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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491화 (491/500)

491화. 마왕 (3)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불굴의 권능으로 억지로 버텨 가던 몸에 다시금 활력이 감돌았고.

“타이니!!”

“알아!”

마왕에 의해 순식간에 죽어 버린 줄 알았던 루나와 아르곤, 저릭과 실버 팽의 기척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그리고 전장의 하늘에 알 수 없는 새하얀 균열까지 생기기 시작했으니.

[이런 미친……!?]

마왕이 당황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모든 기적을 일으킨 이는.

콰아아앙!

“성기사 영감!!!!”

격돌 후 주르륵 밀려난 타이니의 시선이 아래로 쏠렸다.

도대체 어찌한 것인지는 몰라도, 전생에도 본 적 없는 기적.

그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갓 핸드가 무슨 대가를 치렀을지 예상하면서도, 목소리에 기쁜 마음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잃은 줄 알았던 혈육과 친구들이 모조리 되살아났는데, 어찌 그 감정을 숨길 수 있을까.

하지만.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가 어떻게든……. 젠장.”

한 줄기 빛살로 화해 사라지는 성기사를 본 순간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타이니, 앞!!]

에스티나의 말대로 당장은 눈앞의 대적에게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콰아아아앙!

“큭!”

다행이라면, 자신의 시선이 지상으로 쏠린 것처럼 마왕의 시선 역시 하늘로 쏠렸었다는 것.

새하얀 포탈이 열린 하늘에서는 대놓고 신성한 기운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찮은 놈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사람이 목숨을 갈아 넣어 만든 기적이 신급과 반신급 사이의 전투를 일순간 소강상태로 몰고 갔다.

[타이니, 저건 느낌이 아마도…….]

[응, 천계의 통로 같아.]

[갓 핸드 경이 대체 어떻게……?]

[몰라. 늘 의뭉스러운 영감이었으니까. 하지만, 늘 결정적일 때 이런 도움을 줬었지. 전생에도…….]

콰아아앙!

타이니는 활력 넘치는 몸을 이끌고 다시 마왕에게 돌진했다.

[이대로 몰아붙이자!]

- 컹!

[응!]

파바바바박.

쏘아지는 녹색 오러 화살의 엄호를 받으며, 노을빛 늑대를 탄 기사가 허공을 질주해 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앙!

[최대한 단순하게, 하지만 끝없이 몰아쳐야 해! 되살아난 친구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자고.]

[알아!]

게으른 시간은 깨트렸지만, 그 뒤에 나타난 마왕의 보호막은 마치 그 권능이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처럼 철벽같은 방어력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타이니의 감각은 그 안에 또 하나의 방어형 권능이 더해져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검은 보호막은 ‘방어’라는 단어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권능 같았고, 그 안의 무언가는 아직 감도 안 왔다.

‘지독한 새끼.’

방어형 권능만 세 개에, 손발과 해머로 쏟아붓는 공격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저주와 파괴, 소멸의 힘까지 스며들어 있는 마왕.

그야말로 권능의 덩어리가, 폭력이라는 이름을 형상화한 것 같은 거인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가장 확실한 건 빅뱅.’

저 마왕의 해머와 부딪치지 않고 빅뱅을 그대로 맞출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다.

‘그게 어려워서 문제지. 칫.’

막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짜증스러운 상대라는 생각이 드는데.

다행히 상대방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듯했다.

[지독한 것들.]

콰콰콰쾅.

마왕은 하늘의 균열이 신경 쓰이는 듯 몸을 빼려 했지만, 타이니는 악을 쓰며 달라붙었다.

[어딜! 끝장을 보자!]

한번 여유를 두었다가 동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는 꼴을 봤다.

‘더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거기에 다른 이유도 더해졌다.

하늘에 열린 포탈.

그것이 천계의 천사들을 부르는 통로라는 사실을, 전장의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흡!’

타이니는 날아오는 마왕의 해머를 보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녹턴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아아앙!

찌이이이이이잉!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형태의 두 해머가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 내는데.

그 틈을 타서 거리를 벌리려던 마왕과는 다르게, 타이니는 충격의 반동을 억지로 견뎌 내며 그대로 마왕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조금 부족했다.

‘X발, 늦어! 젠장! 월랑!?’

- 컹!

월랑을 재촉해 봤지만, 지금이 최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의식을 가속한 타이니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에스티나의 화살은 그의 맹공 없이는 마왕에게 위협도 되지 않았으니.

그가 따라잡지 못하는 이상, 마왕이 먼저 균열에 도착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 봐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우우웅.

타이니의 몸에 다시금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그와 월랑의 힘을 한순간 강화시켰다.

‘희망의 빛!?’

그 빛이 강화시키는 힘은 직전에도 그러했듯 1할 정도일 뿐이었지만.

지금 그의 경지에서 1할의 힘과 속도는 마왕과의 격차를 확 줄여 주는 기적의 힘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콰드드득.

어느새 마왕의 몸을 다시 묶고 있는 검제의 붉은 기운은 놈의 속도를 타이니보다 느려지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인간들. 귀찮게 하는구나…….]

‘됐다!’

- 컹!

‘유성 떨구기!’

타이니는 다시금 마왕을 향해 가일층 가속하며 뛰어들었다.

집중되는 힘은 무적권마의 불멸수를 통해 ‘7배’로 증폭되었고 거기에 녹턴의 멸살의 권능까지 더해졌으니, 그의 일격은 아무리 빅뱅이 아니더라도 마왕 역시 무시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흥!]

이제까지와 달리, 마왕은 마주 공격해 오지 않고 그대로 해머를 세로로 들어 방어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자연히.

꽈아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적.

타이니의 녹턴이 적중하는 순간, 그 일격은 마왕의 자세를 무너트리며 투명하고 검은 보호막에 커다란 금이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마왕의 몸은 한순간에 새하얀 포탈의 바로 앞까지 튕겨 나갔다.

동시에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 쌍의 날개가 쫙 펼쳐지며 폭포수 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천상의 날파리들은 좀 더 쉬어라. 이것들을 처리하고 만나지.]

그 순간.

촤르르르르륵.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쇠사슬이 새하얀 포탈을 칭칭 휘어 감더니 거기에 굳건한 빗장까지 걸었다.

쿵.

[어떠냐? 이것으로 네놈들의 희망은 더는 없어지는 듯한데.]

가시 면류관 탈 아래 드러난 하관이 스산한 미소를 그리는 순간.

[없긴 무슨, 이게 희망이다!]

꽈아아아아앙!

그 뒤를 그대로 직격한 타이니의 녹턴이 마왕의 검은 보호막을 깨트리며 놈의 몸을 추락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타이니의 몸 역시 하늘 위로 튕겨 나갔는데.

아찔한 통증 속에서도, 타이니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공격을 그대로……. 젠장.’

까드득.

[전부, 협력해서 방어에 집중해!! 지금 놈의 방어막은 ‘반탄’이니, 반격은 하지 말고!]

직전의 경험을 떠올린 타이니는 동료들에게 영파를 날렸고, 바로 다시 마왕의 뒤를 쫓아 추락하듯 돌진했다.

- 컹!

검은 유성의 뒤로 노을빛 유성이 같은 궤도로 추락하는 듯한 모습은 분명 장관이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죽을 맛이었다.

‘조금의 기회도 주면 안 된다. 끝없이 몰아쳐야 돼.’

적의 남은 방어는 반탄의 권능, 이제 그걸 알았으니 자신이 공격하는 만큼의 피해가 돌아올 걸 감수해야 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다시금 각오를 되뇌며 속도를 높였다.

‘저것만 깨면…….’

타이니가 이를 악물며 마왕을 노려볼 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추락하는 자세 그대로 입매를 신경질적으로 구기던 마왕이 다시 예의 그 날개들을 펼쳤다.

스륵.

‘또!?’

한순간에 사라지는 마왕의 몸.

이번에도 그 움직임은 흔적조차 쫓을 수 없었는데.

‘저것도 권능이다.’

그 깨달음도 지금은 늦은 것 같았다.

- 꽈아아아아앙!

또다시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동료들이 있던 곳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안 돼!’

불과 얼마 전의 참상을 다시 떠올린 타이니가 방향을 급선회해서 돌진하는데.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섬의 일각이 통째로 사라지고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 가운데서, 의외의 모습이 보였다.

눈앞에 마왕이 나타난 순간, 대비하고 있던 이들의 반응은 빨랐다.

“합!”

검제의 위력 봉쇄가 다시금 마왕을 잡아 두는 동안, 실버 팽이 들이닥쳐 놈의 몸을 들이박았고.

저릭의 도끼는 그사이 쏟아져 오는 마왕의 공격을 비껴 냈으며, 아르곤은 가까스로 자세를 틀어 그것을 피해 냈다.

- 꽈아아아아앙!

빗나간 그 일격이 섬의 일각을 아예 날려 버리는 것을 본 일행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릴 때.

마왕의 목 부근에 다시 검은 선이 그어졌다.

쩌어어어어억.

한순간에 마왕의 목이 갈라졌다가 다시 붙는 듯하더니.

이내 검은 선은 오히려 놈을 습격한 루나의 목 근처에 나타났고.

그에 기겁한 루나는 한순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를 스쳐 지나간 마왕의 해머가 광풍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

[반쪽 엘프 계집, 제법이야.]

냉소와 함께 다시 휘둘러지는 워해머.

[타이니의 말이 맞아! 공격을 튕겨 내! 모두 방어만!]

기겁한 루나의 메시지가 모두의 귀를 스치고.

[모두, 아르곤 경을 중심으로 절대 방어 태세!]

검제의 영파가 울려 퍼지는 순간.

[막아 봐라!]

마왕의 냉소와 함께 워해머의 세례가 쏟아졌다.

쾅!

꽈아앙!

꽈아아아아아아앙!

검제의 위력 봉쇄가 여전히 마왕의 몸을 묶고 있음에도 일격 일격이 대기를 떨리게 하고 섬에 지진을 일으키는데.

일격을 검제가 간신히 비껴 내고 나면 그다음 일격은 사신이 몸을 던져 흘려 냈고, 저릭과 실버 팽도 비슷한 수법을 썼다.

그렇게 모두가 적의 공격을 ‘흘려 내는’ 데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번쩍.

[燒滅(소멸)]

우르르르르릉.

“이런!”

한번 시도해 본 아르곤의 오러 마법이 섬뜩하게 반사되어 일행을 덮쳐 오자.

뒤에서 날아온 거대한 녹색의 화살이 가까스로 그것의 각도를 꺾어 냈다.

콰아아아앙!

[아르곤!!!?]

[미안, 마법은 통할까 해서.]

그리고 그사이에.

[하. 정말 지독한 것들이…….]

마왕의 짜증 섞인 영파가 울려 퍼지는 순간.

쾅!!!

어느새 쇄도해 온 노을빛 유성이 다시 마왕의 몸을 들이박았다.

“버텨! 내가 놈을 죽인다!!”

“크르르르르릉.”

잔영과 목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노을빛 인영이 다시금 번개처럼 전장을 상공으로 옮겨 가는데.

[지금 같은 순간 이동의 권능은 그리 자주 사용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긴장해 모두!]

그사이 울려 퍼지는 타이니의 영파가 한껏 긴장하며 방어에 치중하던 동료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흘리게 만들었다.

“순간 이동인지 그냥 이동인지, 내 눈엔 어차피 안 보여…….”

아르곤의 넋두리가 아니더라도, 검제 역시 체감하고 있었다.

지금 마왕과 타이니의 스피드를 눈으로나마 따라붙고 있는 것은, 속도를 주력으로 오러익시더의 극에 오른 사신과 실버 팽이 유일했다.

‘빌어먹을.’

이내 무기력함에 잠식당하지 않게 다시금 정신을 집중한 검제가 검을 들었다.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도, 타이니를 도울 방법은 있었으니.

[온 힘을 다해 딱 한순간, 1초만 붙들어 보겠다! 그때 끝장내!!]

[수호자님, 다시 한번 타겟팅 유도 부탁합니다!]

타이니와 에스티나에게 영파를 보낸 직후.

[지금!!]

우우우우웅.

검제는 애병, 붉은 날개의 힘을 최대한 증폭해서 위력 봉쇄의 힘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뒤.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희망의 빛의 연결을 따라, 에스티나의 타켓팅을 타고 마왕의 몸을 묶었다.

검제의 모든 전력이 집중되어 딱 한순간에 쏟아지는 압박.

[흡!?]

마왕이 당황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그 위로 번뜩이는 노을빛이 광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 꽈아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우드드득.

상공에서 시작되는 폭풍이 섬의 남은 나무들을 꺾어 버리기 시작했고.

이내 폭풍이 걷힌 자리에, 지친 표정으로 월랑을 탄 타이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아……!”

일행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말해 주듯.

[신의 권능은 완전하니. 너희들은 그저 절망하면 되느니라.]

넝마가 된 듯한 타이니를 앞에 둔 채 여유롭게 두 팔을 벌리는 마왕의 모습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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