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언데드 병단 (3)
“어이, 덩치. 우리 마치 동족처럼 닮지 않았어? 아, 네가 좀 더 못생겼다는 거 빼고 말이야.”
저릭은 되지도 않는 적의 도발에 도끼로 응수했다.
그리고.
쾅!
그그그그극.
뿌드득.
자신의 도끼를 막아 내는 ‘손’의 주인을 보며 이를 갈았다.
고작 손으로 초월무구 아너를 막아 내다니.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새삼 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
맞부딪친 도끼와 손이 크게 힘겨루기를 시작하자마자, 둘의 주변으로 광풍이 불었다.
“왜 흥분을 하시나?”
누더기처럼 기워진 살가죽과 호리호리한 체구.
그 전신에 가득한 꿰맨 자국과 녹색 피부만 아니라면 꽤 미형이라 볼 만한 얼굴이 저릭의 코앞에서 미소를 짓는 순간.
“흥!”
저릭은 그 미소에 발차기로 응대했다.
쾅!
적과 동시에 내지른 발이 맞부딪치며 그의 몸이 저절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안에 실린 암흑 오러나 힘도 엄청났지만, 더 위협적인 것은 겉보기로 짐작이 안 되는 엄청난 무게였다.
쿵.
그저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땅이 움푹 파이는 무게.
마치 자신의 친구 타이니처럼.
‘역시 정면으로는 안 돼.’
바람의 오러를 전신에 휘감은 저릭이 그대로 가속하며 적, 구울 로드(Ghoul Lord) 프린스의 사각을 노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비교 우위인 스피드를 한껏 끌어 올려 공세를 쏟아 내는 저릭과 그것을 방어하는 적.
하지만 공격하는 쪽도, 방어하는 쪽도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 또 이러네. 네가 그나마 묵직해 보여서 고른 건데, 날 이렇게 실망시키면 쓰나.
쏟아지는 공세 속에서 더 입을 나불거릴 수 없게 된 프린스가 영파로 도발하듯이.
“쯧.”
둘의 전투는 언젠가부터 이렇게 교착 상태에 빠져들어 있었다.
대마도사 솔레인의 작품, 군단 스킬이 작은 성과를 낸 데에 그친 이후부터 이놈은 저릭에게 따라붙었다.
지금 연합군이 밀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군단 스킬의 핵심이 되는 초인들이 언데드 군단의 장군과 부관들에게 각각 집중 공격을 당하며 랑켄 평야 사방에 흩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직감하고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정면 승부를 걸었다가 그대로 죽을 뻔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그때부터 저릭은 프린스와의 정면 격돌을 가능한 한 피해 왔다. 조금 전처럼 간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타이니의 말이 스쳤다.
- 네가 겉보기에는 대가리가 깨져도 정면으로 들이박을 것 같은 스타일이지만, 사실은 아니잖아?
- 너 전생에도…….
그 말대로였다.
부족의 천재아로 불리며 주목받던 그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사냥과 전투에 참여했고, 어른들에 비해 부족한 신체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회피 및 흘리기 기술과 약자부터 노리는 전투법을 몸에 익혔다.
그가 바람의 속성과 ‘약자 멸시’ 특성을 개화한 것도 그런 경험이 쌓인 결과였다.
다만 그를 상대하는 강자들 대다수는, 육중해 보이는 외모만 보고 그런 특성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언제나처럼 새로운 방법을 완성해 냈다.
‘바로 이렇게.’
-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펑!
콰콰콰콰.
놈이 주먹을 뻗는 순간 근방의 대기가 터져 나가고.
쿵.
우르르릉.
발을 한 번 구르는 순간 대지가 진동하며 지면이 뒤집혔다.
그리고 저릭은, 마치 곡예를 하듯 바람과 바람 사이를 밟고 놈의 공세를 피하며 반격의 틈을 노렸다.
‘지금!’
쩌어억.
“캬아악!”
쾅!
놈의 옆구리를 도끼로 길게 그어 놓은 것에 만족할 새도 없이 날아든 주먹.
저릭은 그 주먹에서 터져 나오는 풍압을 타고 자연스레 물러섰다.
스스로 생각해도 거의 귀신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격전이 이어지는 내내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완벽한 회피.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제야 완전히 익숙해졌다.’
바람 걸음.
무게와 대지 관련 특이 속성을 가진 것으로 짐작되는 프린스를 상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 운신법.
멋들어진 이름을 붙이고 싶었지만, 직관적으로 생각나는 이름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법이 아닌, 자신의 영역과 속성, 전투 스타일이 완벽하게 녹아 들어간 최강의 전투 기술.
‘완성했어!’
그것이 비로소 완벽해진 것이다.
지금 이 결전에서 만들어지고 완숙해진 바람 걸음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만큼, 눈앞의 적의 표정은 좋지 않아졌다.
“빌어먹을 놈이…….”
일그러진 표정의 프린스가 입을 벌리는 순간.
“끄륵?”
주변에 있던 좀비 수십 마리가 그대로 ‘녹아서’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무튀튀한 연기로 화한 좀비 무리가 프린스의 몸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찌지직.
저릭이 기껏 만들어 낸 옆구리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놈의 암흑 오러가 위력을 뻗치는 범위 밖으로 물러난 그가 다시 대시하지 못하고 있던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
저릭은 인상을 자연스레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부하를 삼켜 상처와 체력, 그리고 마기를 회복하는 수법이라니.
“지긋지긋하군.”
“누가 할 소리!”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였다.
‘바람 걸음도 완성했고.’
차원문 근처에 모인 리치들이 만들어 낸 마법이, 싱그러운 생명의 내음을 풍기던 랑켄 평야의 대지를 검게 물들이며 점점 더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게 물든 대지 위에서 날뛰는 언데드 병단은, 하늘을 가린 저 먹구름에 의해 점차 불어나고만 있었다.
지금 연합군은 분명히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 저 먹구름, 내가 한번 치워 보겠네.
솔레인의 그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점점 넓어진 포위망이 어느 한순간 뚫리고 말 것이다.
‘이대로는 타이니를 볼 면목이 없어.’
사실 이 생각은, 잠깐이지만 에스티나의 도움을 받았을 때부터 했었다.
그녀의 영역 ‘타겟팅’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군단 스킬을 썼다고 한들 고스트 킹 노네임의 핵을 정확하게 저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소수의 동료만 보낸 서쪽의 엘븐하임에서는 이미 장군 대다수를 처리하고 잔당을 쫓고 있다는데, 오히려 전력을 집중시킨 이곳의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니.
아무리 타이니와 용사, 인류 최강의 두 사람이 그곳으로 갔다 한들…… 아니, 그렇기에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검제는 군단 스킬의 돌진을 막아 냈던 그 괴물 같은 데스 로드 길로틴에게 묶여 있고, 다른 동료들의 상황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터.
장군급을 상대로 그나마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니.
‘내가 해야 해.’
하지만 그조차 방법을 찾기 쉽지 않았다.
“덩치만 큰 쥐새끼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오른 프린스의 눈이 툭 튀어나오는 순간.
놈의 몸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압도적인 마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쾅!
한순간 대지를 폭발시키듯 박차고 튀어나온 프린스의 속도는 직전에 비해 훨씬 빨라져 있었다.
퍼어어어어엉!
그러자 그 움직임이 만들어 낸 풍압을 타고 자연스레 공격을 피해 낸 저릭의 도끼가 다시금 놈의 팔을 그었다.
쩌저저저정.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도끼, 아너가 튕겨져 나왔다.
놈의 몸에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암흑 오러가 마치 갑옷처럼 그 공격을 튕겨 낸 것이다.
‘진짜 타이니 같군.’
바람 걸음을 최대치로 운용할 때의 유일한 단점.
실버 팽처럼 극속의 속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운신법이다 보니, 필살의 일격을 날릴 힘을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웬만한 적은 아너로 증폭된 육체의 힘과 오러만으로도 단숨에 참살할 수 있겠지만, 이놈은 달랐다.
“죽어!”
콰콰콰콰콰쾅.
“지겨운 새끼!”
결국은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진 전투.
쩌저적.
자신의 무력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승부를 가를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아니, 사실은 자신이 좀 더 불리했다.
우걱우걱.
우드득.
마기를 크게 소모하거나 상처를 입는 즉시 주변의 언데드들을 빨아들여 회복해 버리는 프린스는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으니까.
‘저 빌어먹을 수법만 없었어도.’
현실은 현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투 중에도 고민을 이어 나가던 그 순간.
- 콰아아아앙!
저 멀리 평야의 반대편에서 새하얀 번갯불이 하늘 위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실버 팽?!’
평소 그 친구가 낼 수 있는 위력을 한참 상회하는 기운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며 몸에 전율이 흘렀다.
갑작스레 저런 위력의 일격을 날리다니, 좋은 상황일 리 만무했다.
‘무리를 했다? 왜?!’
그리고 그 짐작을 확인시켜 주듯, 이내 번갯불이 솟구친 곳 부근에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 콰아앙!
우르르르릉.
대지를 진동하는 충격이 연달아 퍼지고 있었지만, 확실히 실버 팽의 전격의 오러는 아니었다.
너무 멀기에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문제가 생겼다.’
무언가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다급한 마음이 드는 순간.
- 감히, 나를 상대하며 여유를 부려?
꽈아아앙!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프린스의 주먹.
‘늦었다.’
반사적으로 아너를 들어 그것을 막아 내고 바람 걸음을 최대치로 운용해 몸을 가벼이 하는 순간, 저릭의 몸이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쾅. 쾅. 쾅. 쾅아앙.
“끼릭?”
“대전사님!?”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던 언데드 병력과 오크 전사들의 시선이 한순간 수백 미터 거리를 날아간 그에게 집중될 때.
- 뒈져라!!
찌이이이이이잉!
멀리 떨어진 프린스의 입에서부터 붉은 광선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작은 체구의 전면 전체를 휩쓰는, 직경 2m가 넘는 파멸의 빛이.
‘젠장!’
쿵.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뒤쪽의 오크 전사들을 인식한 저릭이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빛살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저릭식 도끼 살법, 달빛 흘리기.
쩌저저정.
우우우웅.
아주 짧은 순간이 몹시도 길게 느껴지고.
쾅!
아너를 잡은 저릭의 손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순간.
붉은 광선은 주변의 대기를 진동시키며 하늘 위로 꺾여 나갔다.
- 신의 무구! 정말 짜증 나는구나!
쿨럭.
‘누가 할 소리를.’
옅게 피를 토해 낸 저릭이 다시금 돌진해 오는 프린스의 모습을 보며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굳이 상대해 줄 필요가 있나?’
시체 주제에 왕자라는 이름을 가진 저놈은 이미 눈깔이 제대로 돌아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도, 능글맞은 태도를 보이던 놈이 저렇게 변한 뒤부터는 광기만을 드러냈었다.
힘과 속도를 상당량 끌어 올린 대신 지능을 포기한 듯한 변신 상태.
저릭은 프린스의 저 상태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타이니 모드!’
일부러 묶어 두려 하지 않아도 자신만 쫓아올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굳이 이 자리에서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저런 놈을 뒤에 달고 위기에 빠졌을 동료에게로 달려갈 수는 없으니 더 좋은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야!’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방법.
물론 바람 걸음을 완성한 지금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간다!”
파바박.
직감이 든 순간, 저릭의 몸이 프린스가 아닌 적진의 한복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전사님!?”
오크 전사들이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던 그때.
“흐으읍!”
저릭은 멀리 연합군의 총지휘관, 검제가 있을 만한 방향을 향해 바람의 오러를 실어 크게 고함을 질렀다.
- 중앙!!! 보조를 부탁!!
쩌렁쩌렁하게 전장을 울리는 목소리.
지나치게 짧은 말이었지만, 검제라면 이해할 것이다.
아니, 이해해야만 한다.
저릭은 그렇게 차원문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저저적.
쾅. 쾅.
‘약자 멸시’의 특성과 바람 걸음의 움직임을 한껏 살려, 거대 마수형부터 인간형까지 모든 언데드 병력을 가리지 않고 분쇄하기 시작했다.
쩌저적.
“끼에에에!”
콰직.
“꾸르르르!”
털썩.
우르르르릉.
“전부 꺼져라!”
더욱 성장한 오크 대전사의 전력은 하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 감히 나를 무시해!!!
전장을 진동시키는 영파와 함께, 툭 튀어나온 붉은 눈의 구울 로드가 미친 듯이 저릭을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