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6)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전투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로그아웃할 수 있습니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영락없이 게임 속에 빙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로그아웃이라고? 유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눈동자에 깊은 혼란이 깃들였다.
여기서 로그아웃을 외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혼란 속에서 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는 곧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서 입을 열었다.
“로그아웃!”
강력한 대 마법 주문을 완성하는 것처럼 야심 차게 외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밤하늘 별빛’ 여관의 객실 안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게임 속에 갇혀 있다는 절망감이 흔들렸던 마음을 뚫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곧 로그아웃 이전과 달라진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채팅 창과 현재 시청자 수를 나타내는 팝업 창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로그아웃이 그런 의미였나.”
아무래도 방송 종료를 뜻하는 것 같았다. 하아, 절로 한숨이 튀어 나왔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기대를 한 게 잘못이었다. 유진은 괜히 자책하며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여러 사건을 겪어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고,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잠의 늪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다음 날 유진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포인트 수급을 위해서는 방송을 켤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피곤한 얼굴로 로그인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채팅 창과 ‘현재 시청자’ 팝업이 생성되었다.
―하이루 ㅋㅋㅋㅋ.
―일찍 방송 켜셨네요.
―오늘도 고인물 무빙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 파이팅!
어제 보여 줬던 여러 활약 덕분일까? 방송을 켜기 무섭게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유진은 기존의 콘셉트대로 리액션 하지 않고 채팅 창의 상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청자: 102명.]
방송을 켠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어느새 100명을 넘겼다. 방송 시작 5분 만에 이 정도 유입이면 고정 팬층이 탄탄하거나 네임드 스트리머만 가능한 수치였다.
“오늘은 퀘스트를 해 볼까.”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검을 집어 들었다.
―혼잣말로 상황 설명 중.
―도와줘요! 설명 신!
―ㅋㅋㅋㅋㅋ.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포인트 후원도 몇 차례에 걸쳐서 200포인트 정도 들어왔다. 아무래도 혼잣말 콘셉트가 제법 잘 먹힌 모양이다.
유진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피식 웃고는 다시 상업 지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고블린 토벌에 도움이 될 만한 물품들과 비상식량 그리고 혹시 야영하게 될 경우에 대비한 도구들을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연금술 상점에서 골드 몇 개를 소모해야 했지만 꼭 필요한 지출이었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하나 남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유진은 최종 점검을 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점 창.”
바로 추가로 얻은 포인트로 스킬을 더 구입하는 것이었다.
[보유 포인트: 430.]
―하급 추적(E)
―레인저의 생존법(D)
―하급 기척 죽이기(E)
필터 기능을 사용하자 상점 창이 조금 더 깔끔하게 변했다. 유진은 몇 가지 스킬들을 훑어보았다.
D랭크 스킬을 구입하기에는 포인트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아쉬운 대로 E랭크 스킬을 2개 구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구입하는 게 좋을까?
유진은 고민 끝에 퀘스트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 두 가지를 추려 냈다. 바로 ‘하급 추적(E)’과 ‘하급 기척 죽이기(E)'였다.
두 스킬 모두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가성비 좋은 거로 유명하며 꾸준히 고인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포인트를 지불하면 상위 랭크로 승급이 가능한 스킬이기 때문에 중복 구매로 인한 낭비도 없다.
“슬슬 가 볼까.”
이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유진은 채팅 창을 확인하며 남쪽 숲으로 향했다. 사전 조사도 없이 남쪽 숲으로 향하는 유진의 모습에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루트 다 외운 거?
―설마요, 이거 히든 루트로 프롤 시작하면 경우의 수가 엄청 많은데 그걸 어케 다 외워요.
―다 외운 것 같음.
―ㅋㅋㅋㅋㅋ.
포인트 후원도 몇 차례 들어왔다. 그저 남쪽 숲으로 경로를 잡은 것에 불과한데, 100포인트를 벌었다. 당장 스킬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아껴 둘 생각이었다.
C랭크 스킬부터는 구입에 필요한 포인트가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의 부락은 남쪽 숲에 모여 있다. 그중 흑철을 훔친 고블린 부락이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겠군.’
남쪽 숲에는 고블린 부락이 꽤 많다. 흑철을 가져간 고블린 부족은 무작위로 선정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부락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일단 상단이 습격 받은 지점을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유진은 데이커가 말했던 상단이 습격 받은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쪽 숲의 초입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숲을 벗어나기 직전에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운도 없지.’
유진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습격 지점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추적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E랭크였기 때문에 고블린의 흔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조사 관련 스킬이 하나 더 있었다면 더 편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노잼!
―언제까지 탐정 놀이만 함?
―님들 이게 다 빌드업인 거 아시죠?
―ㅋㅋㅋㅋㅋ.
유진이 땅만 보고 다니기를 수십 분째 이어 하자 답답함을 느낀 일부 시청자들이 이탈했다.
[현재 시청자: 322명.]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의 시청자들이 유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담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조사를 이어 갔다.
시청자들의 이탈이 시작되고 10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그는 뭔가를 발견했다.
“찾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유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흘렸다.
[‘해낼 줄 아는 남자’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해냈다! 해냈어! 유진이 해냈어!
[‘지나가던 선비’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잘 했군! 잘 했어!
포인트 후원이 몇 차례 쏟아졌고 유진은 ‘하급 추적(E)’ 스킬이 활성화되면서 상단을 공격한 고블린들의 흔적을 따라 분주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우지 않은 고블린들의 뒤를 밟는 것은 ‘하급 추적(E)’ 스킬의 효과만으로도 충분했다.
“찾았다.”
30분 정도 더 걸어간 끝에 유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어느새 그의 앞에 소규모 고블린 부락이 있었다.
고블린의 숫자는 대략 50마리 정도. 고블린이 최하급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50마리면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숫자다. 더군다나 확실하진 않지만 제단과 의식용 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배치된 거로 보아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고블린 주술사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너무 많은 거 아님?
―생각보다 많네요.
―ㅋㅋㅋㅋㅋ.
슬쩍 시선을 옆으로 옮기니, 예상보다 고블린들의 수가 많다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방송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조용했다. 유진이 조금 전 도시에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점 창.”
아직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다. 당연하지만 상점 창이 열렸다. 보유 중인 포인트는 약 300 정도다. D랭크 스킬을 구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는 ‘하급 화염 저항(E)'을 구입했다.
“상태 창.”
이어지는 시동어. 눈앞에 상태 창이 열렸다.
[유진.]
〈보유 칭호〉
―없음.
〈보유 스킬〉
―제식 검술: 루벤 왕국(D)
―날렵한 반응(D)
―하급 추적(E)
―하급 기척 죽이기(E)
―하급 화염 저항(E)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중급 화염 저항(D)’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포인트 수급을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실책이다. E랭크의 화염 저항이라도 마법적인 수단이 동원되지 않은 불 속에서 큰 피해 없이 전투가 가능하다.
―뭐야? 화공이야?
―화공이다! 화공이야! ㅋㅋㅋㅋ.
―워후!
중간에 합류한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포인트 후원이 쏟아졌고, 덕분에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300포인트를 소모하여 D랭크의 중급 화염 저항 스킬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가자.”
유진은 혼잣말을 흘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기척 죽이기’ 스킬을 활용하여 최대한 조용히 부락 주위를 돌아다니며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연금술용 기름을 뿌렸다.
부락 주위에 충분히 기름을 뿌렸다고 생각한 유진은 높은 나무 위에 숨어서 뿌린 기름 위에 불화살을 쏘았다. 연금술용 기름은 뿌려진 길을 따라 불길을 날랐고, 순식간에 고블린 부락이 불꽃의 장벽에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파이어 유진! 파이어 유진! 파이어 유진!
―그는 신이야!
―ㅋㅋㅋㅋㅋ.
고블린 부락이 시원하게 불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은 게임 방송의 일부에 불과했으나 현실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경험 중인 유진은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케륵, 케르르륵!”
불난리가 나자 고블린 주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은 잡화점에서 산 싸구려 활의 시위를 당겼다. 예전에 궁수로 플레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킬이 없어도 그럭저럭 조준은 할 수 있었다.
“피슝.”
입으로 소리를 흉내 내는 것과 함께 시위를 놓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고블린 주술사가 시전한 실드에 가로막혔다.
“케케륵! 케르륵!”
고블린 주술사가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로 물의 기운이 모여 들었다. 우선은 화재를 진압할 생각인 것 같았는데, 유진은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는 연금술 상점에서 구입한 4골드짜리 ‘정령의 강풍’이라는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피리 모양의 아이템이었다. 유진은 그것을 힘차게 불었고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나타나 불길을 자극했다. 단순히 장벽 역할을 하던 불길이 이제는 바람의 힘에 의한 불의 파도가 되어 부락을 덮쳤다.
“케르르륵!”
“케륵! 케르르륵!”
“끼에에에에!”
불길에 닿은 고블린들이 죽어 갔다. 고블린 주술사도 화염이 이렇게 순식간에 번질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몇몇 고블린들의 보호를 받으며 불을 끄기 위한 주술에 다시 집중했다.
주술이 완성되면 불은 곧 꺼진다. 실드가 있기 때문에 평범한 화살로는 고블린 주술사를 저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고블린들을 최대한 많이 저격해서 이후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면 된다.
유진은 가죽 화살통 안의 화살을 모두 소모할 정도로 미친 듯이 고블린들을 저격했다. 고블린 주술사가 다량의 마력을 소모하여 물의 주술로 불을 껐을 땐 살아남은 고블린은 10마리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잿더미가 된 부락에 유진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