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탐욕, 애버리스 (2)
탐욕, 애버리스가 원죄의 권능으로 변질시킨 마나의 흐름 안에서도 타이니의 오러 신경망은 그대로 작동했다.
이전보다 더욱 빨라진 적의 돌진을 포착하고, 좌우에 생겨난 분신들과 함께 완벽한 타이밍에 녹턴을 휘둘렀다.
사방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그 흐름을 바꿔 놓은 주범인 탐욕의 육체가 코앞에 다가와 있어도, 타이니 주변의 에너지 흐름은 변하지 않고 온전히 그의 뜻을 따랐다.
그것이 애버리스의 눈동자를 일순간 확대시켰다.
- 내 권능을 무시해?! 미친!!!
놈에게서 당혹스러운 영파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녹턴을 닮은 해머로 타이니를 후려쳐 가는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동시에 전신에 형성된 몇 겹의 검은색 마법진은 좌우에서 쏟아진 분신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미묘하게 닮은 타이니와 애버리스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살기.
서로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것을, 교차하는 눈빛 속에서 확인했다.
그 결과.
꽈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검붉은 충격파가 퍼져 나갔고.
콰콰콰콰콰콰콰.
‘큭!’
타이니는 막대한 압력에 의해 튕겨 나가려던 몸을 중력 속성을 발휘해 억지로 내리눌렀다.
빅뱅을 터득하고 8단계 너머를 바라보게 되면서 이제 그의 중력 속성도 몸무게의 비율로 고정된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전력을 다해 휘두른 일격의 충격 속에서 그 힘을 또 한 번 거스른 대가는 제법 컸다.
우드득.
온몸의 관절에 막대한 부담이 걸리며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그것은 적의 공격을 맨몸으로 한 번 더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충격이었으나,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고작 한 발의 전진이었다.
우르르르르르릉.
쾅.
터져 나가는 지면 위, 느려진 시간 속에서 무겁게 앞으로 내디딘 한 발.
그것은 충격에 저항하지 않고 튕겨 나가던 애버리스에 비해 몇 호흡 정도의 시간을 당겨 온 것에 불과했다.
막대한 타격을 볼모로 얻은 몇 호흡의 우위.
하지만 타이니는 위기감 속에서 의식을 가속하는 것만으로도 자신만의 시간선을 사용할 수 있는 초인 중의 초인.
그 몇 호흡의 타이밍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으니.
꽝!
느려진 시간 속에서 땅을 박차며 홀로 가속한 타이니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간 애버리스의 몸을 쫓았다.
- 네놈……!
애버리스는 그 순간에야 스스로 힘의 흐름을 비틀어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우우우웅.
그사이 타이니의 영역이 다시금 끼어들며 흐름을 방해했다.
- 이게 무슨……!?
콰지직.
애버리스의 몸이 그 반작용만으로 살짝 찢어지며, 그 안에 검은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8단계에 불과한 타이니의 영역, 에너지 필드가 상위의 존재인 애버리스의 영역을 상쇄하는 것을 넘어 그 권능까지 침범하다니, 상식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직전의 충돌에서도 그 때문에 손해를 본 애버리스는, 그제야 이 현상에 대한 원인 일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 운명의 파편……!!!
하지만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망치 머리가 애버리스의 위기감을 자극했다.
실수였다.
분노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반격이나 회피를 생각했어야 했다.
뒤늦게나마 움직인 그의 껍질이, 이 자리에 있는 또 다른 강자인 크롬벨의 성령 갑옷 이상의 강도를 가진 철벽이 되어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비틀어진 권능의 틈을 뚫고 들어온 해머의 일격은, 그 껍질을 부수고 그의 본체를 타격하고 있었다.
“컥!”
전투 중 처음으로 애버리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꽈아아아아아앙!
눈앞의 타이니를 흉내 내서 만들어 낸 육중한 몸뚱어리가 마치 가벼운 공이 된 것처럼 대수림의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파아아아아앙.
콰콰쾅.
우르르르르르릉.
전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터를 한참이나 벗어나 대수림의 거대한 나무 수십 그루를 꺾어 버리며 튕겨 나간 애버리스.
심지어 그 짧은 순간에 힘의 흐름을 조정한 결과가 그것이었다.
탐욕의 군주마저도 한순간 아득해지게 만드는 타격.
그에 자연히 그 분신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 조져!!!”
과부하가 걸려 삐걱거리는 육체를 다스리느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타이니가 동료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하!”
그 말에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는 것은 크롬벨뿐이었다.
그나마도 피를 상당량 토해 낸 듯, 갑옷에 시뻘건 흔적이 가득한 채로 정령 오투스와 함께 질주하는 용사.
그에 불길한 예감이 든 타이니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니.
“미, 미안.”
우드득.
팔 하나가 엉망으로 꺾이고 옆구리엔 구멍이 뚫린 루나가 이를 악물며 뼈를 맞추는 광경과.
끼애애애애액!
한 박자, 아니 세 박자는 늦게 허공에서 쇄도하는 카일룸과 대수림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연신 피를 토하고 있는 에스티나의 모습이 그의 눈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타이니의 의식 속에선 길었지만 실제로는 아주 짧았던 격전이 만들어 낸 참담한 결과였다.
“큭!”
다시금 등줄기에 소름이 끼친 타이니가 억지로나마 혼자 나서 보려 했지만, 마음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이미 숲속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상서로운 빛줄기와 소름 끼치는 마기는, 번개처럼 자리를 바꿔 가며 대수림의 일각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콰아아아앙!
자의인지 타의인지 하늘 높이 치솟은 크롬벨의 몸을 오투스가 그대로 받아 내며, 다시 공터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 정말 여러모로 당혹스럽게 하는구나. 흐…….
소름 끼치는 영파와 함께 진득한 마기가 하늘을 꿰뚫을 듯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게 무슨…….’
막 초전을 시작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수준의 마기.
타이니가 인상을 찡그리던 그때.
쿨럭.
“마기뿐만 아니라 마나까지 집어삼키면서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다! 흐름을 흡수하고 통제하는 것까지 전부 탐욕의 권능 중 최악의 형태야!”
어느새 근처에 다가온 크롬벨이 엉망이 된 몰골로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마인드 킬링이 깨어졌는지, 표정이 무너지고 반말도 튀어나오는 등 타격이 심각한 것 같은데.
그에 응답하듯, 숲속 저편에서 오만한 한마디를 실은 영파가 울려 퍼졌다.
- 그래. 짐이 바로 최강의 칠죄종이다.
우르르릉.
그와 함께 거목 수십 그루가 쓰러지고, 그 너머로 다시 애버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움푹 파여 있기는 하지만 그 기세만큼은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게 느껴지자, 타이니는 신경질적으로 피가 섞인 침을 뱉어 냈다.
“너, 마왕과도 싸웠다면서, 그땐 어떻게 한 거냐…….”
절로 나온 그 투정 같은 말에, 크롬벨이 지금 당면한 상황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당신의 힘과 내 속도, 그리고 루나 양의 특기까지. 저 능력 조합이 최악입니다. 원래 그림자 마족이라 루나 양의 특기가 더해져도 별 차이가 없을 줄 알았는데, 능력이 몇 배나 증폭될 줄은…….”
쿨럭.
그 순간 크롬벨이 다시금 피를 토해 내며 손끝으로 뿜어낸 기운은 분명 죽음의 오러였다.
그의 신성력으로도 잘 회복이 되지 않던 건 다름 아닌 그 때문이었다.
‘결국 저거까지……. 점점 더 위험해지는군.’
뿌드득.
타이니는 짜증을 감추지 않고 이를 갈았다.
그리고 크롬벨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것뿐만이 아니잖아!”
솔직히 타이니도 크롬벨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탐욕이 빼앗아 간 동료들의 능력 조합은 정말로 최악이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나 혼자 상대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물론 저것이 애버리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성력과 정령을 흉내 내지 못하는 탐욕을 상대로 전생에 마왕도 상대했다는 용사가 이렇게까지 고전하는 게 말이 될까.
‘그것도 권능을 제외하면 고대의 탐욕과 그리 다르지도 않은데.’
아무리 지금의 탐욕이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타이니의 생각이었다.
“뭘……?”
“너, 전생의 힘을 모두 회복했단 거 거짓말이지? 아니면, 뭔가 패널티가 있는 거지? 예를 들면 ‘그거’ 때문이라던가.”
그리 말하며 타이니가 손끝으로 가리킨 것은 크롬벨의 심장, 정확히는 그 안에 보이는 마기의 서클이었다.
바로 8개의 고리 위로 희미하게 덧붙여져 있는 9번째 검은 고리.
타이니는 대명사로 지칭했지만, 이 순간 크롬벨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너 말야, 하…….”
타아니가 뭐라 다시 말을 이으려는데.
“지금, 그럴 때, 아냐.”
바로 뒤에서 솟구쳐 오른 루나가 그런 그의 팔을 툭 쳤다.
[그래, 타이니.]
하늘 위를 맴도는 카일룸에 탄 에스티나 역시 창백한 안색으로 그에게 전성을 보냈다.
“흐, 그래. 일단 이 상황을 해결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지. 다행히 저놈도 아예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야.”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는 애버리스.
- 의논은 다 끝났나?
여유로운 느낌의 영파.
- 그럼 2차전을 시작해 보지.
마치 강자의 아량으로 그들에게 시간을 허락해 준 것 같은 태도였지만, 실제 사정은 다르다는 것을 타이니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그림자 군주일 텐데도 가슴에 움푹 팬 듯한 자국이 없어지지 않은 것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놈의 주변에 흡수되는 에너지의 흐름이 그 상처를 은밀하게 회복시키려 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도 느껴졌다.
즉, 저것은 허세다.
‘할 수 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숨에 밀어붙여 박살 냈던 글러터니와의 전투에서는 제대로 확인도 못 했던 힘, 녹턴이 가진 멸살의 권능.
그것이 반신급의 적에게도 통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놈, 녹턴에 맞은 상처는 회복 못 한다. 어떻게든 내가 공격할 수 있게 틈을 만들어 줘.]
타이니의 입에서 소리를 담은 마나 덩어리가 튀어나와 다른 일행의 귓속으로 날아드는 동시에.
“빠르게 끝장을 보자고.”
타이니는 우드득 소리와 함께 흰머리의 거한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토해 내는 고함.
“우와아아아악!”
우우우웅.
노을빛 오러가 동족 강화의 권능이 되어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에스티나와 루나에게 집중되는 순간, 둘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 재밌는 수를 쓰는구나.
그리고 이내.
탐욕, 애버리스와 일행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빛살처럼 수십 발씩 이어지는 녹색의 오러 화살.
이제 에스티나의 공격은 결코 적에게 치명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수십 발의 공격은 오직 애버리스가 움직일 공간을 미리 차단하고 솟구치는 마법의 기운을 흐트러트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쏟아지는, 검은 기운을 두른 오러의 단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아가면서 가속하는 사신투의 수법으로 쏘아진 단검들은, 죽음의 오러를 싣고 적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꿰뚫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었다.
그렇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초록빛과 검은빛의 세례 속에서, 타이니와 크롬벨이 빛살처럼 움직이며 탐욕의 군주와 전투를 벌였다.
“하!!”
두 눈을 노랗게 번뜩이며 등 뒤로 갈색 정령의 날개를 뽑아 낸 크롬벨이, 번개 같은 속도로 공중과 지상을 오가며 애버리스의 전신을 난도질하려는 듯 움직였다.
정령 합신 상태에서 그의 속도는 애버리스를 앞선 수준이었으니, 정면충돌을 최대한 피해 가며 부족한 힘의 차이를 극복했다.
그 옆에서는 정령 오투스가 권능 ‘약점 포착’을 동원하면서 순간순간의 빈틈을 메웠다.
치밀하게 몰아치는 광풍과도 같은 공격.
하지만 그에 대한 애버리스의 감상은 야박했다.
- 날파리 같구나. 귀찮은…….
단검과 장검, 워해머를 적절히 혼용하는 애버리스는 쏟아지는 크롬벨의 공격을 그야말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비켜 냈다. 그의 신경은 크롬벨의 뒤에서 가끔씩 튀어나와 치명적인 일격을 휘두르는 타이니에게 거의 쏠려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초월무구, 녹턴에 집중한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앙!
- 역시…… 범상치 않은 보물이로다.
- 그 신의 무기를 얌전히 바치면 곱게 죽여 주겠다.
되지도 않을 헛소리를 하면서도, 그의 그림자 속에서 솟구치는 마기는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마기가 꿀렁일 때마다, 움푹 파인 놈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파장이 무언가를 방해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것 때문일까.
- 그 물건은 한낱 인간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다. 신에게 바쳐라, 하찮은 인간이여.
녹턴을 바라보는 애버리스의 시선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남의 것을 욕심내는 적. 마치 탐욕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 주는 듯한 놈의 행태.
그 모습을 보며, 타이니 역시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