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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399화 (399/500)

399화. 몽마 군단의 끝

‘감히……!’

몽마 장군 중 하나, 인큐버스 마스(Mas)는 자신이 쫓던 적의 모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군주의 소멸 이후, 군단은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 놈을 쫓았다.

그리고 당시 그는 완전히 탈진하여 넝마가 된 놈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었고, 그 기분 나쁜 새의 정령만 아니었어도 분명히 성공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기억하는 적의 모습은 비참하게 도망치는 뒷모습뿐.

그런데 지금 저 노을빛 서광을 뿜어내는 놈은 그때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자신과 라미아, 아니메데, 그리고 살아남은 부관 10마리와 한 번 허물을 벗은 최정예들 50여 마리까지 모두가 동시에 놈을 노렸다.

그들이 쏟아부은 마법은 만약 그 대상이 군주였다 해도 꽤 큰 피해를 입었을 만한 수준.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뻗어 나오는 노을빛 서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것이 꺼림칙했다.

물론 군단원이 된 이래 수백 년간 군주, 러스트의 매혹에 잠식당해 왔던 그의 정신은 그럼에도 한 가지만을 원했다.

오직 복수.

- 놈을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군주가 죽은 후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가 꺼림칙한 기분을 억누르고 끝없이 투지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건 다른 모든 군단원들도 동일할 터였다.

‘마법이 소용없다?’

그렇다면 힘으로 밀어붙이면 될 일.

그는 자신의 모든 암흑 오러를 동원했고, 느껴지는 상대의 전력 수준을 감안하여 생명력까지 끌어다 썼다.

이내 전신에서 넘치도록 흘러내리는 암흑 오러가 그의 열 손가락의 손톱과 날개에 힘을 더했고, 근육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게 했다.

매혹의 힘을 제외하면, 순수한 전투력은 다른 군단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몽마 군단.

하지만 장군급쯤 되면 전투력 역시 강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찮은 중간계의 인간 따위.’

마계의 수라장을 거치고 몽마 군단의 장군이 된 마스.

색욕의 권능 아래에서 후작급 악마로 거듭날 때까지 수많은 전장을 겪어 온 그의 경험이, 이성이 흐려진 상태에서도 익숙한 전투법을 구현하게 했다.

날개에 실린 마력을 패턴화해 한 번의 날갯짓으로 극도의 가속을 이끌어 냈다.

마력에 의해 부풀어 오른 근육이 온몸의 탄력을 고스란히 전해 손끝에 싣고, 그 파괴력만큼 빠르게 움직인 손톱이 암흑 오러를 한층 강화시키며 어지럽게 휘둘러졌다.

그렇게 허공에 난잡하게 그어진 암흑 오러가, 촘촘하게 짜인 완벽한 그물이 되어 전면을 뒤덮었다.

언젠가 자신의 매혹을 견뎌 내던 마인족의 장군조차 찢어발겼던 파멸의 그물.

그러나.

쩌저저저정.

그 파멸의 그물은 노을빛 오러에 쉽게도 튕겨 나갔다.

“큭!?”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과.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광경은 더욱 놀라웠다.

콰콰콰콰콰쾅!

우르르르르릉.

꽈아아앙!

가장 빠르게 적에게 달려든 자신의 뒤를 이어 쏟아진 동료와 부하들의 무수한 오러 세례.

그 강력한 공세에도, 노을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광경이 광기에 물든 마스의 뇌리에 다른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을.

그러나.

[이게 전부냐?]

다시금 적의 도발 섞인 영파가 이어지자, 그 공포는 광기에 먹혔다.

- 군주의 복수를 해야 한다.

수백 년간 그를 지배해 온 주인의 음성이 뇌리를 스치며, 더욱 극단적인 수를 쓰게 만들었다.

그냥 공격도 안 된다.

그렇다면.

우우우웅.

마스의 몸이 일순간 붉게 달아오르며, 그의 암흑 오러가 폭증했다.

“이놈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불태운 것이었다.

“죽어!!”

마스는 한층 더 무시무시한 기세로 암흑 오러를 쏟아 내기 시작했지만, 철벽같은 노을빛 서광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것이 그의 광기를 더욱 부추겼다.

“죽어! 죽어! 죽어!”

그러던 어느 순간.

“아우우우우우!”

그 검은 태풍과도 같은 공세 속에서 갑자기 하울링과 함께 불쑥 늑대와 기수가 튀어나왔고, 뒤이어 거대한 워해머가 마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큭!”

다행히 그는 광기에 잡아먹힌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직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쾅!

“캬악!”

왼쪽 어깨가 박살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마스의 붉은 눈동자 속에 잠시간 다시 공포가 어렸지만.

- 죽여!!

콰콰콰콰콰쾅.

동료들의 공세에 다시금 수세에 몰린 적을 보고는 이내 이를 드러내며 다시 광기를 끌어 올렸다.

- 죽여! 죽여! 죽여!

이 정도 부상은 어차피 금세 치유될 테니까.

하지만 미친 듯이 공세를 퍼붓는 마스의 축 늘어진 왼팔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는데, 이미 광기에 물든 그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아깝다…….’

타이니는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콰콰콰쾅!

기감이 교란될 정도로 쏟아지는 암흑 오러와 흑마법의 세례.

하나하나 구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들이 사방을 메우는 탓에 주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끝내 ‘불굴’을 뚫지 못했다.

- 권능의 조각만을 얻은 상태에선, 그것을 잠깐잠깐 사용하는 것이 최선일 걸세.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려 했던 불굴은, 그 특성 때문인지 검선의 말과는 달리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쯧.’

그런 불굴에도 확실한 단점이 있었다.

콰앙!

“칫!”

다시금 돌진하며 휘두른 벼락 떨구기의 일격이 이번에는 허무하게 바닥만 후려쳤다.

- 놈이 지쳤다!

‘안 지쳤다, 멍청아.’

하지만 지금으로선 육체의 모든 힘을 쥐어짜 내는 벼락 떨구기 이상의 기예를 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 총량의 대부분을 불굴이 차지하고 있는 탓에, 정교한 마나 패턴을 짜 내야 하는 다른 큰 기술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래서 권능의 조각…….’

아직은 반쪽짜리 권능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 왜? 왜? 왜 안 쓰러지지?

- 이상하다. 이상하다…….

콰콰쾅!

거침없이 공세를 쏟아 내는 악마급 마족들의 어리둥절한 영파만 봐도, 권능의 힘은 확실했다.

그뿐만 아니라.

‘도망쳐 올 때부터 생각했지만, 이것들 눈깔들이 아주…… 확실히 맛이 갔군.’

적들이 마치 지능을 상실한 듯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큰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번쩍.

우르르릉.

- 뒤를……!

- 퍼부어……!

그때 요란한 공세 사이사이로, 바깥의 전황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전장만 놓고 따져 보았을 때, 아무리 반쪽짜리 권능이라도 빅뱅을 쓰는 것보단 오히려 이게 나은 듯했다.

물론 그가 꿈꾸었던 최상의 결과는 불굴을 사용한 상태로 빅뱅을 연달아 터트리는 것이었지만.

쯧.

‘그게 처음부터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온전히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면 가능할까?

빅뱅이라는 초월기의 특수성이 있기에 그조차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그 비슷한 형태를 실현할 수만 있어도 희망이 보일 것 같았다.

자신뿐만 아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 지금 미래 생각할 때가 아니지.’

지금은 지금대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합!”

꽈아아아앙!

“캬아악!”

잡념을 떨쳐 낸 타이니는 녹턴을 휘둘러 짐승을 닮은 악마급 한 놈의 척추를 부수었다.

- 구, 군주의 복수를 해야…… 해야 하는데…….

색욕, 러스트를 잡아먹고 더욱 강해진 멸살의 권능은 척추가 부서진 악마급을 완벽하게 재기 불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것은.

두두두두두.

“크…….”

고작 자세 잡기 힘들 정도로 거칠게 쏟아져 오는 공세뿐이었다.

‘이것도 문제로군.’

불굴은 모든 힘을 무효화하는 권능이 아니라 ‘맞으면서도 견뎌 내게 하는 것’이기에, 이 파멸적 공세 안에서 제대로 자세를 잡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까드득.

온몸에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고통은 참을 만한 수준이긴 했지만, 정신이 점점 아득해지고 있었다.

이 권능의 발동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유증이 남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

그리고 그때.

[타이니, 허공으로……!!]

[지상이 너무 오염……!]

[제국군 기마가 버티지 못……!]

용케도 주변의 파멸적인 공세를 뚫고 들어온 바람의 마나가 익숙한 목소리를 전해 왔다.

에스티나가 상황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흡!”

꽈아아아앙!

그에 타이니는 벼락 떨구기로 허공의 공세를 일부 찢어 내며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드러난 맑은 하늘을 향해 그대로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아우우우우!”

파바바박.

- 어딜!

- 쫓아!

- 군주의 복수를!

그러자 이미 이성 따위는 잃어버린 것 같은 몽마 군단의 정예들이 그대로 그 뒤를 쫓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진 은빛 유성을 따라 검은 유성들이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광경이 전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크르륵!”

“키요오오!”

전장의 중심에 있는 타이니에게 어떻게든 다가가려 애쓰던 몽마 군단의 마물들 중, 하늘을 날 수 있는 놈들이 그 움직임을 따라 솟구쳤다.

그런 놈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날 수 없는 마물들 또한 타이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기 시작하니.

자꾸만 고개를 치켜들며 엉뚱한 곳으로 달리려는 마물들은, 결사의 항전을 각오하던 제국군에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뒤를 내주었다.

쩌어어억.

“끼르…….”

털썩.

“마물들을 섬멸하라!!!”

황금빛 대검을 치켜든 서일산의 외침과 함께 다시금 지상에서 가루라의 움직임이 빨라질 때.

상공의 전투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타이니의 꽁무니를 쫓던 마족들 가운데 최선두에 선 라미아의 눈빛에 다시금 살짝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이미 많이도 어긋난 상황을 인지했다.

파바바박.

- 아아악!

맛이 간 수뇌부들이 허공을 선회하는 목표의 뒤만 쫓는 사이, 그 꽁무니 줄의 최후방에서는 역겨운 녹색 머리 엘프가 뒤를 보지 못하는 정예들을 하나씩 사냥하고 있었다.

까드득.

‘젠장, 군주의 매혹이 최악의 형태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러스트가 남긴 매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으니.

다시금 광기가 찾아오기 전에, 외부에 들리지 않는 은밀한 영파를 부하와 동료들에게 전했다.

- 마스! 아니메데! 너희 부관들만 데리고 선회해서 놈의 앞을 막아!

움찔.

제1 장군의 필사적인 외침이 광기에 물든 악마급들의 영혼을 자극했다.

그에 무작정 적의 꽁무니만 쫓던 마족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언제 광기에 잠식될지 몰라 마음이 급하던 라미아는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 놈에겐 과거의 짐승 두목이 가진 이능 무효화와 비슷한 힘이 있다! 안 그러면 이 상황이 말이 안 돼! 오러를 육체에 집중해서 힘으로 때려잡아라!

치명적인 오해.

당연히 그 결과는 처참했다.

콰콰콰콰쾅!

“케에에엑!”

“응?”

갑자기 허공을 선회해서 타이니의 앞을 가로막은 마족들.

그걸 본 그는 일방적으로 쏟아져 오는 적들의 공세를 버티는 형국이 다시 반복될 것을 감수하고 이를 악물었는데.

찰진 손맛이 느껴졌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아니, 미친 거 맞긴 한데.’

원거리에서 쏟아 내는 공격을 포기하고 갑자기 몸으로 달려들기 시작하다니.

물론 놈들의 몸에는 잔뜩 응축된 암흑 오러가 둘러져 있기는 했지만, 원래부터 힘 대 힘의 싸움이라면 절대로 마다할 생각이 없는 그였다.

심지어 지금처럼 불굴의 권능을 두른 상태라면.

“자살이냐!? 푸하하하!”

호쾌한 웃음과 함께 녹턴을 휘두르는 타이니의 움직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콰콰콰쾅!

“키에에엑!”

지상에서의 고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악마급 마족들이 연달아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그리고 부관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사멸해 간 뒤에야, 다시 이성이 돌아온 라미아가 자신의 끔찍한 실수를 깨닫고 이를 갈았다.

- 작전 변경! 포위 섬멸!

다시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이능 무효화가 아니다. 그저 엄청나게 단단한 적일 뿐이다.

새삼 놈이 군주를 죽인 무시무시한 상대라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 죽여! 죽여! 죽여!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군주의 마지막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도저히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적.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던 순간, 라미아의 이성은 다시 광기에 먹혔다.

그리고 그렇게 광기에 잠식되던 마지막 이성이 엉뚱한 결론을 만들어 냈다.

- 틈을 만들어라. 내가 처리하겠다.

몸을 부술 수 없다면 정신이라도 파괴하겠다.

번쩍.

콰콰콰콰콰쾅.

다른 악마급 마족들이 다시금 쏟아내는 원거리 공격들.

그리고 그 공세 속에서 타이니가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지 못하던 짧은 순간.

그 코앞으로 라미아가 뛰어들었다.

“합!”

부서지지 않는 몸으로 공세를 받아 내고 그대로 망치를 휘두르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적의 움직임.

하지만 광기에 물든 라미아는, 적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그대로 그의 품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적의 입술을 덮었다.

쪼옥.

“흡!?”

- 내 모든 것을 담아 너를 잠식하겠다.

몽마 장군의 우두머리답게, 그녀는 자신의 모든 마력과 생명력까지 쏟아 넣은 매혹의 저주를 적의 영혼에 쏟아부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군주의 권능까지 더하여.

그러니.

- 미친년이……!!!

멀리서 들려오는 엘프의 날카로운 고음에 이어진 ‘콰직’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슴이 꿰뚫릴 때에도, 붉은 눈의 라미아는 웃을 수 있었다.

‘어차피 껍데기만 남은 몸.’

자신의 모든 힘에 군주의 권능 일부까지 더해진 매혹이 적을 완전히 파멸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부서지지 않는 적은 이제 마족의 편이 되어 중간계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완벽한 복수를 이뤄 낼 것이었다.

그런데.

“씁! 퉤! 이년 진짜 제대로 돌았네!”

……어?

매혹에 잠식당했어야 할 적이 너무 멀쩡한 눈빛으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러 왔다.

그것이, 라미아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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