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화. 인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래.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중 누구도 곧바로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 하늘도 아닌 바다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하…….”
[지금 어부 연합이 근방 해역을 수색하고 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검제의 말에 타이니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바닷속으로? 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니 누군가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인간의 형태를 한 악마급 마족들 스물한 개체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고 하니, 혹시나 그게 유인책이었다면 곧바로 따라 들어간 이들이 큰 피해를 봤을 테니까.
‘뭐가 어떻게 돼 가는 거야.’
추측되는 것이 없으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제나스가 나섰다.
“각하, 혹시나 예상할 수 있는 이유라도 없습니까? 어부 연합에서도요?”
[전혀. 굳이 따지자면 강림 직전에도 바다에 마물들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는 건데, 정보가 너무 부족해.]
“…….”
[티네스 경이 황실 마탑에, 아프만 경이 현자의 탑에 연락해서 고대의 자료를 다시 한번 찾는 중이야. 그때까지 우리는 일단 이쪽 균열을 지키기로 했다. 수호자님은 그쪽으로 가겠지만…….]
답답한 마음은 아마도 사건을 겪은 이들이 더할 것이라.
통신구 속 검제의 얼굴은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어, 말을 하는 내내 표정 변화가 조금도 없을 정도였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놈들이 대륙이나 다른 쪽에서 나타나 분탕질을 칠 가능성은요?”
[그 또한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소수의 강자들을 활용한 기습 작전. 하지만 그 범위가 대륙 전체라면, 어차피 나타날 곳을 예상해서 방비하는 것은 무리야.]
“오러익시더급 스물한 명이 갑자기 어디 왕궁이나 황궁에 나타나 살육을 벌일 것도 각오해야겠군요.”
[그래. 그래서 각 황궁과 왕궁에 경비 병력을 늘리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수호자님과 크롬벨 경이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하다가 신호가 오는 즉시 움직이기로 했다.]
“아, 그래서…….”
[그래. 수호자님이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타이니는 제나스와 검제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갑자기 마족들이 왜 이러는 거지?’
언제나 당당하게 등장해서 병력을 쏟아 내던 것들이 갑자기 꼼수를 쓴다.
‘놈들이 또 다른 인간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세상의 전력을 드디어 경계하기 시작했거나, 아예 다른 노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방어하는 측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숨어든 스물한 개체의 마인족을 찾자고 대륙 전체를 수색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균열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그러니 인술라에 동료들을 남아 있게 한 검제의 판단은 지금 상황에서 최선인 것 같았다.
타이니가 초조함에 입술을 질겅이는 사이, 제나스와 검제의 대화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동부 해안의 요충지에 배치되는 연합군 병력에도 경계 사항을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카룬 쪽에 주둔하기로 한 최정예들에게도.]
“예. 지시 사항 전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각 왕국에서 다시 병력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을까요?”
[자국 병력으로 악마급 스물한 개체를 막을 수 있다면 그러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타이니.]
“음? 왜요?”
[만약 놈들이 대륙의 어느 곳에서 뭉쳐서 나타난다면, 그 화력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너와 크롬벨 경뿐이다. 부담스럽겠지만, 한동안은 상시 대기 상태로 긴장하고 있어 다오.]
“……당연한 소리를 하십니까. 남의 일도 아니고.”
[그래. 믿겠다.]
검제의 그 말을 들으면서 타이니는 머리 굴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자신의 역할은 인류 연합군의 선봉장.
‘마족들이 나타나는 족족 대가리를 깨 버리면 그만이다.’
거기에 더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면.
“일단 전 지금부터 명상 상태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나 세상의 이면을 흔드는 충격이 느껴지면 곧바로 반응할 수 있게.”
[……그게 무슨 소리냐?]
“강림이 일어날 때처럼 세상의 균형을 깰 정도의 충격이 발생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겠다는 겁니다.”
[그런 게 된다고?]
그 말에 통신구 너머의 검제의 눈이 커지는 순간, 제나스와 루나 역시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보탰다.
“큰 기대는 마십쇼. 이 근처가 아닌 이상, 스물이 넘는 그 악마급 놈들이 한 번에 전력을 쏟아 내야 느껴질까 말까 할 테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걱정을 덜 수 있겠군.]
검제의 말에 타이니는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막막한 상황에서 그나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루나, 티나가 오면 말해 주고 그 외에는 나 찾지 마. 집중 유지하게.”
타이니는 그 말을 끝으로 멋지게 돌아서려 했는데.
“밥때는?”
루나의 그 물음에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 그때만 잠깐 좀.”
“응.”
제나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린 그 순간부터.
마족들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륙 전체에 전해졌다.
스물이 넘는 악마급 마족들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왕궁을 중심으로 경계 태세 강화.
“또, 또 무슨 전쟁인 거야?”
“갑자기 어디서 마족이 튀어나올지 모른대.”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나도 몰라. 일단 애들 단속이나 잘하자고.”
마계 대전이 시작된 이래로 병사들의 희생은 무수히 발생해 왔지만, 일반 대중들은 연합군의 선제적 대처 덕에 큰 소란 없이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었는데.
그런 대중들조차 이번에는 달라진 분위기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사실, 요새 사고도 많잖아.”
“성내에 주둔하는 병사들도 적다 보니까 범죄자들 잡기도 힘들어지고.”
“변방은 난리도 아니래.”
웅성웅성.
점차 세상이 소란스러워지던 시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마족들의 행동에 관해 가장 먼저 실마리를 잡은 것은, 남해 어부 연합의 본거지 인술라에 있던 초인들이었다.
* * *
무기력한 재앙을 코앞에 맞닥트렸을 때,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나온 말.
-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
하지만 여신에게 한없이 가까운 강력한 신성력을 가진 초인들에게 있어, 그 말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크롬벨 경. 신탁을 위한 기도, 가능하시겠습니까?”
“……부활한 이후로 제게는 여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저기 갓 핸드 경이 하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최근에 중앙 신전에 다녀온 뒤로 성인급 신성력을 가지게 되셨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갓 핸드 경?”
그 누구보다 신성력에 능통한 용사, 크롬벨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갓 핸드에게 몰렸다.
그리고.
“……운 좋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그 대답에 모두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성기사, 갓 핸드는 위명을 떨친 오랜 세월 동안 실력이 변함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달리 말하면, 그간 발전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혹시 그때 여신의 목소리도 들으셨습니까?”
“……어렴풋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만, 명확하지 않습니다.”
반 박자 늦은 대답. 그 말에 검제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교황이나 가끔 듣는다는 불확실한 신탁.
최근에 그런 신탁을 들은 성직자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은 모두에게 희소식이었으니까.
“그럼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갓 핸드 경.”
“아시겠지만, 신탁은 인간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롯이 그분의 뜻이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막막한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요.”
검제의 그 말에 갓 핸드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그런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고정될 수밖에 없는 속죄자가 갑자기 변화를 맞이했다. 그런데 여신의 목소리를 못 들었다? 그럴 리가?’
8단계, 성자급 신성력은 여신의 의지가 온전히 임하지 않는 한 얻을 수 없는데?
크롬벨은 그 의심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최근 들어 많이 덜해졌다고는 하나, 마기로 인한 폭력적인 충동과 살의 등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상태였으니.
마인드 킬링이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심중에 드는 의심을 객관적이라 판단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성직자로서 여신의 목소리, 신탁을 들었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니 당연히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속죄자의 반 박자 느렸던 대답이 마음에 걸렸기에, 어쩐지 찜찜하기도 했다.
‘일단 지켜본다.’
크롬벨은 의심 어린 시선을 억지로 거두며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 역시 기도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응답하지 않는 자신의 주. 그 목소리를 혹시나 들을 수 있을까 해서.
* * *
“전능하신 나의 주께…….”
남해 어부 연합의 배려로 독실을 제공받고 기도를 드리길 어언 3일째가 되던 어느 순간.
‘드디어…….’
갓 핸드는 기도하는 내내 부여잡고 있던 성물, 권갑을 통해 옅은 기운이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느꼈다.
우우웅.
“아아, 여신이시여…….”
자신도 모르게 환희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에 전율이 돋고, 영혼이 천계로 승천하는 듯한 고양감이 느껴졌다.
처음 성물이 내려왔을 때처럼 신성한 파동과 함께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 오래된[email protected]$, 봉인. 바닷속. @$반역자. 마족[email protected]# 막아야[email protected]$%
희미하고 잡음 섞인 불분명한 목소리.
그것은 분명히 여신의 목소리, 신탁이었다.
한순간의 열락이 끝난 직후, 갓 핸드는 다시금 차가워진 이성으로 자신이 들은 목소리를 곱씹었다.
다행히 해석은 어렵지 않았다.
“바닷속의 반역자, 봉인……. 마족들이 그것을 풀려고 한다?”
하지만 또 헷갈리기도 했다.
바닷속의 반역자라니? 봉인이라니?
얼핏 무언가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그 온전한 뜻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쾅!
“신탁이 내려왔소!”
갓 핸드는 문을 박차고 나가, 인류 연합의 초인들과 남해 어부 연합의 간부들을 전부 소환했다.
“바닷속의 반역자……?”
연합의 초인들 대다수가 전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울 때.
“아!?”
실버 팽이 홀로 노란 눈을 크게 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인어족!? 여신에게 반기를 든 반역의 종족, 타락한 인류! 그들을 말하는 거 아니오?”
수인족이 감추고 싶어 하는 문화. 해양 생물의 태를 타고 나는 이들을 버리거나 죽이는 악습의 근거를 떠올린 그의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그 말에 마도사 아프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냥 전설 아니오? 머맨, 세이렌……. 그놈들은 그냥 몬스터지 않소? 서로 생긴 것도 다르고.”
그가 전설이 아닌 대륙의 일반적인 상식을 말할 때.
남해 연합의 간부, 아론이 반론을 제기했다.
“……그들도 언어를 씁니다. 거의 같은 단어를 중얼거리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뭐?”
대륙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 사실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데.
테헤논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아론, 그러고 보니 요새 머맨 나이트나 세이렌이 자꾸 하던 말이 뭐랬지?”
“때가 다가온다. 그분이 오신다……. 빌어먹을, 설마……!?”
그 순간 어부 연합의 간부들의 안색이 확 바뀌는데.
대륙의 초인들은 여전히 의문을 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인어족의 여왕!”
“뭐?”
“여신께 반기를 들고 스스로 또 다른 여신임을 칭했던 반역자들의 왕이 해저에 봉인되었다는 전설이 있어요!”
대륙에는 전해지지 않은 전승.
그것을 말하는 로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초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