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8)
3장. 동패 용병 유진
유진은 이제 동패 용병이다. 그는 흑철검을 수령하고 2주 동안 동패 용병이 수행할 수 있는 의뢰 중 혼자도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받아서 완수했다.
동패 용병이라고 하더라도 평판이 어느 정도 높지 않으면 어려운 의뢰를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간단한 의뢰를 수행하는 일명 노가다 작업으로 돈도 벌고 포인트도 수급할 수 있었고 그는 필요한 스킬들을 구입했다.
“상태 창.”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상태 창이 열렸다.
[유진.]
〈보유 칭호〉
―동패 용병: 용병 길드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뢰를 달성하면 용병 길드에서의 평판이 상승합니다.
―고블린 학살자: 무수히 많은 고블린들을 도륙하였습니다. 이 업적으로 인해 고블린들은 당신을 보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고블린들의 전투력이 5% 감소합니다.
〈보유 스킬〉
―제식 검술: 루벤 왕국(D)
―날렵한 반응(D)
―중급 추적(D)
―중급 기척 죽이기(D)
―중급 화염 저항(D)
―중급 방패술(D)
우선 E랭크에 머물러 있던 ‘기척 죽이기’ 그리고 ‘추적’을 모두 D랭크로 업그레이드하였고 얼마 뒤에 발생할 메인 이벤트에 대응하기 위해 ‘방패술’도 D랭크로 올렸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고블린들 위주로 사냥을 해서 그런지 ‘고블린 학살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군.’
유진은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는 ‘나름 괜찮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가 빙의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성장이었지만 고인물인 유진의 눈에는 만족스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밤하늘 별빛’ 여관의 객실에서 상태 창의 점검을 끝낸 유진은 식사를 하기 위해 1층의 식당으로 향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스태미나를 채우기 위해 먹었지만 이제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었다.
로그아웃 상태였기 때문에 채팅 창은 조용했다. 유진은 고요한 평화를 느끼며 식당에서 투숙객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식사를 요청했다.
메뉴는 수프와 빵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유진은 지금 당장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끝낸 유진은 여관을 나서며 작게 입을 열었다.
“로그인.”
그동안 후원으로 받은 포인트는 스킬을 구입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소모했다. 슬슬 포인트를 수급할 때가 되었다.
―유하 ㅋㅋㅋㅋ.
―오늘도 일찍 방송 켰네요.
―또 포인트로 돈쭐 내야지 ㅋㅋㅋㅋ.
로그인하기 무섭게 방송이 켜지면서 채팅 창이 활성화되었다.
[현재 시청자: 189명.]
방송을 켜기 무섭게 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들어왔다.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병 길드로 향했다.
오늘따라 용병 길드는 소란스러웠다. 로비에 보이는 용병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무슨 일이지?’
유진이라고 해도 루베니아 연대기의 모든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워낙 변수와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의뢰를 받는 게 우선이었다. 유진은 게시판으로 가서 망설임 없이 어떤 의뢰서 하나를 떼어 내 접수대로 가져갔다.
“이 의뢰를 받고 싶습니다.”
“예, 잠시만요.”
밝은 표정으로 말하던 접수원은 유진이 건넨 의뢰서를 확인하더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진 씨, 이건 소규모이긴 하지만 오크 부락 토벌 의뢰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최소 3인 이상의 파티를 권장하는 의뢰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점수로는 파티 권장 의뢰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그동안 시청자들이 지루해하는 것을 버텨 내며 의뢰 노가다를 뛴 것이다.
―뭐임 ㅋㅋㅋㅋ, 그동안 했던 뻘짓 사실은 평판 작용 빌드업이었던 거?
―응, 너만 몰랐어.
―ㅋㅋㅋㅋ 절반 이상은 알고 있었을걸?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한 유진은 다시 눈앞의 접수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안경을 쓴 금발의 여성 접수원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면서도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승인해 줄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접수원의 말에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별일 없을 테니까요.”
스토리의 흐름상 ‘별일’은 있겠지만 그걸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었다. 유진은 노리는 게 있었는데 그걸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 의뢰를 반드시 맡아야만 한다.
“이번 의뢰는 길드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물품이 있어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접수원을 따라간 곳은 1층의 복도 끝에 위치한 작은 창고였다. 그곳에서 접수원은 간단한 야영 장비와 딱딱해 보이는 저가의 비상식량 그리고 오크 부락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는 지도를 꺼내 유진에게 건네주었다.
“행운을 빌어요.”
―접수원 진짜 걱정 많네.
―벨폰 도시가 초보자 지역이라서 원래 그럼.
―ㅇㅇㅇㅇ.
접수원의 과한 걱정에 대해 시청자들이 한마디씩 하는 모습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어요, 제 걱정이 조금 과했네요.”
“이해합니다.”
유진은 접수원과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빙의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게임 속 NPC가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채팅 창을 보고 있으면 게임 속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우선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목표를 위해 루베니아 연대기의 모든 것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의뢰 또한 그런 목적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다.’
유진은 스스로에게 세뇌를 거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오크 부락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무엇보다 확실한 게 좋기 때문에 유진은 지도를 확인했다.
“역시 북쪽 숲이었군.”
목표인 오크 부락은 북쪽 숲에 위치해 있다. 벨폰 도시 일대는 초보자 지역이지만 북쪽 숲은 예외다. 그곳에서는 오크가 가장 평범하고 낮은 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상위의 몬스터들이 많이 출현하는 곳이다.
물론 그것은 북쪽 숲에서도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해당하는 사항이다. 유진의 의뢰 목표는 중심부가 아닌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상위의 몬스터와 조우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북쪽 숲으로 간다.”
유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오랜만에 재밌을 것 같네.
―빨리! 빨리! 빨리!
―ㅋㅋㅋㅋㅋ.
유진에게는 생존이 달린 일이었지만 평범한 게임 방송이라고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재미가 최우선이었다. 그들은 최근 며칠 동안 유진이 보여 준 일명 노잼 행보에 다소 지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가 북쪽 숲으로 향하자 환호를 내지르며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천적 사이다패스’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이번에도 고인물 무빙 기대하겠습니다.
포인트 후원도 이어졌다. 보유 포인트가 꽤 많이 쌓인 것 같았다. 북쪽 숲에 진입하기 전에 상점 창을 한 번 정도는 확인해도 될 것 같았다.
“상점 창.”
명령어를 내뱉자 눈앞에 상점 창이 열렸다.
[보유 포인트: 2,350.]
―백병전 전문가(D+)
―타고난 근력(D)
―하급 투척술(E)
페이지를 둘러보던 유진은 눈에 띄는 스킬 2개를 구입했다. 모든 근접 무기에 보너스가 붙는 ‘백병전 전문가(D+)’와 기척 감지에 추가 숙련도를 제공하는 ‘하급 투척술(E)이었다.
’타고난 근력(D)‘도 구입하고 싶었지만 D+랭크의 스킬을 구입하면서 2,000포인트를 소모하였기 때문에 남은 포인트가 거의 없어서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상점 창에서 구입을 끝낸 유진은 상태 창을 열어서 스킬들이 제대로 추가된 것을 확인하고는 북쪽 숲으로 진입했다.
북쪽 숲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30분 정도 걷고 있던 유진은 적대적인 기세를 머금은 기척이 달라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척 죽이기(D)’가 발동 중인데 따라붙은 걸 보면 꽤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녀석이 분명하다. 그것은 곧 초보자용 몬스터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온다.’
유진은 흑철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채팅 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 뭔가 오는 것 같은데?
―그래 봤자 초보 존 몬스터들 아님? 오크가 최대일 것 같은데.
―벨폰 도시가 초보 존이긴 해도 북쪽 숲은 좀 다름 ㅇㅇ.
―ㅇㄱㄹㅇ 북쪽 숲은 하드 난이도야.
―ㅋㅋㅋㅋㅋ.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유진은 검게 빛나는 흑철검을 들고서 주위를 경계했다.
‘온다.’
놈들은 기척을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말발굽 소리 비슷한 소음이 대지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 이곳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은 기척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흑철검을 겨눈 채 침착하게 호흡을 정돈했다.
정돈된 호흡으로 자세를 가다듬기 무섭게 멀리서 늑대의 등에 올라탄 오크가 달려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늑대 기수 떴다!
―여기 초보 존이라고 하던 놈 어디 갔냐? ㅋㅋㅋㅋ.
―초입부터 늑대 기수 ㄷㄷㄷㄷ.
―늑대 기수는 상대하기 까다로울 텐데!
―이번에는 죽겠네, ㅂㅂ.
―거, 죽기 좋은 날이네.
늑대 기수의 출현에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유진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가 고인물 무빙을 보여 줬다고는 하지만 늑대 기수는 ‘고’렙 존에서나 등장하는 상위의 몬스터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다.’
창을 든 늑대 기수가 바로 앞까지 접근한 순간, 유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창이 미간에 닿으려는 찰나 유진은 기형적으로 목을 뒤트는 것으로 늑대 기수의 찌르기를 회피했다.
―헐, 대박!
―이걸 피했다고?
―이게 K-고인물이다!
채팅 창이 난리가 났지만 당장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창을 회수한 늑대 기수가 두 번째 찌르기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늑대 기수의 창은 이제 유진의 복부를 노렸다.
조금 전에 머리를 노린 일격을 무리하게 피하는 바람에 지금은 회피 동작을 취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유진은 회피나 방어보다는 오히려 늑대 기수를 공격한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늑대를 노린다.’
늑대는 기수에 비해 공격에 취약하다. 유진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힘차게 휘둘러진 흑철검이 늑대의 목을 베었다. 늑대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늑대가 쓰러지자 타고 있던 오크 기수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안전벨트가 있었다면 그럴 일 없겠지만 그런 게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오크가 사용하지는 않겠지.
유진은 멀리 튕겨 나간 오크 기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