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휴브리스 vs 오러마스터 (1)
우드드득.
육체와 함께 성장하는 마나바디, 염체의 힘이 그의 골격에 미증유의 힘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영격과 마나의 경지가 상승한 수준을 넘어, 육체 자체가 이전과 차원이 달라진 느낌을 주었다.
‘힘이…….’
흘러넘쳤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힘.
벽을 넘기 직전의 자신이 우습고 하찮게 느껴지는 기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능감과 우월감이 영혼을 사로잡았다.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
자신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저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덩치 큰 얼간이 하나.
그 밖에 자신의 감각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벌레와 별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언제든 ‘죽여야겠다’고 생각만 한다면 그대로 사멸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중엔 의지만으로는 ‘정리’가 불가능할 듯한 것들도 있었지만, 여태 동료라고 여겼던 그 둘조차 하찮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 컹!!
영혼의 반려, 월랑이 영혼의 저편에서 꾸짖듯 짖었다.
‘뭐? 어때서? 당연한 거잖아?’
- 컹! 컹! 크르르르.
갑작스러운 월랑의 반발에 곤혹스러운 느낌이 드는 순간.
“괜찮……은 거야?”
에스티나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녀의 말에 타이니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하…….”
하찮은 네가 이 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그 말이 나오려는 순간.
에스티나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한없이 오만한 표정의 자신이 보였다.
더욱 강화된 감각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표정까지 세밀하게 눈에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어…….’
너무나도 이상한 표정이었다.
‘내가 왜……?’
그 순간 타이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쩍!
번쩍.
순간적으로 후려친 뺨에서 노을빛 파동이 번져 나갔다.
콰콰.
그 가벼운 움직임에도 옅은 후폭풍이 일어나는데.
“타이니!?”
“자네!?”
난데없는 자학. 평범한 마나도 아닌 오러를 실어 스스로를 후려친 그 행동에 바로 염려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제야 멋대로 끓어오르던 고양감과 전능감이 조금이나마 통제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거, 위험하네.”
운명의 파편을 디딤돌로 삼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거대한 힘이 가져온 필연적인 변화일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괜찮은 거 맞아?”
“어. 잠시 힘에 홀려서, 맛이 갔었어.”
맛이 갔었다.
그 표현에 에스티나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정말……?”
“어. 이젠 괜찮아. 걱정하지마.”
“아니……. 윽.”
“괜찮아. 금방 돌아올게.”
타이니는 굳은 표정의 그녀를 잠시 안아주고서는 바로 전방을 향해 돌아섰다.
순간적으로나마, 과거에 용사를 배신했었다는 솜누스의 이야기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한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강해진 힘이라니.
그 덕에 차오르는 자신감과 별개로,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게다가 이 힘은 영구적인 것도 아니었으니.
우우웅.
“한 시간 정도려나.”
“조심해. 여차하면 내가 끼어들 거야.”
“그래.”
타이니가 피식 웃으며 지평선 너머를 내다보는 순간.
어느새 전진을 멈춘 오만, 휴브리스의 일곱 머리가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크르르르.”
- 네놈……?
막대한 위압감이 실린 영파에 에스티나의 얼굴이 일순간 창백하게 질리는 순간.
“피해 있어.”
우웅.
타이니의 말과 함께 그의 발밑에서 월랑이 솟구쳐 올랐다.
은빛 대신 옅은 노을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털을 자랑하는 녀석의 전신에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신화시대의 신수가 이러했을까?
타이니가 탈 수 있게 덩치를 조절했음에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존재감과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만 달라진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으니.
“크르르.”
나타난 순간부터,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기 시작한 것이다.
“반성하고 있다. 그만해.”
“킁.”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는 타이니의 손길에 그제서야 콧방귀를 뀌는 월랑.
단순히 타이니의 오러를 두른 것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노을빛 털들이 그의 손길에 이리저리 눌리며 옅은 노을빛 파장을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본 에스티나가 눈을 빛내는데.
“타이니, 그럼 월랑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
그제야 느껴지는 막대한 위압감.
어느새 전면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거대한 검은 에너지의 폭류에 에스티나의 얼굴이 창백해지는데.
[다녀와서 말해 줄게. 일단 피해.]
타이니의 여유로운 영파와 함께 녹턴이 휘둘러졌고.
쾅!!
쩍!
콰콰콰콰콰콰.
그에게 쏟아지던 암흑 오러의 폭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노을빛 늑대와 기수가 유성처럼 파고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자연스럽게 발휘된 권능 ‘불굴’이 휴브리스가 뿜는 브레스의 여파를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지만, 타이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불굴로는 막을 수 없는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놈은 다르다. 진짜.’
물론 같은 반신의 경지라 해도 당연히 저마다 수준의 차이가 있을 터.
하지만 글러터니가 반신급에 살짝 걸친 느낌이었다면, 이놈은 이미 경지의 한계에 도달해 그 위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두 칠죄종의 브레스만 놓고 봐도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거의 최후의 발악 같은 느낌으로 썼던 글러터니의 브레스보다, 견제용으로 시험 삼아 날린 듯한 휴브리스의 브레스가 확실히 강력했다.
심지어 지금의 브레스는 검선의 격을 떨어지게 만들었던, 영혼을 짓누르는 영력의 저주 역시 기본적으로 품고 있었다.
공격의 여파 하나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과 신성.
우웅.
그에 녹턴조차 이전과는 달리 노골적으로 울음을 토해 냈다.
하지만.
‘아니, 아직은 아냐.’
상상해 본 적이 었었다.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불굴의 권능이 완성되면, 지치지 않는 육체로 연달아 빅뱅을 터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지금 실감하고 있는 육체와 영혼에 흐르는 힘은, 그것이 결코 무리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다만 지금은 그가 온전하게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빅뱅을 쓰는 순간, 이 상태를 유지할 시간이 급속히 줄어들 거야.’
일격에 끝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저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칠두룡을 상대로 첫수에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간을 본다.’
스파앗.
다가서는 순간 서로 상쇄된 영역의 힘.
검선이 절대 영역이라 이름 붙인 그 힘도 휴브리스의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차피 예상했던 것.’
타이니의 눈이 빛나는 순간, 노을빛 서광을 두른 녹턴이 순식간에 가까워진 휴브리스의 머리 중 하나를 거세게 후려쳤다.
동산만 한 머리를 사람만 한 망치가 후려친 것임에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꽈아아앙!
“꾸어어어엉!”
콰콰콰콰콰.
타격을 받은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는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
그것만으로 대기가 떨렸다.
- 감히!!
뒤이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영파에서는, 격하의 상대를 깔아뭉개는 권능이 느껴졌다.
하지만.
[감히는 무슨.]
타이니의 권능, 불굴이 그 힘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꽈아앙!
“꾸어엉!”
편법으로 잠시간 경지가 상승한 것이긴 해도, 지금의 타이니는 엄연한 반신급이었으니.
물론 같은 경지 안에서도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휴브리스가 권능만으로 지금의 그를 찍어누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콰콰콰콰콰콰.
사방의 공간 전체를 새까맣게 잠식하며, 대체 뭐가 뭔지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암흑 마법과 암흑 오러의 세례도.
‘크……. 짜릿하군.’
타이니에게 실질적인 대미지를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전신을 내달리는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마저도 전투의 흥분에 빠져든 타이니의 의지를 무너트릴 수 없었으니.
그 의지가 멀쩡하다면.
‘쓰러지지 않아.’
우웅.
불굴은 휴브리스의 권능에 상쇄되며 약화되었음에도 그에게 엄청난 내구성을 부여했다.
검선의 말대로, 권능의 상성이 월등히 유리한 덕분이었다.
더불어.
쾅!
격이 상승한 타이니의 육체와 마나, 오러의 힘은 일격에 집중할 경우 칠두룡의 공격도 뚫어 낼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 어떻게……?
“잘!!”
한순간에 다시 맑아진 시야. 당혹스러워하는 적의 영파에 살벌한 미소로 답한 타이니의 녹턴이 또다시 같은 머리를 후려쳤다.
콰와아앙!
그리고 그 세 번의 공격이 성공한 뒤에야.
“크르르르!”
휴브리스의 그 머리에서 비늘이 뜯겨 나가며 검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단단해. 빌어먹을.’
타이니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과는 별개로.
피를 본 칠두룡, 휴브리스의 분노는 극에 달한 듯싶었다.
- 감히!!!!!
- 제법. 이 다른 세계의 파편에 불과한 찌꺼기 중에 권능을 손에 넣은 놈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 줄만 하다.
- 그러나, 이 휴브리스 님에게 도전한 것은 네놈의 실수다.
-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 삼켜 주마!
- 재밌군.
- ……호오.
- 과연 어디까지 버틸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일곱 개의 머리가 각자 토해 내는 영파.
마치 갑자기 머리마다 다른 인격이 생긴 것처럼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다.
번쩍.
- 징벌의 시간이다.
가운데에 달린 가장 높은 머리의 눈이 붉게 빛나는 순간, 다른 여섯 개의 눈들도 각기 다른 색의 빛에 물들었다.
붉은빛부터 보랏빛까지, 무지개색으로 물든 칠두룡의 마안, 아니 용안(龍眼)이 일제히 타이니를 응시하는 순간.
‘윽!?’
타이니의 몸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 섰다.
아니,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주변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크르르르르”
- 너, 죽어라!
7개의 머리가 동시에 같은 울음과 영파를 내뿜는 순간.
그가 상처를 낸 놈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일시에 증발하는가 싶더니.
콰직.
무언가 깨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순간 타이니의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마치 무언가가 자신의 영혼을 강제로 육체에서 뜯어내는 듯한 느낌.
‘영혼살? 그럴 리가……?’
영혼살의 권능은 오러익시더급만 되어도 통하지 않을 텐데?
말하는 것만으로 죽음으로 모는 힘이라니.
휴브리스의 또 다른 권능인 건지, 아니면 정체 모를 고위 흑마법인 건지…….
그 순간, 타이니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 용언. 창세에 관여한 용들이 타고나는 권능으로, 세상의 존재력에 직접 간섭하는 힘이 있죠.
-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 결과를 만드는 사기적인 힘입니다. 그래서 용들은 신화시대 이후 모두 이 세계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죠.
- 아니면 타락하여 용언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격이 떨어지는 일을 감수하거나 말이죠. 뭐, 그걸 선택하는 머저리 같은 용은 없겠지만요. 당신이 말한 고대의 폭식을 빼고는 말이죠.
‘크롬벨…….’
탐욕, 애버리스조차 ‘꿇어라!’라는 단편적인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던 용의 선천 권능.
카르마와 같은 힘을 발휘하면서 그 대가로 소모되는 건 고작 용혈일 뿐이라고 하니, 피는 결국 다시 생성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사기적인 권능인 셈이다.
검선의 영력 손실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타이니는 이 순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용은 모두 이 땅에서 떠난 것 아니었나? 미궁의 폭식도 8단계로 추락해 가며 억지로 남은 것이었는데.’
이내 생각이 옛 기억에까지 닿자, 그는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잡념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현실도피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안 돼!’
타이니는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싸우다 죽는 것이 기사의 운명이라 치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가까스로 영혼을 부여잡고 불굴의 권능을 발휘했다.
다행히 불굴은 용언의 힘에 저항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콰직.
자신을 옭아매고 영혼을 유리하려는 무형의 힘을 그렇게 떨쳐 내는 순간.
- 아니!?
여유 넘치는 움직임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던 휴브리스의 일곱 머리가 동시에 놀란 영파를 토해 냈다.
‘저거, 영혼이 하나가 아닌……?’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지, 놈이 방심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우우웅.
순간적으로 끌어모은 힘.
오러마스터에 달한 영격이 거대한 에너지를 순식간에 녹턴으로 집중시켰다.
- 아오오오오!
그와 동시에 월랑이 그대로 타이니의 안으로 흡수되듯 사라지고.
우드드득.
체모가 은은한 노을빛으로 변한 그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힘의 전환.
그리고 몸 안에서 느껴지는 전율적인 힘.
신성을 부수기 위한 무기가 찬란한 노을빛을 머금고, 가장 강대한 일격을 날리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끝이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한 노을빛 파멸.
그것을 놈의 머리들 사이에 풀어놓으려던 찰나.
- 이동.
스슥.
비웃음 섞인 영파와 함께, 놈의 거대한 산만 한 거체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갑자기 사라진 목표.
그 앞에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빅뱅의 힘이 불규칙적으로 맥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