는 용병들과 기사 그리고 영지군 병사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1만 골드라면 여러 명이 나눠서 받는다고 해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금액의 돈이다. 성벽 아래의 전쟁 군주를 노려보는 이들의 눈에서는 더 이상 공포의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오직 금화를 향한 탐욕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성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우측의 쪽문을 이용하십시오!”
영지군의 병사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지만 다행히 동문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성벽에 자그마한 쪽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쪽입니다.”
벨폰 영지군의 젊은 기사가 앞장섰다. 그는 열쇠로 묵직한 자물쇠를 열었다. 솔론과 유진, 델바인과 포상금에 눈이 먼 용병들과 병사들 20여 명이 모두 성벽 밖으로 나오자 쪽문은 매정하게 닫혔다.
자물쇠를 다시 잠그는 소리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고, 그제야 공격대원들은 뒤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가기에는 늦었어. 이제 전진뿐이다.”
델바인이 소형 석궁을 장전하며 말했다. 극렬한 긴장 속에서 그들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전쟁 군주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 도달했다.
“마법사.”
솔론이 조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자 은패의 용병 마법사가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꿰뚫어라!”
바람의 화살이 날아가 오크들을 관통했다. 일격에 10여 마리의 오크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일순간 전쟁 군주에게 향하는 길이 생겼다.
“돌격해!”
솔론이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그의 대검에서 강렬한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금패 용병들 중에서도 솔론의 명성은 미약하다. 실제로 루베니아 연대기의 설정상 솔론은 최약체 금패 용병으로 존재하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최약체 솔론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최약체라고는 해도 금패라는 위명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전투 실력은 갖추고 있다.
‘솔론이 전쟁 군주와 대적할 수 있을까?’
유진은 불안한 마음을 좀처럼 쉽게 떨쳐 낼 수 없었다. 최약체 금패 용병이라고 불리는 솔론이 과연 전쟁 군주를 대적할 수 있을까? 만약 솔론이 전쟁 군주를 상대하지 못한다면 공격대는 전멸할지도 모른다.
―최약체 솔론이 간다!
―솔론이랑 전쟁 군주가 ‘다이다이’ 치는 건 처음 보네.
―ㄹㅇㅋㅋ.
―솔론 아재 왠지 질 것 같은데.
시청자들은 솔론의 패배를 예측했고, 유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일격에 쓰러지는 것만 피해 달라는 최소한의 기도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다음 순간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앙!
“커헉!”
전쟁 군주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낸 솔론의 몸이 격하게 요동쳤다. 그는 비틀거리며 붉은 피를 흩뿌렸다. 일격에 박살 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빈사 상태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제기랄!”
욕설이 튀어 나왔다. 유진은 솔론을 향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전쟁 군주를 향해 방패를 던졌다. 원반처럼 날아간 방패가 전쟁 군주의 앞에 닿으려는 순간 두 쪽으로 쪼개졌다. 전쟁 군주의 오러 블레이드에 당한 것이었다.
전쟁 군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흉포한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유진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상대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