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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18화 (18/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8)

―주인공 법칙 모름? 죽는 건 너임 ㅋㅋㅋㅋㅋ.

―방장님! 고인물 무빙 보여 주세요!

―빨리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신이 난 시청자들과는 달리 유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에 있는 복면인의 실력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조장의 직위에 있는 간부가 분명했다. 철제 흉갑을 입고 있지만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나마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로 버텨 줄 수 있는 흑철검을 들고 있다는 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집중하자, 오러 블레이드가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맞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유진은 나름 그럴싸한 이론으로 스스로의 긴장을 완화시키고는 눈앞의 복면인을 향해 땅을 박차고서 몸을 던졌다.

“호오! 정면 승부를 할 생각이더냐!”

복면인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매섭게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서슬 퍼런 기세를 품은 오러 블레이드가 유진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피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두개골이 절단되었을 것이다. 긴장으로 인한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도 없었다.

복면인은 폭풍처럼 검격을 휘몰아치고 있었고, 하나하나가 유진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미쳤다, 진짜.

―저걸 다 피해?

―고인물 무빙 개쩐다.

―ㄹㅇㅋㅋ.

유진은 매회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일명 ‘고인물 무빙’에 환호했고, 포인트 후원도 몇 차례 이어졌지만 지금 유진은 그것들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격의 폭풍을 회피하며 조금씩 반격을 가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다.

―띠링! 체력이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불굴의 전사(C)’가 발동됩니다.

―띠링! 반사 신경 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면서 ‘불굴의 전사(C)’ 스킬이 발동한 모양이다. 띠링, 하는 종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스킬의 발동과 반사 신경 수치의 강화를 알렸다. 이제 복면인의 공격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체력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조금 전과는 달랐다. 이제 복면인의 움직임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진의 움직임이 변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복면인은 전투 자세를 재정비하기 위해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유진이 조금 더 빨랐다.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는 복면인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을 포착했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서 힘차게 흑철검을 내찔렀다.

“커헉!”

흑철검은 복면인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고,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장을 노리고 내찌른 일격이었지만 흑철검이 닿기 직전에 복면인이 회피 동작을 취하면서 심장 대신에 왼쪽 어깨를 관통하게 되었다.

복면인의 어깨를 관통한 흑철검. 유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복면인이 다음 행동을 취하기 전에 흑철검을 마구 비틀어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끄, 끄아아아아악!”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날카로운 칼날이 속살을 마구 헤집는 고통에는 익숙해지기 힘든 법이다. 복면인은 기사급의 실력을 갖춘 검사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고통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유진이 검을 비틀 때마다 복면인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과 함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마구 비틀었다.

―잔인해 ㄷㄷㄷ.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이 잔혹한 현실의 숙명이지.

―아, 빨리 죽이라고!

시청자들이 아우성쳤다. 그들은 사이다패스였기 때문에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 개입하기 전에 복면인을 죽이라고 미친 듯이 외치고 있었다. 물론 유진의 생각도 시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게임 속에 빙의한 상태다. 게임 오버는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죽음’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에 괜히 재미를 위해 후환을 살려 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크, 크으으윽! 이 개 같은 새끼가!”

복면인은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검을 놓지 않았다. 검에 깃들인 오러 블레이드는 고통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기세가 누그러진 건 아니었다. 그는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유진이 이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딜!”

유진은 흑철검을 복면인의 어깨에 꽂아 넣은 상태에서 왼손으로 허리 혁대에 걸려 있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복면인의 오른팔을 깊게 베었다.

“끄아아아아악!”

이건 그냥 단검이 아니라, 마비독이 묻은 단검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최하급의 마비독이었지만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진 복면인의 반격을 봉쇄하기에는 충분했다.

“마, 마비독?”

복면인 또한 단검에 묻은 마비독의 존재를 눈치챈 모양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마비독이 묻은 단검까지 들고 다닐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마비독에 중독되어 버렸죠?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이 글을 은밀결사회가 싫어합니다.

―님 그거 스포임요!

―아 ㄹㅇㅋㅋ만 치라고 ㅋㅋㅋㅋ.

채팅 창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유진은 전투 중이라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충 마비독을 써서 복면인을 무력화시킨 것에 대한 환호의 채팅이 대부분이었다.

유진은 흑철검을 꽉 쥔 채 왼손으로 신속하게 단검을 회수했다. 그와 동시에 날렵하게 왼팔을 휘둘러 복면인의 갑옷 이음새를 공략했다.

“크, 크으윽!”

오른손으로는 계속 흑철검을 비틀고 있었다. 이윽고 마비독이 충분히 번져서 복면인의 움직임이 많이 느려지자 유진은 단검으로 복면인의 목을 노렸다.

“아, 안 돼!”

“돼!”

휘둘러진 단검이 복면인의 목을 깊게 베었고, 붉은 피 분수가 솟구쳤다. 유진의 얼굴에도 피가 튀었다.

붉은 피가 얼굴에 튀자 유진은 크게 안도했다. 짧은 생사경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것과 함께 발작이라도 온 것처럼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죽은 복면인의 시체에서 흑철검을 뽑아 들고 기척이 느껴진 방향으로 겨눴다.

“진정하게! 나는 아군이야!”

시선이 향한 곳에는 벨폰 자작가의 문장이 그려진 갑옷을 입은 기사가 서 있었다. 정식 기사는 아니었고, 수습 기사로 보였다. 아마 고전하는 유진의 모습을 보고 돕기 위해 여유가 생기자마자 달려온 모양이다.

수습 기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흉장과 벨폰 자작가의 문장을 확인한 유진은 안도하여, 그를 겨누고 있던 흑철검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수습 기사도 기사에 준하는 신분이다. 유진은 자연스럽게 말을 높였다. 명확한 계급 관념의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신분 차이를 우습게 여겼다가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닐세, 내가 돕기도 전에 자네가 끝장내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자네가 죽인 놈이 꽤 높은 직위에 있는 것 같군. 습격자들이 동요하고 있어.”

수습 기사의 말에 유진은 그제야 호흡을 정돈하고서 주위를 살폈다. 매서운 기세로 벨폰 자작의 마차 행렬을 공격하던 복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조장을 죽인 모양이군요.”

“잘 된 일이군. 자네는 영주님께 가 보게나. 이곳의 뒷정리는 내가 맡지.”

“배려에 감사합니다.”

“도와줘서 고맙네, 자네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의 피해가 더욱 컸을 것이야.”

도시 경비대의 지원 병력이 지연되면서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유진이 적 조장의 목을 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수습 기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고, 유진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 인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마차 바로 옆에 있는 벨폰 자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의 옆을 지키며 다른 이들에게 지시를 전달하고 있던 벨폰 자작은 다가오는 유진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진 공!”

“벨폰 자작님.”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습니다만, 이곳은 안전하지 않군요. 함께 영주성으로 가시지요.”

벨폰 자작은 영주성으로 가는 것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하면서도 안전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의 의견에는 유진도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여전히 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행렬에 합류했다.

“뒷정리는 경비대에 맡기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우리는 우선 영주성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피투성이의 기사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병사들에게 벨폰 자작의 지시를 전했다.

“뒷정리는 경비대에 맡긴다!”

“다들 호위 행렬로 복귀해!”

“어서 움직여!”

벨폰 자작의 지시가 전파되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차 호위 행렬은 금방 재편성되었고, 그들은 시체들로 가득한 대로를 떠나 영주성으로 향했다.

영주성과 가까워지자 벨폰 자작가의 깃발을 앞세운 일단의 병사들의 벨폰 자작 행렬로 접근했다. 그들은 영주성의 기사가 도시의 이변을 눈치채고서 출격시킨 병사들이었다.

수습 기사 하나가 벨폰 자작가의 깃발을 들고서 지휘 중에 있었으며, 그의 뒤로 30여 명의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영주님!”

“와 주었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지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경은 도시 경비대와 합류해서 습격자들의 뒤를 쫓도록 하세요.”

벨폰 자작의 지시에 수습 기사는 휘하의 병사들과 함께 마차 행렬을 지나쳤다. 그들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로 향했고, 벨폰 자작과 마차 행렬은 영주성으로 향했다.

영주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벤트의 연속으로 판단된 것인지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는 들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요 속에서 그들은 곧 영주성에 도달했다. 도착할 때까지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영주성의 문을 넘은 순간 병사들 중 일부는 긴장이 풀려서 풀썩 주저앉았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한 명이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띠링! 돌발 이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띠링! 보상으로 1,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띠링! 보상으로 벨폰 자작가의 평판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벨폰 자작가의 평판은 ‘신뢰’입니다.

―띠링! 은밀결사회의 평판이 하락했습니다. 현재 은밀결사회의 평판은 ‘불신’입니다.

이벤트의 여파가 몰려왔다. 당연하지만 벨폰 자작가의 평판이 상승했고, 이번 습격의 배후에 있는 존재들, ‘은밀결사회’의 평판은 하락했다.

‘시작부터 불신이라, 빡세군.’

유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벨폰 자작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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