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382화 (382/500)

382화. 녹턴의 비밀

하늘이 열렸다.

그것 말고는 다른 표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구름 사이의 공간이 쪼개지며 빛이 쏟아져 내리더니, 그 사이에서 날개를 단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 허락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운명이 감히 신성을 탐하는가!

다른 차원의 운명?

그 말에 의아해하던 그때, 세 쌍의 날개를 달고 빛나는 갑옷을 입은 자가 다가와 그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 이 강림을 위해 소모한 카르마(業)가 얼마인지, 그로 인해 후대가 짊어질 짐이 얼마나 늘어났을지. 하찮은 자가 짐작이나 할까.

- 꿇어라! 그 죄악의 대가를 치러라!

벽을 넘은 직후였기에 자신감이 하늘을 뚫을 것 같던 그에게 난데없이 쏟아진 적의(敵意).

음성을 통하지 않고 머릿속에 직접 전해지는 영파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 역시 신을 모르는 무도한 자로구나!

창을 든 자를 필두로, 휘황찬란한 빛의 기운을 두른 백여 개체의 날개 인간들이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특히나 그중 선두에 선 날개 인간의 창끝에 어린 기운에서는 별의 힘(罡)을 넘어서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고.

그들의 움직임은 미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하지만.

- 하……!?

막 신화경에 오른 직후 자신감이 하늘을 뚫을 듯했던 그는 날개 인간들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 감히!!

제 놈들이 무어라고 나를 평가하는가.

평생을 독행하며 살아온 끝에 결국 세상을 바꿔 버린 창천검제는 그 정도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애검이 날개 인간들을 향해 겨눠지는 순간부터.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하늘과 땅이 울리고 공간이 찢어지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콰직.

그의 애검이 부러지며, 그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 쿨럭, 빌어먹을 괴물들이…….

주변에는 그의 손에 죽어 나간 무수한 날개 인간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그것들은 이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사라졌고.

결국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제일 먼저 그에게 달려들어 왔던 그 창을 든 날개 인간뿐이었다.

세 쌍의 날개 중 두 쌍이 꺾이고 창도 부러진 상태였지만, 놈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허, 지금 꺾어 놓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로다.

- 네놈 혼자였다면 진작에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것이다, 괴물!

- 그렇기에 다행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영광으로 여겨라. 천계의 제1 천사장,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이 너를 거두는 것을.

이내 놈의 부러진 창끝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 너를 거둔다.

그 말이 단순히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부러진 창을 휘두르는 날개 인간의 얼굴에 번지고 있는 비열한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창천검제는, 아주 오래전 암살자 시절에 배워 놓고는 단 한 번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수법을 떠올렸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쓸 수 있는, 자객 최후의 수법.

평생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법을.

- 같이…… 죽자!!

- 뭣!?

번쩍.

반신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폭주시키며 파멸의 빛을 터트렸다.

꽈아아아아앙!

그가 수행하던 거대한 영산(靈山)을 통째로 소멸시키는 파멸적인 힘.

자폭과 함께 온몸이 터져 나가는 순간, 창천검제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재앙을 가져온 괴물이, 눈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 아, 안 돼!!!!!!!!

구겨진 표정으로 소멸하는 괴물. 그 광경이 자신의 비참한 최후 속에서도 한 줄기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소멸의 순간, 그는 남아 있던 자신의 모든 신성을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부러진 애검에 쏟아 넣었다.

-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열한 괴물의 무리가 저 하늘 위에 존재한다는 정보를 남겨야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실수를 직감했다.

- 아……!

신화경의 벽을 넘어 신성을 느낄 수 있게 된 자만이 자신의 전언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여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대륙에서 어두운 하늘을 걷어 내고 푸른 하늘을 가져온 절대자, 창천검제는 그렇게 소멸했다.

번쩍!

* * *

“헙!?”

창천검제의 유물이 전해 오는 정보에 집중하던 타이니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는 순간, 에스티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자, 잠깐만.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시간?”

“우리 출발한 지!”

“조금 전에 중천을 떠나왔잖아. 이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왜? 그 검 살펴본다며?”

“아…….”

타이니가 창천검제의 기억을 읽어 내는 동안, 실제로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고유의 시간을 발동하여 검을 살피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만큼 창천검제의 일생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젊었을 적 사연이나 오러마스터에 도달한 과정도 여러모로 기구하다 느껴졌지만, 특히나 그 마지막 장면이 가장 놀라웠다.

“티나, 천계의 천사들이 새하얀 날개를 단 인간의 형상이라고 했던가?”

“응? 어……. 전승은 그래. 왜?”

“그들은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는 선한 존재 아니었어?”

그 말에 돌아본 에스티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전해지긴 하지. 왜 그러는데?”

“아냐, 아냐. 잠깐만, 생각 좀 정리하고.”

“뭘 봤구나?”

“어. 나중에 얘기해 줄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인간이 오러익시더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민중의 지지라니?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조건에 아연해지다가도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광휘의 기사라는 이명이 붙은 만큼, 자신은 서대륙이 재앙을 극복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게다가 10대 기사, 아니 지금은 12대 기사로 불리는 이들 가운데 최강자인 데다 칠죄종 중 둘을 끝장낸 장본인이기까지 하다.

과장 없이 정확한 팩트만 나열한 것이 이 정도이니, 민중의 지지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런데 왜 그 신성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까?

‘아직 재앙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칭송이나 추앙이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계속해서 고민하던 그는, 문득 머릿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어떤 기억에 닿았다.

오러마스터의 경지를 넘보면서 얻게 된 직감이 끌어내 준, 흐릿한 과거의 기억.

자신이 생명을 구해 준 아이를 끌어안고 울던 어떤 여인.

그 여인이 하던 말.

- 아흐흑. 여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자식을 구해 준 기사가 아닌 신에게 감사를 올리던 그 말.

‘설마…….’

직감에서 근거한 추론이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내자, 스스로 안색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그 여인에게서는 후에 넘치도록 감사 인사를 받았지만, 보통 그런 기적 같은 일을 겪는다면 결국엔 신을 추앙하는 마음이 솟기 마련이었다.

“에이, 설마…….”

타이니는 직감에서 이어진 그 추론의 결과가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가슴 한쪽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녕 그것이 진실이라면, 자신이 벽을 넘는 일은 요원해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설령 어떻게든 벽을 넘는다 해도, 그 직후에 자신이 창천검제와 같은 일을 겪을지 몰랐다.

‘……천사장이라 했어. 분명히.’

유물이 전해온 기억 중에서 창천검제가 벽을 넘는 과정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신성을 강탈하려 했던 천사장과 그 무리의 행태였다.

- 허락되지 않은 다른 차원의 운명이 감히 신성을 탐하는가!

이 대륙은 고대 마계 대전에서 차원의 벽이 갈라지며 흘러들어 온 것이라 했으니, 허락되지 않은 운명이라는 건 아마도 동대륙인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성을 강탈하려 하다니.’

하물며 자신의 추론이 맞다면, 창천검제의 신성은 동대륙인들의 추앙이 모여 만들어진 것.

신성을 탐하니 어쩌니 호통을 쳐 놓고, 실제로 그것을 탐하는 것은 오히려 천사들이었다.

‘지독하게 이기적이야.’

전설로 전해지는 것과 전혀 다른 천사들의 행태는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롬벨은 분명히 말했었다.

- 천계와 이 세상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창천검제가 살던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계 대전 당시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천사장이 하늘을 찢고 이 세상에 나타난 일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그때까지는 가능했었나?’

그러나 단서가 될 만한 다른 정보가 없으니, 판단이 서질 않았다.

거기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분명히…….’

이 땅에 강림한 천사들을 자신의 시선을 봤을 땐 그야말로 신성한 존재 그 자체였지만, 창천검제는 그 성스러움을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했다.

그랬기에 곧바로 천사들을 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였으면 잠깐이라도 망설였을 거야.’

하지만 창천검제는 그러지 않았고, 천사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신성력을 그저 ‘빛’이라 여길 뿐이었다. 천사장이 직접 신성을 사용해 전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신화경, 즉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야 신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타이니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창천검제의 최후와 얼마 전 선 제국의 황궁에서 만난 무사들의 이상한 태도가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다시금 한 가지 진실로 귀결되었다.

“……동대륙인은 신성력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전부 그럴지도 몰랐다.

의심만 하던 것이 확실해졌다.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아니지. 세월이 이만큼 지났으면 혼혈도 꽤 있을 텐데? 옅게라도 피가 이어진 사람들도 많을 테고. 그럼 그 사람들은 다르려나?’

어쨌거나 황당한 사실이었다.

만약 그 가정이 맞고 결국 신성의 획득이 9단계에 오르는 실마리인 거라면, 자신의 경우는 창천검제와 아예 다를 수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유물을 살펴본 결과로 놀라운 정보를 얻긴 했지만, 어쩐지 괜히 머릿속만 더 복잡해진 듯했다.

“아, X발. 이게 뭐야. 머리만 아프게…….”

절로 탄식이 나올 정도로.

“왜 그러는 거야?”

“아, 아냐.”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은 꼭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이미 칠죄종을 둘이나 때려잡았고, 마왕 또한 빅뱅만 제대로 맞춘다면 끝장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

우우웅.

칠죄종의 피를 두 번이나 묻힌 그의 애병, 녹턴이 그 의지에 울음으로 대답하는 듯했다.

손잡이의 익숙한 감촉이 복잡하던 머릿속을 다시 차분하게 만들었다.

꼭 빅뱅이 아니더라도, 놈들에게 녹턴으로 치명타를 입히면 절대 회복하지 못한다.

멸살의 권능은 탐욕, 애버리스와의 전투에서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충분히 가능해.”

타이니는 애써 아쉬움을 달래며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런데 그가 멸살의 권능을 떠올리는 순간, 애버리스를 상대하던 당시의 기억 중 하나도 함께 떠올랐다.

녹턴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잡아 뜯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애버리스의 발목.

놈은 분명히 그것을 재생시키지 못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땐 마치 녹턴의 권능 중 일부가 자신의 몸에 들어온 듯한 감각이 느껴졌었다.

놈의 발목을 잡고 휘두르느라 정작 녹턴은 손에 쥐고 있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애병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전생에는 없었던 일이었고, 애버리스를 때려잡은 직후에는 그 연결성이 조금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느낌도 처음은 아니었어.’

아마도 글러터니를 때려잡았을 때, 그때부터 생긴 변화였을 것이다.

전생의 원수를 때려잡은 후 차오르던 고양감 속에서 간과했던 느낌.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칠죄종을 때려잡으면서 녹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야.’

어쩌면 그것이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우우웅.

“응?”

녹턴이 다시 울었다.

아니, 사실 녹턴은 아까부터 진동하고 있었다.

‘왜……?’

정확히는 자신이 창천검제의 검을 손에 쥐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는데.

마치 자신 외에 다른 무기를 쥐지 말라며 그 검을 질투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래, 알았다.”

녹턴에겐 영성은 있어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지성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이니는 피식 웃으며 창천검제의 검을 놓았다.

그제서야 그치는 진동.

마치 정말 자신의 애병과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묘한 느낌에 헛웃음을 짓는데.

“이제야 정리됐어? 이미 호 나라 수도에 다 와 가는데.”

한껏 궁금한 표정의 에스티나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응. 그게…….”

그렇게 타이니가 그녀에게 다가갈 때.

다시금 창천검제의 검을 집어듬과 동시에, 녹턴의 울음이 살짝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직전보다 아주 조금 더 강한 진동.

“응?”

“왜?”

“잠깐만…….”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낀 타이니가 다시금 창천검제의 검을 들어 등 뒤로 늘어트린 녹턴의 근처로 가져갔다.

그러자.

우우웅.

진동은 좀 전에 비해 확실히 커졌고.

“허, 그럼…….”

반대로 조금 멀리 떨어질수록 줄어들었다.

타이니는 그제야 자신의 애병이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부수고 싶다고?”

우우웅.

녹턴은 대답 없이 똑같이 진동할 뿐이었지만, 녹턴과의 연결성이 강해졌다는 것을 자각한 지금의 타이니는 그 녹턴의 본능에 가까운 진동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했다.

창천검제의 무구, 아니 정확히는 그 안에 담긴 신성을 없애고 싶어 하는 ‘욕구’.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인식한 반응이었다.

녹턴이 칠죄종을 때려잡으면서 변화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녀석이 다른 신성을 부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다니.

“허…….”

그는 자연히 황당한 시선으로 자신의 애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생과 현생, 두 생에 걸쳐 항상 사용해 왔던 자신의 무구.

그리고 주인의 마나를 전생부터 간직하고 있다가 현생에 다시 자신에게 반응해 줬던 애병.

‘조용히 해.’

타이니가 녹턴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며 의념을 강요하자 그제야 그 울림이 멎었다.

‘넌 뭐냐? 대체?…….’

어쩐지 자신의 애병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고.

‘녹턴은 어쩌면…….’

그 비밀이 얼핏 이해가 되는 것 같던 그때.

“타이니! 저기……!?”

에스티나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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