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200화 (200/500)

200화. 녹턴의 주인?

- 내, 소중한 패를……. 감히.

단순히 의지를 전해 오는 정신파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타이니, 이건……?”

“쉿.”

느낌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정신파를 보낸 것은 확연한 8단계, 악마급의 괴물이라는 것을.

그것도 뚜렷한 지성이 느껴지는 영파였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비슷해.”

“뭐?”

“녹턴 가지고 있던 놈, 그놈이랑 정신파 느낌이 비슷해!”

그 말을 하는 타이니의 얼굴에는 만연한 미소가 걸렸고, 어느새 주먹도 꽉 쥐고 있었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긴장감보다, 다시 녹턴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쁨이 훨씬 컸던 것이다.

그리고.

“초월무구!?”

회의적인 말을 늘어놓던 루나의 눈에도 그 순간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 좀 더 뚜렷하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왠지 그놈 같아.”

고위 마족이나 그에 준하는 괴물들이 사용하는 정신파에는 그 개체의 개성이 확연하게 묻어난다. 더구나 전생에 자신을 그토록 고생하게 만든 놈이라면 더 잊기 힘들다.

그래서 타이니는 약간의 차이점보다는 확연한 공통점에 더욱 주목했다.

하지만 그것이 괴물의 감정을 자극한 것 같았다.

정신파를 쓸 수 있는 괴물들은 들려오는 말소리만으로 그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

- 기쁨? 감히……!?

우르르릉.

아주 멀리서 전해 오는 정신파만으로 지면이 살짝 떨리는 느낌.

그 정체를 아예 모르는 놈이었다면 소름이 끼칠 만한 퍼포먼스였다.

그래, 모르는 놈이었다면 말이다.

“특기도 같은 듯하고. 하하, 이거 정말 그놈인가!?”

“그놈, 특기가, 뭔데?”

“강력한 정신파를 이용한 정신 지배. 그리고 물리력, 염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로 다 하는 놈이야.”

“응?”

“대흑마법의 저주에 준하는 강력한 정신 간섭과 물리력. 그리고 부하들의 육체 강화까지, 진짜 까다롭고 강해. 특히나 사람 열 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놈이지.”

“그럼 이거, 그놈이, 다 듣고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정확한 해석은 못 해. 감정의 편린 정도면 몰라도.”

타이니의 단언에 응답하듯 또다시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 반갑다? 기쁘다? 익숙하다?

-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너희.

- 알 수 없는 이상한, 위험한 것들. ‘먼저’ 처리해 주겠다.

이번엔 괴물이 조금 다른 의미로 굉장히 위험하게 느껴지는 의사를 전해 왔다.

“……어라?”

먼저? 무슨 뜻이지?

타이니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순간.

- 내려와라. 내가 있는 곳에서 찢어 주겠다. 겁나면 도망치든가.

진득한 살기가 실린 어설픈 도발.

그것을 마지막으로 놈의 존재감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일행은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분명 소중한 뭐랬지?”

“몬스터가, 복수심을?”

“에이 설마…….”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 불안감을 한층 증폭시키는 요소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 * *

“계층주가…… 없어?”

46층의 끝.

내려올수록 점점 더 넓어지더니, 이제는 거의 대도시처럼 커진 광장은 그 규모가 무색하게 텅 비어 있었다.

아무런 전투의 흔적도 없이, 거대한 지렁이 형태의 마물이 머문 흔적만 남은 공간.

그리고 그 마물이 흘린 기운은 저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향하고 있었기에, 그 너머 아래층에서 더욱 위험한 느낌이 전해졌다.

“내려갔다?”

“설마? 그런 게 가능했었나?

“그럼, 좀 전에, 잡은, 지렁이. 그놈이, 계층주?”

루나가 직전에 잡았던 거대한 초월급 마수, 자이언트 웜을 상기시켰지만 타이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계층주가 상층보다 그렇게까지 약한 경우는 없어.”

“하긴, 중간에, 다른 괴물들도, 많이, 없었어”

“그래, 그게 문제야.”

46층을 이렇게 빨리 주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냥 계층주가 강한 놈일 줄 알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2주 전 그 익숙한 정신파가 마지막에 남겼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설마…….”

- ……내가 있는 곳에서 찢어 주겠다. 겁나면 도망치든가.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분명 도발이었다.

지성이 있는 놈이라면 이런 식으로 작전을 쓰는 게 이상하지 않았지만, 정말 찜찜한 건 따로 있었다.

남겨진 흔적도 그렇고.

‘……여기 계층주가, 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억측일 수도 있지만, 한번 생각이 그쪽으로 쏠린 탓인지 이상하게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거였나? 이 미궁에서?’

전생에도 겪어 본 적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익숙한 정신파를 듣고 느꼈던 기쁨이 이제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46층의 계층주가 어떤 놈이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전생의 49층 계층주랑 그놈이랑, 그렇게 둘만 뭉쳐 있어도 난이도가 미친 듯이 뛸 텐데…….”

그의 염려에 루나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의견을 더했다.

“그놈, 정말, 맞아?”

“그럴 것 같았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네. 하…….”

“같은 종,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인간과 마물이 같은 경지일 때 마물이 훨씬 강력한 것은 그 태생의 차이, 즉 타고난 육체의 차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마물 중에서 어떤 종들은 그저 태어나서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도 초월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이제는 전설의 존재가 된 드래곤처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나쁘지.’

물론 지금 저층에 있는 놈이 용처럼 나이를 수천 살 먹는 것만으로 9단계에 오르는 신수는 아니겠지만.

“고작 수십 년 만에 다 자라서, 그것만으로도 7단계가 되는 고위 마물도 분명 있긴 하니까. 그놈은…….”

타이니는 녹턴을 자신보다 먼저 소유했던 괴물을 다시금 떠올렸다.

거대한 산양의 머리에 검붉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이 들어찬 인간형 몸체와 산양의 다리를 가진 괴물.

도구까지 다루는 놈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왼팔이 없어서 공격에 사각이 좀 있다는 것뿐이었다.

키가 5m 정도의 마물이었지만, 녹턴을 들었을 때 발휘한 위력만큼은 충분히 마수병단의 후작급 마수에 견줄 만했었다.

진짜 마수병단이 강림하여 그 위용을 보여 주기 전까진 놈이 마계 대공급이 아닐까 추측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냐. 그게 태생적 강함이라면 말이 안 돼. 고위 마족들도 그 정도는 드물었어.”

예상치도 못한 변수에 자꾸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 그때는 안 이랬는데? 뭐가, 뭐가 잘못됐지?”

“동생이, 아는 척해서?”

혼란스러워하는 타이니에게, 루나가 정곡을 푹 찌르는 말을 던졌다.

큭.

“제, 젠장. 진짜 그래서 그런 건가?”

치명상을 입은 그가 머리를 감싸 쥐는데, 다행히 루나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그 고민에 동참해 주었다.

“49층 계층주는, 뭐였는데?”

“그나마 좀 나았지. 머리는 안 썼으니까.”

오직 자신의 힘만 믿는 강력한 포식자.

세 개의 머리에서 각기 냉기와 불꽃, 독의 브레스를 내뿜는 거대 도마뱀.

문제라면, 녀석도 악마급의 괴물이라 엄청나게 강력한 육체 능력뿐만 아니라 ‘영역’까지 사용한다는 것.

“영역?”

“공간 지배의 권능. 그 안에서는 오러를 써도 위력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봐야 해. 오러 정도로 응집되지도 못한 마력은 그냥 아무 효과도 못 보고. 놈이 영역을 전개하면 그 안에서 움직이기도 꽤 곤욕스러울 거야. 각오해 둬.”

“무슨, 그런…….”

“같은 단계의 공간 지배로 상쇄하거나, 월등한 힘으로 때려잡는 수밖에 없지. 아니면 놈이 영역 전개를 하기 전에 죽이거나. 차라리 그건 자신 있는데.”

8단계의 괴물을 때려잡는다는 말을 쉽게도 내뱉는 타이니.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루나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40층에서 타이니가 한 번 보여 준 기술, 유성 떨구기는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보일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 자신의 특기는 기습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50층 그놈은 부하를 이용해 함정을 파기도 하고, 정신파로 강화시킨 놈들이 먼저 달려들게 해서 적의 힘이 빠진 뒤에야 본인이 나서지. 저주까지 걸면서 말이야.”

“으…….”

“또 악마급 괴물이면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한데, 이상할 정도로 소심, 아니 영악한 새끼였어. 팔 하나를 어디서 잘라먹은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아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49층의 계층주에게도 다른 상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순간 전생에 놈을 죽인 후 시체를 보았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광경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죽은 녀석의 세 머리 뒤쪽에는, 무언가 뽑혀 나간 것 같은 상처 ‘3개’가.

“한 놈은 머리가 절반이 뜯겨 나갔고, 한 놈은 팔이 하나 잘렸다? 이거, 흠…….”

“무슨, 말?”

“……둘이 싸운 걸까? 그럼 그놈은 같이 있지 않으려나?”

그랬으면 좋겠지만 근거가 될 정보가 없으니, 생각할수록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염려, 된다면, 돌아가도 돼.”

“응?”

“우리, 최소 목표. 이미 이뤘어.”

“아…….”

루나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한층 더 빨리 오러유저가 되기 위해 대미궁에 들어온 것이니,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미 충분히 목표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타이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놈이라면 녹턴이 있을 거야.”

“욕심이, 사람, 죽여.”

그 말에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루나는 평소엔 마냥 애 같다가도 가끔 이렇게 폐부를 찌르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대미궁을 정복하려는 이유는 단지 사사로운 욕심이 전부가 아니었기에, 타이니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 대미궁, 솔직히 존재 자체가 찜찜하잖아.”

“찜찜?”

“응. 대미궁의 마물들을 다 모으면 적어도 마수병단의 일각은 될 거야. 만약에 50층 이하에서 악마급 마물이 더 있다면 실제 규모는 그 이상이겠지. 그런 게 이 지상에 버젓이 남아 있는 거잖아. 이게 과연 마계와 관련이 없을까?”

“고대, 마계 대전의, 흔적…….”

“맞아. 그렇게들 말하지. 그걸 달리 말하면 대놓고 마계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고.”

“하지만…….”

“그래. 실제로 마수병단이 강림할 때, 여긴 안 움직였었어. 하지만 그때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상시 마역 감시조를 운용했었지.”

그 말에 루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에 타이니는 하려던 말을 더욱 힘주어 전할 수 있었다.

“대미궁의 마수들이 혹시나 마왕군과 같이 움직인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다고.”

“…….”

“그러니 이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 우리가 최대한 뿌리를 뽑아 놔야 해.”

녹턴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억측을 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무엇보다, 저 내려간 흔적이 너무 마음에 걸려.”

계층주들이 층을 무시하고 모일 수 있다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거라면 앞선 가정은 절대 가정만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걸 주도하는 놈이 만약 그놈이라면.

“그놈만이라도 죽여야 해. 반드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말에 루나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지만, 그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악마급 괴물. 네가, 한 놈, 내가, 기습으로, 한 놈. 이게, 최선이야.”

그것만 해도 상당히 낙관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타이니야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니 8단계의 몬스터를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그녀는 기습에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죽는다고 봐야 하니까.

하지만 루나의 걱정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더 있으면?”

그랬다.

이미 미궁의 몬스터들이 전생의 기억과 달라졌다는 것은 질리도록 체감했다. 그것도 아주 나쁜 쪽으로 말이다.

그 상황에서 루나가 덧붙인 그 말은 굉장히 확률이 높은 추측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가 보자. 일단 정찰부터.”

“정찰?”

“음, 월랑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면 되지 않을까?”

“아!”

“컹!?”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 또 날벼락을 맞은 늑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계약자를 노려보았다.

“크르르르.”

“할 수 있지? 네 발과 소울 사이트에 우리 운명이 걸려 있다.”

“크르릉.”

“부탁 좀 할게. 응?”

“킁.”

“나도, 부탁.”

“……끄응.”

루나까지 그렇게 나오자, 날을 세우던 월랑은 결국 귀를 축 늘어트린 채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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