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마도 기사
아르곤을 찾는 일까지는 생각처럼, 아니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이 되었지만, 바로 다른 문제가 생겼다.
“……모른다고?”
“마족을 찾아낼 방법을 갑자기 만들어 내라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난 지금 너한테 처음 들어 보는 소리라고!”
큰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탈영병 새끼.
하지만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애초에 십수 년 뒤의 내가 만들어 낸 거라며!?”
“……악마추종자의 변란이 생기자마자, 네가 그놈들 찾아낼 방법을 금방 알아냈다던데?”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뭐냐고! 힌트라도 줘야지!”
“……모르는데.”
지나가 버린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괴력의 기사의 쿨한 매력이 다시 한번 현실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미친……!”
“뭐?”
“……아니, 그냥. 내가 답답해서. 하……. 하하.”
그렇게 울상을 짓는 아르곤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라프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간이 부은 놈과 간이 콩알만 한 놈이 어찌 이리도 비슷한 느낌을 줄까. 극과 극의 성정끼리는 오히려 통하는 구석이 있는 걸까.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려던 찰나.
짝.
“정신 차리자. 하…….”
타이니는 스스로 뺨을 때리며 현실 도피를 그만뒀다.
- 그럼 너는 그 아르곤을 찾아 마족을 처리하는 방향으로 진행해라.
- 온전히 너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 나는 그리드에게 연락해서 따로 그 마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 빌어먹을,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었으면…….
검제가 그리 말했을 정도로, 그 마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최우선 문제다. 최악의 상황에는 다짜고짜 전쟁을 선포한 세 나라의 왕궁을 그냥 들이박는 수도 염두에 둬야 했다.
물론 그 전에 이 녀석이 뚝딱 해결책을 만들어 준다면 좋겠지만.
“오늘 처음 들은 얘기인데, 당장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은근슬쩍 말을 흐리며 시선을 돌리는 꼴을 보니 기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꼭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 아니면 우리가 세 나라의 왕궁에 그냥 들이박아야 한다.”
“……우리?”
“그래, 우리.”
“…….”
그 말에 아르곤이 본능적으로 살짝 뒷걸음을 쳤지만.
“넌 천재잖아. 충분히 할 수 있어.”
바로 이어진 말에는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물론 잠깐 그러다 다시 정색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단순한 새끼…….’
천재로서 자부심과 극단적인 보신주의. 아르곤은 그 본질만 안다면 참 다루기 쉬운 녀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가끔은 정말로 용기를 낼 줄 아는 멋진 친구였다.
‘그때는 정말 인상 깊었지.’
한때는 마도 기사가 아니라 ‘겁쟁이 초인’이라는 오명으로 불리던 녀석.
악마추종자를 가려내는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얻어 낸 위명까지 바래질 정도로, 몸을 사리는 녀석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오러를 쓸 줄 아는 이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아르곤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녀석은 이미 숨어 버린 후였다.
- 기대를 버리자, 타이니.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수소문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찾는 것을 포기했을 정도.
하지만 그런 녀석이 발견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벙커에 쌓아 놓을 식량을 구하러 잠깐 나왔었다던가.’
그런 주제에 어느 고아원 앞을 막아선 채, 마수병단의 정예들과 대치하고 있던 녀석.
- 아, 아무리 나라도, 물러서면 안 되는 순간은 알아!!
고아원 창가로 보이는 아이들을 흘깃거리며, 스스로에게 말하듯 고함을 치던 녀석.
전신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어 올리던 녀석.
그때의 녀석은 분명 그 누구보다 고결한 ‘기사’였다.
- 하. 겁쟁이 초인이라더니, 마도에서 태어난 기사구먼.
그리고 저릭이 중얼거린 그 말이 그때부터 녀석의 이명이 되었다.
‘그래 놓고는 정작…….’
반강제로 동료로 삼긴 했지만, 인류의 위기 앞에서도 몇 번이나 탈주를 시도했던 이상한 놈,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고 나서야 다른 동료들도 녀석을 다루는 법을 깨달았다.
바로.
“네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르곤.”
이렇게 은근히 추켜세워 가며 달래는 것.
“하……. 하긴, 전생에도 나를 대신할 천재는 없었겠지. 어쩔 수 없나.”
하. 씨…….
아르곤이 짐짓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리는 꼴을 보니 순간적으로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가끔 패고 싶어지긴 하지만, 분명 그 이상으로 유능한 동료이자 친구.
고위 마족과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마도사라는 것만으로도 이 녀석의 가치는 특별했다. 오러와 마도 검술의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 내는 전투력은 더욱 값졌고.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지금 아르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 수준은 여전히 6서클, 챌린저급.
무력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마기를 숨기고 있는 존재를 추적‧특정하는 그 방법으로 악마추종자를 뿌리 뽑는 일은 지금의 녀석에게도 가능할 것이다. 아니, 가능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이야 제국에서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겠지만, 연합의 군대가 모이고 진격을 시작하면 제국도 응전하지 않을 수 없어. 그렇게 되면 진짜 끝장이다. 그전에는 어떻게든 해내야 해.”
“……안 되면?”
“아까 말했잖아. 세 나라 왕궁에 쳐들어가서라도 그 마족을 찾아내 처리해야 한다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지.”
“그래. 가면서 최선을 다해.”
“가, 가면서?”
“당연하지. 시간 없다니까?”
“아니, 무슨 연구를 이동하면서 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 아니면 그대로 들이박아야 하니까.”
“아니, 그게 말이…….”
“돼.”
“……쌍! 아주 그냥 철벽이세요? 들이박고 죽으시게요!?”
겁쟁이의 특징. 목숨이 걸린 일에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눈앞에 직면한 다른 위협조차 그 순간에는 잊을 정도로.
‘이 새끼가…….’
다시 한번 살풀이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그 대신 당근을 꺼내 들어 보았다.
“해내면, 내가 너 오러유저에 7서클 될 때까지 수련 도와준다.”
“어……? 진짜?”
“그래.”
그 말에 일그러져 있던 아르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솔직히 다른 동료들을 성장시킬 땐 미래에 사용한 기술을 알려 주고 그 짐작되는 원리를 말해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아르곤은 상황이 달랐다.
‘이 녀석은 마법이 주(主)고, 검술이 부(副)야. 하지만 그래서 더 쉽지.’
아르곤의 마도 검술은 그 반석이 되는 것이 동대륙 문자였기에, 그 글자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녀석에게 완벽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법이 7서클에 도달하면 오러는…….
“어라?”
“왜? 뭐야? 뻥이야?”
“아, 아니. 확실히 도와준다고…….”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 오러는 어떻게 터득한 거지?
‘겁쟁이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아마 녀석의 마도 ‘검술’과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 믿고 말을 아꼈다.
……있어야 할 텐데.
“너 표정이…….”
“뭐? 일단 락스턴의 수도, 스턴빌로 간다. 제발 그 전에 방도를 생각해 내라.”
“……진짜 무책임한 거 알고 있지?”
“인적 없는 곳으로만 이동하며 몰래 접근할 테니 며칠은 걸릴 거다.”
“며칠? 고작!?”
“가자.”
타이니는 복잡한 마음으로 녀석을 억지로 월랑의 등에 태웠고.
“야……!”
“컹!”
“우와악!!”
마침내 질주가 시작되었다.
* * *
“우웨에에엑!”
“……이걸 생각 못 했네.”
“너, 진짜. 우웨에에엑!”
그들의 호쾌한 질주는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최근 루나나 라프탄처럼 알아서 잘 따라다니는 이들하고만 함께했더니, 보통 인간이 월랑을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무, 무슨, 우웨에엑. 등판이, 끄으으. 웩. 1m 높이로, 우웨엑. 상하 운동을, 흐으으.”
내장까지 토해 낼 듯한 기세의 아르곤이 그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며 타이니를 째려보았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그 시선을 피했더니 녀석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다.
“후으으, 이제, 보조 마법 써 가며, 아 울렁거려. 끅. 아무튼 그렇게 이동한다. 잘나신 광휘의 기사님이 속도 맞춰 주시죠.”
“……알겠다.”
고개를 끄덕여 주니 안색이 창백한 와중에도 녀석이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아, 이 녀석 너무 기 살려 주면 안 되는데. 다시 한번 기강을 잡아……? 하지만 또 그럼 자꾸 튀려고 할 텐데.’
마음속 갈등에 볼이 씰룩거리는데.
“아, 젠장. 진짜 늑대가 크니까 상하 운동도 너무…… 어? 아!”
녀석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왜?”
“잠깐만 닥쳐 봐!”
이게 돌았나.
순간 타이니의 손이 움찔하는데.
“덩치가 크니까,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여파도 크다. 그래, 그러면…….”
아르곤이 갑자기 주저앉더니 땅바닥에 슥슥 도형을 그리며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숨겨도 마기는 이 세상에 이질적인 기운이니 여파가 없을 순 없어. 마법으로 탐지가 안 되게 처리했다 해도, 에너지 자체는……,”
슥슥슥.
“더구나 마계 귀족급이라면, 그 마기의 농도도 장난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 녀석 설마 벌써……?
알 수 없는 도형이 흙바닥을 채워 가자 타이니의 얼굴에도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숨소리조차 조절해 가며 조용히 아르곤을 바라만 보길 몇 시간.
그리고 석양이 떨어지자마자 자연스레 라이트(Light) 마법을 띄워 가며 쉼 없이 무언가를 궁리하던 아르곤은, 달이 다시 밤하늘 높이 떠오른 다음에야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생각보다 간단하잖아!? 역시 난 천재야!!!”
“됐냐? 됐어!?”
“그래 됐다!”
“이 짜식!! 잘했어!”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지르는 두 사람.
그러다 이내.
“……우리가 이렇게 친했었냐?”
“아니…….”
파바박.
인상을 쓰며 신속하게 포옹을 푼 둘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뭔데? 어떻게 찾아내면 되는데? 도망가도 위치 추적 가능해야 해.”
“어 일단, 허접한 수준의 마기는 못 찾아도, 마계 귀족급은 찾기 쉬울 거야.”
“뭐?”
허접하면 더 찾기 쉬워야 하는 거 아닌가?
언뜻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말에 타이니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르곤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나와 마기가 서로 반발한다는 건 알지? 마나가 마기에 오염되거나?”
“좀 다르긴 한데. 뭐, 상식은 그렇지. 그래서?”
멈칫.
“……다르다고?”
“아냐, 일단 말해 봐.”
“……쓰읍. 뭐 어쨌건, 상대가 웬만한 마법에 걸리지 않게 마기를 숨길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나의 본질적인 반발은 어쩔 수가 없어. 마법으로는 탐지가 안 되더라도 이 세상에 가득한 마나 자체는 반발하고 있을 거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리 완벽하게 마기를 숨기더라도, 주변의 마나는 미세하게라도 반응을 한다는 거야.”
“그럼 그냥 탐지 마법에 걸렸겠지. 뭔 바보 같은 소리야?”
“아니 그게 아니라!!!”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친 아르곤이 다시금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 갔다.
“완벽하게 마기를 숨겼다 해도, 그 마기가 크면 클수록 마나의 거부감도 강해진다고! 마계 귀족급이 대놓고 마기를 뿌린다면 주변의 마나가 오염되겠지만, 숨기려고 한다면? 아니 완전히 숨겼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한다면? 뭐, 잘 숨기겠지.”
“하,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완전히 숨겼다 하더라도, 그 마족이 마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한 마나는 자연히 그 중심에서 멀어지려 할 거란 말이야. 완벽하게 숨겼다면 가까이서 티는 나지 않더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내가 한 말이랑 뭐가 다르지?
“……짧고 간단하게 결론만 얘기하자, 우리.”
그러자 아르곤의 눈동자에 잠시 경멸의 빛이 스쳤지만.
뚜둑.
이내 그 기색을 읽은 타이니의 주먹이 뼈 소리를 내자, 그는 바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주변에 비해 조금이나마 마나 농도가 떨어지는 지점! 그 중심을 찾으면 마기 보유자를 추려 낼 수 있어.”
“응?”
“마기가 강할수록 그 범위가 넓을 테니 가까이서는 찾기 힘들겠지만, 그건 따로 조치를…….”
“가까이라면 내가 찾을 수 있어.”
“……그래? 그럼 더 쉽지. 멀리서 좁혀 가는 거라면 역탐지도 쉬울 거야. 대단한 아티팩트도 필요 없어. 좌표 지정할 수 있는 통신용 수정구에 약간의 조치만 취하면 마족 탐지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
타이니를 만난 지 불과 한나절.
현자의 마탑 천재 아르곤은 바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