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20화 (20/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20)

6장. 고블린 슬레이어

벨폰 자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온갖 술병들로 가득한 진열대를 지나 다른 진열대에서 푸른 마나의 빛이 감도는 약병을 하나 집어 들었다.

영약으로 보였는데 담고 있는 유리병과 액체에서 감도는 푸른 빛으로 보아 흔하게 볼 수 있는 하급품의 영약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걸 답례로 드리고 싶군요.”

벨폰 자작이 미소와 함께 영약병을 유진에게 건넸다.

“이건 마나 영약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지요. 일반적인 마탑이나 연금술 상점에서 파는 것들보다 상등품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왠지 그런 것 같아서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는 영약이 담긴 유리병을 전해 받았다. 벨폰 자작은 그 모습을 어미 새처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영주성에서 머물러도 좋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오히려 이게 괜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습격자들의 눈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벨폰 자작가를 도운 용병에 대한 정보는 전해졌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간단한 인상착의까지도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영주성을 드나드는 용병이 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저는 여관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벨폰 자작의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은밀하게 영주성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뒷문의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당장의 용건은 끝났다. 대화는 더 이상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유진은 로그아웃을 한 뒤, 손님용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늦은 밤이 되었을 때 유진은 벨폰 자작이 알려 준 뒷문을 통해 은밀하게 영주성을 빠져나왔다. 이윽고, 밤하늘 별빛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객실로 돌아온 유진은 로그아웃을 한 상태로 환복을 하고 간단하게 몸을 씻었다. 찬물로 씻다 보니. 벌써부터 영주성의 시설이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씻고 난 직후, 유진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영약을 섭취하고 ‘마나 수련법(C)’을 발동했다. 숙련도가 꽤 높아진 덕분에 영약의 마나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마나 상태 창.”

명령어를 말하자 눈앞에 마나 수치가 기록된 상태 창이 나타났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195/195.

현재 마나 수치는 대략 195. 이 정도면 ‘오러(B)’ 스킬을 익힐 경우,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여 짧은 교전 수행 정도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벨폰 자작의 영약을 마시고 마나 수치가 제법 많이 상승했다.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침대에 몸을 던졌지만 영주성에서 푹 쉬어서 그런지 졸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이 안 와.’

대부분의 피로를 회복한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마나 수련이라도 해야겠다.’

마나 수련은 야외에서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실내에서도 전혀 효율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은 바닥에 정자세로 앉아서 마나 수련을 시작했다. 체내의 마나 홀에 저장된 마나를 움직이기는 게 가장 기초적인 마나 수련법이다.

늦은 밤 시작된 마나 수련은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쉬지 않고 마나 수련을 한 탓에 땀 범벅이 된 유진은 다시 몸을 씻고 나와서 마나 상태 창을 확인했다.

[유진의 마나 홀.]

마나: 235/235.

영약을 많이 섭취해서 그런지 수련을 했을 때, 마나가 쌓이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웃고는 ‘로그인’이라는 명령어를 말하는 것으로 방송을 켰다.

―유하!

―대충 유진 하이루 라는 뜻!

―방장님 안녕하세요!

방송을 켜기 무섭게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면서 채팅 창이 빠르게 활성화되었다. 채팅 창을 쓱, 훑어보던 유진은 특별한 내용이 없음을 확인하고서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청자: 525명.]

방송을 켠 지 3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시청자 수가 500명을 넘겼다.

“오늘도 고블린을 잡아 볼까.”

유진이 혼잣말을 흘렸다. 아직 ‘오러(B)’ 스킬을 구입하기에는 포인트가 부족했기 때문에 ‘고블린 슬레이어’ 업적을 달성할 필요가 있었다.

―고블린, 고블린이다.

―오래전부터 고블린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킬 더 고블린.

유진의 혼잣말을 들은 시청자들이 채팅 창에서 온갖 드립을 쳤다.

[‘고블린 혐오를 멈춰 주세요’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착한 고블린은 죽은 고블린 뿐이다.

포인트 후원도 이어졌다. 채팅 창과 후원 창을 확인하며 준비를 끝낸 유진은 의뢰를 받기 위해 용병 길드 벨폰 지부로 향했다.

의뢰를 받지 않고 남쪽 숲에서 고블린들을 학살할 수도 있지만 그건 비효율적이었다. 의뢰를 받고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면 용병 길드와의 평판 점수도 오르고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점이 많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유진 님.”

접수대 앞에 서자 여성 직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유진을 반겼다. 그동안 용병 길드를 자주 왕래하면서 고블린 관련 의뢰를 계속 완수해서 그런지 유진은 이제 벨폰 지부에서는 꽤 유명 인사였고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도 고블린과 관련된 의뢰를 찾으시나요?”

“예, 그렇습니다.”

여성 직원의 물음에 유진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유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 직원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서랍에서 의뢰서 몇 개를 꺼내 접수대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은 것들 중에서 고블린과 관련된 의뢰는 없습니까?”

접수대 위에 올라온 것들을 대충 훑어봤는데, 대부분 영양가 없는 것들이었다. 고블린 학살이 우선이고 의뢰가 부수적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저급의 의뢰를 수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가 방금 올려놓은 의뢰들도 낮은 난이도는 아닌데, 더 올려도 괜찮으시겠어요?”

직원의 말대로 접수대 위의 의뢰들도 혼자서 수행하기에는 높은 난이도라고 평가될 만한 것들이 많았으나, 유진은 더 많은 고블린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난이도가 조금 더 높아도 상관 없습니다.”

“흐음, 괜찮으려나요.”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 직원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의뢰를 잘못 추천해서 안면이 있는 용병이 시체가 되어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못한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까.

“제가 실패했던 적이 있던가요? 괜찮으니까, 고난도 의뢰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설득이 통한 것일까? 직원은 유진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가장 밑에 있는 금고의 자물쇠를 열고 그 안에서 봉인되어 있는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녀는 붉은색의 밀랍 봉인을 깨고 서류 봉투 안에서 낡은 의뢰서를 꺼냈다.

“이거 난이도가 많이 높은 데 괜찮겠어요?”

“일단 보여 주시죠.”

“여기 있어요.”

의뢰서 내용은 간단했다. 남쪽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고블린 군주를 암살해 달라는 2,000골드짜리 의뢰서였다.

“곧 고블린 군주가 휘하 부락들 시찰을 위해서 남쪽 숲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해요. 아마 일주일 동안은 심장부가 아닌 중심부 인근의 부락들을 시찰할 거예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1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걸요? 만약 고블린 군주를 노리고 있다면 지금이 기회에요.”

금고에서 의뢰서를 꺼낼 때까지만 해도 마지못해서 응한 기색이 강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직원 쪽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의뢰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다 아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다소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유진은 고민 없이 흔쾌히 의뢰를 수락하겠다고 말했다. 고블린 군주를 암살해 본 경험이 몇 번 있어서 동선과 호위 규모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다.

“절차를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조심스러운 물음에 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싱긋 웃어 보이고는 의뢰 수락을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의뢰 수락되셨습니다.”

직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블린 군주 암살 의뢰는 용병 길드의 평판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제안조차 들을 수 없는 고급 의뢰인 만큼 수행 난이도가 높지만 유진은 파티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고블린 군주를 암살하고 얻을 수 있는 마도구가 몇 개 있다. 유진은 그것들을 독점할 생각이었다.

군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고블린’이라고 얕보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고블린’이 아니라 ‘군주’다.

고블린 군주는 ‘군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쓸 만한 마도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 고블린들만 사용할 수 있는 마도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게 루팅할 수 있다. 물론 고블린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일단은 마도구이기 때문에 마탑에서 분해 목적으로 대량 매입할 때 팔면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빠른 처리 감사합니다.”

“꼭 살아 돌아오셔야 해요.”

몇 번 농담도 주고받은 사이라서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한 것일까? 여성 직원은 유진을 향해 꼭 살아 돌아오라며 행운을 빌어 주었다. 이에 유진은 그녀의 머리 위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을 집중하자 그녀의 머리 위로 이름이 떠올랐다.

[용병 길드 접수원 세라.]

그래, 분명 세라라는 이름의 접수원이었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유진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세라는 다른 모양이었다. 용병 길드의 사람과 친해져서 나쁠 건 없기 때문에 유진은 세라를 향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고인물 플레이어에 속하는 유진이라고 해도 현 상태에서 고블린 군주를 사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유진은 마탑 상점과 연금술 상점에 들러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남쪽 숲으로 향했다.

―벌써 고블린 군주 잡으러 가는 거임?

―고블린 군주는 나중에 이벤트로 등장하는 레이드 보스 아닌가? 잡으러 가도 되는 거임?

―이것도 히든 퀘스트에 속하는 것 같음.

―방장 뭐임? ㄷㄷㄷ 히든 퀘스트만 연속으로 하네.

―ㄹㅇ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유진은 남쪽 숲으로 향했다. 고블린 군주의 시찰 경로는 대충 알고 있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게 전술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쪽 숲의 고블린 군주는 주술 타입, 마나만 침묵시킨다면 문제없다.’

이미 머릿속에는 공략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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