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240화 (240/500)

240화. 연합에서?

왕국 연합에서 제국을 향해 경고했다!

- 제국의 횡포에 대해 우려하는 바이며, 웨어비스트에 대한 압박을 거두지 않을 시 우리 왕국 연합의 모든 국가가 웨어비스트를 도와 제국에 저항할 것이다.

그 경고가 단순히 말뿐이 아닌 듯 연합의 군세가 제국과 웨어비스트 쪽 국경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니, 웨어비스트를 사이에 둔 국제 정세는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드 영감, 뭐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왜……?”

“반응이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애초에 연합에서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말이 안 됩니다. 그분들은 이 생각을 못 하셨을까요? 아니면 생각을 했음에도…….”

“한동안 국지전이 없었으니까. 연합과도, 웨어비스트와도. 그런데 연합은 진짜 왜 갑자기…….”

사실 그 문나이트 축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웨어비스트와 제국의 긴장 관계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제국과 웨어비스트의 마지막 국지전이 끝난 지 어언 십여 년. 여전히 두 나라가 단교 상태인 만큼 공식적인 교류는 이어지지 않았으니, 웨어비스트의 가죽 공예품이나 제국의 옷감과 같은 특산품은 다른 나라에서 꽤 비싸게 팔리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눈총과 경계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국경 근처의 도시에서 상행을 이어 가던 상단들이 존재했다.

문나이트 사건으로 잠시 움츠러들기는 했지만, 차츰 상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려던 시기.

그 시기에 양국의 갈등이 갑자기 격해지고 왕국 연합까지 끼어들자, 웨어비스트에서 상행 중이던 인간의 상단들에게 가장 먼저 불똥이 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네 말대로 할 수밖에 없겠는데.”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라프탄 씨를 먼저…….”

타이니와 제이의 머릿속까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 *

“внещ йтывтдкдкл…….(요새 분위기가…….)”

“вдаоул цовфла цоыцщвылыьыкоы влыдкзЕцд?(이러다 정말 전쟁 나는 건 아니겠지?)”

“взвд еоафл…….(에이 설마…….)”

웅성웅성.

웨어비스트의 수도 라이칸에서 남쪽으로 사흘 거리, 라이칸으로 향하는 상인들이나 사람들이 쉬어 가는 길목인 중견 도시 ‘가츠’의 펍은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웠다.

전신에 털이 유난히 많이 난 듯한 사람(?)들이 쥐, 오소리, 너구리 등의 얼굴을 한 인간형 짐승(?)들과 오크어, 혹은 수인어라고 불리는 언어로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국의 인간들이 본다면 흠칫할 만큼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취하고 있는 형태가 다를 뿐 그들 모두가 수인족이었다.

웨어비스트에서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다만 그런 그들 사이에 인간화한 수인족들에 비해서도 이상할 정도로 털이 없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광경은 흔치 않았기에,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대화마저 수인어가 아니라 공용어를 사용했고, 차림새마저 낯선 모양새였으니 말이다.

“이게 맥주야, 위스키야? 아니, 위스키보다 독한 거 같은데?”

금발에 푸른 눈, 금속을 몇 겹으로 덧대어 만든 듯한 어깨 갑옷 밑으로 비슷한 색의 중갑옷을 갖춰 입은 중년 사내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가죽 갑옷을 입고 앉아 있는 갈색 머리 중년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보리와 홉에다 북부 산맥에서 나는 약초 타샬을 섞어 발효시킨 웨어비스트의 술입니다. 웬만한 위스키보다 두 배는 독할 겁니다. 어지간한 도수로는 수인족들을 취하게 할 수 없으니까요. 이건 모르셨나 봅니다, 잰슨 경?”

“평화로운 시기에 이쪽에 올 일은 없었으니까.”

“지금도 딱히 평화로운 건 아닙니다만…….”

갈색 머리 중년인이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슬쩍 훑으며 쓴웃음을 짓는데.

“평화로운 거지. 이런 게.”

금발의 중년인 잰슨, 아니 타이니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금빛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겨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을까. 구석 테이블에 있던 거대한 덩치의 회색곰 인간이 그들을 향해 쿵쿵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вовд, кокд вдыклыуьа, ыопьд цзктквьд сойцлцд?”

그 말에 담긴 뜻은 몰라도 타이니의 입에선 바로 한숨이 나왔다. 회색 털이 난 얼굴 때문에 티는 잘 나지 않았지만, 눈동자가 유난히 커진 채 흔들리는 것이 그의 눈엔 확실히 보였으니까.

‘취했군.’

피식 웃음이 나오며 절로 제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듯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저희더러 제국의 첩자냐고 하네요.”

피식 웃는 제이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타이니는 회색곰을 향해 짐짓 인상을 썼다.

“시비지?”

“그렇죠.”

“잘됐네.”

“아시겠지만, 적당히…….”

작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타이니는 거칠게 의자를 밀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뭐라는 거야, 곰 인형 같은 새끼가. 가뜩이나 엉뚱하게 발이 묶여서 짜증 나는 판에.”

물론 그래 봤자 곰 인간보다는 한참 작은 덩치였기에 주변의 수인족들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ура! цо чоавойеыьы коевд ыоплычз крфвдыпгввдалыьыуз!?”

그 와중에 공용어를 아는 수인족이 있었는지, 회색곰 인간에게 타이니의 말을 전달해 준 듯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회색곰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кофвдыпгв? вд йдадйдадплы ещКдкл!?”

그 즉시 뻗어 나오는 회색 털이 수북한 앞발, 아니 손.

하지만 이내 그 손은 훨씬 작은 손에 잡혀 우드득 꺾이고.

“악!!?”

“좀 자라!”

차가운 음성과 함께 그 곰 인간의 거대한 덩치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주점의 반대편 바닥을 강타했다.

꽈아앙!

펍의 나무 바닥까지 뚫고 들어가 박혀 버린 곰 인간.

“별것도 아닌 게……. 혹시 또 덤빌 사람!?”

비웃는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금발 인간의 말, 공용어를 할 줄 모르는 수인족도 충분히 뜻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멸시가 담긴 시선.

인간의 사회였다면 대다수가 움츠러들었겠지만, 지금 이곳은 누구나 광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는 수인족 나라의 펍이었다.

거기다 최근 제국과의 갈등으로 양국 간의 감정도 격해진 상황.

“건방진 인간 놈이……!”

“цтквг!”

“ытыКлавьа Йрйвлцтфл вдыклы!”

“아이고, 좀 적당히 하시라니까…….”

대번에 흉흉해진 분위기에 제이가 등 뒤로 몸을 숨기자마자 자신에게 쇄도하는 수인족들을 보며, 타이니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날.

도시 가츠의 펍, ‘속투루락 운다’에서는 취객 중경상자만 30여 명이 발생했고, 티아 상단의 용병 ‘잰슨’은 그대로 가츠의 감옥에 임시 수감되었다.

* * *

고즈넉한 밤.

최근 고조되는 나라 간 긴장 상태와는 상관없이 평화롭기만 한 자연이 고요히 달빛을 비추는 가운데, 지하 감옥을 지키는 가츠의 병사들은 교대 조가 바뀔 때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었다.

“저 비리비리한 인간이 30명을 골로 보냈다고?”

“그렇다는데? 마나유저겠지.”

“그래도 인간인데, 익스퍼트급쯤 되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평화로운 가츠에서 오랜만에 일어난 대사건인 만큼 병사들은 그 얘기에 끝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으로.

“влвдкр еткрпледйыдул(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수인족의 말로 인사를 하는 인간이 다가왔다.

야심한 시각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하인 한 명까지 데리고 감옥을 찾아온 인간이었지만, 병사들은 웃으며 그를 반겼다.

“정말 지극정성이시오, 티아 상단주.”

“별말씀을요. 아무리 사고를 쳤어도 저희 상단 용병 대장이니까요. 내 사람은 확실히 챙겨야지요.”

“허허, 그 정성에 감복해서 우리가 허락해 준 것 아니겠소. 그런데 약속한 것은…….”

말 머리 수인족 병사가 그리 말끝을 흐리면서 은근슬쩍 손을 내밀자 티아 상단주, 제이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두둑해 보이는 주머니를 건넸다.

찰랑.

끈을 풀어 그 안을 확인한 말 머리가 빙긋 웃으며 뒤를 향해 손짓하자, 감옥의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물러나며 그 철창을 열었다.

“허가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뿐이요.”

“아니, 낮에는 분명 한 시간이라고……!”

“어허, 상단주. 우리도 사정이 있는데. 뭐, 그럼 그냥 돌아가시겠소?”

돈을 받을 때와는 전혀 달라진 태도로 말 인간이 피식 웃자, 제이는 짐짓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에 물품을 잔뜩 진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어서 오너라. 서둘러야겠다.”

공용어로 나온 말에 병사 중 일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그 뜻을 다 알아들은 말 인간은 오히려 웃으며 손짓했다.

“웨어비스트의 밤은, 특히 감옥의 밤은 추우니 따뜻하게 챙겨 주시오.”

제이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안쪽으로 사라진 그 순간.

성벽과 똑같은 문양의 무언가가 꿀렁이는 듯한 움직임으로 소리도 없이 함께 감옥 안으로 스며든 것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왔나?”

잡혀 온 용병 잰슨, 아니 타이니가 명상하던 자세에서 눈을 뜨자, 다가온 제이가 쯧 하고 혀를 차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뒤, 꿀렁이는 형태의 벽 역시 의태를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제이 님 계획은 철저하네요. 다 예상 그대로라니, 허…….”

라프탄이 그를 보며 감탄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확실히 대단해.”

타이니의 감탄 역시 100% 진심이었다.

정말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듯, 제이의 주도하에 출발한 ‘티아 상단’은 웨어비스트들의 도시들을 거쳐 오며 상업에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놀랄 만큼 쏠쏠한 이득을 남겼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물건을 사고파는 와중에 벌어지는 심리전은 기본이요, 제법 살벌한 분쟁이 일어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가운데 제이는 그 수많은 갈등을 제어해 가며 이문을 만들어 냈고, 한 번은 인간을 탐탁지 않아 하는 천인장 가문의 정문에서 하루 이상 무릎을 꿇고 사정까지 해 가며 거래처를 뚫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틀을 앓아누울 정도였으니, 타이니는 새삼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 물어보았다.

- 굳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

그 역시 과거 어리고 힘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연기로 적을 속이기도 했지만, 제이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았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는 언제나 진심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나 스스로도 속을 정도로.

그 덕에 본격적인 ‘작전’으로 양국의 사이가 냉각되기 전까지 티아 상단의 이름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고, 이곳 가츠에 도착했을 때는 먼저 접촉해 오는 수인족 상인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약속된 날짜에 시작된 군사 긴장 상태와 사절단의 소문으로 인해 티아 상단은 ‘어쩔 수 없이’ 가츠에 발이 묶였다. 웨어비스트의 7대 군단 중 ‘갈색 바위 군단’의 군단장 보좌이자 만인장이기도 한 이곳 성주가 직접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 그간의 행보가 확실하니, 추방이나 물품 몰수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더 이상의 거래나 이동은 허용치 않겠다.

사실 신분은 급조된 것일뿐더러 그간이라 해 봤자 고작 한 달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이가 계획한 그 여정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과거 문나이트 휘하의 친구이자 장수인 ‘갈색 바위’의 영향권에 있는 도시를 택한 것도 그의 안목이었는데, 그는 문나이트나 제국과의 갈등을 원하지 않을 테니 최대한 분쟁을 중재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별말씀을. 어쨌거나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행하지요.”

살짝 미소를 지은 제이가 급히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하인이 겉옷을 벗고 감방 안에 있는 잰슨과 똑같은 차림을 드러냈고, 제이는 무언가 화장 도구 같은 것을 꺼내 그의 얼굴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제이의 손이 몇 번 움직이자 점차 잰슨의 얼굴로 변해 가는 하인.

“저게 마법이 아니라니……. 허.”

애초에 지금 타이니와 덩치가 비슷한 요원을 데리고 온 덕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또 다른 잰슨이 만들어졌다.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똑같이 생긴 잰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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