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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9화 (9/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9)

―늑대 기수를 한 방 먹였네 ㄷㄷㄷㄷ.

―해치웠나?

―아직 살아 있을걸요?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유진은 슬쩍 채팅 창을 봤는데, ‘해치웠나?’라는 마법의 주문이 올라온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전방을 향해 흑철검을 겨눴다.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튕겨 나갔지만 오크 기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뼈는 몇 군데 부러졌겠지만 이대로 쉽게 당할 레벨의 몬스터는 아니다.

“크르르르.”

분노가 뒤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흙먼지는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오크 기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예상대로 죽지 않았다. 다만,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뼈가 부러진 것인지 왼팔은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고, 몇 군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부러진 창대가 보였다. 분노가 깊은 것인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손도끼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크어어어어!”

오크 기수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지만 유진은 여전히 침착했다. 오크 늑대 기수가 높은 레벨의 몬스터인 것은 사실이지만 늑대를 잃은 순간부터 전투력은 크게 줄어든다.

심지어 일대일 상황인 데다가 유진은 초보 유저가 아니라, 루베니아 연대기만 해도 수십 번 넘게 다양한 루트를 클리어 한 고인물이다. 고작 오크 늑대 기수 1마리를 상대로 고전할 정도의 레벨이 아니라는 뜻이다.

“와라.”

유진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전투 자세를 가다듬었다.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루베니아 연대기는 스킬도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개인의 피지컬이 가장 중요한 게임이다. 그리고 유진의 피지컬은 꽤 좋은 편이다. 오크 늑대 기수를 상대로 방어 자세를 취할 때는 굳이 방패를 갖출 필요도 없었다.

“크아아아아!”

마침내 오크 기수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상대는 리치가 짧은 손도끼, 그에 비해 유진이 들고 있는 무기는 흑철로 만든 장검이다. 이 리치 차이를 잘 이용하는 게 중요했다.

“크워어어어!”오크 기수가 손도끼를 휘둘렀다. 유진은 두 눈으로 손도끼의 궤적을 쫓으며 신속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오크 기수의 공격을 회피했다.

―고인물 무빙 떴다!

―우효~

―ㅋㅋㅋㅋㅋ.

[‘재밌으면 형이라고 부름’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형! 개쩔어! 최고야! 짜릿해!

채팅 창과 포인트 후원 메시지를 확인할 여유는 없다. 유진은 보법을 밟는 것으로 신속하게 오크 기수와의 거리를 좁혔다.

오크 기수는 손도끼를 회수하기는 했지만 유진이 이렇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미처 피할 틈도 없어 보였다.

지금이 기회다.

“하앗!”

기합과 함께 흑철검을 휘둘렀다. 오크 기수가 뒤늦게 반응했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흑철검은 그의 목을 베고 있었으니까.

“끄르르르륵!”

오크 기수의 목에서 붉은 피 분수가 솟구쳤고, 그는 비틀거리다가 이내 힘 없이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놀란’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개쩌는 무빙이었습니다.

[‘강철의 부대’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형님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십니까?

오크 늑대 기수를 스무스하게 처치한 덕분일까? 포인트 후원이 쏟아졌다. 유진은 후원 메시지와 채팅 창을 확인하면서 오크 늑대 기수에게서 쓸 만한 게 없는지 루팅을 시작했다.

‘쓸 만한 건 없군.’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크 늑대 기수는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손도끼를 남기긴 했지만 투척용으로 쓰기에도 애매한 크기라서 그냥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오크 부락으로 가면 될 것 같군.’

허무한 루팅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서는 유진의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지도를 보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유진은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오크 부락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근처일 텐데.’

오크 부락 주위를 돌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유진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30분 전부터 뭐 하는 거임?

―노잼.

―아 ㅋㅋㅋ, ‘하차각’ 마렵다.

재미가 없다며 하차각을 노리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집단 하차각은 나오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하차하기 전에 유진이 먼저 찾고 있던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오, 사람이다.

―저 사람들 찾고 있었던 건가?

―잉? 저 여자 NPC,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고인물이 찾아다닌 걸 보면 이유가 있겠지?

노잼을 부르짖던 시청자들은 이제 호기심을 드러냈다. 유진이 저들을 찾아다닌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설명이 없으니, 그저 호기심에 두 눈을 반짝이며 시청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몇몇 시청자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르기도 했다.

[현재 시청자: 689명.]

시청 중인 인원을 슬쩍 확인한 유진은 오크 부락을 지켜보고 있는 3인조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척 죽이기’가 발동 중이라서 그런지 그들은 유진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대로 저들을 놀라게 만드는 선택지도 있지만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기척을 드러내는 게 좋다고 유진은 판단했다.

“거기 3명.”

유진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오크 부락에 집중하고 있던 셋은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들 중 하나가 날렵하게 검을 빼 들고서 유진을 겨눴다.

“웬 놈이냐!”

“그건 제가 할 소리인데요? 이 오크 부락은 제가 수락한 의뢰라서요.”

유진은 계획대로 준비된 의뢰서를 품속에서 꺼내 3명의 용병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제야 용병들은 경계를 풀었고, 유진은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빙고.’

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체격이 큰 남성 2명에 가녀린 체형의 여성 1명이었다. 여성은 머플러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유진은 그녀가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의뢰를 받은 용병이 있었나? 나는 라이드, 동패 용병이다. 괜찮다면 너도 용병패를 보여 주겠나?”

스스로를 라이드라고 소개한 남자가 품속에서 동으로 된 용병패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용병패의 이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그 옆에 있는 남자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용병패를 꺼내서 유진에게 보여 주었다.

“내 이름은 바이스다. 라이드와 마찬가지로 동패 용병이지.”

라이드와 바이스. 흔한 이름이다. 하지만 유진은 지금 속으로 웃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히든 루트 중 하나가 그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내 이름은 안젤라야.”

마지막으로 안젤라가 자신을 소개하며 용병패를 보여 주었다. 가녀린 목소리, 유진의 예상대로 여성이었다.

―목소리 좋다.

―방장이 찾던 거, 저 여자 같은데?

―누구지? 얼굴이 안 보여서 모르겠다.

시청자들이 궁금하다고 난리였지만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자아, 이제 네 소개를 듣고 싶은데?”

처음 라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남자가 유진에게 용병패를 보여 줄 것을 거듭 재촉했다. 시간을 끌어서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품속에서 용병패를 꺼내서 라이드의 시야에 드러냈다.

“동패 용병인 유진입니다.”

“네가 동패라고?”

라이드의 옆에 있는 바이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여기는 북쪽 숲입니다. 제가 철패나 목패의 용병이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진작 시체가 되었을 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군.”

유진의 말에 바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남쪽 숲과 달리 북쪽 숲은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다. 단독으로 행동하려면 최소 동패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정도다.

“그건 그렇고 다른 파티원들은 어디에 있지?”

바이스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주위를 살폈다. 마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유진의 동료들을 찾는 듯 눈초리가 매섭다.

“없어요, 전 혼자에요.”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는 제스처와 함께 유진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어필했다. 그러자 바이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유진, 네가 보여 준 의뢰서는 2인에서 3인 이상의 파티를 권장하고 있었다.”

“충분한 평판 점수가 있다면 필요 인원수 정도는 무시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보군요.”

“대체 평판 점수가 얼마나 높길래.”

바이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유진은 평판 점수를 말하지 않았다.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는 라이드 그리고 바이스와 달리 스스로를 안젤라라고 소개한 용병 여성의 눈동자는 차분했다.

“유진 씨, 괜찮다면 저희와 협력하시겠어요?”

“이 의뢰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유진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삐딱하게 말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말에 안젤라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침착을 되찾았다.

“의뢰의 내용이 일부 겹치는 것 같아서요. 저희는 저 부락의 오크 주술사가 훔쳐 간 지벨 백작가의 ‘물건’을 탈환하는 의뢰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고민 중이었어요. 보수를 나누자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협력해 주시겠어요?”

안젤라가 차분하게 설득을 시도했다. 소규모라고는 하지만 ‘부락’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오크들의 수가 적지 않은 데다가 이곳은 북쪽 숲이다. 남쪽 숲에 비해 오크들의 수준이 높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 보면 안젤라가 유진에게 조력을 요청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녀의 눈에 보인 유진은 적어도 북쪽 숲에서 단독으로 활동할 정도의 실력자다. 그렇다면 조력을 요청해서 나쁠 건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협력이라.”

유진은 고민하는 ‘척’했다.

―방장님 밀당하심? ㅋㅋㅋㅋ.

―아ㅋㅋㅋㅋ, 그냥 해 줄 수는 없지!

―밀고 당기기 ㄱㄱㄱ.

시청자들이 밀당을 요청했지만 유진은 더 이상 밀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밀어내는 대신에 당기는 것을 선택했다.

“좋습니다, 협력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유진의 대답에 안젤라는 안도했지만 라이드와 바이스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고인물 플레이어인 유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달갑지는 않겠지.’

지금 유진은 굴러 온 돌이나 다름없다. 박힌 돌인 라이드와 바이스의 입장에서는 아니 꼽게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진은 두 용병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안젤라의 옆으로 끼어들었다.

“부락의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주술사가 둘에 일반 전사가 스물 정도에요.”

안젤라의 대답에 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군요.”

“화공을 쓰려고 했지만 주술사가 둘이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잘하셨습니다. 어설픈 화공은 역으로 당할 수가 있으니까요. 특히 주술사가 둘이라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진이 말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안젤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우했을 때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베테랑 용병 같은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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