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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스트리머-2화 (2/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2)

용병단장 앞에 도착한 유진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뭐라고? 마차에 불을 붙이겠다고?”

예상대로의 반응이다. 당연하지만 안켈은 소년병 출신인 유진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 ㅋㅋㅋㅋ.

―갑자기 고구마 확 올라오네.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채팅 창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았다.

“기름통이 대부분 깨져서 기름이 사방에 퍼져 있습니다. 마차에 불을 붙이면 저쪽 능선의 오크들을 전부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용병단에 승산이 있습니다!”

유진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그를 보는 안켈의 시선이 진중하게 변했고, 안켈의 옆을 지키고 있는 기사의 눈동자에도 이채가 서렸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화살도 떨어진 상태라, 저기 불을 붙이려면 근처까지 가서 횃불을 던져야 하는데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나?”

―인정 ㅋㅋㅋㅋㅋ.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 같아도 안 함 ㅅㄱ.

―쫄? ㅋㅋㅋ 이럴 때 주인공처럼 해야 한다곸ㅋㅋㅋ.

―아ㅋㅋㅋㅋㅋ.

안켈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채팅 창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조금 전에 비해 채팅 창이 활발한 느낌이라 현재 시청자 수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대충 넘기고는 어떤 결단을 내리기 전에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심신을 정돈했다.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갑자기 심호흡? 중대 결정이라도 내리려나?

―설마 히든 루트 타려는 거? 그거 난이도 엄청 높은데.

채팅 창이 소란스럽다.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히든 루트의 난이도가 엄청 높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다. 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오오오오!

―히든 루트 떴다!

―주인공 루트 간다! 간다! 간다!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난이도가 어려우면 스트리머가 고통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스트리머의 고통은 곧 재미라서 시청자들은 신이 나서 한동안 골드 후원을 난사했다.

“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안켈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면 다 죽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발악이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유진은 비장한 각오를 품은 것처럼 연기하며 말했다. 반쯤은 진심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게임 속에 떨어진 것 같으니, 생존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이름이 붙은 이 게임의 처음 시작되는 전투에서 용병단은 전멸하고 주인공은 홀로 간신히 살아남아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도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용병단 전멸을 막는 루트로 진행하려는 것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용병단의 전멸을 막는 것은 ‘히든 루트’에 속하며 흔히 말하는 게임에 질린 고인물들을 위한 무대다. 유진도 이 게임을 수십 번 이상 클리어 한 고인물이기 때문에 그나마 시도라도 할 생각이라도 해 보는 것이었다.

“자네, 꽤 용감하군. 하지만 혼자 가는 건 자살 행위라네.”

철제 갑주를 입은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유진은 그의 머리 위를 살폈다.

[자유 기사 다이크.]

프롤로그에서 히든 루트를 진행하게 되면 개입하게 되는 도우미 NPC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에 대한 클리어 확률을 그나마 높여 주는 고마운 존재다.

―다이크 어서 오고.

―아까 플레이하는 거 보니까, 고인물 같던데 다이크도 살릴 수 있을까?

―어서 오고 ㅋㅋㅋㅋ.

―이거 루트 개어려운데 ㅋㅋㅋ.

다이크의 등장으로 히든 루트의 시작이 확정되었다.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근본은 칼잡이’ 님께서 3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아재요, 파이팅입니다.

또다시 포인트 후원이 쏟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리액션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게임에 몰입해서 리액션 없이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유진의 행동을 지적하는 시청자들은 없었다.

획득한 포인트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슬슬 다이크의 말에 대답해야 할 시점이다. 유진은 딱딱하게 굳어 있지만 분명한 결의가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유의미한 저항이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훌륭한 대답이군. 적검 용병단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은 몰랐네.”

“인재라뇨, 저는 그저 소년병에 불과합니다. 어찌 그런 과분한 호칭을 제게 사용하십니까.”

유진은 겸손하게 자세를 낮췄다. 자유 기사도 명백한 기사다. 이 게임에서 귀족들이나 기사들에게는 적절한 겸손이 은근히 크게 먹히는 법이다.

“소년병이라는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내 이름은 다이크. 이번 상단 행에 동행한 자유 기사다. 괜찮다면 내가 길을 열어 줘도 되겠나?”

히든 루트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루베니아 연대기가 출시된 직후만 해도 다이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히든 루트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도와줄 뭔가가 필요하다는 유저들의 적극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만든 NPC가 바로 자유 기사 다이크였다.

재밌는 건 여기서 또 루트가 갈라진다. 다이크의 생존 여부에 따라 히든 루트의 진행이 달라지는데, 공략 과정에서 다이크를 살리는 게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히든 루트를 진행할 때 다이크를 포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린다.’

다이크를 살리면 동료가 되지는 않지만 그의 추천장을 받을 수 있다. 일개 자유 기사의 추천장이기 때문에 권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년병 출신인 유진이라는 캐릭터에게는 활용도가 상당히 높은 아이템으로 분류가 되며, 상점에 판매하면 적지 않은 양의 골드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살려 두면 나중에 꽤 많은 도움이 된다.’

히든 루트에서 다이크가 생존하게 되면 그는 자유 기사로 다시 방랑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후 플레이어 캐릭터와 몇 번 마주칠 기회가 생기고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도움을 제공한다.

물론 유진이 히든 루트를 노리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길을 열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 말게나, 내가 반드시 길을 열어 주겠네.”

기사들은 보통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대사 하나가 캐릭터의 호감도를 쌓는 초석이 된다.

“지원자는? 더 없는가?”

다이크가 근엄한 목소리로 묻는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고, 다이크는 아쉬운 표정으로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유진과 합류했다.

“유진이라고 했나? 아무래도 우리끼리 가야 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기사님.”

유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창을 들어 올렸다. 소년병들에게 지급되는 낡은 가죽 투구를 고쳐 쓰고는 부서진 마차를 향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은신 루트 가나요?

―고인물인 것 같은데? 여기서 은신으로 가네.

―스닉 펀치! 스닉 펀치!

채팅 창의 시청자들이 요란을 떨었다.

고인물 스트리머였던 유진의 경험에 의하면 우선 오크들의 주의를 끌지 않은 상태에서 부서진 마차와 최대한 가까워지는 게 히든 루트의 클리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최대한 이목을 피해야 합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알겠네, 자네만 믿겠네.”

기사쯤 되면 소년병에게 자네만 믿겠네, 라는 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의아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눈앞의 오크 하나가 부서진 마차를 향해 접근하는 유진과 다이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들켰죠?

―조짐이 있습니다.

―벌써 들키면 힘들 텐데, 진 몰살 루트 가나?

힐끔 채팅 창을 훔쳐봤더니, 시청자들이 또다시 요란을 떠는 게 보였다. 더 읽고 있을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유진은 다이크와 함께 오크들과 맞섰다.

부서진 마차를 향해 다가가는 다이크와 유진을 향해 오크 셋이 달려왔다.

“제기랄!”

다이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장검을 휘둘렀다. 그는 자유 기사 중에서도 실력이 우수한 편이었지만 한 번에 오크 셋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분전하여 둘의 발을 묶어 놓는 게 전부였다.

남은 오크 하나가 유진에게 다가왔다. 유진이 평범한 소년병이었다면 크게 긴장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루베니아 연대기만 해도 수십 번 클리어 한 고인물 스트리머였다.

게임과는 다르게 목숨이 걸려 있을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러 번 경험했던 광경의 전개가 과한 긴장을 막아 줬다.

‘침착하게 하자.’

유진은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창을 쥐고서 오크와 대치한다. 다이크가 오크 둘의 시선을 끌어 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인물 스트리머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2마리 이상의 오크를 처치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채팅 창을 볼 여유도 없었다. 극도로 날카로운 긴장 속에서 유진은 먼저 오크를 향해 창을 내찔렀다.

“크어어어!”

오크의 손도끼가 유진이 내찌른 창을 쳐 냈다. 순간 유진의 자세가 흔들렸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고 그간의 경험을 살려 빠르게 창을 회수한 뒤, 오크의 상체를 노리며 힘차게 휘둘렀다.

“크어어어어!”

몇 번의 공방 끝에 유진의 창이 오크의 목을 꿰뚫었고,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오오! 또 잡았다!

―창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요.

―오크였던 것.

―X를 눌러 조의를 표하세요.

유진은 요란한 채팅 창을 힐끔 확인하고서 다이크와 합류했다.

“기사님!”

“유진! 제법이군!”

순식간에 오크 하나를 처치하고 합류한 유진을 보며 다이크는 두 눈을 반짝였다. 그의 앞에는 오크 둘이 쓰러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횃불을 던질 만한 거리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유진의 말에 다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앞으로 가시죠.”

“얼마 남지 않았군.”

그 후로도 오크 둘이 달려들었지만 다이크와 유진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스트리머 시절에 플레이했던 수법들과 전투 기술들이 이곳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유진은 자신감을 얻었고 더욱 맹렬하게 오크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유진! 자네 정말 잘 싸우는군!”

자유 기사인 다이크가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다. 유진은 별말 없이 씨익 웃으며 채팅 창을 향해 슬쩍 눈동자를 움직였다.

―고인물, 어서 오고.

―아 ㅋㅋㅋㅋ.

―진짜 잘 싸우시네요. 고인물 같습니다.

―높게 평가.

몇몇 시청자들이 소액 후원을 쏟아 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롭게 채팅 창을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기사님,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횃불을 꺼내야겠군.”

다이크가 기름을 먹인 천으로 감싼 홰를 꺼내서 유진에게 건넸다. 오크들을 멸할 영광의 순간을 그에게 넘기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이것조차 게임 속 전개와 동일했다.

유진은 불을 붙인 횃불을 던졌고 부서진 마차 주위로 퍼져 있던 기름에 불이 붙으면서 수십의 오크들이 불길에 휩쓸리거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걸 클리어 하네.

―아직 아님 ㅋㅋㅋ.

―ㄹㅇ, 제대로 클리어 하려면 하나 더 남았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시청자들의 말이 정확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유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창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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