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이런 게 가능하다고?
‘좋아!’
상황이 급해 보이길래 그대로 정령 합신&유성 떨구기를 발동했는데.
그것을 알아챈 검제가 실로 적절한 타이밍에 영역 동조를 일으키며 절기를 사용했다.
자신을 향해, 지상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는 적들.
반대로 더욱 무거워지며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몸.
‘……오랜만이군.’
전생에 글러터니의 공세를 막아 내고 한순간 녀석을 비틀거리게 만들기까지 했던 검제의 절기는, 현생에서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자연히.
번쩍.
콰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릉.
그 결과 또한 전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무너진 성벽 앞에 엄청난 크레이터가 파이며 대량의 흙먼지가 하늘 높이 솟구치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온통 흔들렸다.
“영감님, 좀 쉬십쇼!”
냅다 고함을 질렀지만, 목소리가 굉음에 묻히자 타이니는 같은 말을 영파로 다시 전할 수밖에 없었다.
[쉬어요, 영감님. 이젠 내가 맡을 테니.]
그리고.
우르르르릉.
퍼져 나가는 여진을 느끼며 혼란에 빠져들던 인어족들은.
“크륵!?”
“크롹!?”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저벅. 저벅.
이내 흙먼지가 서서히 내려앉으며 드러난, 움푹 파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타이니의 모습을 주목했다.
“크락투스!!”
“크롹!”
눈이 벌게진 인어들이 다시금 그를 향해 돌진해 오는데.
바다 위에서부터 해안가까지 빽빽이 모여들어 시야를 가득 채운 인어족의 군세도 타이니를 긴장하게 하지는 못했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후 얻게 된 심즉살(心卽殺), 즉 영혼살의 권능은 이상하게도 인어족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뭐, 애초에 권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힘은 아니지. 거대한 영혼이 수준 이하의 영혼을 깔아뭉개는 것뿐이니까.’
그 이유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상관은 없겠지.’
당장은 격이 오른 자신의 전투력을 점검해 보는 것이 먼저였다.
‘하나씩 시험해 보자.’
오러마스터가 된 이후 처음 치르는 전투이니만큼, 오히려 기대감까지 들었다.
“합!”
기합을 넣는 순간, 그의 몸을 은밀하게 감싸고 있던 노을빛이 거대한 구체가 되어 무너진 성벽 전체를 감싸 안았다.
우우우우웅.
“크락투스!”
“크락!”
쾅. 쾅. 쾅!
달려들던 인어족들이 거침없이 공세를 퍼부었지만 노을빛 보호막은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쓸 만하네.’
철신갑에 동대륙의 호신강기를 더해 발전시킨 방어 기술.
거기에 무지막지한 마나를 쏟아부어 성벽을 덮을 정도로 크기를 늘렸는데도 에너지 소모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소모되는 즉시 도로 채워지고 있었다.
우웅.
비로소 완성된 불굴의 권능이, 그가 전력을 다해 소모한 마나를 너끈히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타이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곧 보호막을 거둔 채로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오러 신경망 전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노을빛 오러가 그의 영역 전체를 타고 흘렀다.
이것은 본래 자신보다 훨씬 빠른 적을 상대할 때 순간 반응 속도를 늘리기 위한 기술이었지만.
지금처럼 다수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제법 쓸 만했다.
휘릭.
“크……!”
쾅!
달려들어 오는 인어족에게서 빈틈을 포착한 그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고.
그 속도 그대로 녹턴을 휘둘러 적의 몸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그러다가 사방에서 빈틈없는 공세가 쏟아져 오기라도 하면.
‘몸으로.’
꽝!
우르르릉.
“끄아……!”
몸통 박치기로 인어들을 무기와 함께 날려 버리고 빈틈을 열어 젖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은 그대로 거대한 워해머가 후려쳐 버리니.
꽝!!!
콰콰콰콰쾅!
녹턴을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는 타이니의 몸은 잔영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인어족들을 학살해 갔다.
이전에 비해 훨씬 빨라진 움직임.
무념무상으로 본능을 따라 움직이는데도, 사방을 둘러싼 인어들은 그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다만 인어족의 전열을 한순간에 뻥 뚫어 버리듯 날려 버린 무력도 타이니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뭐, 얘들이 너무 약하니 어쩔 수 없지.’
슬슬 자신을 지나쳐 다시 성벽을 파고들려는 인어족도 보이고 있으니.
‘오러 신경망은 다음 기회에, 좀 강한 놈들 상대로…….’
그것을 제외해도 아직 시험해 볼 것은 많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타이니가 녹턴을 휘두르다 말고 한쪽 손을 쭉 뻗어 내자.
“크롹……!”
그 틈을 노려 전면에서 창을 찔러 내던 인어족이 그대로 무기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머리는 타이니의 반대쪽 손에 의해 구겨졌다.
콰득.
“끼……!?”
꽈아아앙.
이내 타이니는 가볍게 빼앗은 인어족의 장창을 전면을 향해 그대로 집어 던졌다.
쾅!
번쩍.
그 가벼운 움직임에 비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쏘아져 나간 장창은 곧.
콰직.
콰드득.
그 직선거리에 있던 인어족들을 종이 인형처럼 일자로 관통하며, 기다란 빈 공간을 만들어 냈다.
투뢰. 대미궁에서 개발한 사신투의 응용 수법이었다.
던져진 장창은 그야말로 노을빛 번개가 되어 전면의 모든 적을 관통하더니.
콰아아앙!
끝내는 바닷속에서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터져 나갔다.
투창 한 번에 적어도 천 단위가 넘는 인어들이 피떡이 되어 버린 것.
“크락…….”
타이니를 향해 돌진해 오던 인어족의 군세가 한순간 주춤하는데.
“안 와? 그럼…….”
쾅. 쾅.
파아아아앙!
고개를 갸웃한 타이니가 허공에 연신 녹턴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흔적을 따라 노을빛 오러가 머무는가 싶더니.
“……내가 간다!”
쾅!
콰콰콰콰콰콰콰콰.
마지막으로 허공에 휘둘러진 녹턴이 주변의 대기를 무섭게 빨아들이며 순식간에 엄청난 높이의 토네이도를 생성해 냈다.
폭풍 휘두르기.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격하의 다수를 처리하기 위해 괴력의 기사가 만들었던 수법이, 이제는 노을빛 오러를 휘감은 채 하늘까지 닿은 죽음의 폭풍이 되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크롹!!!”
“크롸[email protected]#!$!”
“끄아……!”
놀란 인어족들의 목소리마저 그 노을빛 토네이도가 만들어 낸 폭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콰드드드드드득.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이내 핏빛이 섞이기 시작한 파멸의 폭풍은 그대로 인어족의 군세를 휩쓸며 바다까지 돌진해 갔다.
“꾸륵[email protected]#!!”
“끄[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콰콰콰콰콰콰.
‘어?’
노을빛에 핏빛이 섞여 휘몰아치던 토네이도가 바닷물의 푸른빛까지 빨아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 위의 온갖 구름을 끌어들이며 자체적으로 먹구름까지 생성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르르르릉.
번쩍.
꽈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어느 순간 에낙센의 앞바다에 벼락과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면서 인어족 군세의 일각이 단숨에 무너졌다.
“어…….”
이거, 힘을 좀 많이 쓰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되나?’
기술을 사용한 타이니마저 헛웃음이 나오는 결과.
비록 오래 유지되진 못하고 금방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더는 단순한 광역기로 볼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폭풍……이네.’
당사자가 그럴 정도니.
성벽에서 그의 활약을 지켜보던 연합군의 정예들과 에낙센의 수비 병력들은 그 광경을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미친…….”
“누구야?”
“덩치가…… 광휘의 기사?”
“머리가 하얀데?”
“그거야…….”
“기사가 아니라 마법산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일반 기사나 병사들이 아니라, 스스로 타이니의 경지에 그나마 다가섰다고 생각하던 검제였다.
‘아무리 오러마스터가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권능에 대해, 특히 불굴의 권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는 가늘게 떨리는 눈으로 멍하니 타이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타이니는, 그것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제 시작이다, 이것들아.”
살벌하게 웃은 타이니의 몸이 일순간 일곱 개로 ‘분열’되었다.
오러 분신, 최대치.
“전부 박살 내 주마!”
콰득.
타이니 일곱이 동시에 고함을 지르며 녹턴을 휘두르더니.
좀 전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7개의 토네이도가 일제히 전면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롸……?”
얼어붙은 채로 타이니와 분신들이 허공에 망치를 휘두르는 것을 지켜보던 인어족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인어족들 전부가 그 일곱 개의 폭풍의 범위 안에 들어온 뒤였다.
“끼엑[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릉.
노을빛 오러를 실은 토네이도 일곱 개가 사방을 초토화시키는데, 바람의 움직임만으로도 대기가 떨리고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우르르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콰.
번쩍.
쾅!
바다 위에 가득했던 인어들마저 그 폭풍에 휩쓸려 갈려 나가기 시작하니.
거의 일주일 가깝게 인어족의 대군에 시달려 온 에낙센이 한순간이나마 오롯이 인간의 땅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한 명의 인간이 만 단위의 군대를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신화적인 광경.
콰콰콰콰콰.
“내가, 꿈을 꾸나……?”
“나도 그런 듯…….”
누군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지켜보던 이들의 현실감을 앗아 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장관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타이니는, 그 와중에도 바닷속에 득실거리는 기파를 느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너무 많이 번식해서 여신이 제한하려 했다더니……. 대체 몇이나 있는 거야?’
오러 분신까지 동원한 폭풍 휘두르기의 7중첩도, 바닷속에 가득한 인어족들만큼은 모두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건 그거대로 방법이 있었다.
우웅.
‘분신 여섯에까지 동시에 전력을 투자하는 건 무리인가.’
본신뿐만 아니라 여섯 개의 오러 분신까지 동시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불굴의 권능에도 살짝 무리를 준 듯했지만.
잠시간의 공백 뒤에 다시 마나는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가끔 사용하는 결전기로는 쓸 만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정령 합신 상태에서 폭풍 휘두르기가 이 정도 소모량이라면…….’
스스슥.
한순간 타이니의 분신 여섯 중 넷이 사라졌다.
“타이니! 무리했다면 쉬어……”
그 모습을 본 검제가 버럭 고함을 지른 순간.
우우웅.
노을빛 오러에 뒤덮인 세 명의 타이니가 커다란 유성이 되어 바닷속을 향해 쏘아져 나아갔다.
“……라. 어? 쉬어야 하는데?”
검제의 멍한 목소리를 뒤로 한 채로.
세 줄기 유성은 그대로 해수면에 폭발을 일으키듯 바닷속으로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하늘 위로 솟구치는 물보라.
그 새하얀 물결 위로, 피로 물든 인어족의 사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번쩍.
콰아아아아아앙!
바닷속 깊은 곳에서 노을빛이 연달아 번쩍이며 굉음 섞인 물보라를 만들어 냈다.
내성벽 안쪽에서도 보일 정도로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물보라가 마치 해일처럼 에낙센의 항구를 덮치는데.
“아무리 초인이라도 이게……?”
“되는 거야?”
여태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병력들은 모두 붉은빛이 감도는 그 해일(?)들을 그저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 중 일부의 힐끗거리는 시선들이 검제를 향하는데.
그 뜻을 당사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안 되지. 초인이라고 다 저런 게 될 리가 있나.’
하지만 그럼에도 검제는 왜인지 흐뭇하기만 했다.
‘……흐. 진짜 괴물이 됐구나, 타이니.’
대놓고 제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저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만든 기술의 기반에는 자신이 전한 발렌티아의 비전이 있을 테니까.
스승의 심정으로 뿌듯하기도 했고.
‘아무한테나 막 대하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은혜는 아는 놈이다.’
이 전쟁이 끝난 뒤 타이니가 발렌티아에 가져다줄 명예와 이득이 자연스레 예상되어서 즐겁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 전쟁의 뒤? 뒤를 생각한다고? 내가?’
아득하게만 보이던 마계 대전의 끝을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에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실로 희망에 찬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저 힘이면 가능할지도…….”
중대한 부담과 끝없는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던 이 전쟁의 끝이,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검제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가, 그 전장을 멀리 구름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검은색에 가깝게 살이 탄 듯한 금발의 남자, 마인 장군 그랜달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타이니의 무력을 보며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저게 과연 전부 무기의 힘일까?’
그는 크룩스를 쥔 손을 새삼스레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새겨진 ‘그분의 증표’.
저 괴물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신의 무기를 회수하기 위한 증표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