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411화 (411/500)

411화. 남해 어부 연합

출렁이는 바다 위, 범선 하나.

그 선상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바다 아래를 바라보던 그을린 피부의 금발 거한이, 어느 순간 미간을 좁히며 고함을 질렀다.

“끌어 올려!!”

“하!”

해저 마물들이 기피하는 흑곰고래 가죽으로 밑바닥을 밀봉한 거대 범선에 올라탄 근육질 사내 중 절반이, 그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그물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물을 당기는 이들 바로 뒤에 붙어서, 저마다 투창이나 활 등의 원거리 무기나 창이나 할버드 등의 장병기를 꺼내 들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쿵. 쿵. 쿵.

거구의 사내들이 박자를 맞춰 가며 잡아당기는 그 거대 그물은 푸른 마나의 빛이 감도는 아티팩트였고, 그들의 손에 끼워진 장갑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새하얀 빛이나 푸른 빛을 전신으로 내뿜고 있었다.

대륙으로 나가면 기사단의 중추를 맡을 수 있는 속성 개화 수준의 인재들이, 이곳에서는 그물을 잡아당기는 인부에 불과했다.

그런 이들 백여 명이 합을 맞춰 잡아당긴 그물이, 이내 어마어마한 수량의 해저 생물들을 배 위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수확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캬아아악!”

사람 상체만 한 게가 입으로 녹색 가스를 내뿜고.

“크롸롸롸!”

5미터가 넘어 보이는 뿔 달린 거대 바다뱀이 전신으로 검붉은 번개를 뿜어내는 등.

그물에 걸린 해양 생물 중 반 이상이 흉폭하게 날뛰며 주변으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그물을 당기는 사내들의 행동은 언뜻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2열!”

“하!”

상황을 지켜보던 거한이 다시 고함을 지르자, 뒤쪽에서 대기하던 무기를 든 사내들이 그물에 걸린 마물들을 향해 일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콰드득.

“크롸!”

쾅!

“끼에에에!”

퍼버벅.

“끄르르르.”

마나를 실은 원거리 무기를 든 이들은 그물에 막 걸려 올라오기 시작한 마물들을 노렸고, 창과 같은 장병기를 든 이들은 선상에 올라온 마물들을 썰어 버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합을 맞춰 본 것이 아닌 듯, 그런 그들의 공격은 그물에 걸린 멀쩡한 물고기들을 건드리지 않고 오직 날뛰는 마물들만을 정확하게 공략해 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바다 아래에서 낡은 갑옷을 입은 인간형 괴물이 녹슨 방패와 삼지창을 든 채 뛰어올라 왔다.

타다다다당.

쏟아지는 투창과 화살을 낡은 방패에 두른 검은 기운으로 튕겨 내며, 일순간에 그물을 밟고 선상을 향해 뛰어오른 괴물.

“캬악! #@#$%!!!!”

그런 괴물의 삼지창 끝에서는 검고 파란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머맨 나이트!?”

“또?!”

“대장!!”

괴물을 본 사내들의 눈이 커지는 순간.

“봤다!!”

그 뒤에서 대기하며 사내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거한이 나섰다.

왼팔에 비해 유난히 굵어 보이는 오른팔. 그 손에 끼워진 푸른빛 장갑이 한순간 새하얗게 빛을 내더니.

콰아아아앙!

그가 들고 있던 창이 굉음을 일으키며 눈앞의 괴물을 향해 쏘아졌다.

마치 새하얀 번개가 배 위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모양새.

허공에서 하강하던 머맨 나이트의 작은 눈이 확 커지며 검은 기운이 방패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쾅!

콰드득.

그럼에도 거한의 투창은 그 방패를 뚫고 괴물의 왼팔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머맨 나이트가 허공에서 슬쩍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상체가 박살 나 버렸을 일격.

그리고 그 사실을 달리 말하면, 놈이 그 일격에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쿵.

“캬악!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알아듣기 힘든 괴성을 내뱉은 머맨이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어깨의 상처를 무시하듯 한 손으로 삼지창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귀찮게……!”

어느새 머리 위로 날아오른 금발의 거한이 그 두꺼운 오른팔로 머리통을 후려치기 전까지는.

쾅!

바다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 중 하나인 6단계의 마물, 머맨 나이트의 머리가 그 일격에 단숨에 날아갔다.

그의 장갑 위로 옅지만 강렬하고 상서로운 서광을 뿜어내던, 새하얀 ‘오러’가 가진 파괴의 권능이었다.

“역시 대장!”

“테헤논 만세!”

“시끄러! 앞에 안 봐!? 마무리해!!”

“옛 썰!”

콰콰쾅.

퓨퓨푹.

머맨 나이트가 끝장나는 순간, 사내들의 사냥 또한 순식간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남해 바다에서 득실거리는 마물들을 사냥하며, 대륙 귀족들이 소비하는 비싼 해산물들을 잡아 올리는 상남자들의 집단.

남해 어부 연합의 일상은 오늘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요즘 들어 그들의 일상에도 다소간의 변화가 생기긴 했다.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대장, 또 물고기가 줄었어. 이대로라면 대륙은 고사하고, 테르티우스에 납품하는 숫자도 제대로 못 맞출 거야.”

“맞아. 마물이 너무 많이 늘었어.”

“내륙에 난리가 났다더니, 그것 때문인가?”

부하들의 말에 테헤논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바다는 넓고 그 깊이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깊다.

그 미스터리한 마역에서 매일 마물과 사투를 벌이는 남해의 어부들에게 있어, 내륙에 마물들이 강림했다는 소식은 그렇게까지 큰 충격을 주지 못했었다.

‘말세니 뭐니 하며 떠든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마물과 싸우는 일상이 말세라면, 이미 그들은 매일 말세를 겪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어획량이나 출몰하는 마물의 변화가 정말 심상치가 않았다.

특히나.

“요새 머맨 나이트가 몇 번이나……. 아니, 안 나온 적이 있었나?”

“……없었지.”

마물의 변화가 말이다.

고대 여신에게 반항한 인어족이 타락해서 마물이 되었다는 머맨과 세이렌.

남성형은 머맨, 여성형은 세이렌이라고 불리는데, 머맨 중에서 조잡하게나마 무구를 장비하고 마법이나 암흑 블레이드까지 사용하는 마물을 머맨 나이트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1년 전만 해도 열 번 출항하면 한 번을 볼까 말까 한 마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머맨 나이트를 하루에 두세 번 만나는 일도 허다했다.

그 때문에 남해 어부 연합의 연합장이자 오러유저인 테헤논 없이는 출항 자체가 금지되고 있다 보니, 어획량이 확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2호선이나 3호선까지는 조업을 허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라면 머맨 나이트도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그래. 한 마리 정도라면 그럴지 몰라. 하지만 오늘처럼 두 번 이상 나오면, 형제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겠지. 혹시나 한 번에 두 마리가 나온다면 훨씬 더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고.”

“…….”

테헤논의 말에 부하들이 일제히 입술을 깨물거나 한숨을 내쉬며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급 마물들은 본능에 따라 싸우기에, 사냥법만 지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머맨이나 세이렌은 지능이 있어서 배의 가장 약한 곳을 노리거나 후방을 파고들기도 하니, 상대적으로 더욱 처리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머맨 나이트나 세이렌 위저드 정도 되면 자기들만의 언어도 사용할 정도였으니.

“아론. 머맨 나이트가 하는 말, 여전히 비슷해?”

테헤논의 말에, 그의 부하이기 이전에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때가 다가온다. 그분이 오신다…….’ 그 말만 반복해.”

고대 인어족이 타락해서 마물이 되었다고 하는, 내륙에서는 신화로 치부하는 그 전승을 어부 연합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은 놈들이 드문드문 말하는 어휘가 어부 연합에 내려오는 고어들과 일치한다는 것에 기인했다.

“내륙의 그 재앙이라는 것들과 관련이 있을까?”

“나야 모르지.”

“……환장하겠네.”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

그랬기에 테헤논의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쌓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 대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돌아간다.”

“오늘 조업 끝!”

“돌아간다!”

“우와아아!”

한숨 섞인 말에 우렁찬 함성이 돌아왔지만, 테헤논은 오늘따라 그 바다 사나이 특유의 호기에 호응할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남해 어부 연합의 본거지이자 남해의 가장 큰 섬인 인술라(Insula)에 도착했을 때.

테헤논은 그간 쌓여 오던 스트레스를 폭파시킬 만한 최악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일곱 번째 재앙이 생기는 곳이 여기라고!? 우리 인술라?!”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가 내륙과 뭔 상관이 있다고!”

테헤논이 발작하듯 따지고 들자, 다른 어부 연합 간부들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발했다.

그들의 상식에 의하면 남해는 내륙과 전혀 상관이 없는 딴 세상이었으니.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그리고 그들 역시 당연시해 왔던 그 사고관이 통째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전보가 왔어.”

간부 중 유일한 여자이자, 그러면서도 테헤논 다음으로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을 가진 여전사……. 아니, 여자 어부 로엔 시어선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테헤논은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기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마왕이든 뭐든 와 보라고 해.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는데, 이 상황 만든 게 그것들이면 아주 제대로 조져 버리자고!”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육지의 겁쟁이들에게 우리 어부 연합의 힘을 보여 주자고!”

“마물 따위 박살 내 주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지는 방 안을 지켜보던 로엔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아.”

“뭐가? 복잡할 건 또 뭐야? 마물이 온다? 박살을 내고, 우리는 고기만 잡으면 돼.”

테헤논이 그간의 스트레스를 이참에 다 날려 버리겠다는 듯 기세를 뿜어냈다.

우우웅.

“옳지!”

“역시 연합장!”

“그래야 우리 대표지!”

그에 다른 간부들이 열렬히 호응하려 하던 순간.

“여보.”

로엔의 낮은 목소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팔뚝 근육을 자랑하던 테헤논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응?”

“닥쳐.”

“……어? 아니, 내 말은…….”

한껏 기세를 올리던 테헤논은 주춤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버텨 보려 했는데.

“닥치고, 앉으라고.”

이어진 차가운 한마디가 그의 남은 호기를 침몰시켰다.

“어…….”

그리고 그렇게 남해 어부 연합장이자 남편을 입 다물게 한 로엔 시어선이 사방을 돌아보는데.

키득거리며 부부를, 특히 테헤논을 놀리려던 간부들이 로엔의 시선을 받는 순간 일제히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방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조용해진 가운데, 로엔이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격적으로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보를 받고, 내륙에 벌어진 전쟁에 대해 자료를 조사해 봤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우리 힘만으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말은 금세 간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돼!”

“우리의 저력을 육지 겁쟁이들하고 비교하는 거야!?”

“로엔! 아무리 너라도…….”

한순간에 다시 방 안이 시끌시끌해지는데.

“앞바다에 재앙이 열리는 그 기일은 고작 열흘 뒤예요. 어차피 육지의 전력은 못 와요.”

걱정 담긴 그 목소리에 테헤논을 비롯한 간부들은 오히려 미소를 띠었다.

“그럼! 우리만으로도 재앙 따위…….”

“대신, 대륙 12대 기사 중에 8명이 이곳으로 온다고 통보가 왔어요. 무슨 광휘 머시기 일행이 랑켄 평야의 균열에 도착하면, 그때 나머지가 이리 온다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통보?”

“그래요. 통보.”

그 말에 간부들의 표정이 일제히 구겨졌다.

그런데.

“남해 어부 연합의 자긍심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다. 그러니 조력을 받아들여라……. 그 말만 남기고 통신이 끊겼어요. 내륙의 12대 기사 중에서도 수장급으로 여겨진다는 소드 엠퍼러라는 자가 직접 그리 말하더군요.”

로엔의 그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다시금 싸늘히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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