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489화 (489/500)

489화. 마왕 (2)

번쩍.

우르르르르릉.

[쯧. 날파리 같은 것들이.]

파바바바박.

샛노란 벼락의 오러와 녹색 오러를 휘감은 화살들이 쏟아져 오는 가운데.

마왕의 전신은 붉은 기운에 내리눌리며 지상으로 조금씩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콰콰쾅!

[흥!]

벼락은 마왕의 육체에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못했고.

녹색 오러 화살들과 붉은 기운은 놈이 코웃음과 함께 휘두른 손짓 한 번에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늑대를 탄 저릭이 어느새 다가와 도끼를 휘두르는데.

꽈아아아아아앙.

“컥!”

마왕이 내지른 발길질 한 번에 그는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그조차 마왕의 성에 차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찮은 것들이. 묘한 재주를 부리는구나.]

그리고 그제야, 타이니는 미약하게나마 확실히 도움을 주는 기운이 자신의 몸에 전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에낙센에서 전해져 오는 커다란 힘, ‘희망의 빛’이 그제야 발동된 것 같았다.

흘깃 내려다보니,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큰 마법을 준비 중인 아르곤이 보이는데.

그 순간 다시 머리 위쪽으로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파아아아아아앙!

쾅!

한순간에 그 워해머를 피해 내고 반사적으로 휘두른 녹턴이 그대로 마왕의 오른편을 후려쳤다.

마왕은 그런 녹턴의 공격을 팔뚝 하나로 막아 낸 뒤 밀고 들어오며 다시 해머를 휘두르는데.

- 컹!

월랑이 그대로 대각선으로 하강하며 그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놈에게 달라붙는 순간.

콰콰쾅!

한순간에 몇 수가 부딪치더니, 타이니와 월랑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밀려난 거리는 이전에 비해 짧았고, 다시 자세를 잡는 타이니의 얼굴에는 오히려 활기가 돌고 있었다.

‘된다!’

희망의 빛으로 인해 다소간 증가된 신체 능력이, 막막하게만 보이던 마왕과의 수준 차이를 좁혀 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웃는 만큼, 마왕의 얼굴은 찡그려졌다.

[……짜증 나는군.]

놈은 그대로 다시 돌진해 오는 타이니를 일견하더니.

한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인식한 것은 타이니뿐이었다.

‘이런!’

[아르곤!!]

동료들 모두에게 영파로 소리치며 그대로 마왕의 뒤를 따라 질주해 보지만.

무언가 마법을 준비 중인 아르곤에게 접근하는 마왕의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그 와중에 아르곤의 앞에 있던 갓 핸드가 허공에 신성 방어막을 펼치는 것이 보였지만, 그마저도 마치 종이 방패처럼 허약하게만 보였다.

‘안 돼……!’

타이니의 눈에 초조함이 스치는 순간.

급속도로 하강하던 마왕의 목 부근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쩍!’ 하는 소리가 들리며 그 공간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하!?]

마왕의 반응은 짜증 섞인 감탄사뿐이었다.

뒤이어 번개처럼 회전한 마왕의 팔꿈치가 짧은 순간 연달아 단검을 찔러 내고 있던 루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쾅!

소리도 없이 튕겨 나가는 루나가 다시금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타이니는 눈을 빛냈다.

[타이니, 크롬벨의 말이 맞아. 움브라-테그멘만 있었어도…….]

[알아. 나도 봤어.]

루나의 공격은 결코 허사가 아니었으니.

타이니는 그 덕에 마왕의 몸을 보호하는 권능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하압!”

어느새 마왕의 밑에 다가온 검제의 애검, 붉은 날개에서 붉은빛 기운이 쏘아지며 다시금 마왕의 전신을 묶었다.

그 순간.

번쩍.

마왕이 존재하는 공간 전체를 뒤덮을 듯한 노을빛이 아르곤의 마기아 끝에서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콰!

적색이 조금 섞인 그 노을빛은 본래의 의도대로 빅뱅에 준하는 파괴력을 내진 못했지만.

자신을 습격하려던 마왕의 몸을 다시금 허공으로 높게 튕겨 내는 데는 성공했다.

놈을 따라붙던 타이니의 바로 눈앞으로.

‘흡!’

빅뱅을 쓰기엔 갑작스러운 기회였지만, 그에겐 다른 수가 있었다.

- 이번에 변한 솜누스를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마왕이 보여 준 굳건한 방어력의 정체를.

-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고 다른 권능도 있을 테니, 맹신하지는 마.

크롬벨이 해 준 말과 루나의 공격에서 그 틈을 찾았으니.

[나 신경 쓰지 말고, 전부 쏟아부어!]

공중에서 균형이 흐트러진 마왕이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서도, 타이니는 그대로 그 팔목 보호대 위를 후려갈겼다.

꽈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순간,

“아우우우우!”

번쩍.

실버 팽의 비기, 천둥 늑대의 포효가 타이니까지 동시에 날려 버리려는 듯한 기세로 마왕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앙!

[가지가지 하는구나.]

마왕의 비웃음을 무시한 채, 타이니는 그대로 연신 녹턴을 휘둘렀다.

쾅. 쾅. 콰아앙!

한 방 한 방 마구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일반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놈 앞에선 더 이상 분신을 꺼낼 수 없게 되었으니, 아예 몸 안에 작은 분신을 만들어 녹턴을 통해 그대로 터트리는 것.

즉, 약식의 유성 떨구기가 녹턴을 휘두르는 족족 그대로 마왕의 몸에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검제의 위력 봉쇄가 여전히 마왕의 몸을 묶고 있는 가운데.

[하!?]

콰콰쾅.

마왕이 반격을 하려 할 때마다, 절묘하게 쏘아진 녹색의 화살이 워해머를 강타하며 그 방향을 아주 조금씩 흐트러트렸다.

이 모두가 한 달 사이 합을 맞춘 그대로였으니.

가정했던 최상의 타이밍이 거짓말처럼 고스란히 들어맞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꽈아아아아아앙!

“큭!”

마왕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처음으로 육성을 뱉어 내며 공세에서 몸을 빼냈다.

물론 타이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덤벼들려 했지만.

“하!!”

마왕의 기합과 함께 퍼져 나간 서늘한 마기가 사방에서 그를 공격하던 모든 공세를 일시에 차단하며 주변으로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쿠쿠쿠쿠쿠쿠.

오래 유지할 수는 없어 보이지만, 한 번에 뚫리지도 않을 듯한 보호막.

“흐. 또 하나의 밑천을 보인 건가.”

사실상 전력을 다한 공격으로도 적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타이니와 동료들의 얼굴에는 흐릿한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반대로.

[하? 나태가 이렇게 당한 건가? 재미있군.]

마왕은 여전히 여유 가득한 영파와 함께 전장을 둘러보았지만, 얼굴이 다소 굳은 것은 숨기지 못했다.

“인류의 배반자가, 네놈의 권능 하나를 벗겨 낼 열쇠가 돼 주는구나. 그 게으른 시간, 한동안은 못 쓰지? 그 보호막도 잠깐인 것 같고…….”

나태의 권능, 게으른 시간은 결코 만능이 될 수 없으며 즉살을 목표로 하는 죽음의 힘은 시간이 지난다고 흩어지거나 그 힘이 약해지지 않으니.

루나의 공격에 마왕의 보호막이 크게 흔들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밑천이 얼마나 남았으려나?”

녹턴에 힘을 모으며 손가락을 까닥이는 타이니의 도발에 마왕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래. 현생의 인류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구나. 뭐, 재미는 있네. 신화도 다 사라진 시대에 제법이야. 칭찬해 주지.]

짝. 짝.

마왕이 보란 듯이 느릿한 박수를 치는 순간.

가시 면류관 탈 아래 보이는 입술이 처음으로 벌어지며 새빨간 혓바닥이 드러나는데.

[그럼 그만 놀고, 이제 진짜로 해보지.]

그 혀가 입술을 쓱 훔친 직후.

스륵.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세 쌍의 날개가 흐릿하게 점멸하더니.

갑자기 마왕의 몸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내 눈에도……!?’

타이니 역시 그 종적을 놓쳐 눈을 부릅뜨는 순간.

푸우우욱.

“꺼…….”

[우선 하나.]

“……윽!”

어느새 아르곤의 등 뒤에 나타난 마왕의 손이 그의 심장을 꿰뚫고 튀어나왔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지는 순간.

퍼어억.

마왕의 손에 들린 심장이 터져 나가고, 아르곤의 푸른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데.

[그 빛, 요상한 기술의 중심이 이 녀석이지?]

일행 전체의 전력을 증폭시키던 희망의 빛이 그 순간 힘을 잃었다.

“아악!!!”

그에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른 루나가 한순간에 마왕의 발밑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번개처럼 그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타다다다당.

그러나 그 공격은 그저 마왕의 전신에 둘러친 검고 투명한 보호막을 진동시킬 뿐이었고.

[귀찮은 벌레가.]

콰직.

마왕의 팔꿈치가 루나의 목뼈를 으스러트리는 소음은 그리 크지도 않았다.

털썩.

심장을 잃은 아르곤과 목이 부러진 루나가 동시에 땅 위로 나뒹구는 순간.

마왕의 코앞에 나타난 타이니가 한발 늦게 녹턴을 휘둘렀다.

수축하는 노을빛 구체. 다시금 발현된 빅뱅의 힘이 마왕이 존재하는 공간 전체를 터트리려 하는데.

씨익.

이빨까지 드러내며 웃은 마왕이 해머를 마주 휘두르는 순간.

수축하던 노을빛은 놈의 이글거리는 마기에 담긴 파괴의 권능에 상쇄되더니, 그 근본부터 흐트러지며 위력이 급감했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쓸 만한 건 너 하나로구나.]

콰콰콰콰콰.

쾅!

그 굉음 속에서 해머와 해머, 그리고 손발이 짧은 순간 수십 번도 더 부딪치더니.

쾅!

끝내 타이니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마왕은 근처까지 쇄도해 온 실버 팽의 옆에 나타나 그 몸을 해머로 후려쳐 버리고.

꽈드드득.

실버 팽이 부서져 허공에 날아가는 순간.

퍼어어억.

[사림……!]

마왕은 다시 돌진해 오는 저릭의 뒤에 나타나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억.”

[마왕!!]

[짐승 신의 파편. 또 보니 지겹구나. 이제 그만 보지.]

쾅!!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펜릴은 결국 해머 한 방에 그대로 역소환되었다.

[그리고…….]

콰콰콰쾅.

[여신의 떨거지.]

파바바방.

콰드득.

갓 핸드가 무력의 경지가 낮은 탓에 뒤늦게 반응했음에도 에스티나의 원호 사격 덕에 팔 하나가 부러지는 데 그치는 동안.

직전까지 마왕의 움직임을 잡아 두느라 바닥까지 에너지를 쥐어짰던 검제는 그저 부릅뜬 눈으로 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처음 튕겨 나갔던 타이니가 허공에서 다시 자세를 잡았고, 실버 팽과 저릭의 시체가 그 아래에 털썩하고 떨어졌다.

인류 최강의 동료 8인 중 넷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어떻게…….”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검제마저 황망한 눈으로 멍하니 굳어 버리는데.

- 안 돼!!!!!!! 이런 개X같은 놈이!!!!!

콰아아아아앙!

노을빛으로, 아니 시뻘겋게 달아오른 타이니가 전장을 떨쳐 울리는 고함과 함께 유성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반대편 하늘 위에서는 녹색의 오러를 담은 무수한 화살 비가 날아들어 마왕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역시, 그래. 끝까지 덤비는 놈이 있어야 재미있지.]

오히려 씨익 웃은 마왕은 태연하게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앞까지 다가와 부러진 팔을 붙잡고 검을 휘두르려던 갓 핸드와 눈을 마주쳤다.

[손쓰기도 아깝구나. 질식해 죽어라, 사멸한 여신의 종자야.]

손짓 하나에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이 갓 핸드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기도를 틀어막기 시작하는데.

갓 핸드는 그 기운보다도 마왕의 영파에 더 충격을 받았다.

‘사멸한 여신?’

그리고 그가 멍해진 채로 그 말을 곱씹는 순간.

-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금 허공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지며, 무수한 그림자가 교차하기 시작하는데.

그 움직임을 채 따라가지 못하는 갓 핸드도, 타이니와 에스티나가 밀리고 있다는 것만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끝까지 발악해 보거라. 더 보여 줄 것이 없다면, 그때 정말 가져가겠다. 내 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인류 최강의 기사들을 제압한 마왕의 영파가 희미한 웃음을 담고 전장을 떨어 울릴 때.

그에게 무시당한 한 성기사의 눈빛이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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