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스트리머-1화 (1/175)

독식하는 스트리머 (1)

1장. 이게 무슨 일이야?

루베니아 연대기. 스트리밍 사이트와 연동된 게임으로 시청자들이 후원하는 포인트로 게임을 진행하는 스트리머 맞춤형 게임이다.

유진도 루베니아 연대기를 주력으로 방송하는 스트리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오늘도 방송을 훌륭하게 끝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광고 제안 온 거나 확인해 볼까?”

루베니아 연대기라는 조금 특수한 게임을 스트리밍하고는 있지만 당연히 광고 제의도 받는다. 유진은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을 열었고, 조금 특이한 제목의 메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용사님에게. 루베니아 대륙을 구해 주세요.]

그 메일을 클릭한 순간, 유진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진! 유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유진은 눈을 떴다.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던 게 마지막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는 얼굴에 시뻘겋게 피 칠갑을 한 남자가 다급하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

“그렇게 정신 놓고 있다가는 죽어!”

고함을 내지르는 남자. 그의 어깨너머로는 녹색의 괴물들과 무장한 남자들이 각각의 날붙이를 휘두르는 광경이 선명했다.

“대, 대체 무슨.”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난 침대였는데, 라고 유진은 말하려 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조금 더 빨랐다.

“창을 들어! 그렇게 멍 때리고 있으면 죽는다!”

피투성이인 남성의 말에 유진은 얼떨결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에게 창을 들라고 말했던 남성의 목을 뚫고 화살촉이 튀어 나왔다.

“허, 허억!”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피가 튀자 유진은 당황했다.

‘뭐야, 이거? 또 루베니아 연대기야?’

오른쪽 시야에 채팅 창 같은 게 생성되었고, 누군가의 말풍선이 올라왔다.

[업적, ‘어서 와, 시청자는 네가 처음이야’를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업적 달성으로 5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시청자? 방송? 이게 무슨 일이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유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오른쪽 시야 하단에 위치한 채팅 창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재, 멍 때리지 말고 창질이라도 좀 해 봐요.

―이 스트리머는 플레이튜브 처음인가? 계속 멍만 때리네.

―뉴비인가? 하악 ㅋㅋㅋ.

채팅 창에 올라오는 대화들과 바로 위에 고정되어 있는 ‘현재 시청자’라는 이름의 작은 팝업. 그리고 채팅 창의 누군가 언급한 ‘플레이튜브’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그뿐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전장의 모습도 왠지 낯설지 않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옆에 보이는 채팅 창과 현재 시청자 수를 알려 주는 팝업을 보면 인터넷 방송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세계관에 빙의했느냐, 이게 중요하다.

유진은 많은 게임을 플레이했던 스트리머였다.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지 않고 게임에 몰입하는 그의 독특한 방송 스타일은 나름의 고정 시청자 층을 만들 정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이거 루베니아 연대기 같은데?’

전쟁터에서 튜토리얼이나 프롤로그를 시작하는 게임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메일의 제목과 현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용의 선상에 둘 게임은 하나밖에 없다.

“유진! 너 그러다 죽어! 빨리 이쪽으로 와!”

누군가의 외침에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는 무장을 갖춰 입은 십여 명의 남자들이 모여서 방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 중 유난히 어려 보이는 남성이 유진을 향해 빨리 다가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유진의 시선이 금발의 소년에게 닿자 그의 머리 위에 작은 팝업이 생성되었다.

[소년병 한스.]

게임 속에서 NPC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유저에게 보여 주는 팝업 창과 비슷했다. 유진은 작은 팝업 창에 적혀 있는 캐릭터의 이름에 주목했다.

‘한스라.’

유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무래도 루베니아 연대기가 확실한 것 같군.’

확실하다.

“유진!”

한스가 유진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여기는 전장이고 멍하니 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유진은 목이 터져라 자신을 부르는 한스를 향해 단답으로 대충 대답하고는 방어 대형에 합류했다.

“유진! 너 왜 대열에서 이탈한 거야! 그러다 진짜 죽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유진은 호들갑을 떠는 한스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 주위 상황을 살폈다.

―쟤는 여전하네 ㅋㅋㅋㅋ.

―한스, 어서 오고.

시선을 흩뿌리며 전장의 상황을 살피는 동안 채팅 창에 대화가 몇 개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유진이 스트리머 시절에서도 원래 채팅 창은 방치해 두고 게임에 몰입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나, 일단 나는 게임 속에 들어온 게 확실해.’

게임 속 주인공에 빙의. 이 부분은 확실하다고 판단해도 될 것 같았다. 전장의 풍경과 한스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외부와 방송이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셋, 게임 시스템이 존재한다.’

업적과 포인트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유진은 이것들을 두고 게임 시스템이라고 판단했다.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게임 시스템은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일단 파악이 가능한 건 이 정도인가?’

유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근본은 칼잡이’ 님께서 5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아재요, 멍 때리지 말고 움직여요. 그러다 뒤짐.

후원이 올라왔다. 조금 전에 업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얻은 포인트와 합하면 100포인트다. 포인트가 있다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상점도 존재하지 않을까?

“상점 창.”

아주 작은 목소리로, 상점을 부를 수 있을 만한 명령어를 흘렸다.

[전투 중에는 ‘상점 창’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하나 더 알게 되었다.

‘게임처럼 상점 창은 존재하고, 전투 중에는 불러올 수 없다.’

상점 창이 있다면 혹시 그것도 있을까? 판타지 소설을 보며 자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 주문. 루베니아 연대기에도 존재하는 그 주문.

“상태 창.”

상태 창을 외쳤다.

[전투 중에는 ‘상태 창’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실패다. 하지만 상태 창이 존재하며, 전투 중에 호출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유진은 짧은 고민 끝에 튜토리얼 모드를 우선 클리어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진은 눈동자를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전장은 붉은 핏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녹색의 피부에 작은 키가 특징인 오크들이 무리를 지어서 마차를 공격했다. 마차 여럿이 부서져 있었고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뭉쳐서 방진 비슷한 대열을 갖춘 채 오크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기름 마차를 찾아야 해.’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는 열쇠 중 하나다.

“유진! 오크들이 오고 있어!”

한스의 외침에 유진은 황급히 창을 고쳐 잡았다. 판타지 게임을 전문적으로 플레이한 경험 덕분인지 창을 든 채, 적들을 주시한다.

“유진, 너.”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한스가 보기에도 제법 매서운 자세였다. 그는 유진의 처음 보는 모습에 감탄보다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한스 놈 놀라는 거 보소.

―ㅋㅋㅋㅋㅋ.

―한스둥절?

채팅 창에서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유진은 거리를 좁혀 오는 오크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이건 튜토리얼이다, 그리고 오크는 하급 마물이야.’

게임과는 다르다는 두려움이 전신에 차올랐지만 유진은 침착하게 공포를 이겨 내고는 오크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힘차게 창을 내찔렀다.

“키에에에엑!”

유진이 힘차게 내찌른 창에 흉부를 꿰뚫린 오크가 붉은 피 섞인 비명을 토해 냈다. 녹색 피부의 사악한 마물은 가슴에 꽂혀 있는 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구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평소 가상 현실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창을 뽑아내고는 다시 앞으로 한 걸음 전진하며 창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오크의 목이었다. 휘둘러진 창이 오크의 목을 깊게 베었고 피 분수가 솟구쳤다. 운이 좋아서 본능적으로 몸에 익은 움직임을 보인 것이었지만 그 광경을 본 한스는 경악하고 있었다.

―한스둥절?

―고인물 무빙이네.

―ㅋㅋㅋㅋㅋ.

조금 전에 유진이 보여 준 움직임은 결코 뉴비가 할 수 없는 수준의 고난도 동작이었고,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인간 대학원생’ 님께서 1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무빙이 예사롭지 않군요. 훌륭합니다.

100포인트 후원도 들어왔다. 이 포인트는 나중에 전투가 끝나고 상점 창을 열게 된다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한스와 시청자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유진은 오크들을 상대로 망설임 없이 창을 찌르고 휘둘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좀 여유가 생겼고,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 끝에 부서진 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부서진 마차에서는 기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크들의 진영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저기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상단을 공격하고 있는 오크 무리에게 아주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공에 큰 피해를 입은 오크들이 도망가면 그것으로 튜토리얼은 끝난다.

‘일단 용병단장을 찾아가야 한다.’

유진이 시선을 옮긴 곳에 가죽 갑옷을 입은 적발의 중년 남성이 바로 보였다. 시선을 집중하자 곧 그의 머리 위로 하나의 팝업 창이 생성되었다.

[적검 용병단장 안켈.]

찾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안켈이 있는 곳이 결코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방진 안에 함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닿으려면 전장에 가득한 오크들의 장벽을 뚫고 가야 한다.

100m 정도 되는 것 같다. 오크들이 워낙 많아서 위험해 보였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유진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오올, 가나요?

―가즈아!

채팅 창의 대화를 확인할 여유도 없다. 유진은 채팅 창을 힐끔 보고는 안켈이 있는 방진을 향해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유진! 너 무슨 짓이야!”

뒤에서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다. 한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직속상관인 것 같았지만 당장 대꾸할 여유가 없다. 방진을 벗어나기 무섭게 눈앞에 오크 두 마리가 나타났으니까.

“키르르륵!”

“케르르륵!”

각자 낡은 단검과 조잡한 소검을 들고 있다. 그중 소검을 들고 있는 오크가 앞으로 나섰다. 유진은 능숙하게 창대로 소검을 쳐 내고는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창을 내찔렀다.

“케르르륵!”

날카로운 창이 오크의 목을 관통했고 이내 숨통이 끊어졌다. 다른 오크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진이 내찌른 창에 심장에 구멍이 난 채 쓰러져 서서히 죽어 갔다.

―고인물 무빙 대박 ㄷㄷㄷ.

―더블 킬!

순식간에 오크 둘을 해치운 유진은 안켈이 있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뒤늦게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유진의 모습을 발견한 용병 몇 명이 창을 던지는 것으로 엄호를 해 준 덕분에 무사히 그들의 방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단장님께 전할 말이 있습니다!”

방진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유진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자 적검 용병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안켈이 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