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187화 (187/500)

187화. 죽음의 오러

민간에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챌린저급 마나유저가 오러를 각성하거나 6서클급 마법사가 일곱 번째 서클을 개척할 땐 그저 마나의 작용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변화가 생긴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로 알려진 것은, 육체의 생명력이 강화되고 마나를 다루는 감각이 몇 배 증폭되는 등 신체 능력의 개변이 이루어지는 것.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전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오러유저, 혹은 7서클을 이룬 마도사였다.

그렇기에 오러를 다루게 된 기사나 속성을 마스터한 마법사를 달리 ‘초인’이라 부른다.

‘동생의 얘기를 들어 보면, 나도 그랬을 거야.’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의 소나기 같은 공세도, 이 순간만큼은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루나는 칼날같이 벼려진 자신의 집중력이 만들어 낸 이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끝없이 사유를 이어 갔다.

전반적인 능력 상승. 그것은 분명 매력적인 특성이었다.

‘하지만…….’

삼백 년 전, 역사에 기록된 천재 ‘발렌티아’는 다른 가능성에 집중했더랬다.

- 고작 육체와 감각이 조금 나아지는 변화로 만족하는 건, 종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지대한 가능성을 허망하게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육체의 개변이 그에게는 그저 가능성 낭비로 보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선배 초인 중에서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 준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터였다.

특히나 발렌티아는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고, 지금까지도 역사에 이름이 남아 있는 한 오러유저의 특성에 주목했다.

오러유저, 라흐만.

보통 신체 능력이 급격히 쇠퇴하는 일흔의 나이에 기적적으로 오러를 각성한 그는, 단순히 신체가 강건해지는 수준을 넘어 20대의 신체로 돌아가는 육체의 회귀라고 할 만한 변화를 겪었다.

그 기적적인 변화는 금세 주변에 알려졌고, 그는 불로의 기사 혹은 회춘의 기사 등의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도전할 수 있는, 기적의 초인이 탄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전 대륙을 휩쓴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젊음의 극단적인 단점이 전해졌다.

그는 다시 찾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양의 마나를 끝없이 소모해야 했고, 정신력의 일부까지 할당해야 했다.

그 탓에 오러유저이면서도 오러를 아주 잠깐씩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결국 사상 ‘최약’의 오러유저, 오러를 못 쓰는 오러유저 등으로 불리던 그는 오명을 씻기 위해 나선 결투 끝에 적국의 초인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의 생은 그렇게 끝났고, 후에 그의 이름은 오러유저라는 영예보다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하지만 발렌티아의 생각은 달랐다.

- 당시 그가 죽지 않았다면, 정말로 끝없이 젊음을 유지했다면 후에 그 약점마저 극복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불가능했을 확률이 더 높았다. 불로와 불사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신의 권능으로 여겨지는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발렌티아는 한낱 인간이 신의 권능에 닿을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자체에 주목했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천재성으로 자연스레 승격하려던 스스로의 성장을 억지로 멈춰 세우고는 승격, ‘격이 오른다’는 것 자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물이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그 과정 자체를 파헤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불과 수년 만에 그 알고리즘의 일부를 밝혀냈다.

- 삶을 관통하는 신념, 혹은 지독한 욕망. 혹은 그에 준하는 간절함.

생물의 한계를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는 영혼에게 그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그 간절함이며, 그게 없는 이는 그저 육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뿐이다.

발렌티아는 그것을 허약하지만 한 분야에 천재성을 가진 아이와 그저 건강하기만 한 보통 아이의 탄생으로 비유했다.

- 그대로 자라 봤자 그저 보통 어른이 될 확률이 높은 아이와, 당장 몸은 좀 허약하더라도 한 분야에서 범접할 수 없는 비범함을 보이는 아이.

-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후자를 고를 것이다.

발렌티아는 그런 신념에 따라 자신만의 특성 개변 방법을 만들어 냈다.

6단계, 챌린저급의 벽에 부딪힌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게 목적성을 주입하는 것.

그러나 말이 쉽지, 그저 원하기만 한다고 영혼과 그 성향이 쉽게 바뀔 리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위 정신계 마법까지 연구해 가며 자신과 세계의 질서를 일시적이나마 속이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기사의 수법이라기보다는, 마법이나 주술에 가까운 주문을.

- 단, 이 주문과 마나 패턴을 기억하고 있더라도 각성의 순간에 떠올리지 못하면 끝이다. 만약 애매하게 떠올리게 된다면 오히려 위험해진다.

- 전혀 쓸모없는 특성을 얻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마나 익스플로전을 겪고 죽을 수도 있으니 후손들은 각별히 주의하라.

그것이 그가 후손들에게 남긴 경고.

물론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더라도 한계는 있었다.

만약 끝없이 힘을 추구해 온 전사가 갑자기 신속의 속도를 원한다고 하면, 섭리를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자신부터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발렌티아의 비전은 뜬금없는 권능을 얻게 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만의 ‘개성’을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일 뿐.

다행히 루나는 그 비전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쭉 생각해 오던 것이 있었다.

‘특성으로 단점을 메꾸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아.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이 평생을 추구해 온 무력의 근간은 은신과 기습이다.

즉 먼저 적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처리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니, 방어력 관련 특성은 발현할 수도 없을 테고 가능하다 한들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 누나 별명? 음, 처음에는 죽음의 기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 고위 마족 중에 데스 나이트들이 있어서 강림 이후에는 그냥 사신이라고 불렸어.

사신(死神), 죽음의 신.

‘마음에 들어.’

물론 과장된 별명일 것이다.

8단계급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49개체의 후작급 마족들과 그에 준하는 괴물들.

그리고 그보다 더 상위의 존재라는 7개체의 마계 대공들과 그 위에 군림하는 마왕.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짐작도 안 가는 그 강대한 적들에 비하자면 전생의 자신은 하찮고도 하찮았을 것이다.

고작(?) 후작급 마수 하나 처리하느라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튼튼한 사람이 아주 작은 말벌에 쏘여 죽기도 한단 말이지.’

자신이 살아온 길과 정확히 일치하는 방향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미래의 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가져야 할 무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 격상의 존재조차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일격.

10대 기사?

아니다. 자신은 기사 따위가 아니다.

그저 의뢰와 명령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일 뿐이다.

결코 기사가 될 수 없고, 그리 불려서도 안 되는 자.

동생과는 다르다.

- 나는 마왕의 골통을 깨고, 세상에, 역사에 내 이름을 새길 거야.

그렇게 한없이 높은 이상을 보는 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속이 좁아.’

명예를 모르는, 명예에 가치를 두지 않는 암살자일 뿐이다.

그것이 자신이 타고난 업이자 숙명이다.

하지만 기왕 암살자로 살아갈 것이라면 자신의 목표는 분명할 터.

‘적을 죽인다.’

명예를 모르니, 놈들이 인류의 적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찾지 않는다.

오직 동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가문을 위해.

그 적을 죽인다.

‘내 길은 이게 맞아.’

확신을 가지는 순간, 영혼의 격이 일순간에 상승하는 황홀감과 함께 세상 위에서 홀로 자유로운 듯한 해방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온전히 그런 법열에 매몰되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정신 붙잡아!’

여기서 정신을 놓았다가는 어중간한 오러유저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우우웅.

최악의 환경에서 극한으로 발휘된 집중력이, 이제 막 발현되기 시작한 오러에 자신만의 특성을 더하기 시작했다.

가문에서 전해지는 가장 중요한 비전 중 하나, 그림자의 마나로 이루어진 그림자 독.

그것이 새롭게 태어난 그녀의 능력에 의해 변질, 아니 진화되어 오러와 합쳐졌다.

파괴의 권능인 오러가 오직 적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그림자의 독과 합쳐지며, 소름 끼치는 기운을 내포하기 시작했다.

그저 오러에 독성이 섞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단순히 생명을 해치는 것을 넘어,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려는 진득한 악의가 서린 권능.

- 죽음의 오러(Aura of Death).

그야말로 사신의 권능이 탄생한 것이다.

한계를 벗어나난 순간에 느껴진 황홀한 법열을 애써 참아 가며 루나는 단검을 움직였고.

이내 그 소름 끼치는 검은 오러가 시야 가득 일렁이며 검은 공간을 갈라 갔다.

스각.

그것을 휘두르는 루나의 검격은 그 속도나 힘이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사방에 가득한 마기의 일각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베어 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 끼에에에에엑!

공격이 핵의 근처에도 스치지 않았는데, 섀도 핀드 한 마리가 곧바로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죽음의 오러, 사신의 손길이 마물을 덮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 아하하하하하하!

피투성이가 되어 광소를 터트리는 루나.

전생에도, 현생에도 저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형편없이 찢어진 갑옷 사이로 드러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그와는 반대로 줄줄이 사멸하는 섀도 핀드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타이니는 그간의 염려를 날려 버리고 마주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성공했구나!?”

맡겨 달라기에 무언가 생각이 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벌써 오러를 각성할 줄은 몰랐다.

“잘했어! 잘했어!! 장하다 루나!!!”

“컹! 컹!!”

월랑과 함께 환호하며 그녀에게 다가가는데, 미친 듯이 웃어 젖히던 루나가 순간 무언가를 느꼈는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뭔가 잘못된 걸까.

“왜? 뭐야? 뭐가 문제야?”

한순간 긴장하며 따져 묻는데, 돌아오는 답에는 맥락이 없었다.

“마왕도, 죽일 수 있길, 바랐는데, 힘들 거, 같아.”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영문을 몰라 멀뚱히 바라보니, 자신을 마주 보는 루나의 눈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경지, 차이 나면, 효과, 많이 떨어져. 나, 바보짓, 했나 봐.”

무슨 말인지 단번에 해석이 되지 않았지만, 이어진 설명을 듣고 나서는 차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러니까, 동급에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지만 격상의 존재한테는 ‘극독’ 정도라고?”

“……응. 너 같은, 괴물 몸이나, 영혼, 아니라면. 하지만, 내가 원한 건, 하수들, 상대하는 거, 아닌데. 형편없어. 나, 바본가 봐.”

아예 울먹이기 시작한 루나를 본 타이니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급의 초인을 그냥 죽일 수 있는 특성이 별거 아니라고?”

“대신, 육체 능력, 마나 감응력, 개선도 포기. 나, 한심해…….”

그 자학에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게 뭐가 별거 아니란 거야!!”

“……응?”

“신체 능력은 발전시키면 그만이야. 그리고 애초에 초인 중에서도 누나만큼이라도 마나 감응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응?”

“무엇보다, 그런 건 노력으로도 일정 부분은 개선할 수 있어!”

“응? 나 이미, 한계…….”

“한계라니! 오러를 얻었잖아, 오러! 이미 한계를 넘은 초인이라고. 거기다 전생에 없던 힘까지 손에 넣은 거야!”

“어…….”

격상의 존재에게도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게 된 사상 최강의 암살자가 아주 순진하게 눈을 껌뻑였고.

타이니는 환한 미소로, 루나가 새롭게 얻은 가능성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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