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343화 (343/500)

343화. 이제 끝내자

“모두를 위해!!!”

“인류를 위해!!”

“우와아아!!”

장례식을 계기로 들끓어 오르기 시작한 전의가 제대로 된 전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마계의 초월무구 데모닉 웨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듯한 저 검고 투명한 절대의 보호막.

“아무리 대마법이나 강력한 오러 스킬이 가해져도 표면에 충격을 분산시켜서 위력을 흐트러트리는 듯한데, 정말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수법이지요. 물론…….”

그것은 혹한의 마도사 아프만이 그리 설명할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수법이었지만.

마족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인류 연합군에는 그런 보호막에 대한 하드 카운터가 있었다.

“타이니 경의 그 수법이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요. 거기다 다른 방법도 있고 말이죠.”

“군단 스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솔레인 님이 돌아가셨는데도 가능한 겁니까?”

웨폰 마스터 그리드 반 셀던의 질문에 아프만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비록 솔레인 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정수는 아르곤에게 이어졌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놈들이 보호막을 친 게 타이니 경을 낚기 위한 미끼라면, 군단 스킬이 오히려 제대로 된 답일 겁니다.”

그 자신 있는 대답에, 그리드는 자신의 자부심과 같은 하늘빛 콧수염을 튕기며 말을 보탰다.

“아르곤 경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가 당장 솔레인 님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겁니까?”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그렇게 말한 아프만이 시선을 슬그머니 돌리는 것을 보며, 그리드는 웃었다.

“다른 방법도 있지요. 굳이 연합군의 비장의 수를 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예?”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 보여 드릴 테니까요.”

“그게 무슨……?”

“하이넨 공!”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그리드의 고함에 쿵쾅거리며 달려온 강철의 거인.

기갑왕 혹은 기갑 기사라고 불리는 드워프들의 첫 번째 망치, 하이넨이었다.

“우리만 뒤처질 수는 없지요. 제대로 보여 줍시다, 그리드 공.”

“물론입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자, 미리 얘기가 된 것인지 모든 병사들이 스스럼없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어쩌려고…….”

그 방법에 대해 들은 바가 없던 아프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지진의 마도사 록펠러가 바로 말을 보탰다.

“믿어 보시지요. 안 그래도 다른 12대 기사에 비해 전과가 없어서 고심하던 두 분이 절치부심한 것 같으니까요.”

그 말 그대로였다.

이미 칠죄종 중 탐욕을 끝장내고 이곳으로 온 광휘의 기사와 용사, 그리고 세계수의 수호자와 사신.

그들은 이 전장에 뒤늦게 등장했음에도 한순간 전세를 뒤집는 절대적인 활약을 선보였고, 원래 이곳에서 싸우던 12대 기사들도 저마다 홀로 장군 중 하나를 봉쇄하는 수준의 공을 세웠다.

거기다 12대 기사 중 최약체로 손꼽히던 마도 기사 아르곤은 그레이트 미라, 프린세스를 패퇴시켰고.

마찬가지로 12대 기사의 말석이라 할 수 있는 제나스는 조건부 8단계라는 특이한 경지와 영역을 개척하며, 7대 장군 중 수좌인 길로틴을 사실상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그들을 실제로 끝장낸 건 적진에 숨어든 사신이라 하더라도, 그 공은 절대 작지 않았다.

그런데 웨폰 마스터와 기갑 기사가 이번 전투에서 이룬 전과라고는, 그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뱀파이어 로드 샹귀스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전과는 아니지만, 다른 12대 기사에 비해 초라한 전공인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저 두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타이니 경이 오렌 평야에서 보호막을 깨트릴 때도 거의 전력을 쏟아부었던 걸로 아는데?”

아프만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방법이 있으니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12대 기사가 허명은 아닐 테니 믿어 보시지요.”

마도사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왕국 연합군과 드워프 정예들을 비롯한 인류 연합의 지도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기사가 전선의 가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우우우웅.

“하!”

그리드가 빙하의 검 프리즈&태그를 꺼내 들자,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다른 4가지 초월무구가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떠올랐다.

이제는 굳이 시동어를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연계 작동이 되는 수준에 오른 그였다.

격전을 거듭하며 초월무구를 다루는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 것이지만, 또 달리 말하면…….

‘그것뿐이지.’

웨폰 마스터라는 이명에 부끄러운 수준일 뿐이었다.

자신이 라이벌로 여겼던 검제는 이미 오러익시더의 경지에 올라, 고작 초월무구 하나를 희생해서 군단 스킬의 전진을 막아 낸 괴물을 상대로 접전을 벌였다.

반면 자신은 하이넨과 힘을 합쳐서 그보다 못한 장군 하나를 간신히 묶어 두는 수준에 그쳤으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당연했다.

‘면목이 없음이야…….’

그리고 그것은 이 랑켄 평야의 전장에서 그리드와 계속 함께했던 하이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 회귀자인 타이니가 그들이 쓰던 미래의 수법을 온전히 전해 줬지만, 그마저도 결국 좀 더 빨리 초월무구들을 구하고 그 사용법에 익숙해진 것에 그쳤다.

그래서 어제, 그들은 다시 타이니를 찾아갔더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 초월무구를 너무 많이 쓰면 영격을 잡아먹어 성장을 늦춥니다. 저도 이걸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합니다, 영감님.

그리드는 사실상 무인으로서, 그리고 기사로서 사형 선고에 가까운 말을 들었고.

- 불벼락은 그렇다 치고, 전투 기갑 테그멘은 초월무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는 것인 만큼 그걸 상시 착용하고 움직이는 난쟁이 영감의 영혼에 악영향을 줍니다.

하이넨 역시 절망적인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 그렇다고 이제 와서 초월무구를 버릴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그럴 수는 없지.’

당장 눈앞의 일도 극복 못 하면서 미래의 발전을 위한답시고 초월무구를 포기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 그래도 두 사람 다, 그대로 멈춰 있을 생각은 아니죠?

타이니의 그 말에 그들은 미소로 답했다.

고작 ‘그 정도 난관’만으로 성장을 포기할 거였으면, 애초에 오러유저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러유저란 무형의 생명 에너지인 마나를 파괴의 권능으로 벼려 낸, 비상식적으로 강력한 영혼의 소유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동료들이 성장하고 있는데, 그들을 따라가는 길에 장애물이 좀 더해졌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앞으로는 스스로의 발전이 조금 더 힘들어질 것이라 각오를 다졌을 뿐.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두 사람은 한 달 넘게 손발을 맞춰 온 자신들의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초월무구의 연계 방법에 대해 더욱 고민하기 시작했다.

- 이러면 어떠한가?

그러던 중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빙염(氷炎)의 마도사 티네스가 자신의 특기 마법에서 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하이넨과 그리드는 그 즉시 감탄했고.

- 와우!

그 설명을 들은 타이니 역시 크게 놀랐다.

물론 타이니가 정말 이해하고 놀란 건지 그냥 아는 척해 본 건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고.

- 시험해 볼 가치가 있을 듯하군.

뒤이어 얘기를 전해 들은 검제 역시 찬성했다.

그러니, 이젠 보여 줄 일만 남았다.

“제대로 체면치레해 봅시다, 하이넨 공.”

“물론이오!”

그리드의 검이 검은 보호막을 향해 겨누어지는 순간.

“그럼, 이 몸이 먼저!”

그가 가진 나머지 네 개의 초월무구가 호응하며, 일순간 모든 기운이 그 검에 모여들었다.

초월무구 연계, 빙하의 검 프리즈&태그 속성 극대화.

혹한의 파도, 일점 집중.

하얗다 못해 푸르게 느껴지는 빛이 마기의 보호막을 향해 쏘아지는 순간.

하이넨 역시 테그멘의 왼손에 장착된 붉은 원통형의 초월무구에 힘을 집중했다.

“합!”

우우웅.

그 즉시 움직이는 오러. 초월무구 테그멘의 힘까지, 하이넨의 전력이 순식간에 모두 불벼락에 모여들었다.

상시 착용해 신체의 일부처럼 움직이고 있는 테그멘에게 스스로의 영격이 잡아먹혔다곤 해도, 하이넨 역시 지난 전장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해 왔으니.

그리드가 개발한 초월무구 연계 수법을 그 역시 일부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투 기갑 테그멘 풀가동. 초월무구 연계, 불벼락 풀 차징.

오러&마법 극대화 증폭. 오러 레이저.

찌이이이이잉!

대지와 불, 복합 속성을 가진 하이넨의 오러가 오직 불 속성에 집중되며 불벼락에 모여들더니, 그대로 적색의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쏘아졌다.

그리고 그리드가 쏘아 낸 푸른 냉기의 힘이 보호막과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쩌어어어엉!

우우우웅.

두 가지 상극의 힘이 일점에서 부딪치며 서로 소멸하려던 순간.

- 호응하라!

두 초인의 의지가 움직임과 동시에, 서로 부딪치며 소멸했어야 할 상극의 에너지가 오히려 극도로 반발하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빙염의 마도사 티네스가 영감을 얻었던 고대의 초마법.

미처 실현하지 못했음에도 그를 마도사의 경지로 이끈 비기가, 두 오러유저의 의지와 일곱 초월무구의 공능을 빌려 이 자리에 현현했다.

빙염 속성 합일. 증폭.

극대소멸파.

우우우우우웅.

꽝-------------!

엄청난 진동에 이어진 굉음과 함께, 전장의 중심부를 뒤덮고 있던 거대한 검은 보호막의 일각이 터져 나갔다.

우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전면부가 뻥 뚫린 마족들의 보호막이 그대로 무너지고, 그 후폭풍과 여진이 평야를 뒤흔드는 순간.

“전군! 진격!!!”

“우와아아아!!”

검제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인류 연합군이 거센 진격을 시작했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전장, 그 전투의 끝을 내기 위하여.

그리고 훌륭하게 그 시작을 알린 두 사람은.

“흐으…….”

“이거, 연구가 더 필요하겠습니다, 하이넨 공.”

“그렇, 소이다.”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한 만족감과 그 기술의 개선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두 사람이 한 지점에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하며, 그렇기에 목표 역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단점.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을 위해선 전투 예지에 가까운 감각을 지닌 하이넨이 반 박자 늦게 힘을 쏟아 내야 한다는 점 등등.

개선해야 할 점은 많았지만, 탈진한 두 오러유저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좀 더 연구하면, 파괴력만큼은 그 녀석의 그 일격 수준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아닌 듯하오, 하이넨 공.”

“아니 뭘 또 말을 그렇게…….”

물론 다소간의 불협화음이 있긴 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어느새 연합군의 가장 앞쪽에서 늑대를 탄 채 질주하는 검은 머리 기사를 향해 있었다.

* * *

‘대단하시네, 영감님들.’

타이니는 질주하는 와중에도 속으로 감탄했다.

솔직히 티네스 영감이 불과 얼음이 어떻고 하며 설명해 주었을 때, 하나도 못 알아듣기는 했다.

그래도 뭔가 있으니 저리 말하는 거겠지 싶은 마음에 잔뜩 호응해 줬더니, 불과 하루 만에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 온 것이다.

품위와 예의를 중시하는 웨폰 마스터, 그리고 직감을 맹신하여 멋대로 행동하는 기갑왕.

전생에서 두 사람은 친해지기 힘들다 못해 서로 상극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번 생에서는 이상하게 합이 잘 맞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게 새삼 가슴에 와닿는 순간.

- 어떻게!?

- 서둘러라!!

전장의 중심, 차원문의 근처에서 불안한 영파가 감지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군.’

생각보다 더 많이 줄어든 언데드 병단의 숫자만큼 차원문은 더욱 커져 있었다.

게다가 데로드를 비롯한 리치들이 그곳에서 무언지 모를 거대한 마법진을 형성한 채 차원문 안으로 거대한 마기를 투사하고 있는 흐름 또한 그대로 느껴졌다.

목적이야 뻔했다.

질투의 강림.

- 고대의 질투는 영혼살로 한 번에 수만을 격살하고 그대로 자신의 군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 대군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최악의 칠죄종이지요.

크롬벨이 경고한 괴물의 강림을 위한 것일 터.

하지만.

‘그럴 거면 처음부터 바로 놈을 소환했어야지.’

모든 것이 틀어진 뒤에나 저 짓거리를 하는 것이 놈들의 가장 큰 실수다.

“아직은 안 된다, 새끼들아!”

쾅.

지면을 폭발시키듯 터트리며 가속한 늑대와 기수가, 다시금 노을빛 유성이 되어 전장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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