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467화 (467/500)

467화. 날아올라라

파아아아앙.

‘최대한 빨리!’

- 컹!

타이니는 온 대륙에 창궐하고 있다는 마충들을 뿌리 뽑기 위한 질주를 하는 와중에도, 남겨진 동료들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 우리를 믿어라!

검제를 비롯한 동료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인류가 상대하는 적이 마충 군단의 칠죄종, 분노 하나였다면 그가 이리 걱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나태. 크롬벨이 겪어 봤다는 칠죄종 서열 1위의 무력이었다.

분노와 나태가 동시에 전면에 나서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면, 연합군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서둘러야 해.’

- 컹! 컹!

월랑이 그 마음을 안다는 듯한 울음소리로 그의 걱정을 덜어 주려 했다.

‘그래, 고마워.’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뿐.

다른 곳을 걱정하다가 할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대륙 곳곳에 퍼진 마충들이 인류의 후환으로 남을 것이다.

“후우우.”

타이니는 걱정을 억지로 떨쳐 버리고 정신을 최대한 집중했다.

우우우웅.

에너지 필드가 끝없이 확장됨과 동시에, 오러마스터에 이른 그의 영혼이 오직 탐색에만 전력을 모았다.

그리고 대륙 전체를 훑어 가며, ‘작지만 이질적인’ 벌레 떼 중에서도 핵이 되는 여왕 벌레들을 찾기 시작했다.

대륙에 흩어진 마충 떼들을 한자리에서 전부 찾아내는 것은 본디 그 어떤 마법으로도 어려운 일.

하지만.

- 여왕 벌레 하나가 적어도 초인급일 겁니다.

크롬벨이 준 힌트에 그의 초월 감각이 더해진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도 아니었지만.

지끈.

찌이이잉.

‘큭.’

타이니는 극심한 두통을 참아 가며 전력을 감각에 집중시켰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그의 몸에서 한순간에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다 질주하는 속도에 밀려 허공으로 흩어졌다.

불굴의 권능 소유자가 아니라면 아무리 오러마스터라도 탈진할 만한 무식한 방식.

하지만 그 미친 짓은, 이내 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98개체…….’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여왕 벌레의 수를 다시 특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 번째 확인 완료. 위치도 이동 방향도 이젠 일정하다.’

“후우우우우.”

긴 숨을 내쉬자, 핼쑥하게 변했던 얼굴이 그것만으로도 다시금 혈기를 되찾았다.

적당히 기운이 돌아오는 순간, 타이니는 불굴의 권능을 풀어 버렸다.

‘권능도 적절히 조절하며 써야 한다.’

인어족을 박멸할 때 상시 권능을 유지하다가 찾아온 후유증은 잠시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카룬의 파멸로 그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돼.’

한순간 헨리 왕자와 리암 경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타이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필요한 순간에만 적절히 써야 해.’

마치 권능을 완성하지 못했던 때처럼 불굴을 끊어 쓰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타이니는 실감했다.

왜 9단계에 이르러 신성을 얻은 경지를 신(神)의 경지가 아닌 반신(半神)의 경지라고 하는지.

‘완전하지 않으니까.’

세상을 손에 넣은 듯한 성취감에 도취되었던 그가 다시금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걱정거리가 생기기도 했고.

‘마왕은 여신의 대적자…….’

그렇다면 놈은 짐작건대 10단계, 온전한 신의 경지.

더구나 단순히 그것이 끝도 아닐 터였다.

우웅.

지금도 등 뒤에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녹턴을 완전히 손에 넣으면서 확신하게 되었으니.

‘마왕의 권능은 하나가 아닐 거야.’

녹턴은 원래 다른 신성을 쳐 죽여 그 권능을 흡수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 역시 질투를 죽이며 체감한 바가 있었으니.

‘마왕이 여태 녹턴을 통해 흡수한 권능이 몇 개나 될까?’

자연스레 그런 걱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는, 왜인지 고대 마계 대전 이후로는 녹턴이 대미궁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찾자면.

‘신성을 가진 존재가 그리 흔할 리는 없어.’

기대 섞인 추측뿐.

‘일단 지금은 눈앞의 일만 생각한다.’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상을 애써 무시해 가며, 타이니는 좀 전에 알아낸 가장 가까운 좌표를 향해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아마도 적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대륙의 마충들을 처리할 방법이 있었다.

혹시나 반발을 살까 아직은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방법이.

* * *

위이이이잉.

콰콰콰콰콰콰.

수가 몇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거대한 벌레 떼들의 움직임은 마치 폭풍과 같았다.

그것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갉아 먹는 파멸의 폭풍.

심지어 그 검은 폭풍은 주변의 생물들을 갉아 먹으며 실시간으로 그 부피를 불려 나가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사람 주먹만 한, 거대하고 끔찍한 곤충 떼.

“뭐, 뭣이여.”

“저게 다…….”

“으아아악!”

“도망쳐!”

산 하나를 순식간에 뒤덮어 버리는 재앙이 등장한 순간.

가장 먼저 그것을 인식한 나무꾼들이 짐을 내팽개친 채 산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벌레들의 흉악성을 자극한 것일까.

위이이이잉.

그들이 도망치는 순간, 검은 구름처럼 군집해 있던 벌레 떼에서 한 무리가 떨어져 나가 나무꾼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것은 나무꾼들에게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이기도 했다.

“헉!”

턱.

우당탕탕.

도망치는 와중에 뒤를 돌아보던 나무꾼이 돌부리에 걸려서 나뒹굴었다.

“론!?”

“아, 안 돼!”

“가, 같이 가!!”

동료 나무꾼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섞이며.

누구는 절규를 하고, 누구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누구는 오히려 빨라질 때.

- 찌르르르르

쏘아져 나온 마충 떼는 이미 그들의 지근거리에서 흉악한 겹눈과 이빨들을 번득이며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제, 젠장.’

넘어진 나무꾼 론은 곧이어 닥칠 끔찍한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순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인생의 수많은 장면.

그중에서도 몸이 편찮으시면서도 또 밭일을 나가신다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아니, 아프면 좀 쉬시라니까! 왜 말을 안 들으세요, 말을!!

- 그러다 어머니 쓰러지면 나중에 내가 더 고생한다니까!

버럭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던 마지막 대화가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그냥 걱정된다고 솔직히 말씀드릴 것을.’

마음을 표현할 줄도 모르던 못난 아들.

그가 나이 먹고 장가도 못 간 것이 아비 없이 자라게 한 당신 탓이라며, 재산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어찌 사시려나…….’

그 안타까움에까지 생각이 미칠 때.

론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죽을 때 주마등이란 게 보인다는 말을 들어 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꼭 감았던 눈을 뜨는데.

“어……?”

따다다다닥.

“히익!”

눈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부딪치는 벌레들의 모습을 보고는 찔끔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런데.

우우우웅.

따다다다닥.

위이이이잉.

벌레 떼들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근처로 오지 못하고 있었고.

“뭐……?”

좀 더 용기를 내서 살펴보니, 그 벌레들을 옅은 노을빛이 가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이 눈앞에서 살기를 번뜩이는 벌레 떼들의 위압감을 물리치고 혈색이 돌게 만드는데.

이상하게도, 우글대는 벌레들 사이로 도망치기 딱 좋은 공간이 보였다.

마치 노을빛이 자신을 위해 벌레들을 밀어 내고 퇴로를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너머에서.

“론! 이리!”

“빨리 와!”

마찬가지로 노을빛에 갇혀 버린 벌레 떼들 사이로, 나무꾼 동료들이 보였다.

거기다.

[빨리 피해!]

마치 머릿속에 전해지는 듯한 낯선 목소리.

“어, 어!”

대체 이 재앙과 기적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볼 틈은 없었다.

그저 열린 통로(?)를 향해 내달릴 뿐.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도망쳐 온 후에야.

“저거 사람인가?”

“뭐야? 하늘에?”

간신히 돌아본 하늘에, 노을빛을 산에 가득 뿌려 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노을빛 늑대를 타고 하늘에 떠오른 채로 멀리서도 느껴지는 엄청난 기세를 발하는, 검은 머리와 탄탄한 체격을 가진 남자.

그 손끝에서 퍼져 나오는 노을빛이 사방의 벌레 떼들을 모조리 통제하고 있었다.

그 모든 신화적인 광경은 나무꾼들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대체 누구……?”

“뭐, 뭐해!? 튀어!”

“맞아, 우리가 그런 거 신경 쓸 때야!?”

“튀자고!”

“아, 알았어.”

론은 황급히 돌아서면서도 어디선가 저런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늑대를 탄 검은 머리 기사! 아, 늑대가 흰색이라 했는데?’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론은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구한 것이 바로, 이 시대 최강의 기사라 불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지금 세상이 그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 여신의 반려, 인중신(人中神).

손을 쓰지도 않고 빛을 뿌려 대는 것만으로도 재앙에 가까운 벌레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정말로 그분이야.’

광휘의 기사, 타이니.

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신이 아닌, 다른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가 지금 타이니의 표정을 자세히 봤다면, 신으로까지 추앙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끄응.”

생각보다 힘드네?

타이니는 이 상황이 곤란하기만 했다.

솔직히 초인급 한 마리가 껴 있다 한들, 이런 벌레 떼들을 소멸시키는 데에 이리 부담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까지도 절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라면 스스로 부여한 한 가지 조건 때문이었다.

‘형태를 남긴 채로 살살 쳐 죽여야 한다니. 평생 해 본 적 없는 걸 벌레를 상대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솔직히 제 주군과 떨어져 있는 벌레 떼 정도야 그냥 영혼살로 몰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들도 인어족처럼 저 수많은 영혼이 서로 연동되어 있었다.

쳐 죽이는 것은 몰라도, 그저 영혼의 무게감만으로 눌러 죽이는 영혼살은 안 먹힌다는 의미.

‘어쩌면 마계의 군단은 모두 영혼살에 대한 대비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는 것일지도…….’

이제 인류도 단체 스킬이나 성물, 마법 등의 힘으로 비슷한 권능을 쓰기도 하니, 마족들에게 그것이 기본 옵션이라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이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제엔장!!”

우우우우웅.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노을빛 오러의 그물이 사방으로 빠져나가려는 벌레 떼들을 억지로 잡아 두는데.

이대로 오러를 압축시켜 몰살하는 것도 시간만 좀 걸릴 뿐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타이니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금 하고자 하는 방법에는 저 벌레들의 사체가 필요했으니까.

“너넨 마계의 존재니까 추위에는 좀 더 강하겠지?”

타이니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노을빛 오러가 한순간에 푸른 냉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체만 남겨라.’

속성 변환.

오러 성질 변환, 얼음.

하늘을 뒤덮는 얼음의 감옥.

번쩍.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산 전체를 휘감고 있던 오러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더니, 그 안에 갇혀 있던 마충들의 생기를 순식간에 앗아 가는 얼음 폭풍이 불어닥쳤다.

마치 8서클 대마법 블리자드를 연상하게 하는 냉기의 폭풍.

아르곤을 비롯한 마도사들이 보았다면 기겁할 만한 광경이, 그의 손안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위이이이이잉!

찌르르르르.

오러의 그물에 갇혀 있던 벌레 떼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얼어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드드드드득.

“하 씨, 그래도 절반인가.”

얼어붙은 벌레들의 사체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며, 타이니는 입맛을 다셨다.

날개나 몸통이 얼어 터져 버려서 ‘재활용’하지 못할 벌레가 생각보다 많아 보여서 아쉬운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지.’

타이니는 다시 벌레들의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번엔 오러와는 전혀 다른 힘을 끌어 올렸다.

우우웅.

‘잘돼야 할 텐데.’

얼마 전 질투를 때려잡고 얻게 된 그 권능의 일각.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질투하여 죽음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죽음의 군주의 권능.

발동하는 것조차 카르마를 조금 소모하지만, 그조차도 효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정할 만큼 대단한 권능이 그 순간 발휘되었다.

“다시 날아올라라, 벌레들아!”

위이이이잉!

타이니의 손짓에 따라, 죽어 있던 마충들 가운데 절반이 눈에 다시 붉은빛이 돌아오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뭉쳐서 너의 동족을, 특히 여왕 벌레를 죽여라. 몸을 불태워서라도!]

찌르르르르.

위이이이이잉.

그 명을 받들겠다는 듯 호응한 ‘언데드’ 벌레 떼들이 그가 생각한 좌표를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생전에 비해 더디고 느렸지만, 어차피 예상했던바.

타이니는 그 벌레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한 번 성공했으니, 다음에는 더욱 편해질 것이다.

한 무리를 처리하는 데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갈수록 그 시간은 줄어들 것이며.

최종적으로 그리 오래지 않아 대륙에 퍼진 모든 여왕 벌레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곧 복귀한다. 조금만 버티라고들.’

타이니는 잠시 동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여왕 벌레가 있는 좌표를 인식하고는 허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아우우우우우!

노을빛 유성이 뿌리는 하울링을 따라, 대륙 곳곳에서 재앙을 일으키던 벌레 떼들이 뿌리 뽑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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