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월랑의 탐색
뿔뽈뽈뽈.
작은 은빛 강아지가 선 제국의 황궁 곳곳에 드리워진 그림자들 사이를 건너다니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경비가 꽤 많아 보이는 전각 앞에 세워진 벽 뒤에 안착하더니 나직이 콧김을 내뿜었다.
사람 많은 곳, 도착.
“킁.”
오랜만에 새끼 때 몸으로 움직이려니 역시 불편했다.
하지만 주인이 맡긴 중대한 임무가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사람이 많은 전각을 찾아 줘. 그 안에서 보호받는 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알아봐야 해. 그 안에 숨어들면 날 연결해.
- 멍!
월랑은 보이지 않는 주인을 향해 경례하듯 앞발을 들어 이마에 붙이며 영혼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인의 의식이 자신의 몸에 덧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 ……음. 확실히 꽤 요처인 것 같네.
- 컹!
- 그래, 제대로 찾았어. 잘했다. 안에 불빛도 보이고……. 들어갈 수 있겠어?
- 컹!
- 아, 개들이 많아? 그럼 확실히 황제의 거처는 아닐 테고…….
이 나라의 황제는 동물을 싫어해서 그의 근처에는 경비용 개도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낑.”
주인의 그 생각이 전달되는 순간 월랑은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주인이 그 마음을 눈치챈 듯 말을 보탰다.
- 아냐, 잘했어. 황제는 아르곤이랑 루나가 찾을 거야. 우리는 황궁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자고. 잠자리에 들기 이른 시간에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을 찾아서 말이지.
- 컹?
- 그래, 잘 찾은 거야. 여긴 개들이 많으니 네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숨어 들어가면 되겠다.
- 킁!
- 아, 네가 개라는 건 아니고. 여기 사람들은 정령 같은 거 모르니까…….
- 크릉.
- ……미안.
- 컹!
한 번 봐준다.
“킁!”
월랑은 다시 콧김을 뿜어 주고는 빠르게 건물 근처로 움직였다.
파바박.
그림자에서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아주 작은 강아지.
그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으니.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있는 경비들의 눈은 그 작은 생명체를 전혀 담지 못했다.
그러나.
“끙.”
건물의 입구 근처에 다다른 월랑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출입구가 건물 규모에 비해 좁은데 지켜보는 병사는 많으니, 괜히 무리해서 파고들다간 눈치채는 이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주인이 가끔씩 피를 토해 가며 쓰는 그 능력, 그림자 도약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자리에 주인은 함께하지 않았다.
- 그냥 걸어 들어가. 안에도 개가 있네. 신경 안 쓸 거야.
- 컹!
- 아, 그러니까 네가 개라는 건 아니고…….
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쫄쫄쫄.
주인 말대로 입구를 향해 태연한 척 종종걸음을 옮기는데, 역시나 그 움직임은 대번에 병사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 웬 강아지가……?”
“오, 은빛? 궁에 이런 새하얀 강아지가 있었나?”
“태자 전하께서 새로 들여놓으셨나 보지. 워낙 개를 좋아하시니까 많이 풀어 놓으시잖아.”
“그렇긴 하지.”
“황제 폐하께서는 싫어하시는데, 태자 전하께서는 좋아하시고. 거참…….”
“쉿.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아,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이 정도야.”
“그래도…….”
주인의 영혼을 통해 월랑 자신에게도 해석되는 인간의 말.
대화를 들어 보니 다행히 별다른 제재는 없을 것 같아서 그대로 병사들을 지나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몸을 집어 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어이쿠, 이놈 토실토실하네. 생각보다 무겁고.”
“낑!”
배를 간질이는 그 손길이 불쾌해 몸을 뒤트는데, 다른 병사들의 반응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대장! 설마 또……?”
“대장님, 태자 전하의 개일 수 있습니다.”
“뭐, 궁에 개가 한두 마리야? 한 마리 없어지는 건 신경 안 쓰셔.”
- 내가 한 말 아니다. 쟤들이 한 말이야.
- 크릉.
자신을 개 취급하는 말에 자꾸만 기분이 상해 가는데, 이내 그 대장이라는 털북숭이가 더욱 소름 끼치는 말을 꺼냈다.
“개고기는 새끼 때가 제대로야. 야들야들하니. 아따, 그놈 맛있겠다.”
“컹?”
뭐 인마?
어딜 하찮은 인간 놈이……!
“크르르.”
“아따 그놈 성깔 있네. 그래 봤자 네가 개지.”
개 아니다, 이 잡놈아.
- 야, 참아. 나중에 사람 없는 곳에서…….
그 무도한 태도에 이빨을 드러내자 주인이 자신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다른 병사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놈처럼 완전히 하얀 개는 처음 봅니다. 태자 전하께서도 인식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런가?”
“예, 아무래도요.”
“하, 씨……. 쯥, 어쩔 수 없네.”
그러자 대장이라 불린 놈이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놓아주었다.
“크릉.”
“거참,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구네.”
“영리한 개도 많다니까요.”
- 신경 쓰지 마. 움직여.
주인의 재촉에 월랑은 다시 한번 그 털북숭이를 째려봐 주고는 돌아섰다.
너, 딱 봐 놨어.
킁.
뽈뽈뽈.
인간의 동굴 양식은 볼 때마다 신기했지만, 이 대륙의 것은 또 달랐다.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채워진 그림이나, 수수한 문양의 도자기들.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는 월랑이 서대륙에서 보지 못한 인간의 장난감들을 기웃거리는데.
“어머!”
“귀엽다!”
“얘,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또다시 자신의 몸을 집어 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킁.”
다행히, 이번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꺄! 털 새하얀 거 봐. 얘, 어디서 왔니?”
“역시, 태자 전하께서 개를 좋아하시니까 이런 게 좋네.”
“이렇게 귀여운 애는 처음 봐.”
피부색은 좀 낯설지만 눈매가 수수하고 순해 보이는 인간 암컷들.
- 태자라?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월랑은 자신의 배를 간질이는 그들의 손길을 잠시간 즐겨 보려 했는데.
- 야, 시간 없어.
자신을 재촉하는 주인의 말이 들려 왔다.
“킁.”
바둥바둥.
그에 약하게 몸을 뒤틀자.
“어, 얘 우리 싫은가 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놔주자.”
“눈에 띄는 애니까, 종종 보겠지.”
“아쉽네.”
인간 암컷이 조심스레 자신을 땅에 내려놓았다.
“킁.”
시무룩해진 인간 암컷들의 표정을 보며 도도하게 턱을 치켜올린 월랑은 다시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서자, 1층에 비해 사람이 확연히 적었다.
- 지금부터는 최대한 사람을 피해 봐. 눈에 안 띄게.
- 컹!
파바박.
그때부터 월랑은 곳곳에 놓인 장식물의 그림자에 숨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움직였다.
- 무사들 시야 조심하고.
그렇게 조심스레, 하지만 빠르게 3층으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방 앞을 지키는 무사 둘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 너라면 굳이 가까이 갈 필요는 없겠지?
- 컹!
월랑은 자신이 타고 올라온 계단에 진 그림자에 숨어 귀를 쫑긋 세웠다.
본래부터 인간보다 월등한 늑대의 청력이 마나의 힘을 통해 극대화되었고.
- 잠깐, 여기 마나 흐름이 좀 이상한데? 뭐, 이 정도야…….
주인의 도움까지 받는 순간, 문과 벽 너머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 다행히 한창 대화 중이네. 건질 만한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주인의 의지와 함께, 그들의 의식이 방 안의 대화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 * *
넓은 방 안에 자리한 것은 불과 세 사람.
붉은 새가 수놓아진 황금빛 비단옷 차림에 화려한 관모까지 쓴 청년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노년의 관리 둘이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간 긴 이야기가 오갔는지 다소 지친 얼굴의 관리 한 명이 찻물로 목을 축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동물을 더 들이는 일은 그만두시지요. 특히 맹견류는 얼마 전에도 시종을 문 사고가 있었습니다.”
온화한 목소리로,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이야기를 꺼낸다.
자연히 청년, 황태자 이상연은 그대로 콧방귀를 끼었다.
“흥, 일없다.”
“태자궁에 대한 평이 더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자중하심이…….”
“일없대도.”
거침없는 하대와 명확한 거부의 표현.
황제에게조차 경어를 듣는 영의정과 우의정을 대하는 태도라기엔 지나치게 무례했지만, 정계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두 대신은 불쾌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그 무례한 말 속에서 황태자의 의중을 읽는 데 신경을 쓸 뿐.
“혹시 폐하 때문이십니까?”
“아바마마가 동물을 싫어하시니, 나라도 좋아해야 하지 않겠나. 흐, 하찮은 동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유약한 황제보다야 웃는 황제가 낫겠지. 사람이 미물을 무서워해서야 쓰나? 쯧쯧.”
동물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평을 듣는 황태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발언.
하지만 황태자의 본성을 알고 있는 영의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폐하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 신하로서 크게 염려가 될 뿐입니다. 혹시나 태자 전하께서 기르시는 동물들이 그분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는 않을는지…….”
“그러라고 기르는 게야, 그러라고! 내가 진짜 미물들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아는가!? 내 사람이라는 이들이 그것도 몰라?”
그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두 관리가 동시에 몸을 낮추었다.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전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습니다.”
영의정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찬 황태자가 우의정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의가 필요 이상으로 유능한 것 아닌가? 오늘내일하신다는 분이 어떻게 1년을 넘게 버티고 계신 거지?”
“대장군 서일산이 기공으로 폐하의 몸을 다스리고 있다 하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흐. 이 평화의 시대에 무관들이나 끼고 다니시더니, 그 덕분에 수명을 연장하고 계신다는 건가? 참 우스운 일이군.”
밖으로 새어 나갔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질 만한 발언이었지만, 황태자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황궁, 정확히는 태자궁에 설치된 진(陳)법이 있는 한 대화가 새어 나갈 일은 없으리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 여기도 막장이네. 하여간 권력자라는 것들은. 쯧쯧.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자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터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폐하께서 심력을 소모하실 일이 많아지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황위를 이어받으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아까부터 말을 아끼며 두리뭉실한 태도를 고수하는 늙은 영의정과는 달리, 그에 비해 아직 수염과 머리에 검은 가닥이 많이 남아 있는 우의정의 말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심력? 아, 그 이방인들이 가져왔다는 소식 같은 거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서방에 난리가 벌어졌다는데, 그 재앙이 우리 동방에도 번질 것이라 경고를 해 온 것이지요.”
“흥. 양이들이 헛소리를 지껄인 게 어디 한두 해인가. 요술쟁이들의 감언이설 따위…….”
동대륙에는 마법이라는 학문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동대륙에서 한탕 해 먹어 보려던 자칭 마법사, 사기꾼들이 득세하며 제국을 어지럽힐 뻔했던 사건이 불과 백여 년 전이었다.
선 제국은 그 일 이후로 서방에 대한 폐쇄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으니, 영의정이나 우의정 역시 황태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런데 폐하께서는 꽤 신중하게 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뭐?”
“내일 이방인들을 불러들여 연유를 듣고, 타당하다면 조치를 취할 생각이신 듯합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백 년밖에 지나지 않은 그 일을, 아바마마는 벌써 잊으셨단 말인가!?”
황태자는 분노한 듯 소리쳤지만, 그것이 그저 빨리 황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황제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임을 듣고 있는 두 관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사옵니다.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위해서라도, 태자 전하께서 중심을 잡아 주셔야 합니다.”
“병력을 모아 군대를 움직이는 일은 무관들에게 더 힘을 실어 주는 수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막으셔야 합니다.”
그런 태자의 말에 호응하며 그를 더욱 부추겼다.
“그러지. 내 마땅히 그리해야지. 그대들은 나만 믿게.”
그리고 태자는 그런 그들의 감언이설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이거 미친놈들일세. 나라를 말아먹을 생각인가?
- 컹!
- 좀만 더 들어 보자.
방 안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타이니가 황당해하면서도 더욱 귀를 기울이는데.
- 쾅!
- 콰앙!
태자궁 밖 멀리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알아보겠사옵니다.”
“여봐라!”
그에 방 안의 대화가 끊겼고, 이내 밖에서 대기하던 무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타이니 역시.
- 설마 그 녀석들이……? 젠장. 월랑, 돌아와.
걱정스러운 영파와 함께 월랑의 빙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컹?”
영문 모를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월랑은 주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그대로 현신을 풀려다가.
“킁?”
조금 전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곤 이내 어딘가로 향했다.
와다다다닥.
번개처럼 계단을 내려간 월랑은 전각의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멀찍이 목표가 보이는 순간, 억눌러 두었던 살기를 터트렸다.
“컹!”
“바빠 죽겠는데 어디서 개소리가……?”
예의 그 털북숭이가 돌아보는 순간.
쩍.
한순간에 점프한 월랑의 앞발이 녀석의 턱을 그대로 돌려 버렸다.
“끄?”
영문조차 모른 채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지는 경비 대장.
월랑의 몸체는 그 순간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대장이 공격당했다!”
“태자궁에도 침입자가 있다!!”
한밤중에 일어난 황궁의 소란은 더욱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