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달빛이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고…….
하늘이 열렸다.
그 표현이 딱 어울렸다.
태양을 가리던 먹구름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그야말로 신화 속의 그것처럼, 천국에서 구원의 빛이 내려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아…….”
인류 연합군의 정예들이 치열한 전투 중에도 한순간 멈칫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만약 그게 전부였다면, 솔레인의 대마법은 고작 먹구름 하나 치우면서 아군 전체가 한순간 움찔하게 만들어 버린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겠지만.
“크르르.”
“끄으으.”
다행히 연합군 병력이 상대하던 언데드들 역시 태양 빛이 쏟아지는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고.
그중 약한 언데드, 이를테면 되살아난 지 얼마 안 된 인류 병사의 시체들은 그 상태 그대로 눈에 붉은빛이 사라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끄륵.”
쿵. 쿵.
털썩.
약한 언데드라고는 해도 그 숫자는 현재 언데드 병단 총원의 삼분의 일에 가까웠다.
거기다 비교적 강한 언데드들조차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는 검게 물든 대지 바깥으로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쿠우우…….”
“크륵.”
그저 태양 빛이 내리쬐는 것만으로도 언데드 군단 전체가 진군을 멈춘 것이다.
- 이놈!!!! 감히 인간이!!
아크 리치, 데로드의 음성이 전장에 울려 퍼지며 다시 하늘로 막대한 마기가 솟구치는 것이 보였지만.
- 빛이여!!!!
이런 경우까지 대비했던 것인지, 전선 전체에 퍼져 있던 전투 사제들이 일시에 신성력을 쏟아 내는 순간.
그 마기는 다시 먹구름을 만들지 못한 채 흩어졌고, 오히려 남아 있던 먹구름마저 밀어 내며 태양 빛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었다.
쿠우우우웅.
강력한 무력에 비해 격이 낮은 거대 마수의 시체들이 하나둘씩 땅에 쓰러지고, 언데드 군단의 진형에 크나큰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선에 있는 모두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이때다! 밀어붙여!!”
최전선에서 몸을 추스르던 검제의 입에서 전장을 울리는 호통 소리가 터져 나오고.
“우와아아아아!”
“여신께서 지켜보신다!”
“인류를 위해!!!!”
신화적인 광경 속에서 전례 없이 사기가 솟구친 연합군이 일시에 언데드 군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에 떠올라 태양 빛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무시무시한 마기를 피워 올리던 아크 리치, 데로드의 손에서 칙칙한 마기의 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 이, 빌어먹을 여신의 종들이……!!
살기 어린 영파와 함께 수백, 수천 개의 검은 화살로 변한 마기가 랑켄 평야 전역에 퍼져 있는 사제 하나하나를 노리고 쏘아졌다.
거기다.
- 마계화 중지! 여신의 종들부터 끝장내라!!
이어진 영파에 차원문 앞에서 대지를 오염시키는 마법진을 유지하던 아크 리치 둘과 리치 열넷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 사제들을 보호하라!!!
그러자 다시금 솔레인의 외침과 함께 솟구친 빛살이 데로드의 암흑 화살 중 절반을 녹여 버렸고.
혹한의 마도사 아프만, 지진의 마도사 록펠러, 빙염의 마도사 티네스를 필두로 한 인류 연합의 최정예 마법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다만,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리치들과는 달리 인류의 마도사들은 한데 뭉쳐서 동시에 마법진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8단계 악마급 둘, 7단계 초월급 열넷과 비교하면 부족한 마법 전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곤 해도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아마도 마법사들, 특히 마도사들을 절대 고위 마족과 직접 부딪치지 말라는 교전 수칙을 의식한 듯했지만.
전세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이에게는 그 움직임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씁, 개판이네…….”
그 순간 타이니는 차원문을 향해 내달리던 질주를 멈추고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리치들을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
- 쥐새끼!!
쿵. 쿵.
머리 위에 왕관 같은 모양의 뼈가 솟구쳐 있는 거대한 스켈레톤과.
- 길로틴이 패퇴했다! 이놈을 빨리 처리하고 인간족 군세부터……!
새까만 박쥐 떼로 변해 어느새 근방까지 쫓아온 이 악마 장군들부터 어떻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릭!’
위험에 빠진 듯한 친구도 구해야 했다.
“컹!”
방향을 틀어 달리던 타이니는 멀리서 악마 장군 둘과 대치 중인 저릭을 향해 더욱 가속하기 시작했다.
“전부 꺼져라!”
콰콰콰쾅!
녹턴을 번개처럼 휘둘러 걸리적거리는 언데드들을 박살 내고 튕겨 내길 수차례.
하지만 그렇게 전장을 돌파하다 보니, 거인 스켈레톤이나 하늘을 나는 박쥐 떼보다 이동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이라면야 허공으로 내달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눈앞에 거슬리는 언데드 군단의 병력을 회피해 돌아가는 꼴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방법도 있었다.
‘더 빨리!’
- 컹!
우드드득.
타이니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새하얀 머리의 거한으로 변했고, 월랑의 덩치 역시 그에 맞춰서 조금 더 커졌다.
이내 월랑의 몸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불꽃 같은 노을빛 오러가 타이니의 전신까지 뒤덮었고.
인마일체(人馬一體), 아니 인랑일체(人狼一體)가 된 그들의 전면으로 타오르는 듯한 노을빛 갑주의 형상이 떠올랐다.
전면으로 기다란 가시가 돋친 듯한 독특한 갑옷 형태의 오러가.
타이니식 전투 살법, 철신갑&몸통 박치기 변형.
늑대 전차.
“아우우우우!”
하울링과 동시에 갑자기 두 배 이상 빨라진 월랑의 질주.
꽝!
굉음과 함께 처음으로 부딪친 이족 보행형 자이언트 좀비가 그대로 피 보라로 화해 사라졌고.
콰콰콰쾅.
그들의 질주를 가로막던, 아니 경로에 있던 모든 언데드가 그대로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노을빛 유성이 지상을 내달리며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분쇄하는 광경이 펼쳐진 가운데.
- 서라……!
쿵. 쿵. 쿵.
- 귀찮게!
찌르륵.
두 명의 악마 장군은 여전히 타이니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타이니의 눈이 빛났다.
‘저놈!’
붕대에 묶여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저릭과 툭 튀어나온 붉은 눈을 번뜩이며 그를 몰아치는 녹색 괴물.
그 광경을 본 타이니는 그대로 가속하여 녹색 괴물의 몸뚱이를 들이받았다.
- 뭣!?
꽈아아아아앙!
“큭!?”
장군급 악마답지 않게 반응 속도도 느린 놈이, 이상할 정도로 타격 반동이 강했다.
쾅. 쾅. 콰아앙.
우르르르릉.
튕겨 나가는 순간 주위의 언데드들을 무참히 박살 내는 동시에 막대한 진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니, 보기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튼튼하고 무거운 놈 같았다.
‘왜 익숙한 느낌이 들지?’
눈이 돌아간 채 공격을 퍼붓는 놈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기시감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타이니!? 정말? 왜!?”
놀란 저릭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타이니는, 그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시끄럽고, 이놈들부터!”
“오케이!”
대답을 안 해 주면 굳이 의문을 품지 않는 것도 저릭의 매력 중 하나였다.
우드드득.
자신의 몸을 휘감은 붕대를 단숨에 뜯어낸 저릭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프린세스를 향할 때.
- 흡!?
- 어림없다!
타이니의 뒤를 따라온 박쥐 떼가 정장을 입은 신사의 모습으로 변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꽈아아아앙!
“샹귀스?”
그레이트 미라, 프린세스의 의문 섞인 탄성이 튀어나오는 순간.
“흥!”
그 틈을 노리고 튀어 나간 타이니가 그대로 뱀파이어 로드를 후려쳐 허공으로 날렸다.
“컥!”
그렇게 놈의 몸이 날아간 곳에서는, 검은 불꽃을 휘감은 기둥 같은 무언가가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빌어먹을!
타이니를 거의 따라잡은 스켈레톤 거인은 거대한 기둥 같은 새하얀 뼈의 대검에 이글거리는 암흑 오러를 담아 내리치다가, 궤도에 들어온 동료를 보고는 황급히 공격을 틀었다.
콰아아아아앙.
콰콰콰콰.
우르르르릉.
스켈레톤 킹 본메쉬의 막대한 무게와 암흑 오러가 실린 공격이 대지에 거대한 상처를 만들어 내며 사방에 작은 지진을 일으켰다.
“본메쉬, 샹귀스. 왜?”
- 상황이 급하다, 프린세스.
- 이놈들부터 처리해!
일순간 동선이 얽힌 악마 장군들이 혼란에 빠진 듯했지만.
“크르르.”
콰콰콰쾅.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건지, 이미 눈이 완전히 돌아간 구울 로드 프린스가 자신에게 한 방 먹인 타이니를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그것을 본 다른 장군들도 물 흐르듯 움직이며 연계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악마 장군 넷의 영역이 동시에 진동하며 먹잇감들에게 압박감을 더했다.
- 전부 멈춰선 채 죽어라!
꽤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직은 여력이 남은 프린세스의 붕대가 사방의 공간을 점유하며 타이니와 저릭의 움직임을 묶었고.
- 네 영혼에 피의 저주를!!
녹턴에 당한 상처에서 피를 흘리던 샹귀스가, 그 피를 매개로 적들의 사위를 휘감는 새빨간 결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위로.
- 이것이 진정한 죽음의 검이다.
인간의 시각으로는 검이 아니라 뼈 기둥으로 보이는 거대한 뼈 대검이, 타오르는 암흑 오러를 휘감은 채 결계와 붕대에 묶인 두 제물을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밑에서는.
콰콰콰쾅!
“크르르르.”
“끄르르르.”
혼자서 결계 밖으로 튀어 나간 월랑이 한순간에 프린스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쳤고.
타이니는 온몸을 노을빛 오러로 휘감은 채 그대로 유성이 되어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그레이트 미라의 붕대술과 뱀파이어 로드의 결계술 탓에 몸에 막대한 부하를 느끼면서 억지로 움직이려던 저릭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유성 떨구기(Meteor Strike).’
자신과는 달리, 마치 두 악마 장군의 수법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은 움직임.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말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 저릭!
그 찰나의 순간 타이니가 자신의 영혼에 전해 온 영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타이니는 자신 역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긴, 보여 준 게 있으니까.’
저릭의 얼굴에 미소가 스치고.
특화 영역 전개. 전쟁의 길(War Road).
이내 끝없이 확대되며 진동하는 영역의 힘이, 한순간 속박을 끊어 내고 적들의 영역까지 상쇄하며 자유를 얻어 냈다.
‘마지막 기회.’
실패하면 뒤가 없는 기술을 써 버렸지만, 이보다 적절한 타이밍은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저릭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바람의 오러가 그의 도끼 아너를 감싸고, 이내 아너가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타이니가 그에게 기대한 것은 그저 붕대와 결계의 속박에서 탈출하는 일만은 아니었으니.
저릭식 도끼 살법, 최종오의.
월광만천하(月光滿天下).
진동하는 영역의 힘에 의해 증폭된 그의 오러가, 붉은 마기의 공간을 온통 새하얗게 물들이는 빛을 발하며 타이니가 돌진하는 경로 앞에 펼쳐졌다.
마치 아군을 죽이려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돌진하는 타이니도, 비기를 펼쳐 낸 저릭도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그럼 우리가 같이 쓰던 합동 기술도 있었냐?
- 당연하지. 난 그걸 이렇게 불렀어. 유성우(Meteor Shower).
- 어? 그건 동대륙어 아니네?
- 크크, 아쉽냐?
- 뭐 꼭 그런 건…….
- 그래서 이런 이름도 붙였다. 월광휘암천야, 유성우만천하(月光輝暗天夜, 流星雨滿天下).
- 그건 무슨 뜻인데?
- 달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빛낼 때, 유성의 비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콰아아아아아앙!
달빛을 닮은 저릭의 오러가 주위의 모든 바람의 힘을 모아 추진력으로 바꾸자, 유성으로 변한 타이니가 급가속되며 허공에 파공음을 만들어 냈고.
쩌어어어엉.
이내 몇 배 더 커다란 붉은 유성으로 변한 타이니의 몸이, 하늘을 메울 듯 떨어져 내리는 거검을 뚫고 그 거대한 스켈레톤의 몸 한가운데를 그대로 관통했다.
- 커흑!?
스켈레톤 킹의 단말마가 울려 퍼진 직후.
타이니가 솟구쳐 올라간 하늘에서, 붉은 빛 유성을 닮은 오러의 세례가 지상을 향해 미친 듯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