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인어 여왕 vs 5대 기사
- 신살격(神殺擊).
- 무슨 뜻이냐고? 신이라도 죽일 수 있는 일격.
- ……어. 좀 오만하긴 했는데. 그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이상하냐?
- ……아 씨. 그럴까 봐 코멧 스트라이크(Comet Strike)라는 평범한 이름도 지었다, 뭐.
피식.
타이니는 동료들에게 코멧 스트라이크를 설명하던 때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저릭과 실버 팽이 함께하는 3인 합격기.
현생에서는 처음 써 보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으니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눈앞으로 다가온 거인의 삼지창이 전혀 두렵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샛노란 전격과 바람의 꼬리를 단 빛나는 혜성이, 푸른빛을 두른 거인의 삼지창과 그대로 충돌했다.
하늘을 꿰뚫으려는 듯 솟아오르는 여왕의 푸른 오러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샛노란 혜성의 충돌.
그것은 곧 엄청난 충격파를 뿜어내며 사방을 뒤집어엎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바닷물이 사방으로 밀려나며 일순간 인술라 근해의 바닥이 드러났다.
점차 잔잔해져 가던 해수면이 그에 따라 다시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사방으로 수십 미터 높이의 파도, 아니 해일을 일으키는데.
합동 기술에 힘을 보탠 저릭과 실버 팽이 충격파에 튕겨 나가 인술라 구석에 간신히 착지할 때.
꽈아아앙!
충돌의 결과가 그제야 모두의 눈에 드러났다.
콰콰콰콰.
하늘 높이 치솟는 노을빛 유성.
그리고.
파아아아앙!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수면 아래로 파고드는 여왕의 거체.
힘겨루기 끝에 먼저 방향을 튼 것은 여왕이었다.
[감히, 감히, 감히!! 내 혼이 온전했다면 단번에 찢겼을 놈이!!!]
콰콰콰콰콰콰콰콰.
바닷물을 뚫고 다시 올라온 여왕이 다시 살의를 내비치자 온 바다가 요동쳤다.
그리고 그 살의는 이번에는 그 아군들을 향해서도 움직였다.
[네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러자 왜인지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나태의 장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력 분석이다. 뭐, 이젠 우리도 움직여야겠지. 여왕이 최강자를 맡는 동안, 우린 다른 인간들부터 손볼까?]
[하!]
그랜달의 영파에 다른 나태의 장군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하늘 높이 솟구쳤던 타이니는 인술라에 있는 동료들 곁으로 떨어져 내렸다.
“타이니!”
“타이니 경!”
동료들 모두가 그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창백한 안색의 타이니는 한 바가지는 될 법한 피를 쿨럭하고 토해 냈다.
불굴의 권능. 그 한계를 완연하게 넘어 버린 충격을 받은 결과였다.
[흐. 저거, 신이라는 이름값 하는데? 안 되겠어. 다 같이 갑시다.]
쿨럭. 쿨럭.
연신 피를 토해 내면서 핏물이 흥건한 이빨을 드러내는 타이니.
“좋다!”
“암!”
“그래야지!”
그의 영파에 초인들 모두가 다시금 살벌한 얼굴로 기세를 끌어 올리는데.
“주민들은……?”
“쿨럭.”
[아르곤은 내버려 둡시다. 안 그래도 이 군단 스킬의 핵인 것 같은데, 움직이면 안 되지. 저놈들도 있으니.]
무슨 속셈인지 바다 위에서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나태의 장군들을 가리킨 타이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 더 남아요. 무기 영감하고 드워프 영감. 여길 지켜 주세요.]
이어진 그 말도 대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방어를 위해 남는다는 명분이 주어지긴 했지만, 지금 언급한 둘 모두 아직 오러익시더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동료들이었으니.
자존심이 상한 그리드와 하이넨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거기다.
“나도 남겠소. 가져온 세 개의 성물을 저 마족들을 상대로 집중시키면 효과를 좀 볼 것 같으니, 놈들 상대로는 내가 적합하오.”
역시 아직 오러유저이지만 성자급 신성력을 가진 갓 핸드조차 그리 말하니, 더는 반론할 여지도 없었다.
잠시 갓 핸드를 바라보던 타이니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금 모두에게 영파로 뜻을 전했다.
[여왕의 공격은 내가 다 막습니다. 그사이에 반격해요.]
그리고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생각지도 못한 주문까지 덧붙였다.
[아르곤! 군단 스킬을 나한테도 적용해!]
[아니, 넌 이 스킬의 핵심 모르잖아!?]
검제가 다급히 태클을 걸었지만, 타이니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보탰다.
[몇만 명이 시범을 보여 주고 있는데 못 배웠을까 봐?]
- 당연히 몰라야 정상 아닌가?
모두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동료들 모두가 이미 타이니의 힘에 관해서 견적을 내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라.
이내 안색이 창백한 아르곤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타이니는 꽤 강력한 힘이 자신의 전신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길게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호라. 이러면 더 희망이 생기겠어. 이런, 갑시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여왕과 나태의 장군들의 모습이 들어오는 순간.
[바다에서의 전투는 우리가 불리…….]
[날 믿어!]
검제의 영파를 무시한 채, 타이니는 여왕을 향해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잡것들이 감히!!!]
꽈아아아아앙!
다시금 엄청난 충돌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문 검제가 그대로 영역의 힘을 끌어 올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채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데.
[받아들여!]
타이니의 영파와 함께, 그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기묘한 힘이 깃들었다.
마치 바닷물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날 믿으라는 타이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대륙 12대 기사 중 최강에 속하는 5인방과 여왕의 결전이 시작되었다.
* * *
꽈르르릉.
[이 지겨운 것들이!!]
여왕의 짜증 섞인 영파를 들으며 타이니는 이를 악물었다.
적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쪽의 불리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벼락과 바다. 두 가지를 다루는 여왕의 힘은 그야말로 끔찍할 수준이라.
여왕은 5인방의 합격을 바다와 벼락의 권능과 오러로 모조리 정면에서 받아치고 있었다.
그중에서 치명적인 공격은 타이니 자신이 모두 막아 내고 있음에도, 다섯 초인은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왕이 코멧 스트라이크에 부딪쳐 왔을 때만큼 강력한 공격을 연달아 쓰지는 않는다는 것.
즉 불굴의 권능으로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내상을 입힐 만한 공격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그나마도 공세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보니 위안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꺼져라!!!]
꽈르르르릉.
호통 한 번에 천지를 뒤집는 벼락이 내리꽂히고 해일이 일어나며, 그 사이로 솟구친 푸른 오러가 사방을 난도질했다.
그 모든 광경을 보면 여왕이 힘이 아까보다 상승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타이니의 감각은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해일에 큰 힘을 쏟아부었다가, 이제야 원래의 힘이 회복되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감히 신을 자처했던 지상의 생물이자, 여신조차 바로 죽이지 못하고 일곱 갈래로 봉인시켜 긴 세월 동안 약화시키려 했던 적.
심지어 분체 둘을 소멸시켰음에도 이 정도라니.
[감히 너희가 신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꽈르르르르릉.
여왕이 쏟아 내는 힘은 정말 신이라 믿고 싶을 정도로 끝이 없어 보였다.
타이니가 기껏 만들어 낸 권능의 조각 바다의 왕은, 파도의 세례의 힘이 더해졌는데도 여왕의 권능이 동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상쇄하는 데에만 대부분이 소모되고 있었다.
[특히 너, 내 권능을 훔치고 대계를 무마시킨 짜증 나는 놈! 더는 파편에 연연하지 않겠다.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 주마!!]
스각.
쩌어어어엉!
[같잖은!]
여왕이 자신을 지목해 떠드는 사이 그 틈을 스쳐 지나간 검제의 붉은빛 오러 블레이드는, 적의 피부에 생채기만 남길 뿐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여왕의 몸에 생긴 상처는 그처럼 초라했다.
콰콰콰콰콰.
저릭과 실버 팽, 크롬벨이 쏟아 내는 공세는 솟구치는 파도와 쏟아지는 벼락에 모두 막히고 있었다.
그런데.
[타이니 경, 여왕의 혼이…….]
그 순간, 번개처럼 움직이던 크롬벨이 여왕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포착한 것 같았다.
혼.
그 단어 하나에 집중하고 나니, 타이니에게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보였다.
여왕이 그 얕은 상처를 회복하는 순간, 존재감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호오?’
아무리 얕은 상처라도, 오러를 씻어 내려면 그에 준하는 힘이 필요하긴 하다.
그랬기에 여왕의 혼이 흔들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 작은 상처를 회복하려고?’
그 생각에 빠져 있던 순간, 타이니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고.
[잡았다!]
여왕의 거대한 얼굴이 바로 그의 코앞에 나타났다.
‘큭!’
꽈아아아앙!
한순간에 튕겨 나가는 몸.
거대한 삼지창의 공격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진동시켰다.
불굴의 권능의 한계를 넘어서서 내장이 울렁이는 충격이 다시 한번 전해진 것이다.
그 직전에 사방에서 쏟아진 동료들의 공격이 아니었다면, 여왕의 창이 그대로 배를 꿰뚫었을 것이다.
‘오러마스터만 되었어도.’
새삼 다시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 충돌은 다시 한번 적의 빈틈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타이니 경!]
[봤어!]
여왕의 후방을 급습하는 크롬벨과 한순간 시선이 마주치는데.
서로가 똑같은 걸 인식했다는 사실을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이니가 알아낸 적의 약점을 동료들에게 즉시 전했다.
[여왕의 혼이 불완전하다! 치명상을 입힐 생각은 하지 말고, 얕은 상처를 계속 입혀! 여왕의 혼이 부서지고 있다!]
분체 둘이 소멸된 후유증일까, 그 대해일이 무너진 것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작은 상처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격을 소모해서 억지로 치유하는 거예요!]
모자랐던 타이니의 설명을 크롬벨이 보충하는 순간.
저릭과 실버 팽, 검제의 눈빛도 일제히 바뀌었다.
그리고.
파바바박.
그 순간부터 초인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합!”
저릭이 온몸으로 삼지창을 튕겨 내는 순간.
“우와압!”
실버 팽이 쏟아 낸 전격이 여왕의 전격을 상쇄하며 흩어지고.
귀신처럼 소리도 없이 여왕에게 접근한 검제의 찌르기가 여왕의 몸을 보호하는 해일을 전면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사이 뒤쪽에서 빠르게 쇄도한 크롬벨의 칼날이 여왕의 등줄기에 가느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스각.
큰 힘을 싣지 않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서 남긴 작은 상처.
만약 치명상을 입히고자 힘을 모았다면, 여왕의 방어막이 진작에 회복되어 크롬벨의 검격을 막아 냈을 것이다.
그저 작은 상처를 내기 위해 동료들의 힘을 지나치게 소모한 듯한 일격.
하지만 그 순간, 그 상처가 급속히 회복되면서 여왕의 기파 전체가 살짝 흔들리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였다.
그리고 미미하지만, 그만큼 여왕의 힘이 줄어든 것도.
‘빙고.’
그 틈을 노려, 여왕의 앞으로 타이니가 뛰어들었다.
[이것도 어때!]
꽈아아아아앙!
[잡것들이!!!]
우르르르르릉.
신경질적으로 솟구치는 해일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벼락, 그리고 푸른 오러의 소용돌이가 한순간 여왕의 주변 백여 미터를 완벽하게 휘어 감았다.
그 기세에 튕겨 나간 일행은, 그다음 순간 다시 이를 악물며 바다를 박차고 여왕을 향해 돌진했고.
다시금 공세를 퍼부어 방어벽을 뚫어낸 뒤 얕은 상처를 입히는 전략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된 후.
스각.
검제의 붉은 오러가 이번에는 여왕의 팔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었고.
타이니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여왕 역시 그들의 전략을 알게 된 것 같았다.
[흐. 그래. 과연 제법이야. 그사이 내 상태를 짐작했다? 하지만…….]
풍덩.
그 순간 여왕은 갑자기 바닷속으로 사라지더니, 인술라의 해안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러면 어떨까?]
콰아아아앙!
“으아아악!”
왜인지 소극적으로 나오는 나태의 악마급 마족 열다섯을 상대로 분전하던 인술라 방어진의 일각이, 여왕의 등장에 한순간에 무너졌다.
“꺄하하하하하하하!”
인간치고도 미형으로 보이던 여왕의 입 안에 가득한 칼날 같은 이빨들이 피에 흥건히 젖어 드는 모습이, 지켜보는 모든 이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너희 마족, 나를 도와라!]
인어족의 여왕은 그 상태로 전선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균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나태의 마족들을 부르기 위해 벌인 일인 것처럼.
그리고 그 지시에 따라 마족들이 여왕 곁으로 모여들자, 연합의 전선이 한순간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그런데.
[건방진 것들아! 과연 너희들이 이 인간들을 다 보호할 수 있을까!?]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요동치기 시작한 주변의 마나가 여왕의 몸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까지도 모조리 흡수되는 듯했다.
그 상황에서.
[오라, 나의 친위대여!!]
이어진 고함 소리에 갑자기 300에 이르는 인어족들이 바닷속에서 튀어나왔다.
여태까지 봐 왔던 것들와는 달리, 하나같이 빛나는 무장을 몸에 걸친 채 옅게나마 오러까지 뿌려 대는 인어족들.
다행이라면 그 인어족의 정예들이 바로 인술라 쪽으로 돌진하지는 않는다는 것.
놈들은 여왕의 주변을 철통같이 호위하는 듯한 나태의 마족들의 주위를 둘러싸기만 했다.
그에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을까.
“신이시여!!”
인술라의 결계 안에 있는 갓 핸드가 성력을 모아 집중시킨 성물의 힘이, 먼 거리를 격하고 균열 근처에 있는 그들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마족들의 인상을 조금 찌푸리게 했을 뿐, 적들은 아예 아무런 타격조차 받지 않는 듯했다.
동시에 그들의 주변으로 용솟음치기 시작하는 회오리들.
콰콰콰콰콰콰콰콰.
그저 여왕이 준비하는 무언가의 여파에 불과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기세가, 인술라의 일각을 휘감았다.
여기서 더 시간을 주면 엄청나게 불길한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광경이었지만.
타이니는 그 순간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어이가 없네…….”
대륙에 상륙한 칠죄종의 정보가 마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저놈들의 지금 행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너희가 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감히 내 앞에서 아예 한군데로 모여들어서, 방어에 치중한다고?
‘나한테 이렇게 긴 시간까지 줘 가며?’
타이니의 살벌한 미소 속에서, 녹턴에 모여드는 노을빛이 점차 진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