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4화 (4/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4)

2장. 벨폰 도시

지벨 백작령.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백작 가문에서 다스리는 영지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주요 배경이 되는 루벤 왕국에서도 가장 비옥한 영지로 유명하고 백작령에 속해 있는 3개의 도시가 모두 상업적으로 발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통이 용이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지벨 백작은 그 점을 이용하여 가문의 부를 축적했다.

제국령과 닿아 있는 서부 국경과도 크게 멀지 않기 때문에 영지군에도 투자를 많이 하는 가문이다. 그런 영지의 기사단에 입단하게 된다면 당분간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고, 정식 기사가 된다면 어느 정도의 명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로웨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분에 넘치는 제안 감사합니다. 매우 영광이지만 아쉽게도 저는 지금 당장은 기사단에 입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게임에서는 영지나 왕실의 기사단에 입단한다는 캐릭터 선택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고수들은 해당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

떠돌이 용병 생활을 하는 게 훨씬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사단 입단은 몸값을 충분히 불린 후에 진행하는 걸 다들 추천했었고, 유진도 그랬었다.

“저 소년병 녀석, 지벨 영지 기사단장의 제안을 거절한 거야?”

“입단 제안을 거절했다고? 소년병 주제에?”

유진이 로웨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을 본 용병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은 작은 목소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전투 직후라, 잔뜩 흥분한 상태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소리가 커서 다 들렸다.

―기사단 루트는 노잼이지, 아 ㅋㅋㅋㅋ.

―인정, 어! 인정!

루베니아 연대기의 스토리 전개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당연하지만 용병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지나가던 선비’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귀하의 현명한 판단을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후원을 하기도 했다.

“흠, ‘지금 당장은’ 이라.”

눈치가 빠른 로웨스는 유진이 여지를 남겨 두었다는 사실을 금세 파악했다.

“몸값을 조금 더 올려서 올 생각인 것 같군! 하하하! 야망이 큰 친구구먼!”

로웨스의 말에 유진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반적인 기사였다면 소년병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에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로웨스는 아니었다.

유진은 루베니아 연대기를 많이 플레이해 봤기 때문에 로웨스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 이런 선택지를 고른 것이었다.

“역시 소년병에서 끝날 친구가 아니었군. 나는 자네의 선택을 지지한다네.”

다이크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중무장한 기사 한 명이 로웨스에게 다가갔다.

“단장님, 슬슬 물건을 인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잊을 뻔했군. 적검 용병단장한테 가서 인계 절차를 밟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략 어떤 내용의 말들을 주고받았는지 예상이 가능했다. 적검 용병단이 비밀리에 옮기고 있던 ‘물건’을 인계 받으려고 하는 것일 테지.

젊은 기사가 적검 용병단장 안켈을 찾아가 물건을 인계 받는 동안 로웨스는 다이크와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님, 용병단의 피해가 큰 것 같은데 저희와 함께 이동하시죠. 도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전쟁 군주까지 출현한 걸 보면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벨 영지 기사단과의 동행이라니 정말 든든하군. 고맙네.”

“약자를 지키는 건 기사로서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로웨스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저는 이만 기사단과 합류하겠습니다.”

“도와줘서 고맙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답과 함께 로웨스가 멀어졌다. 다이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검 용병단의 행렬에 합류했다. 유진 또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용병들과 합류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상태 창과 상점 창을 열어 보고 싶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그들 눈에 상태 창과 상점 창은 보이지 않겠지만 허공에 대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괜히 이상한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상태 창과 상점 창은 마을의 숙소에서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유진이 합류하고 난 직후, 용병들은 전투 현장의 뒷정리를 서둘렀다. 아군의 시신들을 수습하고 오크들의 시신에서 쓸 만한 병장기들을 챙겼다.

용병들에게는 이게 나름 괜찮은 부수입이었다. 많은 동료들을 잃은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본업에 충실했다. 로웨스와 지벨 영지의 기사들 또한 용병들의 ‘루팅’을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슬슬 출발하는 게 좋겠군.”

살아남은 용병들은 숙련된 이들이었고, 뒷정리와 루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군주까지 출현한 상황에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로웨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볍게 재촉했다.

“물론입니다. 부하들을 불러오겠습니다.”

안켈은 용병들에게 루팅을 중단하고 집결할 것을 지시했다. 루팅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용병들은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벨폰 도시로 간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다. 로웨스의 말에 안켈은 물론이고 다이크도 찬성했다. 그들은 곧바로 벨폰 도시를 향해 여정을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벨폰 도시는 가깝다. 덕분에 여정은 길지 않았다. 지벨 영지 기사단이 ‘물건’을 인계 받아서 도시의 영주성으로 올라가는 동안, 적검 용병단의 안켈이 유진에게 찾아왔다. 유진의 계약이 벨폰 도시까지였기 때문에 정산을 하기 위함이었다.

“3골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안켈이 선심 쓰듯 말했다. 처음 계약했던 정산금이 50실버였으니까, 거의 6배를 정산해 주는 것이었지만 유진의 옆에 서 있던 다이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유진의 기여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켈 단장. 이번 임무에서 유진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3골드는 너무 적은 금액 아닌가?”

“이 정도도 충분히 챙겨 준 겁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정산하면 다른 용병들의 반발을 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들 유진 덕분에 살아남았다네, 정녕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과하게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은 없을 것이야.”

다이크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안켈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이크의 말대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없었다. 몇몇 용병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이긴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조금 더 정산을 하도록 하죠.”

결국 안켈이 백기를 들었다. 그는 가죽 주머니 속에서 금화를 더 꺼내서 유진의 자루에 담아 주었다.

“30골드다.”

“흠,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군.”

무려 10배나 늘어났다. 다이크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는 표정이었지만 더는 나서지 않았다. 용병단장인 안켈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유진은 짧게 감사를 표하고는 금화가 가득 담긴 자루를 허리의 혁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도시 안에서는 소매치기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돈이 담겨 있는 주머니나 자루를 특히나 잘 관리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혹시 우리 용병단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괜찮습니다.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뵙죠.”

“아쉽군. 잘 가게.”

안켈의 제안을 가볍게 거절한 유진은 다이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몸을 돌렸다.

“유진. 괜찮다면 내가 추천장을 한 장 써 줘도 괜찮겠나?”

다이크의 추천장은 상점에 팔 수도 있고, 나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거절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유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이크는 허허, 웃으며 추천장을 작성해 주었다.

추천장을 받은 유진은 성문을 지나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선은 임시 숙소로 사용할 여관을 잡는 게 급선무였다.

루베니아 연대기의 고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진은 도시 안에서도 가성비가 좋은 여관을 몇 곳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밤하늘 별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관이다.

‘밤하늘 별빛’ 여관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조용하면서도 시설이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 루베니아 연대기를 처음 플레이하는 초보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여관이기도 했다.

“남자 1명. 하루 숙박이요.”

“3실버입니다.”

유진은 품속에서 은화 3개를 꺼내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2층의 4호실로 가세요.”

“네.”

2층으로 올라간 유진은 ‘4’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방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평범했다. 침대 하나에 탁자 하나 그리고 의자와 옷장이 하나씩 있는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소년병 출신의 용병에게는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숙소이기도 했다.

―이제 상태 창 열어야지.

―상태 창! 상태 창! 상태 창!

전투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상태 창과 상점 창을 열 수 있다. 이 점은 루베니아 연대기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동일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지금 상태 창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태 창.”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눈앞에 상태 창이 나타났다.

[유진.]

〈보유 칭호〉

―없음.

〈보유 스킬〉

―용병 기초 창술(F)

평범한 걸 넘어서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스킬 창에 ‘용병 기초 창술(F)’이 하나 붙어 있는 게 다행이었다.

―역시 아무것도 없네 ㅋㅋㅋㅋ.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빨리 상점 창도 열어 보셈.

채팅 창에서는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은 유진이 상점 창에서 스킬을 구매하여 빨리 강해지길 원했다.

“상점 창.”

마침내 유진이 작은 음성으로 명령어를 흘렸고 눈앞에 상점 창이 열렸다.

[보유 포인트: 1,120.]

―흑염룡 소환(SS)

―성검 영창(SSS)

―뇌신 강림(SSS)

보유 포인트는 꽤 많았다. 하지만 상점 창의 설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지금은 절대 구입할 수 없는 스킬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결국 유진은 설정을 조금 만졌다.

[보유 포인트: 1,120.]

―제식 검술: 루벤 왕국(D)

―날렵한 반응(D)

―창병의 각오(D)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다. 루베니아 연대기를 몇 번이나 플레이한 유진에게는 전부 다 아는 스킬들이다. 상세 열람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1,000포인트를 소모하여 ‘제식 검술: 루벤 왕국(D)’과 ‘날렵한 반응(D)’을 구매했다.

초보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었다. 제식 검술은 검술의 효율을 올려 주고 반사 신경과 관련된 스킬은 전투 중에 반사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공격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 준다.

―역시 고인물 같은데?

―고인물 픽 그대로 하네요.

―사이다 플레이 기대한다 아 ㅋㅋㅋ 다 썰어 버려!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유진은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였다. 루베니아 연대기에서 살아남는 건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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