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298화 (298/500)

298화. 소환?

“음머어어어어!”

전신에 칼날 같은 뿔이 돋아나 있는 집채만 한 황소 마물이, 병사들이 늘어선 전선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해 왔다.

두두두두두두.

우연인지 본능인지, 집단 전투 스킬로 방벽을 형성하고 있던 연합의 일류 기사단이 없는 틈을 노린 살벌한 돌진.

심지어 그 마물의 전신을 둘러싼 것은 단순히 마기가 아니라, 응축되어 기묘한 빛깔이 흐르는 암흑 오러였다.

자연스레.

“으아아아!”

그 대상이 된 병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며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 대는데.

콰아아아앙!

“꾸엑!?”

거대한 황소 마물은 어느새 투명한 방벽에 부딪혀 비틀비틀 물러나고 있었다.

붉게 물들었던 눈을 껌뻑이며 굉장히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보이는데.

[加速(가속).]

푸르게 빛나는 낯선 글자를 몸 위로 그려 낸 인간이 어느샌가 그 앞에 다가와, 마물의 전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

쩌저저저적.

스각, 촤악, 푸슉.

“꾸에에에에!”

마물의 칼날 같은 뿔과 갑옷 같은 피부를 케이크 썰 듯 가볍게 베어 버리는 검.

보통 마물들에게 가장 효과가 크다는 불꽃과 벼락 속성이 섞인 오러가 고위 마물을 일순간에 도축하듯 해체해 가는데.

“끄, 끄륵.”

“내가! 너희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빛을 잃어 가는 마물의 눈동자와 다르게, 갈색 머리 청년의 푸른 눈에는 분노 섞인 살기가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마물보다 더한 살기를 뿌려 대는 오러유저.

‘우, 우리 때문에?’

그 과격한 해체 쇼와 고함에, 최전선 연합의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물러서고 있는데.

“더러운 마물 새끼들아!”

쩌어어억.

“네놈들 때문에!”

콰아아아앙!

“내가 그 괴물 자식한테 얼마나!

콰콰콰콰콰.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아!?”

영문을 알 수 없는 살기 어린 고함을 뿌려 대는 아르곤은, 그대로 다음 마물을 찾아 무자비한 난도질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상대하는 마물의 속성에 따라, 그 극상성으로 색과 속성이 바뀌는 오러.

일곱 가지 속성의 오러를 상대에 맞춰 변화시키면서, 그 사이사이 번뜩이는 상형 문자와 온갖 보조 마법을 온몸에 둘러치는 초인.

거기다.

“전부 뒈져!!!”

[火焰雷雨(화염뇌우)]

우르르릉. 쾅!

어느 순간 오러와 섞여 터져 나오는 7서클 마법의 위력은 웬만한 마도사의 전력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마법과 오러, 양쪽의 시너지를 극대화하여 빚어낸 듯한 압도적인 화력.

그 광경은 그의 스승과 마탑의 장로들이 바라 마지않던 성장이 현실화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소 지배력과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하면서도, 검의 형태로 만들어진 초월무구 마기아의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낸 모습.

하지만 그 위대한 무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이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의 병사들과 기사들의 식견이 모자란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크롸롸롸롸!”

“으아아악!”

아르곤이 날뛰는 최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더욱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거대한 두더지가 지면을 무너트리며 튀어나와, 이마에 달린 거대한 뿔을 회전시키며 암흑 오러를 사방으로 흩뿌렸고.

“전방 주시!”

“각 기사단은 집단 전투 스킬을 끝까지 유지하라!!”

연합군의 지휘관 검제와 그 부관인 북풍의 기사를 비롯해 오크의 대전사, 수인족의 대장군이 각기 붉고, 하얗고, 노란 오러를 뿜어내며 정신없이 괴물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남쪽에서는.

“끼에에에에!”

거대한 자이언트 웜이 마찬가지로 지면을 무너트리며 나타나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이놈은 우리가 상대한다!”

콰아아아아앙!

거인 갑옷을 탄 드워프의 첫 번째 망치가 마치 놈의 등장을 예상했다는 듯이 자이언트 웜의 머리를 강타하고.

그 뒤를 따라 다섯 가지 초월무구를 번갈아 사용하는 웨폰 마스터의 공세가, 괴물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암흑 오러를 그대로 묶어 냈다.

그리고.

“가세한다!”

“하!”

지난 전투 이후 왜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던 신전의 용사와 성령 기사까지 나타나, 고유의 성스러운 오러를 뿌리며 거대한 괴물을 묶어 버리니.

“우와아아!”

진영의 한복판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며 후방 병력의 시선이 그 신화와 같은 전장에 몰려든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미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적진 깊숙한 곳에서 휘몰아쳤던 노을빛 폭풍이 가져다준 시각적, 청각적 충격이 너무 크기도 했다.

자연히 아르곤의 위대한 성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르곤 님!! 이곳은 저희에게! 악마들을 상대해 주십쇼!!!”

최전방에서 전선을 막고 있는 왕국 연합의 기사단이 그렇게 소리치는데도.

“전방을 지킬 초인도 필요하다!!”

아르곤은 후방의 악마급 마족들을 상대하러 가지 않았다.

‘저것들을 상대할 사람들이 이미 있는데, 뭐 하러 나까지 위험을 감수해?’

아르곤은 그저 최전방에서 충실하게 마물들에게 화를 푸는, 아니 그 수를 줄여 나가는 데 집중했다.

-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 에이. 설마.

다급한 와중에도 기사들의 머릿속에 그런 의심이 생겼지만, 그것을 감히 입 밖으로 내뱉는 이는 없었다.

실제로 아르곤이 왕국 연합군 전선에서 활약해 준 덕에, 다른 곳에 비해 그곳 병사들의 희생이 압도적으로 적었으니까.

그러던 와중.

“크롸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악!”

본진의 중심에서 초인들에게 협공을 당한 폭식의 장군들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그 순간 전장에 자욱하던 마기가 상대적으로 확 흐려지며, 연합군의 숨통이 트이고 마물들의 공세가 주춤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일순간에 연합군의 사기가 눈에 띄게 올라가던 그때.

- 마수병단의 모든 것은 오직 위대한 마수왕의 것이니.

- 동지들이여,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바치라!

전장을 가득 채우는 소름 끼치는 영파와 함께,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마물들의 시체와 피가 적진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이던 마기와 핏물의 흐름이 이내 거친 격류가 되어 마치 강물처럼 적진을 향해 쏟아질 때.

- 아르곤!!! 당장 튀어 와!!!!

엄청난 고함이 전장을 관통하며, 마물들을 분쇄하던 아르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스걱.

콰콰콰쾅.

“에, 에이. 나 바쁜데……!”

작게 중얼거리며 애써 모른 척하려는데.

마치 그 작은 혼잣말을 들은 것처럼.

- 5초 안에 안 튀어 오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다!!!

아군에게 하는 말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살기 가득한 고함이 재차 울려 퍼졌다.

“에이, X발!!!”

어린 놈의 새끼가!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몸은 어느새 다시 [加速(가속)]과 [飛行(비행)]을 사용해, 마물들의 전선을 뛰어넘어 그 중심부를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제발 저 괴물이 있는 곳에 다른 악마급 마족이 없길 바라면서.

다행히 그런 아르곤의 기대는 충족되었다.

하지만.

“글러터니가 강림할 거다! 당장 저걸 막아야 해!”

차원문을 향해 쏟아지는 마물들의 피와 사체 조각들.

그 흐름을 막으라는 타이니의 말에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사실 이곳에 오는 동안 잠깐 실험해 봤지만, 저 흐름은 자신의 마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저래 봬도 악마급, 그것도 후작급의 장군이 죽어 가며 만들어 낸 최후의 마법이었으니까.

“쟤, 못하는 것, 같은데?”

“안 된다는 말 하지 마, 아르곤! 지금 글러터니가 튀어나오면 다 죽는다. 어떻게든 해내야 해!”

‘무슨 억지를 그렇게…….’

오러마저 희미하게 느껴지는 타이니였지만, 그 창백한 안색으로 뿜어내는 기백은 아르곤을 질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글러터니가 지금 강림하면 초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냥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다 죽는다! 게다가 나도 루나도 아직 회복이 덜 됐어. 여기서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막아!!”

그 말에는 넘치도록 설득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타이니의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아르곤은 그저 암담한 눈빛으로 점차 마기가 진해지는 차원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하는데.

“방법 없어? 없냐고!!”

“X발, 재촉하지 마! 더 생각 안 난다고!”

저도 모르게 타이니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오히려 움찔하는 아르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 주듯, 타이니는 평소처럼 그를 쥐 잡듯 잡는 대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래, 빨리 어떻게든 방법을…….”

그 느슨한 반응이 오히려 아르곤의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래도 이건 솔레인 님이나 다른 마도사님들이 오셔서 봐야 할 것 같은데…….”

아르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다시 후방을 바라봤지만, 당장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 전생에 마도사들은 짙은 마기, 특히 암흑 오러에 너무 힘없이 무너졌어.

- 절대 최전방으로 오지 마세요.

타이니의 의견에 따라 후방에 배치된 마도사들.

그들은 지난번에는 성물의 힘을 증폭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았고, 성물의 힘이 사라진 지금은 그 대신 연합군 병력에 보호 및 보조 마법을 걸어 주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다.

거창하게 눈에 띄는 효과는 없다지만, 그들이 빠지는 순간 연합군의 희생이 몇 배, 혹은 몇십 배 많아질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타이니는 다급하게 아르곤을 다그칠 뿐이었다.

“그럼 불러야지!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숨을 크게 들이쉰 타이니가 다시금 바닥이 난 마나를 한껏 끌어 올려 고함을 지르려는 순간.

이내 무엇을 보았는지, 안색을 굳히며 마나를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아르곤이 뒤를 돌아보려 할 때.

콰콰콰콰콰콰콰콰!

느닷없이 후방에서 폭풍이 일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끼에에에엑!

- 크롹!

뒤이어 마물들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강렬한 기세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정체는.

“돕겠다!”

성검을 든 용사와 성령 기사.

두 초인의 등장이었다.

당연히 반가워야 할 일이지만.

‘수상한 놈…….’

타이니와 몇 달간 함께 초월급 마물들을 처리하며 개고생을 했던 아르곤 역시, 이미 저 용사라는 자에 대한 의혹을 품고 있었다.

자연스레 자신도 모르게 마기아를 뒤로 겨누게 되는데.

쿵.

“지금 고작 성기사가 무엇을 할 수 있…….”

타이니 역시 녹턴을 다시 움켜쥔 채, 억지로 마나를 집중시키며 두 초인을 견제했다.

그런데.

“알고 있을 텐데? 난 이미 대마도사이기도 해! 그리고 마물에 대항하는 데는 성법만 한 것도 없지.”

용사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마법진. 그리고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

그의 말은 넘치도록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너, 이젠 대놓고 흑마법 기운을 풍기는구나. 그러면서 지금 이 상황을 돕겠다?”

타이니는 아르곤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오히려 녹턴을 집어 들었다.

창백한 안색만 봐도 이미 그의 마나가 바닥났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데, 이 상황에서 아군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쟤? 적?”

창백한 안색으로 타이니와 기대어 서 있던 보랏빛 머리 여자까지 단검을 용사에게 겨누자.

아르곤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러는데, 타이니? 지, 진정해.”

흑마법의 기운 같은 건 마법에 정통한 자신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신전의 용사가 아닌가.

‘제발 좀, 미친놈아!’

아르곤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비명을 속으로만 지르고 있을 때.

의외의 상황이 이어졌다.

“내게 얽힌 사정을 지금 다 설명하기엔 시간이 없다. 하지만 한 번만 믿어 다오. 내가 그대를 의심한 잘못도, 실수도 추후에 전부 갚아 줄 테니.”

예전에는 대놓고 대립 관계에 섰던 용사가 이상한 말을 하며 양손을 들어 올린 것이다.

“……의심? 무슨 소리지?”

“그런 일이 있다. 긴 이야기지. 그저 지금은 날 믿어 줬으면 하는데.”

이게 어찌 된 거지?

지켜보는 모두가 어리둥절하던 그때.

용사를 따라온 갓 핸드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맡겨 주시오, 타이니 경. 혹시나 잘못된다면, 신전에서 모든 책임을 질 터이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 무심한 어조가 치솟던 타이니의 살기를 가라앉혔다.

“하긴 가릴 때가 아니지……. 하지만 수상한 짓 하면 바로 골통을 깨 버리겠다.”

“얼마든지.”

쓴웃음을 지은 용사가 그리 말하며 그 곁을 지나간 후에도.

타이니의 시선은 그의 뒤통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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