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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470화 (470/500)

470화. 격돌

“옵니다!”

누군가 고함을 질렀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동틀 무렵, 떠올라야 하는 햇살 대신 바다 저편에서 자욱하게 몰려오는 먹구름……. 아니,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벌레 떼는 장님이 아니라면 모두가 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끝도 아니었다.

“인어도 있습니다! 역시 저것들이 마족과 손을……!”

“예상했던 일이잖나. 호들갑 떨지 마라.”

바다 위로 얼굴을 드러낸 채 헤엄쳐 오는 인어들 역시 엄청난 머릿수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밍 참……. 저릭 공, 그리드 녀석은 어떻소?”

“수습하는 데 30분은 걸릴 것 같소이다, 공작.”

“이거 잘된 일을 나무랄 수도 없고…….”

검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성에서 명상에 들어간 악우를 떠올렸다.

물론, 웨폰 마스터 그리드 반 셀던의 승격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호재였다.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하이넨 공, 갓 핸드 님. 두 분이서 악마급 여섯을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안 돼도 해야지. 어쩌겠소.”

“모든 것은 여신의 뜻대로.”

둘의 대답을 들으며 검제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적으로나마 초월무구 이상의 초월무구가 된 불벼락과 갓 핸드의 성자급 신성력을 생각하면, 그 둘이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경지가 상승한 그리드가 참전해 준다면, 그쪽 전투는 생각보다 유리하게 돌아갈 것도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게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도 없고.’

거기다 이 마충 군단과의 전쟁은 그동안 겪어 온 것과 기본적으로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궁수들과 마법사들은 앞으로! 병사들은 마법사와 궁수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

날아드는 주먹만 한 벌레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벌레들을 제대로 요격할 수 있는 병력이 거의 없다는 것.

‘성벽도 의미가 없다.’

그 때문에, 그나마 효과적인 타격이 가능한 병종들을 보호해 가며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쪽의 초인들 중에서도 장거리나 범위 공격에 특화된 것은 마도사들과 세계수의 수호자, 마도 기사 정도뿐이다.

그 와중에 세계수의 수호자는 지금 자리를 비웠으니.

그 외의 다른 초인들은 동료들을 보호하면서 수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칠죄종이 나서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벌레들의 왕이나 인류의 배신자가 공중에서부터 싸움을 강요한다면, 거기에 응전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나름 준비한 것이 있긴 했지만.

‘타이니 없이 싸울 수나 있을까?’

자꾸만 그렇게 암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어 낼 수는 없었다.

그저 그 가장 위험한 칠죄종들의 흔적을 눈으로 좇을 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충 군단의 뒤쪽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개체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자 문득 하이넨의 말이 생각났다.

- 어쩌면 벌레들의 군주는 전투형 칠죄종이 아닐 수도 있소이다, 공작.

반신급 괴물을 전투형이나 보조형으로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이넨의 말이 맞다면 승산이 높아진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크롬벨 역시 그 비슷한 말을 전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으니 확신은 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타이니가 경고했던 서열 1위의 칠죄종, 인류의 배신자.

‘나태는 어디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 끼에에에에에에!!!

마충 군단의 전면에, 각기 다른 형태의 거대한 와이번 열세 마리가 나타났다.

“저건…….”

그중 선두에 선 세 마리는 누가 봐도 악마급이 확실했다.

하나는 날개가 두 쌍이요, 하나는 머리가 세 개, 또 다른 하나는 덩치가 나머지에 비해 두 배는 큰 것이, 특히나 위협적인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마룡 군단……!”

“공작!”

더구나 초월급으로 보이는 나머지 열 마리도 덩치를 생각하면 결코 만만할 리 없었다.

예상외의 변수에 검제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변했다.

‘이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끊겼던 마룡 군단이 벌레들의 군세에 합류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 마족의 군단들끼리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고대 마계 대전에서는 그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용사 크롬벨의 말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또한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하던 마룡 군단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탓이기도 했다.

군주를 잃은 괴물들이 대해를 헤매고 있겠거니 기대에 찬 상상을 하며, 놈들이 몰려올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던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참모진 전체의 현실 도피였다고 봐야 할까.

‘빌어먹을.’

- 끼에에에에에!

[인간들을 멸절시켜라!!]

선두에 선 세 마리가 전장을 울리는 정신파를 토해 냈다.

찌이이이이잉.

그 외침조차 찍어 낸 듯 서로 똑같은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와 피어는 일반 병력들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수는 적지만, 마룡 군단은 마족 최강의 군단입니다.

크롬벨의 말이 다시금 뇌리를 스치는 순간.

검제는 이를 악물었다.

[저놈들부터 격추시킵시다! 아르곤 경!]

[예!]

그의 정신파에, 내성 안쪽의 거대한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아르곤이 메시지 마법으로 대답했다.

동시에 같은 마법진 위에 아르곤을 중심에 두고 삼각 대형으로 서 있던 마도사들이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엄청난 규모의 마나가 마법진에 새겨진 마정석들과 호응하며 에낙센 전체에 정형화된 마나 패턴을 뿌리기 시작하자.

그 옆에서, 교황이 중심이 되어 성물을 축으로 삼고 사제들의 신성력으로 가동하는 또 다른 형태의 마법진 역시 신성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거대 마법진과 성법진의 가운데에서는 크롬벨이 양측의 기운을 느끼며 연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성하! 성력을 1할만 덜어서 얀센 추기경에게로!”

“티네스 경! 성력과 충돌하기 전에 방위 각도 21도 아래로!”

“아르곤 경! 통합 출력을……!”

성법과 마법에 두루 능통한 크롬벨이 정신없이 고함을 질러 대자, 그의 목소리에 따라 이 시대 최고 마법사들과 최고 사제들의 협력진이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군, 준비!!!”

검제의 고함과 함께.

신성한 푸른빛이 에낙센 전체에 내려앉았다.

대마도사 솔레인의 유산을 아르곤과 마도사들이 다시 한번 개량한 것에 신성 마법까지 더해진 힘.

군단 스킬, ‘희망의 빛’이 연합군 모두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우와아아아!”

“우오오오오!”

에낙센의 모든 병력이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함성을 내질렀다.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고 최상의 단체 스킬이 병력 전체에 압도적인 활력과 에너지를 부과한 것이다.

“쏴라!!!”

“떨어트려!!!”

그러자 마법사들은 온몸으로 각양각색의 마법을 쏟아 냈고, 동시에 궁수들도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다.

물론.

콰콰콰콰콰콰쾅!

꽈아아앙.

그렇게 쏟아지는 공세는 가장 앞에 다가오는 마룡 군단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화살 아껴!! 뒤편의 벌레들만 노려라!”

“기사들! 와이번들이 다가오는 순간을 노려라!”

지휘관들은 거대한 괴물들이 접근해 오는 공포 속에서도 냉정하게 지시를 내렸다.

영혼살에 방비하고자 했던 힘이 그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공포심을 희석시킨 것이다.

그리고 또한 믿는 것도 있었다.

‘지금!’

검제의 바람을 듣기라도 한 듯.

번쩍.

그 순간 내성의 안쪽에서 솟구친 푸른빛, 흰빛, 빨간빛이 어지럽게 뭉치며 솟아올라 전방을 향해 쏘아지더니.

에낙센에 접근한 마룡 군단의 ‘후미’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앙.

스아아아아아아아.

“끼에에에에!”

엄청난 기세의 폭염과 칼바람, 눈보라가 차례로 작렬하며 거대한 세 마리 와이번의 뒤를 따르던 열 마리 초인급 와이번들을 난자했다.

일반적인 8서클 마법을 월등히 뛰어넘는 위력을 가진 세 가지 마법이 동시에 퍼부어졌으니, 고작(?) 초월급의 마물들은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좋아, 간다!’

그 광경을 본 검제는 내성 안에서 외성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찮은 것들이!!]

부하들이 한순간에 추락하고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악마급 와이번이 그대로 가속하며 에낙센의 외성벽 위에서 입을 벌렸다.

[쓸어 주마!]

그 입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

찌이이이잉.

쾅!!

붉은빛 레이저가 그 입을 관통했다.

촤아아아아악.

한순간에 목을 틀어 직격을 피했지만, 그 막대한 규모의 레이저는 놈의 목 옆을 길게 녹여 버리며 큼지막한 상처를 만들었다.

“캬아아아악!”

[어떤 놈이!!?]

기겁을 하며 그 자리에서 선회하는 와이번.

하지만 대답 대신 돌아오는 것은 연이어 쏟아지는 붉은 레이저뿐이었다.

마치 그 와이번이 피할 곳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쏘아지는 족족 적중하는 레이저.

“키에에엑!”

[이, 이럴 수가…….]

그 레이저의 포화 아래,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와이번은 힘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이넨 공, 무리하시는군.’

외성 쪽으로 달려나가던 검제는, 그런 놈을 보며 그대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추락하고 있는 놈의 목을 먼저 치고 싶었지만.

그의 목표는 한발 늦게 에낙센에 내려앉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다른 악마급 와이번이었다.

중력 속성으로 깃털보다 가벼워진 그의 몸이 벼락처럼 적에게 접근하는 순간.

[인간 한 마리가?]

괴물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그대로 뿔을 들이밀었다.

그 거대한 덩치로 하늘에서부터 가속해 온 와이번의 기세는 위협적이었으며.

거기에 뿔에 이글거리는 암흑 오러는 검제의 몸을 뒤덮을 정도로 강렬했으니.

동일한 경지에서도 인간과 마족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괴물이 상대하는 인간도, 그저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뒤집혀라!]

검제가 강렬한 영파와 함께 애검 붉은 날개를 휘두르는 순간.

꽈아아아아앙!

우드드득.

“끼에에엑!”

돌진해 오던 괴물이 그대로 붉은 장벽에 부딪히며 목이 반대로 꺾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진 못했다.

[어떻게!]

거대한 와이번은 그 덩치만큼 긴 목을 유연하게 움직인 덕인지, 그 타격에도 피를 좀 토해 낸 것이 전부였다.

다만 경각심이 생겼는지 그 큰 덩치로 뒤쪽을 향해 두둥실 떠오르는 게 보였는데, 날개를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리고.

쾅!

콰아앙!

꽝.

목과 이빨, 뿔, 꼬리.

온몸에 두른 거대한 암흑 오러로 연신 검제를 강타하는데.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검제는 미동도 없이 그 공격을 모두 받아 냈다.

[어떻게! 인간이……!]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도 검제의 눈은 그 빈틈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상태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젠장.’

그의 절기 중 하나, 위력 봉쇄가 ‘희망의 빛’에 영향을 받아 강력해진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덩치 백 배는 될 듯한 괴물이 가속하며 부딪혀 오는 힘을 그대로 반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 중력도 결국 힘의 방향성의 일부다.

강해진 힘에 오러익시더의 극에 달한 그의 깨달음이 더해져 에너지의 흐름 방향을 바꿔 버리는 수준에 도달했으니.

그 순간 위력 봉쇄는 차원이 다른 기술로 거듭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중력의 속성도 초월한 무엇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당장 그런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결국 반만 성공한 것이니.

‘젠장. 반동으로 바로 죽을 줄 알았는데, 괴물 자식!’

검제로선 이미 전개한 위력 봉쇄를 유지하며, 발작하듯 허공에서 공세를 퍼붓는 동산만 한 덩치가 허점을 보이길 기다릴 뿐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초조해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스리려 하는데.

[재밌네!]

갑자기 눈앞으로 커다란 뿔 달린 사마귀 같은 놈이 나타났다.

사마귀의 날카로운 앞발 하나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데.

쩌어어어어엉!

“큭!”

서둘러 검을 들어 막아 내긴 했으나, 그 충격에 검제의 안색은 대번에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충 군단의 장군!’

하지만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버텨!?]

[비켜라, 벌레!!]

[닥쳐라! 군주의 명령이다!]

[군주……. 명령…….]

사마귀의 호통에 거대한 와이번의 눈동자가 한순간 흐리멍덩하게 풀렸다.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의미도 없었다.

[공격해라, 덩치만 큰 놈!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인간?]

눈앞의 사마귀와 거대 와이번.

악마급 두 마리는 지금의 그로서도 버거운 상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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