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마룡 군단의 일각
호 나라의 수도, 지안.
서진의 자하나 선 제국의 중천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었던 대도시.
선 제국보다 선이 굵고 자하보다 강건한 느낌을 주었던 그곳의 건축물들이, 거대한 괴물에 의해 통째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꾸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앙!
“꺄아아악!”
“도, 도망쳐!”
- 하찮다! 약하다!
쿵. 쿵.
우르르르릉.
세 개의 머리에 하나씩 뿔이 달린 동산만 한 크기의 도마뱀이, 등 뒤의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장군들은!?”
“X신아! 이미 다 도망쳤어!”
“그럼 그 소문이 진짜…….”
“으아아악!”
쿵.
우르르르릉.
- 하찮은 것들, 사멸하라!
꽈콰콰콰콰콰!
“끄으아아악!”
괴물의 세 머리에서 각각 불꽃과 냉기, 독기의 폭풍이 몰아치며 지안의 일각을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도망쳐!!”
“으아아악!”
“으아아앙!!!”
“아가!!!”
지안의 시민들은 모두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빠져나가려 성문을 향해 내달렸지만.
- 너무나 나약해서, 너무나 추하구나!
“꾸우우우!”
불꽃과 냉기, 독기를 토해 내던 괴물의 세 머리가 괴성과 함께 사방의 공기를 빨아들인 순간.
우우우우웅.
그 괴물을 중심으로 반경 1km에 달하는 범위 내의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콰드드드드득.
우르르르르릉.
꽈아아아아앙!
사람과 건물 등을 가릴 것 없이, 일순간 모든 것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터져 나갔다.
그 범위 안에 있던 모든 생명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핏물로 화하는데.
그 모습을 본 세 머리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끼르르르르르르르르!”
“꺄르르르르르!”
“꾸어어어어!”
마치 짜릿한 살육의 희열을 만끽하는 듯한 모습.
- 약한 것은 죄, 강한 것이 정의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영파에는 그 강력한 힘만큼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그럼 넌 죄다, X신아!”
꽈아아아아아앙!
녀석이 올려다보던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졌다.
* * *
작은 날개까지 달린 세 머리 도마뱀이 지안을 파괴하고 있는 모습은 확실히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의문이 있었다.
‘왜 혼자지?’
악마급으로 보이는 데다, 거의 용과 비슷한 거체를 가진 괴물 도마뱀.
체급의 차이는 실질적인 무력의 차이로도 이어지니, 저놈은 여태 보았던 악마급들 중에서도 꽤 강한 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악마급 마족들이 이 땅에 몸을 뉘었고, 심지어 칠죄종 중 둘이 죽기까지 했다.
물론 그것은 이곳이 아닌 서대륙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나, 그럼에도 고작(?) 악마급 마족이 혼자 돌아다니는 배짱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함정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의 감각에 걸리는 위험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마도 오만의 군세, 마룡 군단에 소속된 21개체의 악마급 중 하나를 치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간다! 혹시 함정 있나 봐 줘!”
타이니는 에스티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카일룸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우우우우우!”
“조용히!”
“낑…….”
공중에서 소환한 월랑을 타고,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에 가속도를 붙여 가며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 약한 것은 죄, 강한 것이 정의다!!
멍청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엿 같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괴물의 머리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
목표는 왜인지 부러져 있는 가운데 머리의 뿔.
“그럼 넌 죄다, X신아!”
타이니식 전투 살법 3식, 유성 떨구기.
꽈아아아아앙!
노을빛 유성이 된 타이니와 월랑의 몸이 괴물의 가운데 머리를 직격했다.
콰드드드드득.
셋 중에서 가장 높게 솟구쳐 있던 머리 하나를 뭉개고 그대로 놈의 몸통까지 파고드는데.
한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응?’
무언가를 부수고 짓이기는 그 느낌이,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듯했다.
수없이 많은 것을 박살 내 본 파괴자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느낌 차이에 눈살을 찌푸릴 때.
월랑을 탄 그의 몸은 유성 떨구기의 힘을 싣고 그대로 지면을 들이박았다.
꽈아앙아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릉.
크게 파이는 땅, 하늘 높이 치솟는 먼지, 한 박자 늦게 사방으로 전해지는 육중한 진동.
그가 동대륙에 와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 주듯, 유성 떨구기의 힘은 이전에 비해 1.5배 이상 강력하게 사방으로 충격파를 퍼트렸다.
그런데.
- 끼릭.
무언가가 비웃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에서 강렬한 살기가 엄습해 왔다.
그와 동시에, 타이니의 몸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괴물이 입을 쩍 벌려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튀어나왔다.
유성 떨구기를 필살기로 사용하던 무렵의 그였다면 미처 피하지 못했을 만한 공격.
그러나 그 순간.
“흐!”
파바박.
월랑의 발이 기묘하게 움직이더니, 타이니와 월랑의 몸이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득.
쩌어어어엉!
사냥감을 놓치고 거세게 입을 닫는 것만으로도 사방에 저릿저릿한 충격파를 퍼트린 괴물.
세로줄이 그어진 놈의 눈동자에 의문의 빛이 어리던 그때.
그 머리 위로, 다시 한번 벼락이 떨어졌다.
꽈아아아앙!
“께에에엥!”
쿵.
우르르르릉.
괴물의 머리가 그대로 일그러지며 땅바닥을 파고들었고, 동시에 거대한 이빨의 깨어진 부분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대로 짓이겨질 줄 알았던 괴물의 머리는 그 자리에 다량의 검은 피만 남긴 채 환상처럼 사라졌다.
“하. 씨……. 또 꼼수를?”
콰콰콰쾅!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녹턴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켜 주변의 흙먼지를 날려 버리자, 그 너머에 있던 괴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에 직격하며 터트렸다 생각했던 가운데 머리가 멀쩡하고, 지금 공격한 왼쪽 머리에서만 피를 흘리는 모양새의 괴물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르르.”
- 너는 하찮지 않다. 제법이야. 좀 전에 그놈보다 더…….
‘좀 전에 그놈?’
경계심을 보이면서 자세를 낮추는 괴물.
적을 탐색하는 듯한 와중에도 오연한 태도를 드러내는 괴물의 눈빛에 타이니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꼼수나 쓰는 주제에…….”
처음 유성 떨구기를 썼을 때 놈과 눈이 마주치는 걸 느끼기는 했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피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격돌하는 순간에는 놈이 짓이겨지는 환상이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는 유성 떨구기가 제대로 먹힌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교활하게도, 저놈에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환각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심지어 무려 소울 사이트를 가진 그의 감각을 일순간이나마 현혹할 정도였으니, 단순한 환각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두 번은 안 통한다, 도마뱀.”
“컹!”
이미 원리는 모두 파악했다.
격돌의 순간 절묘하게 발휘된 공간 굴절의 힘. 거기에 놈의 가운데 머리가 환각을 일으키는 힘을 더해서 한순간이나마 소울 사이트를 현혹한 것일 터.
하지만 그건 월랑과 시야를 나누면 해결될 문제였다.
다만.
“세 번째 눈깔이 가진 힘은 뭐지?”
불길을 토해 내던 왼쪽 머리에 달린 붉게 빛나는 눈이 공간을 굴절시켰고, 독기를 토해 내던 가운데 머리의 녹색 눈이 환시를 일으켰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머리에 달린 푸른 눈은 어떤 역할을 할까.
놈이 도마뱀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면 그냥 말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지만.
“쯔르르르.”
- 내가 사냥감에게 특기를 말해 줄 정도로 어리석어 보이는가.
마기를 끌어 올리는 도마뱀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칫.’
세 가지 속성을 다루는 놈이, 이상한 권능까지 세 가지를 다룬다.
거기다 저 거대한 몸뚱이는 그 자체로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녹턴으로 머리를 제대로 후려쳤는데 완전히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절대 그냥 악마급으로는 보이지 않는 도마뱀.
“네놈이 오만의 장군 중 하나인가?”
그렇기에 던진 확신에 찬 물음이었지만.
“쯔르르르.”
- 나는 마룡 군단의 일곱 장군 중 제1 장군, 게틀락…… 님을 모시는 제1 부관, 로움이다. 네게 영광스러운 죽음을 선사할 이름이지.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뭐?”
서로의 영역 안에 있으니 놈이 자신의 말을 곡해했을 리도, 영파로 전해지는 놈의 뜻이 잘못되었을 리도 없다.
피부로 느껴지는 놈의 영역의 힘은 진화까지 끝낸 완연한 4단계.
급으로 따지면 후작급이 분명한데.
“부관……?”
설마 거짓을 말하는 건가 싶을 때.
“쯔르르르.”
- 위대한 마룡 군단의 귀족으로서, 내게 죽음을 내리겠다.
쿵.
탐색이 다 끝난 것인지, 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콰!
놈의 거체 앞에서 뭉쳐진 암흑 오러가 비늘처럼 변해 타이니의 몸을 향해 쏘아지고.
“흥!”
그 순간 다시 연기처럼 사라진 타이니의 몸이 놈의 머리 위에 나타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불꽃과 독기, 냉기의 브레스가 타이니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전체를 뒤덮으며 쏘아졌다.
콰콰콰콰콰콰.
- 돌파.
- 컹!
노을빛 오러를 온몸에 얇게 휘감은 타이니와 월랑은 그 파괴 권능의 세례를 그대로 돌파하며 내달렸다.
그리고 이미 반쯤 깨진 놈의 왼쪽 머리를 향해 녹턴을 휘두르려는 순간.
번쩍.
다시 세 쌍의 눈이 타이니를 응시했고, 이내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그에게 엉뚱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흥!’
환시를 그대로 무시해 버리고 공간 굴절의 힘까지 강제로 뚫어 버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 놈의 거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반전하더니, 눈앞에 집채만 한 놈의 꼬리가 나타났다.
그 덩치에 비해 믿을 수 없는 스피드. 아니, 이건 놈이 빠른 게 아니라.
‘내가 느려진 거……?’
진작에 다른 힘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던 세 번째 마안(魔眼), 푸른 눈이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마치 시간을 얼려 버리듯, 상대의 의식을 현저히 느려지게 만드는 마안.
하지만 다행히도 타이니에게는 집중하는 것만으로 스스로 의식을 가속할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큭!’
쩌어어어.
그렇게 놈의 시간 동결을 풀어내고, 환시를 무시하고, 공간 굴절을 힘으로 찢어 버린 타이니는.
곧바로 녹턴을 휘둘러, 짙은 암흑 오러가 넘실거리는 거대한 기둥 같은 놈의 꼬리를 전력으로 올려 쳤다.
꽈아아아아앙!
쿵.
“꾸엉!?”
- 어떻게!?
도마뱀 같은 몸체의 특성상, 꼬리를 휘두르는 타이밍이 어긋나는 순간 로움의 몸이 통째로 비틀거렸다.
‘큽!’
반면에 이를 악물며 자신이 가한 일격의 반작용을 버텨 낸 타이니는, 다시 한번 가속하여 비틀거리는 놈의 왼쪽 머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월랑과 스스로의 무게와 힘을 고스란히 실은 타이니의 일격이, 이미 뿔이 꺾이고 피를 흘리고 있던 놈의 왼쪽 머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캬아아아아악!”
제대로 먹힌 벼락 떨구기의 일격이 로움의 왼쪽 머리를 그대로 폭파시키는 순간.
승세는 확연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으라라라랍!”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송곳니가 솟아난 타이니의 기합 소리와 함께, 작은 동산만 하던 로움의 몸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끼!?”
- ……무슨!?
작은 인간이 자기보다 100배는 큰 괴물을 허공에 내던지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기현상에 로움이 기겁하는 순간.
꽈아아아앙!
노을빛 유성이 지상에서 하늘로 솟구치며 그대로 로움의 몸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끼에에에!”
- 어, 어떻게, 중간계의 생물이……!?
쿵.
우르르르릉.
세 개의 속성과 세 개의 권능을 가진 악마 후작급 마족의 거체가 추락하며 쓰러지는 순간, 사방에 작은 진동이 일었다.
그리고 타이니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놈의 가운데 머리를 내려봤다.
“네놈이 정말 장군이 아니라 부관이라고?”
정말로 궁금했다.
이제는 마족 군단의 장군급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생각했었는데, 이 이상한 도마뱀이 의외로 고전을 하게 만든 것이니까.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쯔르르.”
- 나는 이렇게 당하지만, 어차피 너희의 운명은 끝이다. 이미 이 땅에 위대하신 휴브리스 님이 강림하셨으니…….
죽어 가는 와중에도 도마뱀 로움의 눈빛은 오직 분노와 저주만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타이니에 질문에 더욱 확실한 대답이 되었다.
“진짜로군. 빌어먹을.”
꽝!
자신을 진땀 흘리게 만든 악마급 마족이 장군도 아니라 부관이라.
- 용이 모두 사라진 만큼, 마룡 군단은 이전의 위용은 갖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히 뇌리로 스쳐 지나가는 크롬벨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부관이 이렇게 강한데, 이게 이전의 위용도 아니라고?”
당혹스러웠지만, 사실 이것도 예상했던 바였으니.
타이니는 마음속에서 상정해 놓았던 마룡 군단의 무력 등급을 한 단계 더 올려놓고는, 찝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하늘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타이니! 왕궁에 사람이 전혀 없어!
그사이 왕궁을 살펴보고 온 듯한 에스티나의 고함.
“젠장…….”
그 뭐시기 권마의 유물을 들고 튄 거 아닐까.
상황상 당연히 그랬겠지만, 살펴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가 왕궁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 노을빛 오러?! 타이니!? 거기 있어!!? 대답해!!
해애애애애!!
반파된 도시 안에 갑자기 우렁찬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지 않은 톤.
여태껏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루나의 고함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