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23화 (23/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23)

7장. 전쟁 군주

“로그인.”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환복을 끝낸 유진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로그인’이라는 명령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방송이 연결되면서 채팅 창이 활성화되었다.

―유하!

―방장님 하이루!

―오늘도 일찍 방송 켜셨네요!

시청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유진은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외출 준비를 마무리하며 한편으로는 채팅 창 상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청자: 805명.]

방송을 켜고 5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800명이 넘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고블린 슬레이어 활동을 하면서 고정 시청자 층이 꽤 많이 쌓인 것 같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밤하늘 별빛 여관을 나선 유진은 용병 길드로 향했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용병 길드 벨폰 지부는 어제보다 소란스러웠다. 왕래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았고, 로비의 접수대에서 길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용병들은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유진은 로비 전체에 심각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태연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중앙의 길드 석상을 지나칠 때 즈음이었다.

―띠링! 메인 이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메인 이벤트: 전쟁 군주의 남하.

며칠 전부터 벨폰 도시 북쪽 숲의 오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서가 벨폰 자작가에 전해졌습니다. 이에 벨폰 자작은 도시의 북쪽 숲에 대한 조사를 용병 길드에 의뢰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벨폰 지부의 세라 접수원으로부터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세라한테서 안내를 받으라고? 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아! 유진 씨!”

세라가 먼저 유진을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그러고는 난데없이 유진의 소매를 잡고 비어 있는 접수대로 안내했다. 접수대 위에 올려진 ‘폐쇄’ 안내판은 이미 그녀가 치운 뒤였다.

“오늘도 남쪽 숲의 고블린 관련 의뢰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세라의 눈동자에서는 걱정이 한 움큼씩 묻어 나오고 있었다.

기대를 깨부수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분간은 남쪽 숲에 갈 일이 없다. 고블린들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은 고블린 슬레이어 칭호를 획득하면서 일단은 끝났다.

“북쪽 숲 의뢰를 받을 생각이에요.”

“북쪽 숲은 임시 금역으로 지정되었어요.”

“철패 이하 용병들한테만 금역으로 지정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잘못 들은 걸까요?”

메인 이벤트, ‘전쟁 군주의 남하’가 발동되었을 땐 철패 등급 이하의 용병들에게는 북쪽 숲의 출입이 제한되지만 동패 이상의 용병들에게는 제한이 가해지지 않는다.

“그, 그건 아니지만 지금 북쪽 숲은 뭔가 이상해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루베니아 연대기의 메인 이벤트 중 하나인 ‘전쟁 군주의 남하’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혹여 빙의와 함께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유진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심정으로 세라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얼마 전부터 조사 의뢰를 받고 북쪽 숲으로 가셨던 용병분들이 돌아오지 않고 계셔요. 그래서 길드에서는 북쪽 숲을 임시 금역으로 지정하고 유진 씨의 말씀대로 동패 이상의 용병들에게만 의뢰를 부여하고 있어요.”

“북쪽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은 거죠?”

“네, 저로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벨폰 자작가에서 대규모 조사를 의뢰해서 진행 중에 있어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해요.”

세라의 말에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전쟁 군주가 남하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벨폰 도시에 들이닥치는 가장 거대한 재앙 중 하나다.

유진이 히든 루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벨폰 자작이 목숨을 잃었을 테고, 결국 도시가 멸망이 이르는 스토리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히든 루트 공략 덕분에 벨폰 자작이 살아 있는 상황이다.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힘들 것 같군.’

튜토리얼도 히든 루트로 클리어 했을 뿐만 아니라, 안나 지벨의 죽음을 막는 히든 루트를 진행했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특성상 이 두 가지 이벤트 달성이 엮어서 거대한 나비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된다면 고인물 플레이어인 유진이라고 해도 정확한 예측은 힘들다.

“벨폰 자작가에서 북쪽 숲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는 거죠?”

“설마 의뢰를 받으시려고요? 동패 용병일 경우에는 중심부까지의 조사 의뢰만 허용되고, 그마저도 파티를 구성하는 걸 길드에서 권장하고 있어요.”

강제가 아니라, 권장이다. 유진은 그 부분을 주목했다.

“강제가 아니라 권장이군요.”

“아앗, 이건 그러니까.”

“북쪽 숲에 대한 조사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의뢰서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세라는 유진이 걱정되었지만 그의 의뢰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세라는 여전히 유진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의뢰서를 찾아서 접수대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있어요, 수락하실 거에요?”

정말 수락할 것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세라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세라와 접점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화를 꽤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수락해야죠, 저는 용병이니까요.”

“알겠어요. 이번에도 살아 돌아와야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블린 군주도 혼자서 사냥했는데 북쪽 숲 중심부 조사 의뢰 정도는 무난하죠.”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유진은 물론이고 세라도 알고 있다.

“절차 진행할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세라는 의뢰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승인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띠링! 메인 이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메인 이벤트: 전쟁 군주의 남하.

며칠 전부터 벨폰 도시 북쪽 숲의 오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서가 벨폰 자작가에 전해졌습니다. 이에 벨폰 자작은 도시의 북쪽 숲에 대한 조사를 용병 길드에 의뢰하였습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심장부와 중심부에 위치한 오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당신은 의뢰서의 내용대로 중심부의 오크 부락들을 조사해서 단서를 얻어야만 합니다.

보상: 메인 스토리 오픈과 추가 특전.]

눈앞에 생성된 메시지 확인을 끝낸 유진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아직까지는 유진이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오크 부락에 가야 단서를 얻을 수 있는지 유진은 알고 있다.

‘서두르자.’

다른 용병이 발견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유진이 아닌 다른 용병이 단서를 발견하더라도 메인 스토리는 오픈되지만 ‘특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서두를 필요가 있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북쪽 숲에 들어선 유진은 숲 전체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것만 깨면 메인 스토리임?

―루베니아 연대기는 메인 스토리부터가 진짜죠.

―ㄹㅇㅋㅋ.

―그래도 방장님 방송은 메인 스토리 진행 전이지만 꿀잼임.

시청자들의 채팅을 감상하며 이동한 끝에 유진은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20마리 정도되는 오크들로 이루어진 작은 부락이었는데, 부락의 중앙에 걸려 있는 깃발이 평범하지 않았다.

‘전쟁 군주의 깃발이다.’

부락 중앙의 천막에 꽂혀 있는 전쟁 군주의 깃발을 노려보던 유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며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다른 용병들은 없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다른 용병들이 오기 전에 전쟁 군주의 깃발을 가지고 귀환해야 한다. 굳이 부락을 전멸시킬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기척을 죽인 채 부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쟁 군주의 깃발이 꽂혀 있는 천막은 다른 천막들에 비해 가장 규모가 컸다. 그것만 보면 아마도 부락의 수장이 사용할 가능성이 컸다.

‘대전사 아니면 주술사다.’

정찰하는 대신 서둘러 잠입했기 때문에 부락 수장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전사나 주술사,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진짜 암살자’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암살자 그 자체.

완벽한 잠입에 포인트 후원이 이어졌다. 그렇게 유진이 전쟁 군주의 깃발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부락 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천막들에서 오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부락 입구 쪽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쳤다.

‘다른 용병들이 도착한 건가?’

이렇게 된 이상 서둘러야 한다. 유진은 다른 용병들에게 전쟁 군주의 깃발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기도비닉을 포기하고 최대한 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전쟁 군주의 깃발을 탈취하였고 부락을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린 찰나였다. 그의 발치에 단검이 날아와 꽂혔다.

“어이, 거기 형씨! 살고 싶으면 그 깃발 우리한테 넘겨!”

다른 오크들을 처치한 것인지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 넷이 유진과 10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날카로운 기세를 피어 올리고 있었다. 그들 중 둘은 은색 용병패를 가슴에 훈장처럼 달고 있었다.

“보아하니까, 암살 계열 동패 용병 같은데 살고 싶으면 빨리 깃발 넘기고 꺼져.”

유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저들의 전력을 살폈다. 은패 용병 하나는 검사였고 다른 한 명은 마도사인지 갈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불기둥도 저 은패 마도사의 작품이겠지.

두 은패 용병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동패 용병 둘은 각자 창과 활을 들고 있었다. 은패 용병이 둘이나 되지만 오러 스킬을 익힌 지금, 승산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유진은 그들을 노려보며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싫다면?”

“뭐? 이 새끼가 돌았나?”

검을 든 은패 용병이 조소했다. 그의 시선으로 볼 때, 유진은 겁을 상실한 거처럼 보였다. 당연하다. 용병의 눈에는 유진은 ‘동패’였지만 자신들은 ‘은패’만 두 명이었으니까.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다.

“싫다면 어쩔 거야?”

“이 미친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죽이려고?”

“여기에 널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당연하지만 목격자도 없지.”

“그건 내가 더 고마운 일인걸?”

유진이 사악하게 웃었다.

“뒷정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잖아?”

흑철검의 날카로운 칼날이 불한당 무리를 겨눴다.

“너희는 지금부터 불한당이다.”

“그게 무슨.”

“대충 지금부터 너희 전부를 죽인다는 뜻이야.”

유진이 씨익 웃었고, 다음 순간 그가 던진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