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식하는 스트리머 (5)
“상태 창.”
작게 읊조리자 눈앞에 상태 창이 생성되었다.
[유진.]
〈보유 칭호〉
―없음.
〈보유 스킬〉
―제식 검술: 루벤 왕국(D)
―날렵한 반응(D)
보유 칭호는 여전히 ‘없음’으로 표기되었지만 보유 스킬에는 상점 창에서 구입한 2개의 스킬이 추가되어 있었다. ‘용병 기초 창술(F)’은 제식 검술로 교체되었다.
“우선은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상태 창을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유진은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도 바꾸는 게 좋겠어.’
유진이라는 캐릭터는 소년병 출신이라서 가지고 있는 장비들의 수준이 좋지 않았다. 갑옷은 당연히 없고, 두꺼운 솜옷이 그 역할을 대신했으며 투구는 용병단에서 빌린 거라서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들고 다니는 무기도 녹이 슬고 낡은 검이 전부였다. 형편없는 무장 상태였지만 유진은 낙담하지 않았다. 장비를 교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금화가 그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더 늦기 전에 교체하러 다녀오자.’
이곳 벨폰 도시의 치안은 좋지 않다. 귀족들과 부유층이 기거하는 내성은 그나마 낫지만 아쉽게도 유진이 숙소로 잡은 곳은 외성이다. 외성에서도 치안이 좋지 않은 빈민가와 가까운 장소이기도 했다.
‘강도를 만나기 딱 좋은 장소지.’
유진은 허리에 낡은 검과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차고서 숙소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에서 나오기 무섭게 그는 자신에게 닿는 욕망이 가득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강도들이 분명하다. 유진은 스킬을 구입한 이제야 감지했지만 사실 그들은 안켈로부터 많은 양의 골드를 정산 받았을 때부터 따라붙은 불한당들이었다.
‘날렵한 반응(D)’은 기척 감지의 효과도 붙어 있다. 만약 스킬의 효력이 없었다면 유진은 강도들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인물이라고 해도 전투와 기척을 감지하는 감각의 영역은 다르기 때문이다.
―장비 사러 가는 거 아니었나?
―왜 갑자기 빈민가로 들어가지?
―벨폰 도시 빈민가에서는 루팅할 만한 게 없을 텐데, 흠.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그런지 채팅 창에서는 유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유진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빈민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빈민가의 영역에 도착하자 강도들이 유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총 셋인가.’
유진의 눈동자가 빛났다.
―강도 어서 오고.
―빈민가 들어온 거, 강도들 유인한 거네?
―왜인지 설명 좀 요.
―벨폰 도시 빈민가는 경비대도 포기한 구역이라서 순찰도 안 돌아요. 시체 생겨도 신고도 안 할걸요?
채팅 창에서는 시청자 한 명이 상황을 설명하는 게 보였다.
[‘인간 사탄’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전부 죽이자.
포인트 후원이 들어왔다. 당연히 저 강도 셋은 모두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제압만 할 생각이었다면 귀찮게 빈민가까지 유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침 작업 치기 좋은 곳으로 우릴 데려왔잖아?”
“금화만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말은 못 하겠네.”
“히히히, 죽여 버리자.”
누군가를 죽여서 금품을 갈취하는 게 상당히 익숙한 것인지 강도 셋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명이 유진의 퇴로를 슬며시 차단했고, 또 다른 한 명이 정면에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 우측에 섰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스킬을 구입한 직후라서 자신감이 넘쳤지만 유진은 강도 셋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서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경계만 계속해서는 이길 수 없다. 유진은 먼저 공격을 감행하기로 마음먹고서 행동에 나섰다.
휙.
“허억!”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뽑아 든 검을 휘두른다. 정면을 막아선 강도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방패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유진의 검이 강도의 가슴팍을 깊게 베었다.
“끄아아아아악!”
일격에 목숨을 취하지 못했다. 유진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낡은 검을 회수하여 전투 자세를 취했다.
“루벤 왕국의 제식 검술이라고? 저 어린 것이 어떻게 왕국군의 검술을!”
우측에 선 강도가 완벽한 제식 검술의 모습에 당황하는 사이, 유진은 후방의 강도를 향해 검을 내찔렀다.
“쉽게 당할 생각은 없다!”
강도가 고함을 내지르며 소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비어 있는 왼손으로는 허리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이도류 검법!
―강도가 이도류를?
―죽이자!
―ㅋㅋㅋㅋ.
채팅 창을 확인할 여유는 없다. 유진은 내찌른 검을 회수하며 발로 모래로 가득한 땅을 거세게 찼다.
“으아아악! 내 눈!”
모래가 이도류 강도의 눈에 들어갔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단검 하나를 놓쳤고, 그 틈에 유진은 순식간에 그에게 파고들어 검으로 복부를 마구 쑤셨다.
“끄르르르륵!”
이걸로 하나 처치했다. 목숨을 잃은 강도의 단검을 주워 든 유진은 가슴팍에 부상을 입은 이를 노려보았다. 옆에는 장검을 든 강도가 유진을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 개자식을 죽여 버리겠어!”
가슴팍에 부상을 입은 강도가 거칠게 외치며 빠르게 달려왔다. 전투 자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다. 유진은 발로 그의 방패를 걷어찼다.
“어어?”
방패를 든 손이 옆으로 꺾이면서 강도 놈의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위험해!”
또 다른 강도가 동료에게 경고하는 순간 이미 유진의 낡은 검은 방패를 든 강도의 목을 꿰뚫어 버린 뒤였다.
“제, 제기랄! 이 괴물 녀석!”
강도의 눈에 유진은 괴물처럼 보였다. 이제야 유진이 아무 생각 없이 빈민가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숨에 포식자와 사냥감의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 유진은 힘없는 사냥감을 포식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홀로 남은 강도는 동료 2명을 도륙한 저 괴물 녀석과 맞서거나 도망쳐야만 한다.
‘도, 도망쳐야 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끈적한 무언가가 달라붙은 것처럼 발이 땅에 붙었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 그를 향해 유진은 매섭게 달려들며 검을 찔렀다.
“크아아악!”
강도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강도가 흘린 피가 어두운 뒷골목의 습기 찬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칼질 좀 치네?
―ㅋㅋㅋㅋ.
―무빙 개쩌네.
[‘인간 사탄’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루팅하자.
루팅이라…… 하긴 강도들이라고 해도 주머니를 털면 은화 몇 개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루베니아 연대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에서는 ‘악당 사냥’으로 골드를 수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후우!”
스킬을 많이 보유한 고인물 캐릭터가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호흡이 살짝 거칠게 변했다. 유진은 심호흡을 한 차례 하는 것으로 거칠어진 호흡을 간단하게 정돈했다. 그러고는 제법 능숙하게 강도들의 주머니를 루팅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ㅋㅋㅋㅋ.
―혹시 전공이 어떻게 되십니까?
―제법이군.
예상은 했지만 강도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많지 않았다. 은화 30개 정도가 전부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상업 지구로 가야겠다.”
유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빈민가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었다. 부지런히 걸어간 끝에 상점가로 가득한 상업 지구에 도착했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고인물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유진은 벨폰 도시의 상업 지구에서도 퀄리티가 괜찮은 대장간과 방어구 상점을 알고 있었다.
우선 대장간은 상업 지구의 구석에 위치한 ‘철의 노래’로 가는 게 좋다. ‘철의 노래’는 벨폰 도시에서 유명하고 손님이 많은 대장간은 아니지만 판매되는 무기들의 가격에 비해 좋은 철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작 유저들이 이용하기에 괜찮다는 평이 많다.
물론 굳이 ‘철의 노래’ 대장간을 찾아가는 이유는 좋은 철을 써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서 오슈.”
‘철의 노래’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중년의 대장장이가 유진을 반겼다. 유진은 자연스럽게 그의 머리 위로 슬쩍 시선을 옮겼다.
[잊힌 대장장이 데이커.]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이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검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그래, 어떤 검을 원하나? 일단 상품으로 내놓은 것들은 여기 있다네.”
“제가 원하는 검은 저기에 없습니다. 낮은 등급이라도 흑철로 만든 검을 가지고 싶군요.”
“흑철이라, 그걸 다룰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가?”
흑철은 숙련된 대장장이만 다룰 수 있다.
“‘철의 노래’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실력이 좋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죠. 혹시나 싶어서 찔러 봤습니다.”
“내가 흑철을 다룰 수 있는 건 사실이네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흑철이 없다네.”
데이커의 말에 유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서브 스토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에 흑철을 주문했지만 상단이 고블린들의 공격을 받아서 흑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네.”
“고블린 부락이라, 대충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갈 생각인가? 만약 흑철을 찾아온다면 괜찮은 검을 한 자루 만들어 주겠네.”
―띠링!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돌발 퀘스트: 데이커의 흑철.
어딘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대장장이 데이커는 얼마 전에 주문했던 흑철을 잃어버렸습니다. 상단의 과실이 인정되어서 보상금을 받기는 했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흑철을 고블린들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약 흑철을 되찾아 주고 싶다면 고블린 부락부터 찾아야 할 것입니다.
보상: 흑철검x1.]
예상대로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고블린 토벌 정도는 저한테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임시로 쓸 검이 필요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검은 너무 낡았다.
“자네, 들고 있는 검 좀 보여 주겠나?”
“여기 있습니다.”
유진의 검을 받아 든 데이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잡철로 만들었고, 너무 오래 썼군. 고블린들을 썰러 가는 것이라면 내가 특별히 하나 대여해 주겠네.”
그렇게 말하고서 데이커는 선반에서 먼지 쌓은 검을 하나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먼지가 쌓여 있고 장식 하나 없는 투박한 검이었다.
“상품 가치는 없지만 고블린들 상대로는 쓸 만할 것이야.”
“감사합니다, 어르신.”
“죽지 말고 돌아오게나. 흑철을 되찾아 오면 근사한 놈으로 만들어 주겠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은 데이커가 대여해 준 검을 챙겨 들고 방어구 상점으로 향했다. 방어구 상점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고, 그는 1골드를 주고 튼튼해 보이는 가죽 갑옷을 구입했다.
제법 튼튼한 가죽 갑옷이었다.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밤하늘 별빛’ 여관으로 향했다. 객실에 도착한 그는 갑주를 벗고 탁자 위에 놓인 물을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이건.”
그는 뭔가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